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7화 >
초등학교 1학년 1반의 담임을 맡고 있는 한가을 선생은 요즘 따라 출근길이 즐거웠다.
초등학교. 그것도 1학년 담임.
아이들이 워낙 천방지축이라 통제가 힘들어 교사들이 기피한다는 저학년 담임이지 않던가. 다른 반 선생님들은 매일 그만 두고 싶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가을 선생은 달랐다.
그녀가 교무실에 들어와 콧노래를 부르자 지나가던 교감 선생이 말을 걸었다.
“자기는 아이들을 많이 좋아하나 봐?”
“네?”
“보통 1학년 담임 맡으면 다들 다크써클이 엄청 끼고 힘들어 하거든. 그런데 자기는 항상 밝게 웃길래. 1학년 담임 안 힘들어?”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이 대신 대답했다.
“교감 선생님. 1학년 1반 모르세요? 거기 선생님들한테 원픽으로 뽑히는 곳이잖아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저랑 다른 1학년 반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도 통제가 잘 안 돼서 정말 힘든데, 1반은 안 그래요. 애들이 말도 잘 듣고, 수업 시간에도 아주 조용해요.”
“오~ 정말? 가을쌤이 애들을 잘 가르쳤나 보네.”
“아······. 딱히 그렇다기 보다는 연욱이 덕분이랄까요?”
연욱이란 이름에 교감 선생이 손가락을 튕겼다.
“연욱이? 아! 그 엄청 잘생겼다는 남자애?”
“교감 선생님도 아세요?”
“자기들 나 너무 무시한다. 쌤들이 나누는 얘기 내가 못 들었을까봐? 그런데 그 아이 덕분이라는 게 무슨 소리야?”
“연욱이가 반장이거든요. 처음에는 저도 애들 통제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연욱이가 반장 되고 나서 엄청 편해졌어요. 애들이 연욱이 말을 굉장히 잘 따르거든요.”
“진짜?”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선생님들도 하나 둘 대화에 참여했다.
“맞아요. 저번에 보니까 연욱이가 나이에 안 맞게 어른스럽더라고요. 애들도 잘 챙겨 주고요. 특히 여자 애들한테도 인기가 엄청 많아요. 남자 애들도 연욱이를 잘 따르는 거 같아 보였고요.”
“네. 연욱이가 어딜 가면 졸졸 따라다니는 애들도 많고······ 아무튼, 대단한 아이에요. 성적도 1학년 전체에서 가장 좋고. 아참! 그거 아세요? 연욱이가 글쎄 뮤지컬 아역 배우라던데요?”
선생님들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정말? 가을 쌤. 그건 어디서 들었어? 연욱이 부모님이 그러셔?”
“아뇨. SNS 사진 보고 알았어요. 제 친구가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SNS에 공유한 사진이 있더라고요. 거기 보니까 연욱이 사진이 있는 거 있죠? 알아보니까 연욱이가 이번에 ‘괴물’이라는 뮤지컬에 아역 배우로 나온대요.”
한가을 선생은 인터넷에 뜬 ‘괴물’ 뮤지컬 포스터를 선생님들에게 보여 주었다.
보통 뮤지컬 포스터에는 주인공의 포즈나 얼굴이 부각되어 뿌려 지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아역 배우 두 명의 모습이 따로 포스터에 실렸다.
“어머. 혜나 아니야?”
“혜나? 3학년 2반이라고 했던가?”
“네. 저희 반이에요. 연욱이 누나인데, 얘도 뮤지컬에 나가는구나······.”
“진짜 남매 둘이 어쩜 이렇게 유전자를 잘 타고 났을까요?”
“그러니까. 잠깐. 이건 연욱이 단독 포스터네? 진짜 잘 뽑혔다.”
“우와. 이건 무조건 저장해 놔야지~”
그때 한가을 선생이 말했다.
“이거 곧 있으면 한다는데, 혹시 주말에 보실 분 있으세요?”
“오! 나 볼래!”
“나도! 근데 표 구하는 거 힘들지 않아?”
티켓팅은 공연이 시작하기 몇 주 전부터 시작한다.
좋은 자리는 티켓 오픈이 되자마자 전부 다 나갔다는 것이다.
“1층 자리는 구하기 힘들다고 들었어요. 다행히 극장이 커서 2층, 3층까진 쉽게 구할 수 있대요.”
