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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0화 (10/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화 (수정) >

“근데 저 애가 뭘 알긴 알아? 오디션 연습도 안 했다며.”

“혜나 연습을 도와줬다잖아요.”

“으음-.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연습을 한 게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오디션을 보는 건 좀······.”

김세원 감독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연욱이는 혜나의 보조 역할을 해줬을 뿐, 정작 자신을 위해 연습한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연욱이를 오디션장까지 데려온 문 감독은 뒤늦게 후회했다.

자신이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시켜는 봐. 누나랑 연습을 어떻게 했는지만 보여 달라고 하면 되잖아? 평소 같았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애 인물이 너무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그리고 문 감독 체면도 있으니까.”

김 감독이 한쪽 눈을 찡긋였다.

문샛별이 아니라 다른 음악감독이 이따위 짓을 벌였다면 가만 두지 않았을 거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연욱아. 긴장하지 말고, 혜나 누나랑 연습했던 걸 보여 주면 돼. 혜나 누나 오디션곡 있지? 거기서 상대 배우의 역할을 해 주면 된단다.”

문 감독은 그렇게 설명을 하고 스태프 하나를 연욱이에게 보냈다.

너도 나도 연욱이의 상대 배우 역할을 하기 위해 자원했지만, 결국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한 최후의 1인만이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연욱아. 안녕? 누나는 황지연이라고 해. 연욱이가 오디션 볼 수 있게 상대 배우 역할을 할 거야. 편하게 지연 누나라고 불러. 괜찮지?”

“네.”

“혹시 노래는 알고 있니? 혜나 오디션곡.”

“알고 있어요.”

“대본이랑 가사는 잘 모르지? 누나가 여기 가져왔어. 이거 보고 하면 돼.”

지연이 건네는 대본을 연욱이는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아뇨. 가사랑 대본은 다 알아요.”

“으응? 다 외웠다고?”

“네. 괜찮아요. ACT 23. 그쪽을 연기하면 되는 거죠?”

“그래. 맞아. ‘이별’이라는 씬인데, 연주 나오면 바로 할까?”

“네.”

황지연의 손짓에 문 감독은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피아노 연주자가 해당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줄리아.”

연욱의 첫 대사였다.

상대 배역을 맡은 황지연은 갑작스레 바뀐 연욱이의 목소리와 분위기에 순간 몸이 들썩였다. 저 사랑스러운 외모에 푹 빠져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가 생각지도 못 한 감정 잡힌 무거운 목소리가 치고 들어온 것이었다.

‘어머. 애 눈빛 좀 봐.’

초롱초롱 거리던 귀여운 눈빛은 사라지고 정말 이곳을 벗어나기 싫다는 연욱의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빅터. 가지 마.”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진지한 톤으로 배역에 임하고 있었다.

“넌 나와 함께 있어서는 안 돼. 그랬다간 너도 죽을 수 있어.”

“하지만 나는······.”

그 이후에도 물 흐르듯 씬이 이어졌다.

"잠깐."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문샛별 감독이 손을 들었다.

“거기까지. 그 이후부터는 오디션 대본이 아니야.”

“아-!”

두 사람의 연기를 감상하던 스태프들도 상대 배역을 해 주던 황지연도 뒤늦게 알아챘다.

오디션에 정해진 대본까지만 읽어야 하는데, 그 이후의 대본까지 읽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아니야. 그만큼 두 사람이 배역에 몰입해서 잘해줬어. 이제 넘버로 넘어갈까?”

넘버란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연욱이의 연기를 보고 나니 문 감독은 얼른 저 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었다.

“처음 하는 것치고 잘하네.”

아이의 연기는 괜찮았다.

특히 감정을 잡는 부분이 말이다.

슬픈 감정을 잡는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런데 아이는 감정 잡는 것이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 배역이 역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건 역시-.

“얼굴값을 하는 건가?”

김 감독이 짧게 감탄했다.

