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9화 (9/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9화 >

“가지 마 빅터. 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문샛별 음악감독은 혜나가 펼치는 연기를 조용히 감상했다. 그에 이어지는 오디션곡도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김세원 연출감독은 조용히 문 감독에게 말했다.

“저 애 목소리가 예쁘네. 발성 괜찮고, 딕션도 나쁘지 않아. 문 감독도 그렇게 생각하지?”

“음-. 애가 꼭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 같네요. 흔들리는 부분이 조금 있지만, 저 정도면 꽤 괜찮은 거죠.”

“그러게. 발음도 교정을 받은 것 같은데? 요즘은 애들한테도 저런 교육을 미리 받게 하는구나. 그나저나 애가 참 예쁘게 생겼어. 나도 저런 예쁜 딸아이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주변 반응을 스윽 살펴보니, 다들 혜나의 매력에 푹 빠진 듯보였다.

문샛별 감독도 혜나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저 청명한 목소리와 감정을 잡고 연기를 하는 건 단순히 연습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 감독은 지금껏 수많은 배우들을 만나보지 않았던가.

보통 노력파와 재능파로 나뉘게 되는데, 혜나는 분명 후자에 속해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애들 중에는 그나마 제일 낫네요.”

이미 혜나를 점찍어 둔 문 감독이었지만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그럼 저 아이로 하는 거지, 문 감독?”

“아뇨. 그건 모르는 일이죠. 다른 애들도 남았잖아요.”

“으응. 근데 명단을 보니까 저번 오디션 때 문 감독이 대차게 깐 애들 밖에 안 남았어. 저 애는 이번 오디션이 처음인 거 같고. 그런데 역시 문제는 남자 쪽이네.”

문샛별도 그게 걱정이었다.

보통 아역 배우는 한 역할 당 2명을 뽑는다.

분량이 길지 않으면 그냥 캐스팅을 한 명만 하고 말 텐데, 아역 배우는 어린 아이가 배역을 맡아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2~3명을 뽑고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에 어렵게 뽑은 남자 아이 하나가 갑자기 병원 신세를 지면서 연습 시작도 전에 하차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급하게 오디션을 다시 연 거라 문 감독의 신경이 평소보다 날카로워져 있는 건 사실이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오디션곡이 끝났다.

혜나는 해맑게 웃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기세로 허리를 계속 숙여댔다.

스태프들은 혜나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평소보다는 다들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혜나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문 감독은 혜나의 프로필에 동그라미를 친 뒤 물었다.

“우리 혜나. 고생했어. 노래도 잘 부르고 연기도 참 잘하네. 그런데 혹시 따로 학원을 다니는 곳이 있니?”

“예! 꿀벌 피아노 학원을 다녀요!”

“피아노 학원? 뭐, 다른 학원은 다니지 않고?”

“예!”

혜나가 씩씩하게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정말 피아노 학원 말고는 다니는 곳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구나. 가창 능력이랑 딕션··· 아니. 발음이 좋아서 감독님은 혜나가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줄 알았어.”

“아! 그건 연욱이가 연습을 시켜줘서 그래요.”

“응? 연욱이?”

“제 동생이에요.”

동생과 같이 연습을 했다는 건가.

“제 동생이 피아노 치면서 노래도 잘 부르게 해 주고 딕션도 고쳐줬어요!”

어린 동생이 혜나의 음을 바로 잡아 주고 발음까지 세세하게 교정해 주었다고?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그냥 동생이 연습에 도움을 줬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응. 그랬구나. 오늘 고생 많았어, 혜나야. 다음에 또 보자?”

“예!”

문샛별 감독의 말을 듣고 김세원 감독은 크게 안도했다.

분명 다음에 또 보자-라는 말을 했다.

그건 문 감독이 혜나를 아역 배우로 낙점했다는 뜻이리라.

이제 남은 건 남자 아역 배우였다.

“자자. 얼른 다음 타자 들여보내. 빨리 끝내자.”

“예, 감독님.”

혜나가 나가고 나서 김세원 감독은 얼른 다음 사람을 보내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문 감독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만요, 감독님. 우리 10분만 쉬면 안 될까요?”

그러자 김 감독도 얼른 노선을 바꿨다.

“아. 그래. 담배 하나 정도는 태울 시간이 있어야지. 모두 10분간 휴식!”

혜나를 보고 나서 문 감독은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저 아이라면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날카로웠던 신경이 조금 풀리면서 입에 심심해졌다.