“아. 그럼 가야지. 연욱이랑 혜나가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다.”
“그 얼굴에 노래까지 잘 부르면 진짜 사기일 텐데.”
“에이. 애가 잘 부르면 얼마나 잘 부르겠어. 얼굴 예쁘고 귀여우니까 뽑은 거겠지.”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벌써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어머. 언제 시간이 저렇게 됐어?”
“빨리 가야겠다.”
“캡쳐한 사진 나한테 보내줘, 가을쌤~. 그리고 티켓팅도 이따 한번 알아봐야겠다.”
선생님들의 반응이 좋으니, 왠지 모르게 한가을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읏차. 나도 가 볼까?”
지금쯤 가면 아이들이 전부 정숙한 채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연욱이가 반장이 된 이후로 수업 시작 몇 분 전부터 애들이 착석을 하고 조용히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대체 어떻게 애들을 교육시켰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덕에 한가을은 편안한 1학년 담임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패턴이 쭉 이어진다면 앞으로도 1학년 담임만 맡을 자신이 있······.
“우와아아아-!!”
“썬더어어키이익!!”
“으아아앙-! 얼른 내놔아아! 내 거란 말이야!”
교실문을 열기도 전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시끄러운 함성 소리.
보통 이 시간대면 다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을 텐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캬하하-! 이제 이건 내 거다!”
“저거 잡아!!”
완전히 난장판이 된 교실.
한가을은 머리가 핑 돌 것만 같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진정한 1학년 교실의 위엄을 말이다.
“얘들아! 그만 하고 얼른 자리에 앉아!”
한가을이 목소리를 높여 가며 겨우내 아이들을 자리에 앉혀 놓았다. 그런데도 떠드는 소리가 크게 줄어 들진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연욱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연욱이··· 연욱이는?”
“오늘 연욱이 안 왔어요~”
“응? 연욱이가 안 왔다고?”
한번도 학교에 빠지지 않은 연욱이가 무슨 일인지 오늘 등교를 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현기증이 나는 한가을이었다.
* * *
“네··· 선생님. 네네. 죄송합니다. 연욱이가 밤새 잠도 못 자고 속도 안 좋은지 끙끙 대더라고요. 뭘 잘못 먹은 건지······. 네. 잘 알겠습니다.”
아침에 얼굴이 퀭-하게 변한 나를 보고 어머니는 깜짝 놀라 직장에 나가지도 않으셨다.
어머니는 학교에다 전화를 한 뒤 누워 있는 내게 다가와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 주었다.
“어휴. 어제 뭘 잘못 먹었기에 이러는 거니?”
차마 어제 몰래 커피를 마셔서 속이 뒤집어지고 잠도 못 잤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어머니는 날 데리고 병원까지 다녀와야 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래. 학교에는 엄마가 말해 놨으니까, 오늘은 푹 자.”
“네······.”
그렇지 않아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약까지 먹은 터라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부모님 침실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났다.
시간을 보니 벌써 5시간이나 흐른 뒤였다.
“으음-.”
반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쭉 폈다.
개운하다.
그리고 다짐한다.
다시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리라.
아. 영원히 마시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 중학교 입학 할 때까지 말이다.
“응?”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려는데, 부모님이 창고처럼 쓰시는 옷장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건······.”
기타 케이스.
한때 기타리스트를 꿈꿨다는 아버지의 것이리라.
케이스부터가 비싼 재질이라는 게 느껴졌다. 분명 안에 있는 기타도 그럴 것이다.
난 호기심에 케이스를 열어 보았다.
“헉!”
놀랍게도 이 기타는 저번 생에서 아버지가 혜나의 장례식 때 연주했던 바로 그 기타였다.
“이게 아버지 거였구나······.”
아버지가 혜나에게 기타를 물려주어, 혜나가 그것을 무대 위에서 연주한 것이었다.
나는 장미꽃 문양이 새겨진 기타를 어루만졌다.
그날 들은 기타 연주 소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는 그런 연주를 듣고 싶지 않았다.
디리링~
“손이 작아서 치기 힘드네.”
대충 코드를 잡아 보려 했는데, 이 작은 손으로 코드 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저번 생에서 혜나에게 곡을 주는 꿈을 품으며 썼던 것이 있다.
그땐 정말 정성을 다 해 만들었는데, 지금 떠올려 보면 뭔가 많이 엉성했다. 그래도 추억삼아 핑거 스타일로 노래를 대충 튕겨 보았다.
