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8화 >
“어떡하면 좋지?”
“왜? 무슨 일이야?”
“감독님. 혜나 좀 보세요.”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곧 공연이 시작된다.
아까 전까지는 무대에 설 생각에,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던 혜나가 지금은 창백해진 얼굴로 손발을 떠는 중이었따.
“혜나야. 긴장할 필요 없어. 괜찮아.”
배우들이 그런 혜나를 진정시키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완전히 굳어 버린 채 혜나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 혜나, 많이 긴장했어? 걱정하지 마. 관객들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렴.”
그게 말처럼 쉽겠는가.
긴장하지 말라고 하면 더 긴장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배우들의 소란을 듣고 달려온 김세원 연출 감독은 결국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아무래도 오늘 혜나는 연기 못 하겠는데?”
“아······. 분명 리허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괜찮았잖아요. 그때도 관객들이 있었고.”
“그때랑 지금이랑 관객 숫자가 많이 다르긴 하지.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으면 아이한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럼 어떡하죠? 곧 있으면 공연 시작하는데?”
“음-. 최대한 빨리 대타를 구해야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대기 시켜 놓는 건데.”
김 감독은 혜나와 같이 더블 캐스팅 된 아이를 대타로 부르려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혜나가 영영 무대 위에 서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굳어 있는 혜나에게 다가갔다.
“누나-!”
“······.”
대답이 없다.
나는 혜나 누나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혜나 누나!!”
“···으응?”
멍해 있던 혜나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난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를 봐!”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누나. 많이 떨려?”
혜나는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왜?”
“모르겠어. 무서워.”
“그래서, 이대로 포기하고 싶어?”
만약 이대로 포기하고 싶다고 대답한다면, 난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 무대에 올려 보내지 않으려 했다.
“아니. 포기하기 싫어.”
하지만 울먹거리면서도 혜나는 공연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어떻게든 그녀를 무대 위에 올려 이 공포를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누나. 이렇게 하자.”
“응?”
“무대에 올라가면 나만 바라봐. 관객들은 바라볼 필요 없어. 우리가 평소에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돼. 할 수 있겠지?”
혜나는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연욱이만 바라보면서 할게.”
“그래. 그렇게 하다보면 금방 끝나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오디션 때 했던 말 기억해?”
“응?”
혜나는 잠시 눈을 껌뻑 거리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 박살낸다!”
“맞아. 누나가 다 박살내고 오는 거야!”
“웅!”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은 듯보였다.
그리고 남은 긴장감을 풀기 위해 혜나는 나를 꼭 껴안았다.
난 누나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토닥토닥 등을 두들겨 주었다.
이윽고 멘탈을 회복한 혜나가 김세원 감독에게 뛰어 갔다.
“감독님!”
“응? 아! 혜나야. 이제 괜찮아?”
“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지금이라도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김 감독은 십년감수한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배우들도 혜나 곁에 모여 들어 한 마디씩 응원의 말을 던졌다.
“우리 혜나, 돌아왔구나?”
“그래. 처음에는 떨릴 수 있어. 이 언니도 첫 무대 올라갔을 때 너무 떨려서 실수도 몇 번 했지. 사실 아직도 떨리긴 해.”
“너랑 혜나를 비교하면 어떡해? 우리 혜나는 실수 같은 거 모르는 아이라고.”
“맞아. 혜나는 하나도 안 떨고 아주 잘 할 수 있을 거야.”
배우들 역시 한 고비 넘겼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감은 남아 있는지, 자꾸만 혜나에게 다가와 괜찮다며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보면 혜나 누나보다 저 배우들이 더 긴장한 듯보인다.
하기사.
얘가 갑자기 공연을 하다 패닉이 와서 울어 버리거나 아무 대사도 치지 못 하면 그것만큼 난감한 게 없을 것이다.
“연욱아. 넌 괜찮니?”
혜나만 신경 쓰다 뒤늦게 배우들은 나를 챙겨 주기 시작했다.
“예. 괜찮아요.”
“그래. 연욱아. 형은 우리 연욱이만 믿는다.”
“이 누나도 연욱이 믿고 있어. 호호.”
어느새 나이와 상관없이 다 형, 누나가 되어 버렸다.
데에엥-.