저 눈동자를 보라. 조금만 슬픈 눈빛을 지어도 보는 이의 애간장을 태운다.

부족한 연기 실력은 연욱이의 절절한 감정과 빼어난 얼굴이 채워 주고 있었다.

“저기서 연기 실력까지 얻게 된다면 진짜 대배우 하나 탄생할 거 같지 않아?”

문 감독은 그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무언의 동의였다.

“문 감독. 한번 더 보지 그래?”

“더 볼 필요가 있을까요? 애가 대사 치는 거 보셨잖아요.”

“응. 지금까지 오디션 봐 왔던 애들 중에 최고였어.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절절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지 원······. 그래서 한번 더 보고 싶더라고. 너무 짧잖아. 하하!”

방금 전까지는 애가 뭘 할 수 있겠냐며 타박을 주던 양반이 지금은 확 돌변했다.

사실 얼굴만 보는 뮤지컬 무대가 아니지 않던가. 그래서 김세원 감독은 연욱이 깜짝 오디션을 본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슬픈 감정이 섞인 목소리와 형형색색 드러나는 표정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대본치는 건 합격이지만, 문제는 노래인데······.’

어린 줄리아와 어린 빅터의 듀엣곡.

줄리아 보다는 어린 빅터의 비중이 더 많은 곡이다.

첫 소절을 줄리아가 시작하는 것 빼고는 빅터가 노래 전체를 이끌어가야 한다. 더군다나 이 노래는 아이들이 부르기에는 난이도가 있었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빅터의 슬픈 감정을 담아서 불러야 하기 때문에 남자 아역 배우를 뽑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과연 연욱은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인물 좋고 목소리가 좋아도 정작 노래 실력이 꽝이면 무대 위에 서지 못 한다.

뮤지컬 관중들은 까다로운 면이 많아서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노래 실력이 별로면 혹평을 남긴다. 특히 뮤지컬 세계는 좁아서, 관중들의 여론이 좋지 않으면 잘 만든 뮤지컬이라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렇기에 문 감독은 남몰래 두 손을 모으며 기도했다.

엄청 잘 부르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평타만 치자. 평타만···!

“나는 무너지지 않아. 험한 세상을 거치고 일어나~”

마침내 연욱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두 손을 모으고 있던 문 감독은 맑은 연욱의 목소리에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평범하게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옆을 바라보니 김 감독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날까지 네가 날 기다려 준다면~”

점점 음역대가 올라가는 부분.

여기서 문 감독은 한번 더 불안해졌다.

이 부분에서 많은 아역 배우들이 나가 떨어지지 않았던가.

그들을 쳐낸 건 문 감독 본인이었다.

다른 이보다 민감한 자신의 귀를 아이들이 쉽게 만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뽑은 2명의 남자 아역 배우들도 여기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전부 다 갈아엎으려는 걸 김세원 감독이 겨우 말렸었다.

‘과연 저 아이는 어떨지···.’

저 맑은 목소리가 높은 음에서 과연 흔들리지 않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너와 영원토록 함께하기 위해 난 반드시 돌아올 거야~”

조금 올라갔던 문 감독의 입이 지금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안했던 파트를 연욱이 훌륭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반~드시!!”

마지막으로 치고 올라가는 부분 또한 문제없이 부르는 것을 보고 문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음이 이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안정적인 고음을 내 주다니.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김세원 감독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이야. 진짜 잘하네. 정말 오디션 준비 안 한 거 맞아?”

“마음에 드세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조금만 다듬어 주면 우리가 원한대로 그림이 나오겠어.”

김세원 감독과 더불어 스태프들도 크게 박수를 쳐 주었다.

“목소리가 너무 좋다.”

“애가 얼굴도 귀엽고 잘생겼는데, 목소리까지 어쩜 저렇게 예뻐?”

“나 마지막 고음 부분에서 소름 돋았잖아.”

