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1화 (11/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1화 >

“연욱아~”

오디션이 끝나고 문 감독은 직접 내 손을 잡고 대기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혜나는 멀리서 오는 내 실루엣을 보자마자 냅다 달려왔다.

“연욱이 고생 많았어. 힘들었지?”

혜나는 날 꼭 껴안아 주며 등을 토닥여 주기까지 했다.

“아냐. 누나가 고생이 더 많았지.”

나도 똑같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아까 오디션 때 떠올린 그녀의 해맑은 모습.

난 무대 위에서 행복한 혜나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걸그룹이든 싱글 가수든 아니면 뮤지컬 배우든 다 상관없다.

혜나가 좋다면 뭐든 적극 지지해 줄 것이며, 그녀의 탄탄대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것이다. 그녀가 공포 속에, 외로움 속에 몸을 떨며 죽어가는 걸 두 번 다시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남매의 따뜻한 포옹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부모님이 문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우리 연욱이 잘 했나요?”

“예. 애가 정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혜나도 그렇고요.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은연중에 문샛별 감독은 나와 혜나가 오디션 합격이라는 말을 흘렸다.

적나라하게 ‘당신 자식들은 오디션 합격했습니다!’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이미 뉘앙스가 그러했다. 그리고 문 감독이 직접 나와서 우리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다른 부모들의 따가운 시선이 모여 들었다.

“저거 문 감독님 맞지?”

“응. 그런데 저 사람들이랑 무슨 사이지?”

“아까 보니까 오디션 본 거 같던데. 문 감독이 저렇게 마중까지 나올 정도면 뭐가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시선을 문 감독도 느낀 것 같았다.

더 오해를 사기 전에 그녀는 부모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캐스팅 결정은 이번 주 안에 연락이 갈 거예요. 좋은 소식이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애들아. 감독님한테 인사드려야지?”

“안녕히 계세요, 감독니임!”

“안녕히 계세요.”

우리는 그렇게 여러 부모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눈총을 받으며 오디션장을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아버지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어휴. 사람들이 뭘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쳐다 보냐.”

“호호. 난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나중에는 은근히 즐기게 되더라고.”

“뭐어-?”

“이게 다 우리 애들이 예뻐서 그런 거 아니겠어? 이제 슬슬 이런 시선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몰라, 여보.”

“난 사절이야. 다들 도끼눈을 치켜뜨니까 못 봐주겠더라.”

부모님은 우리 남매를 차에 올라 태운 뒤 말했다.

“자. 우리 아가들. 뭐 먹고 싶어? 오늘은 많이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우리 혜나가 좋아하는 피자 먹으러 갈까?”

순간 내 얼굴에 금이 갔다.

아버지. 제가 오디션 보기 전에는 분명 짜장면에 탕수육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피자 좋아! 피자!”

“호호. 그래. 우리 혜나가 좋아하는 피자 먹자.”

혜나가 피자를 외치자 어머니도 덩달아 한 표를 추가했다.

아아. 내 짜장면.

오늘은 몰래 고춧가루 팍팍 넣어서 먹으려 했는데.

내가 뮤지컬 속 빅터처럼 절망에 빠지려 하는 그때, 혜나가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잠깐만 엄마. 연욱이는 아까 짜장면 먹고 싶다고 했어.”

“응?”

“맞아. 아까 그래서 우리 집 들어가기 전에 자주 가던 중국집 가기로 했었잖아. 잠깐 잊고 있었네.”

“피자 다음에 먹어도 괜찮아. 연욱이 먹고 싶어 하는 짜장면 먹으러 가자!”

“어이구. 우리 혜나 착하기도 하지. 연욱이 맛있는 짜장면 먹고 싶었어요? 여보. 오늘 짜장면 먹으러 가자.”

“응. 그러자. 그럼, 출발합니다~”

어머니가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니, 뒤이어 혜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가락으로 앙증 맞은 브이를 보여 주었다.

나 잘했지, 라는 저 표정.

역시, 우리 누나가 최고다.

* * *

“애들아.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네에~”

“네에에!”

중국집에 도착하니 향긋한 춘장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덕분에 잔뜩 텐션이 업되어 있어 대답을 길게 했다.

여기 중국집은 정말 인생 짜장면 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무슨 특제 비밀 춘장 소스를 따로 쓰는 건지, 내가 평생 먹었던 짜장면 중 원탑이었다. 하지만 항상 아쉬웠던 건 몸이 어려서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지 못 한다는 것.