이윽고 큰 종소리가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곧 공연이 시작됩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몇 가지 주의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안내 방송을 하는 동안, 스태프들은 열심히 뛰어 다니면서 무대 준비에 한창이었고, 배우들도 잡담을 그만 두었다.
항상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배우들이 감정을 잡기 위해 눈을 감을 때면 알 수 없는 아우라가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자. 스탠바이. 곧 들어갑니다.”
스태프들은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배우들에게 얼른 무대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펑-! 퍼펑-!
무대 장치에서 불꽃을 터트리자 미리 프랑스 군대 복장을 한 앙상블이 먼저 투입됐다.
뮤지컬 ‘괴물’은 나폴레옹과 유럽 연합군의 워털루 전투 이후를 그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대위는 불사의 군대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생명 창조 실험에 빠져 있었고, 전쟁터에서 만난 앙리 뒤프레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연구의 조력자가 된다.
“우린 과학을 뛰어 넘을 것이고, 마침내 생명을 창조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다!”
나와 혜나는 어두운 무대 뒤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연습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저들의 힘 넘치는 연기력과 노래가 절로 감탄을 터트리게 만든다.
그렇게 정신없이 극에 빠져 있을 때였다.
“연욱아. 이제 곧 네가 나가야 돼.”
스태프 하나가 다가와 내 차례가 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누나. 나 먼저 갈게. 이따 잘 따라와야 돼?”
“웅. 연욱이 파이팅.”
혜나는 주먹을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다 박살내고 와, 연욱아!”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남아 있던 긴장감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다.
나는 혜나 누나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배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무대에 들어서기 무섭게 소리쳤다.
“아빠는 미쳤어! 내가 엄마를 반드시 살려낼 거야!”
내 첫 장면은 이렇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흑사병으로 사랑하는 엄마를 잃게 된다. 그 충격으로 그는 자신이 엄마를 살려 낼 거라는 목표를 품게 되고, 주민들이 불에 던져 놓은 시체를 밤에 몰래 집까지 끌고 간다.
“내가 반드시 살릴 거야. 엄마는 반드시 내가 살리고 말 거야.”
여기서는 음정을 맞출 필요 없이 최대한 아이의 절절한 마음이 드러나야 한다.
난 목소리까지 떨면서 노래와 대사를 함께 이어갔다.
“꺄아아악-!”
“마, 마녀다! 이건 마녀의 짓이다!”
“말도 안 돼. 시체가 돌아오다니!”
그리고 다음 날 하녀에 의해 그 시체가 발견되고, 마을에 괴상한 소문이 퍼진다.
빅터네 엄마는 마녀고, 저 집은 저주를 받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시체가 저절로 집을 찾아온 것이며, 흑사병의 저주가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태워라!!”
“마녀를 태워 죽여라!”
“이 저주 받은 집을 불태워 없애 버려!!”
흑사병으로 인해 판단력을 잃은 주민들은 광기에 휩싸여 죄다 횃불을 들고 빅터의 집으로 몰려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엄마의 시체가 있는 빅터네 집을 불태워 버렸다.
“영원히 사라져라, 마녀야!”
“신께서 우리를 구하시리라!”
활활 타오르는 집을 앞에 두고 주민들이 합창을 불렀다.
그 안에 갇힌 나는 살려 달라 비명을 질러댔고, 빅터가 가장 원망하던 아버지가 뛰어 들어와 나를 구하고 목숨을 잃었다.
······
“빅터~.”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빅터는 죽은 아버지와 친구였던, 이 지역의 시장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 시장에게는 딸 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줄리아였다.
나는 총총 걸음으로 뛰어오는 혜나를 바라보았다.
모두 고요하게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
혜나는 잠깐 멈칫 거렸지만,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사를 이어 갔다.
“뭘 읽고 있는 거야? 책만 보지 말고 나랑 놀자~.”
“미안해. 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반드시 자신이 죽음을 정복하겠다고 마음 먹은 빅터는 생명 창조에 대한 강박증에 사로 잡혔다.
어린 아이가 자꾸 무모한 실험을 하려하고, 평소 이상한 소리만 해 대니 결국 시장은 빅터를 외국으로 쫓아내 버렸다.
저 아이는 저주 받았다면서 말이다.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별’ 넘버의 시작이었다.