스태프들은 그 어느 때와 다르게 큰 반응을 보였다.

김세원 감독은 흐뭇하게 연욱이를 바라보고 있던 문샛별에게 사과했다.

“문 감독. 저 애 우리가 한번 잘 키워 보자.”

“···예?”

“우리가 신경 써서 잘 다듬어 주면 진짜 큰 사고 한번 내겠다. 애가 얼굴, 목소리 다 가졌잖아. 보통 저러면 감정 잡는 연기를 못 해야 되는데, 애가 연기의 기본이 되어 있어.”

“아직 어린애에요, 감독님. 진정하세요.”

“그, 그건 그렇지. 애가 크면서 역변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런데 저기서 재능이 끝나 버리면 너무 아까울 거 같다.”

연욱이의 재능.

그냥 얼굴만 예쁜 아이가 아니었다.

김 감독도, 그리고 문 감독도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저 아이에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 다 앞으로 연욱이의 잠재력을 마음껏 꺼내 보고 싶었다.

* * *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펼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나는 연기를 해 본 경험이 없다. 그것도 오디션 무대에서 인생 첫 연기라니!

솔직히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기했다고 해서 설렁설렁 하고 싶진 않았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열심히 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 하면 혜나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다. 그렇기에 난 최선을 다 하고자 했다.

물론, 최선을 다 한다고 해서 여느 배우들처럼 뛰어난 연기 실력을 보여 주긴 힘들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을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자 최대한 감정을 잡으려 노력했다.

문제는 이 감정이란 걸 잡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다.

이래서 배우는 배우라고 하는 건가. 대체 그 사람들은 어떻게 감정을 잡는 거지?

따란~

어느새 연주는 시작되었다.

이렇게 가면 그냥 국어책 읽는 수준으로 밖에 연기를 못할 것 같았다.

'만약 혜나라면...'

그런데 그때 전생에서의 혜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 우울함, 그리고 억울함.

이 모든 것들이 사무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외로이 죽음을 맞이했다.

홀로 얼마나 쓸쓸했을까.

죽음의 공포 앞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읍-.”

잘 잡기 힘들었던 슬픈 감정선이 울컥 올라오면서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넌 나와 함께 있어서는 안 돼. 그랬다간 너도 죽을 수 있어.”

내 마음은 너와 함께 하고 있지만, 이 세상이 우릴 갈라놓았기에 우린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그 슬프고 절절한 감정이 목소리에 담겨 대사로 흘러나왔다.

꼭 전생의 혜나가 내게 말하는 대사 같았기에 더 슬픔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빅터.”

스태프 누나의 이어지는 대사.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오디션곡이 시작되었다.

강제로 고향을 떠나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빅터.

그 비통한 심정을 담아낸 곡이라 할 수 있다.

온갖 감정을 실어야 하는 곡이기 때문에 아이가 부르기에는 꽤 난이도가 있는 곡이었다.

어쩌면 뮤지컬을 보는 관객들은 별 감흥 없이 이 노래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어른 배우들처럼 감정을 실어 노래를 부르는 걸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 테니까.

그러나 지금의 난 그저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전생에서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채 지금 이 몸으로 다시 눈을 뜨지 않았던가.

“그날까지 네가 날 기다려 준다면~”

혜나를 연습시켜 줄 땐 몰랐는데, 전생의 슬픈 기억과 감정을 잡고 노래를 불러보니 이건 마치 혜나에게 내가 다짐하는 노래 같았다.

널 지금 잃었지만, 반드시 돌아와 널 다시 만나겠다는 노래 가사.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어릴 적 줄리아와 이 약속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그 약속을 지키게 된다.

마치 내가 혜나를 다시 만나러 온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 감정에 휘몰아쳐 나도 모르게 마지막 부분을 크게 지르듯 부르고 말았다.

“반~드시!!”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후련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미래의 혜나가 지독한 외로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밝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무대 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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