<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9화 >
대망의 첫 공연.
그 끝을 알리는 음악이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얘들아. 이제 커튼콜이야. 나갈 준비하자.”
“네~”
뮤지컬은 보통 공연이 끝나면 모든 배우들이 무대로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냥 인사만 하고 끝낼 때도 있지만,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넘버를 짧게 불러 더 큰 여운을 안겨 줄 때가 많다.
“감사합니다!”
커튼콜의 첫 시작은 앙상블이다.
뮤지컬 무대는 주연 배우들이 만들어 나가지만, 그 뒤에서 빛을 밝혀 주는 앙상블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올리자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 주었다.
참으로 뜻 깊은 시간이 아닌가.
뮤지컬 배우들은 이 관객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 때문에 무대를 끊지 못 한다고 한다.
“혜나랑 연욱이. 이제 너희들 차례야. 혜나는 저쪽 반대편에 뛰어 나오고, 연욱이는 여기서 뛰어 나가면 돼. 그리고 둘이 서로 뛰어 가다 만나면 그때 손잡고 관객들한테 인사하면 되는 거야. 잘 할 수 있겠지?”
“네~!”
커튼콜에서 배우가 인사를 할 땐, 오케스트라에서 그 배우가 불렀던 노래를 연주해 준다. 그럼, 그 음악에 맞춰 뛰어 나가 인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두둥-!
우리 두 사람이 불렀던 듀엣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나와 혜나는 동시에 무대로 뛰어갔다.
“꺄아아아-!”
“와아아-!”
그런데 무대로 나가자마자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다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나와 혜나는 손을 맞잡고 관객들을 향해 열심히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끊이질 않는다.
또한 박수 소리도 이제껏 나왔던 배우들보다 훨씬 컸다.
이 정도면 거의 주연급 배우가 나온 수준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모든 배우들이 무대로 나오고 나서 커튼콜이 끝났다.
휘장이 내려가고,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던 배우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끝났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뮤지컬 공연이 끝나면 저 휘장 뒤에서 배우들은 뭘 하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다.
오늘 보니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다들 좀 귀엽다고 해야 할까?
“와아~ 끝났다. 다행히 실수 한번도 안 했네.”
“그러니까요. 중간에 실수 한번 할 뻔했는데, 다행히 잘 넘겼어요.”
“회식이다, 회식~. 다들 오늘 목에 기름칠 좀 해야지. 메뉴는 소고기로 정했으니까, 다들 무조건 먹고 가.”
“와. 선배님. 오늘 몇 차까지 가는 겁니까?”
“5차까진 쭉 달려야지! 내일 공연 있는 사람만 1차 먹고 빠져.”
옹기종기 모여서 펄쩍 펄쩍 뛰는 사람도 있었고, 우다다 무대를 뛰어다니며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힘든 공연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힘이 넘쳐 보인다.
“연욱이랑 혜나도 고생 너~무 많았어.”
“그래. 둘이 첫 공연인데, 진짜 잘하더라.”
“아까 봤어? 관객들이 혜나랑 연욱이 나올 때 엄청 소리 지른 거?”
“내 말이. 주연 배우들보다 더 반응이 좋았던 거 같다니깐? 이거 묘하게 질투 나네.”
배우들은 빈말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봐도 방금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관객들이 원래 아역들에게는 인심이 후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뜨겁게 환호를 해 주는 건 본적이 없다.
“아. 근데 혜나랑 연욱이는 오늘 회식에 못 오겠죠?”
“얘들 나이가 어려서 얼른 코 자야지.”
“아쉽다. 고기라도 한 점 먹이고 싶었는데.”
왜 마음대로 사람을 재우려 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소고기 먹을 줄 안다. 잠이야 더 자면 되는 거고.
“자자. 다들 얼른 정리하고 나가자. 밖에 관객들 기다린다.”
들뜬 분위기를 진정시킨 건 류재한 배우였다.
그의 말대로 뮤지컬이 끝나고 바로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퇴근하기 위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팬들도 있다.
배우들은 퇴근을 하면서 제 팬들을 만나 사진도 찍어 주고 사인도 해 주는 것이 관례였다.
즉, 아직 이들의 업무는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선배님. 샤워 하고 가실 겁니까?”
“응? 아니. 난 집에 가서 씻으려고. 혜나랑 연욱이 먼저 데리고 나가야 될 거 같다. 밖에서 부모님 기다리실 거 아니야.”
류재한 배우는 옷을 다 갈아 입은 우리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얘들아. 나랑 같이 나가자. 밖에 부모님 기다리고 계시겠다.”