“역시, 잘 안 되네.”
이 손으로 연주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기타를 케이스에 그만 집어넣으려는데,
“어머. 연욱아. 기타 치는 건 어디에서 배웠니?”
“!?”
언제부터 보고 계셨던 거지?
어머니가 내 뒤에서 입을 틀어 막은 채 서 계셨다.
“아뇨. 안 배웠어요. 칠 줄도 모르고요.”
“엄마가 분명 코드 잡는 걸 봤는데?”
“그건······ tv에서 본 거 따라해 본 거예요.”
“그, 그래?”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건 아빠 기타에요?”
“응? 맞아. 네 아빠가 기타 실력 하나는 끝내줬지. 이 엄마가 거기에 홀라당 넘어가서 결혼까지 한 거라니깐? 이것도 아빠가 비싼 돈 주고 마련한 기타야. 그런데 지금은 그 좋아하는 기타를 거의 치지도 못 하고 있으니······.”
어머니는 아련하게 기타를 만지고 있었다.
그러다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연욱아. 혹시 기타 배우고 싶니?”
“네?”
“엄마가 말했지? 아빠가 기타는 정말 잘 친다고. 한번 아빠한테 배워 봐. 엄마도 오랜만에 아빠가 기타 치는 거 보고 싶네? 네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아마 신나서 알려 줄 거야.”
나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거기다 저번처럼 슬픈 연주가 아닌, 아버지가 행복감에 젖어 연주를 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기타로 내가 혜나를 위해 작곡한 노래를 연주해 줄 수 있지 않을까?
* * *
“어후. 심장 떨려.”
“진정해. 여보. 얘들이 더 불안해 하겠다.”
“응······. 그런데 당신도 다리 좀 그만 떨어. 어째 나보다 더 긴장한 거 같다?”
“하하. 그, 그러게.”
부모님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오늘이 바로 대망의 뮤지컬 첫 공연 날이다.
“연욱아, 혜나야. 둘 다 잘할 수 있지? 아니. 분명히 잘할 거야.”
“웅-! 잘할 수 있어!”
“어이구. 그래. 우리 딸. 아주 씩씩하네. 연욱이는?”
“저도 잘할 게요.”
애써 티를 내고 있진 않지만, 사실 나도 심장이 벌렁 거렸다.
청심환이라도 한 알 먹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짜장면과 커피 사건 이후로 어릴 때 함부로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그에 반해 혜나는 아주 신나 보였다.
오랫동안 준비를 했으니, 관객들한테 얼른 공연을 보여 주고 싶은 모양이다. 거기다 오늘은 부모님도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으니 기대가 더 클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 혜나랑 연욱이도 이제 준비하러 가야 돼서요. 괜찮을까요?”
“아, 네. 우리 얘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스태프들을 따라 분장실로 들어갔다.
공연이 2주 남았을 때는 실제로 공연하는 곳에 가서 리허설을 하곤 하는데, 여기 분장실도 많이 와봤던 곳이었다.
메이크업을 해 주시는 선생님은 나와 혜나를 앉혀 두고 감탄을 터트렸다.
“어휴. 너희들은 꾸밀 필요도 없겠다. 어떻게 이렇게들 예뻐? 그냥 머리만 좀 다듬으면 될 거 같아.”
그리고 우리 둘에게 무대 의상을 입혔다.
스태프들은 우리 두 사람을 보고는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너무 예뻐. 핸드폰··· 핸드폰 어디 있지?”
“나도 사진 찍어야겠다.”
“잠깐! 나도 찍어줘!”
스태프들의 소란을 멀리서 듣고 달려온 류재한이 어느새 우리 남매 곁에 섰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오늘 공연에 나가는 배우들이 전부 다 모여 우리 남매와 한 장씩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 곧 있음 공연이다. 벌써 관객들이 잔뜩 모였더라. 연욱이랑 혜나, 한번 보러 갈래?”
“웅-! 보고 싶어요.”
“하하. 그래. 둘 다 일로 와.”
류재한은 나와 혜나의 손을 잡고 관객석이 보이는 무대 뒤편으로 이동했다.
“자. 이거 봐. 엄청 많이 모였지?”
류재한 말대로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응? 혜나야. 왜 이렇게 손을 떨어?”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보고 갑자기 혜나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