하지만 이제 내 나이 8살.

더 이상 부모님이 음식을 떠 먹여 주는 나이가 아니다.

김치도 이제 어머니가 물에 적셔서 주는 그런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깟 짜장면, 고춧가루 좀 풀어먹는다고 죽겠나?

난 비장한 얼굴로 테이블 옆에 있는 고춧가루 통을 바라보았다.

“여보. 이거 좀 먹어 봐.”

“으음-. 여기 고추잡채는 언제 먹어도 맛있네.”

“제육덮밥도 먹어 봐. 진짜 맛있어.”

부모님이 덮밥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스리슬쩍 눈치를 보다 고춧가루를 크게 한 스푼 떠서 자장면에 넣었다. 그리고 능숙한 짜장면 비비기 실력을 선 보였다.

후루룩-!

크게 한 젓가락 떠 올려 입에 착 감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만족의 폭죽이 펑펑 터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 이 맛이야. 짜장면은 역시 고춧가루를······

“응······?”

그런데 펑펑 터지는 폭죽이 멈추지 않고 아예 폭발을 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건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려 내렸을 때였다.

“연욱아. 왜 안 먹어?”

옆에서 볶음밥을 먹고 있던 혜나는 경직되어 있는 날 한번 보고 아래에 있는 짜장면을 내려다보았다.

“색깔이 이상해.”

그러더니 짜장 소스에 젓가락을 살짝 담근 뒤 입에 가져갔다.

“으엑-!”

고춧가루의 매운 맛이 화끈하게 올라온 모양이다.

헛구역질을 하며 부모님을 불렀다.

“엄마 아빠! 이거 이상해!”

“으응? 왜 그러니?”

“음? 잠깐만. 이거 색깔이 왜 이러지?”

아버지도 짜장면을 한 젓가락 맛보고 나서는 눈을 크게 떴다.

“헉! 이거 왜 이렇게 매워? 연욱아. 혹시 고춧가루 넣었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어머니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채시고는 짜장면을 슬쩍 맛봤다.

“어머! 여기 고춧가루 매운 거 쓰지 않아? 윽! 이거 엄청 맵잖아. 애 식은땀 흘리는 것 좀 봐!”

“연욱아. 대체 고춧가루 몇 스푼을 넣은 거야?”

“크, 크게 한 스푼······.”

“이 매운 걸 한 스푼이나?! 얼른 물 마셔 물. 사장님! 여기 음료수 좀 가져다주세요!”

* * *

‘아. 인생이여.’

나는 눕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앉지도 못 하는 이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고작 한 젓가락 먹었다고 속이 이렇게 쓰릴 수 있단 말인가.

자존심이 상했다.

저번 생에 튼튼히 쌓아 놓았던 맵부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다.

‘고춧가루 넣은 짜장면도 못 먹는 몸이라니.’

전생에서는 매운 걸 워낙 잘 먹어서 짜장면을 먹을 때도 이게 짜장에 비빈 건지, 아니면 고춧가루에 비빈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운 걸 즐겼다.

그런데 이 몸은 체질적으로 매운 걸 잘 못 먹는 것 같다.

8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몸이라고 해도 떡잎부터 다르다 하지 않던가.

이 몸이 느끼는 매움이란 것은 곧 통증에 가까웠다.

커서는 조금 달라질 순 있어도, 예전처럼 드래곤마냥 혓바닥에서 불을 내뿜으며 매운 걸 찾아 먹긴 힘들 것 같았다.

부모님은 매운 걸 먹고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날 위해 호들갑을 떠셨다.

“다른 약을 먹여야 하나?”

“병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응급실로 바로 가 볼까?”

부모님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그런 부모님을 진정시켰다.

“저 이제 괜찮아요.”

“응? 정말로 괜찮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연욱아.”

속이 여전히 좀 쓰리긴 하다만, 위장약을 먹어서 곧 나아질 듯했다.

“진짜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다. 다음에는 절대 고춧가루 넣어서 먹으면 안 돼. 모르면 꼭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고. 알겠지?”

“···네.”

풀이 죽은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버지는 날 끌어안아 올렸다.

그러자 혜나가 쪼르르 우리에게 달려왔다.

“아빠. 연욱이 괜찮대?”

“응. 연욱이 이제 괜찮아. 우리 혜나 양치는 다 했어?”

“웅-. 근데 너무 졸려.”

“어이구. 그랬어요? 얼른 가서 자야겠네. 연욱이는 안 졸립니?”