내가 알기로 류재한 배우는 퇴근길이 다른 배우들보다 좀 더 늦는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가장 먼저 배우실을 나섰다. 그것도 우리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말이다.
“오-! 류 배우님 나온다!”
“벌써? 이 오빠 왠일이래?”
대기실 밖에는 팬들이 지정된 라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류재한 배우를 보다 그의 양손을 붙잡고 있는 우리 남매에게 시선이 쏠렸다.
“꺄아~ 어린 빅터랑 줄리아다!”
“어머.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귀엽잖아?"
“미친. 너무 잘생겼다. 사인 받아도 되나?”
분명 류재한을 기다렸던 팬들 같은데, 갑자기 나와 혜나에게 전부 모여 들어 핸드폰과 종이를 들이밀었다.
“얘들아. 공연 너무 잘 봤어. 어쩜 그렇게 얼굴처럼 목소리도 예쁘니?”
“진짜 잘하더라. 이 언니랑 사진 한번 찍어 주면 안 될까?”
“연욱아. 이름 연욱이 맞지? 부탁인데, 여기 종이에 네 이름이라도 적어 주면 안 돼? 사인은 없을 테니까 이름만으로 만족할게.”
나는 어느 여성 관객이 건네 준 종이와 펜을 받아 들었다.
사인?
뭐, 딱히 멋있는 사인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저번 생에서 썼던 사인을 종이에 휘갈겼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 든 관객이 놀란 목소리를 냈다.
“너 사인도 할 줄 아니?”
“네.”
“하-. 귀여워라. 사인이 귀여운 건 살다 살다 처음이네.”
그것을 보고 다른 관객들도 각자 종이를 꺼내 들었다.
다들 저런 걸 잘 챙기고 다니는구나.
“어머. 연욱아! 이 누나도 사인 한 장만 해 줘!”
펜 한번 잘못 놀렸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사인을 해 주게 생겼다.
중간에 껴서 뻘쭘하게 서게 된 류재한 배우가 관객들을 진정시키듯 말했다.
“하하. 여러분. 아이들도 귀엽지만, 다들 절 보러 오신 거 아니었어요?”
“오빠. 잠시만요. 연욱이랑 혜나 먼저요.”
“오빠 사인은 이미 3장이나 있어요.”
“잠깐만 비켜줘요, 오빠.”
“······.”
류재한 배우는 어느새 뒷전이었다.
“혜나야. 여기 봐봐~”
“네에~”
“아휴. 예뻐라. 얘가 진짜 너무 예뻐.”
팬들은 혜나에게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원래 아이들이 낯을 많이 가리는 경우가 많은데, 혜나는 정반대였다.
적극적으로 사진도 찍어 주고 포즈도 잡아 주니, 관객들이 그런 혜나의 매력에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그때 많은 인파를 뚫고 나온 건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마침 사인을 해 주는 손이 점점 아파 왔는데, 두 분이 우릴 구하러 오셨다.
“엄마~! 아빠~!”
혜나가 뛰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열심히 그 뒤를 따라 뛰었다.
여기 계속 붙잡혔다가는 내일 아침까지 이럴 거 같았다.
부모님은 우리 둘을 껴안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내 새끼들.”
“너무너무 잘했어.”
두 분이 짙은 숨을 내쉬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긴장을 많이 하셨던 모양이다.
난 따뜻한 부모님 품속에 파 묻혔다.
피로감이 전부 다 풀려 나가는 듯한 기분이다.
“······.”
팬들은 조용히 부모님과 우리의 포옹을 지켜보았다.
“저게 뭐라고 감동이지.”
“힐링 된다······.”
부모님은 공연이 끝났으니 우릴 그만 집에 데리러 가려고 했다.
팬들은 아쉬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벌써 가는 거예요?”
“너무 아쉽다. 좀만 더 있으면 안 되나요?”
“죄송해요. 얘들이 이제 집에 가서 쉬어야 해서요.”
“우리 아이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은 아쉬워하는 팬들에게 인사를 해 주며 우리 둘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다음에 또 봐용~”
“안녕히 계세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또 보러 와 주세요.”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환하게 웃는 관객들이었다.
“연욱이는 인사하는 게 왜 이렇게 어른스러워?”
“그러니깐. 귀여워라.”
관객들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우리 뒤를 따라온 건 다름 아닌 류재한 배우였다.
“어머님~ 아버님~”
“아, 네!”
그는 공손한 자세로 부모님에게 말했다.
“오늘 저희가 회식을 하는데, 혹시 같이 가실 수 있을까요?”
“회식이요?”
어머니. 무조건 받으세요!