“가지 마, 빅터. 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혜나는 음정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중간중간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띄었지만, 그럴 때마다 내게 시선을 집중하며 노래를 불렀다.
“난 네게 돌아올 거야. 반~드시!”
그렇게 끝까지 실수 하나 없이 노래가 끝이 났다.
동시에 조명이 전부 꺼지면서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쳐 주었다.
박수가 뜨거운 것을 보니, 관객들이 우리 두 사람이 만들어낸 무대를 마음에 들어한 모양이다.
"조심해."
"응."
무대 조명이 다 꺼지면 정말 어둡기 때문에 나와 혜나는 얼른 손을 잡고 같이 무대 뒤편으로 뛰어갔다. 그래야 다음 사람들이 무대를 이어갈 테니까.
우리가 무사히 무대 뒤편으로 돌아오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혜나랑 연욱이, 너무너무 고생했어!”
“그래. 정말 잘했다. 걱정했는데, 아주 잘해줬어.”
“에이. 내가 말했잖아. 얘네들은 걱정 안 해도 알아서 잘할 거라고. 난 정말 티끌만큼도 걱정 안 했어.”
“발만 동동 구르면서 혜나랑 연욱이만 쳐다본 사람이 걱정 안 하기는.”
나와 혜나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났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첫 무대였다.
“두 사람 여기서 쉬고 있어. 이따 커튼콜 할 때 나가면 돼.”
“네~”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혜나는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난 깜짝 놀라 그녀 앞에 같이 쭈그려 앉았다.
“누나. 괜찮아?”
“응. 괜찮아······ 흑.”
혜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입가는 빙긋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혜나 누나를 토닥여 주며 말했다.
“잘했어, 누나. 오늘 누나가 제일 잘했어.”
“정말?”
“응. 부모님도 누나가 연기하는 거 보고 엄청 기뻐하셨을 거야. 그리고 우리 노래 끝난 다음에 관객들이 환호성 지르면서 박수 쳐 주는 거 봤지? 그건 누나가 어~엄청 잘했기 때문에 그런 거야.”
“헤헤.”
혜나는 헤벌쭉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힝. 엄마가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고 했는데.”
귀엽게 혼자 중얼 거리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미소 짓게 된다.
'잘 끝나서 정말 다행이야.'
만약 오늘 혜나가 공포를 이기지 못 하고 끝끝내 무대에 서지 못했다면······.
아마 그랬다면 혜나는 영원히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그녀가 꿈꿔왔던 가수의 꿈도 포기해야 했을지 모른다.
'저번 생에서의 혜나는 무대 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했던 거지?'
무대 공포증은 자기가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수들 중 평생 무대 공포증을 가지고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극복을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
저번 생에서 혜나가 자살을 하고 난 뒤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혜나는 꾸준히 정신과 병원을 다니며 약을 받아먹었다고 한다.
그 약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땐 우울증 약이라고 생각만 했을 뿐. 그런데 오늘 혜나가 떠는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무대 공포증을 약으로 견뎌낸 것은 아닐까.
만약 그게 맞다면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다. 그리고 절로 결심이 됐다.
이번 생에도 똑같이 약을 복용하면서까지 무대를 버텨야 한다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혜나가 무대 위에 올라가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난 혜나를 앉혀 놓고 물었다.
“누나. 이제 긴장 안 할 자신 있어?”
“······.”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 한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영원히 혜나가 그 공포를 이겨내지 못 하면 어떡하지?
“무서웠어.”
“응?”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웠고, 실수할까 봐 무서웠어.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어.”
잠시나마 혜나가 무대 위에서 행복해지는 꿈을 꿨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을 보면 내 욕심이었던 걸까.
무대 위에서 행복하지 못 하다면 그곳에 올라가선 안 된다.
그렇기에 난 그녀의 꿈을 잔인하게 막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연욱이를 보니까 무섭다는 생각이 없어졌어.”
“으응?”
그런 생각도 잠시.
“엄청 무서웠는데도 우리 동생이랑 같이 노래 부르니까 갑자기 하나도 안 무서웠어.”
혜나는 내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신기해. 너랑 같이 무대에 올라가면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아."
그녀가 밝게 웃으며 내게 다짐을 받아냈다.
“앞으로도 계속 같이 노래 부르자. 절대 나 혼자 노래 부르게 하면 안 돼.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