갑작스럽게 오디션을 보고 거기다 매운 걸 잘못 먹고 식은땀까지 줄줄 흘린 상태라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여보. 연욱이도 많이 피곤해 보인다.”

“응. 오늘 둘 다 고생해서 그래. 좀 재워야겠네.”

부모님은 우리 둘을 침대에 누인 뒤 불을 꺼주었다.

“우리 아가들. 코 자세요.”

옆에 누운 혜나는 내 볼을 툭툭 두드리며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연욱아~ 아프면 안 돼~ 그럼 누나가 슬퍼.”

“응. 누나도 아프지 마.”

“으응······. 잘자 연욱······ 아······.”

정말 많이 피곤했는지 혜나는 눈을 감자마자 꿈나라로 떠났다.

나는 아직 속이 좀 쓰려서 잠이 오질 않아 혜나가 잠에 드는 걸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오디션까지 보고.

참 기특했다.

‘하루 동안 정신없었네.’

혜나가 오디션을 보는 것으로 끝이 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뮤지컬 음악감독이란 사람이 튀어 나와 내게 오디션 제의를 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내 외모가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건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저번 생에서는 내가 찍힌 사진만 보면 기겁을 했는데, 이곳에선 왠지 광대가 자동으로 승천을 한다. 거울로 보는 맛이 있고, 사진으로 보는 맛이 따로 있다고 했던가.

그냥 잘생긴 놈들이 허세 부리려 지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사진과 거울 속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아주 많이 달랐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내 정신은 전생과 똑같아도 이 몸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아야 돼.’

당장 오늘 짜장면 사건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난 원래 어릴 때부터 매운 걸 잘 먹었는데, 이 몸은 매운 걸 전혀 받아들이지 못 한다.

즉, 내가 예전 몸으로 살았던 버릇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뛰어난 외모, 남들이 듣기에 좋은 목소리.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이 몸의 장점은 일단 외모와 목소리였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밖을 조금만 나돌아 다녀도 애가 참 잘생겼다는 말을 꼭 듣곤 한다. 거기다 오디션장에서는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내 목소리가 예쁘다고 했다.

솔직히 이런 관심은 처음이라 많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얼굴이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긴 해도 엄청 들뜨진 않았다.

이게 또 크면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릴 땐 예뻐도 크면서 역변하는 애들이 많지 않던가.

나도 전생에서는 어릴 땐 참 예뻤는데, 크면서 역변한 사례였다.

“······.”

아무튼, 그건 나중에 크면 생각해 볼 문제이고 나는 과연 이 몸에 또 어떤 재능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했다.

‘어쩌면 얼굴이 전부일 수도 있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얼굴만 잘생기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거기다 목소리도 좋다고 하니, 역변의 분기점이라는 변성기가 오기 전에 마음껏 써 먹을 생각이다.

‘기대된다. 기왕이면 운동에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축구와 농구를 좋아했지만, 몸치라 잘 해 보지도 못했던 인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슴이 따뜻하고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리고 이 몸은 아직 개봉 전 랜덤박스와도 같다. 과연 이곳에서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으리라.

이런 저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들었다.

* * *

“연욱이 왔니? 오디션은 잘 봤어?”

학교가 끝나고 오랜만에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혜나의 오디션 준비 때문에 요 며칠 학원을 빼 먹은 탓이었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자 선생님들이 전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예.”

스윽 보니 대충 분위기가 파악됐다.

저번에 부모님이 내가 치는 피아노 실력을 보고 깜짝 놀라 원장 선생님한테 전화를 한 것이리라. 어머니와 원장 선생님은 고등학교 동창이니, 자주 연락을 나눌 테니까

“연욱아. 원장 선생님이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잠깐 일로 와 볼래?”

원장 선생님은 이곳 피아노 학원에 딱 한 대 있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혔다.

다른 선생님들도 구경을 하기 위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거기에는 혜나도 있었다.

“연욱아. 저번에 원장 선생님이 쳐 준 오디션곡 있지? 너희 어머님이 그러시더라. 네가 그걸 능숙하게 쳤다고. 선생님한테도 한번만 보여 주면 안 될까?”

나는 원장 선생님과 뒤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을 살펴봤다.

다들 눈동자에 기대와 불신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한번 미친 척하고 다 보여줘 봐?’

난 피아노 건반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래. 지금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천재 놀이를 해 보겠는가?

듣고 놀라지나 마쇼, 선생님들.

난 ACT 23. ‘이별’ 넘버 연주를 부드럽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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