회식 메뉴가 소랍니다, 소!
“죄송해요. 곧 있음 시간도 많이 늦어서 얘들은 가서 쉬어야 할 거 같아요.”
“아. 그렇죠. 아쉽네요. 혹시라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연욱이랑 혜나 데리고 참석해 주십시오.”
실망이 컸지만 어쩌겠는가.
부모님의 선택이 옳은 것을.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하하. 아닙니다. 저 남매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욱이랑 혜나는 또 보자~.”
류재한 배우가 떠나고 나서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얘들아. 많이 배고프지?”
“가면서 뭐라도 먹어야 하나?”
“음. 그럼 가볍게 먹을 거 사가야겠다. 우리 토끼들 먹고 싶은 거 있어?”
잠깐 침울해져 있던 나는 얼른 손을 들고 소리쳤다.
“소고기!”
* * *
“아. 없어······."
아동복으로 유명한 핑크베어의 김아영 대표는 요즘 따라 마음이 심란했다.
"마음에 드는 모델이 없다고!"
곧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따뜻한 아이들 옷을 팔아야 하는데, 모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겼다.
핑크베어에 지원한 키즈 모델 중 김아영 대표의 눈에 드는 아이가 없었던 것이다.
“대표님. 차라리 외국 키즈 모델을 데려다가 쓰시는 게······.”
“안 돼요. 애엄마들 깐깐한 거 몰라요? 외국 모델 가져다 쓰면 서양 애들한테만 옷이 맞춰진 거 아니냐는 인식이 박힌단 말이에요. 저번에 T사에서 그랬다가 제품 다 말아 먹은 거 잊었어요?”
예전에는 외국 키즈 모델을 쓰는 게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괴리감을 일으킨다는 반응이 많아 김아영 대표도 어떻게든 한국 아이들을 모델로 쓰려고 했다.
문제는 적당한 인재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아주 좋은 모델을 발견해도 이미 다른 회사와 계약이 되어 있어 광고를 찍을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막상 뽑아도 문제야. 애들이 핏이 안살아. 어린애한테 핏을 요구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외국 애들은 성장이 빨라서 그런가, 맵시가 있단 말이지.”
괜히 외국 키즈 모델들이 유행한 게 아니다.
하루 종일 모델들 프로필을 보며 고민을 하다 김아영 대표는 결국 포기하고 퇴근을 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면서 자기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효영아. 내일 스케쥴 있어? 없으면 내일 밥이나 먹자. 너랑 수다 좀 떨면서 스트레스 풀게.”
“응? 언니. 어떡하지? 나 내일 뮤지컬 보러 가. ”
“으응? 저번주에도 보지 않았어?”
“응. 이번에 또 보러 가. 그 ‘괴물’이란 뮤지컬.”
“아니. 벌써 3번째 아니야? 그게 그렇게 재밌니?”
뮤지컬을 즐겨 보지 않는 김아영으로써는 봤던 공연을 계속 보러가는 동생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 나도 원래 이렇게 볼 생각 없었어. 그런데 거기 아역들이 너무 예쁜 거 있지?”
“응? 아역?”
아역이란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 김아영이었다.
“내가 저번에 말 안 했었나? ‘괴물’ 뮤지컬에 진짜 괴물 아역들이 나왔다고 난리야. 실력도 실력인데, 비주얼이 장난 아니더라고. 둘이 남매라고 하던데, 유전자가 정말 대단하긴 한가 봐.”
“그래? 그렇게 애들이 예뻐?”
“응. 언니도 보면 아마 까무러칠 걸? 뮤지컬 팬들도 자기 평생 아역 때문에 표 끊어 보는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나도 그렇고.”
저렇게까지 말하니 김아영도 호기심이 생겨났다.
“혹시 거기 남는 표 있니? 나도 한번 보고 싶은데.”
“어머. 진짜? 언니 뮤지컬 싫어하잖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래.”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같이 보기로 했던 사람이 집에 일이 생겨서 안 된다고 했거든. 그 표 언니한테 줄게. 내일 시간 되지?”
“응.”
뮤지컬 공연이라.
괜히 시간만 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공연 보러 오기 전에 뮤지컬 포스터 먼저 봐봐. 연욱이랑 혜나 나오는 포스터는 꼭 봐야 돼.”
“응? 연욱이랑 혜나?”
“아. 그 아역 배우들 이름이야. 꼭 봐야 돼? 알겠지?”
뭘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그래도 궁금은 했던지라 김아영은 인터넷을 뒤져 뮤지컬 포스터를 찾아냈다.
“어······?”
그리고 연욱이의 포스터를 보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