그녀는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밖을 나서던 중 오디션 대기실 입구에 잠시 멈춰섰다.

‘제대로 된 애가 와야 할 텐데’

이제 남은 건 남자 아역 배우다.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기 전 어떤 아이들이 왔는지 대충 둘러보고 싶었다.

아직 여자 애들 쪽도 대기 인원이 조금 남긴 했지만, 이미 문 감독 마음에는 혜나로 결정이 된 상태였다.

그녀는 대기실 입구 유리를 통해 안쪽을 살펴보았다.

“엄마! 아빠!”

그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부모님을 향해 뛰어가는 혜나였다.

재현과 효진은 달려오는 혜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이구. 우리 혜나. 너무너무 고생 많았어. 무섭진 않았어요?”

“웅-! 감독님이 잘했다고 칭찬해줬어!”

애 얼굴에 쓰여 있듯, 역시 사랑을 듬뿍 받으며 큰 것 같았다.

재현과 효진은 멀리서 봐도 인자한 부모처럼 보였다.

‘눈에 띄는 애들이 없는 것 같네.’

혜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대기 중인 남자 아이들을 살펴보고 있던 문 감독은 조금 실망한 기색으로 발걸음을 떼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귓가에 꽂히는 목소리가 있었다.

“누나. 정말 잘했어! 최고야!”

“웅. 이게 다 연욱이 덕분이야. 고마워, 연욱아.”

흡연실로 이동하려 했던 문 감독이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다시 오디션 대기실 입구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혜나와 손을 잡고 있는 연욱을 보게 되었다.

“···?!”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 감독은 연욱이의 얼굴을 보고 하마터면 들고 있던 라이터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잠시 입구 쪽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재현과 효진 부부가 오디션장을 나가려는 것을 보고 얼른 그 뒤를 따라갔다.

“어머. 문 감독님 아니세요?”

“감독님~. 저 기억하시나요? 예전 작품에서 앙상블······.”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온 문샛별 감독을 보고 아이 엄마들이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몰려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일이 답할 시간이 없었다.

“잠깐만요!”

문 감독은 헐레벌떡 뛰어가 재현과 효진 부부를 붙잡았다.

“예? 어떤 것 때문에 그러세요?”

재현의 품에 안겨 있던 혜나가 문 감독을 먼저 알아보았다.

“응? 감독님이다!”

“어? 감독님?”

“가, 감독님이시라고?”

문샛별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명함 하나를 꺼내 부부에게 건넸다.

“안녕하세요. 문샛별 음악감독이라고 합니다.”

“아, 네. 신세가 많았어요. 오늘 혜나가 오디션은 잘 봤는지 모르겠네요.”

“예. 혜나 실력이 뛰어나더라고요. 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 감독은 엄마 품에 안겨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 보고 있는 연욱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애한테서 후광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문 감독은 연욱이에게서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완벽한 얼굴을 가진 사람에게는 후광이 비춘다고.

영화에서, 혹은 드라마에서 그렇게 후광을 비추는 배우를 보면 사람들은 종종 오해를 하곤 한다. 별도로 조명 효과를 넣은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 딱 연욱이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 아이의 얼굴을 영상으로 봤으면 조명 효과를 왕창 넣은 거라고 착각했을지 모른다.

“저기··· 감독님?”

넋을 잃은 채 문 감독이 연욱이만 쳐다보고 있자 효진은 자기도 모르게 연욱이를 더 꼭 껴안게 되었다. 그제서야 문샛별은 정신을 차렸다. 자기도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흠흠. 혹시 저희가 남자 아역 배우도 구하고 있다는 걸 아시나요?”

“아, 예. 오늘 오디션장에서 들었어요.”

“그럼 혹시 오늘 아드님을 오디션 보게 할 생각은 없으신지······.”

재현과 효진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고 당장 예스를 할 수도 없는 상황.

“저··· 연욱이는 따로 오디션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혜나한테 들었어요. 동생이 연습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맞나요?”

“예. 연욱이가 누나 도와준다고 상대 배역 연기를 좀 해 준 거 같긴 한데······.”

“그거면 충분합니다. 나머지 사항은 저희가 감안해서 보면 되니까요.”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부부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음악감독이 이렇게 뛰어와 오디션을 제안할 정도면 무조건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아이의 선택이지 않은가.

효진은 연욱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우리 연욱이. 어떻게 하고 싶어? 엄마는 연욱이 결정에 따를게.”

“그래. 연욱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혹시라도 애가 싫다고 할까 봐 문 감독은 애써 미소까지 지었다.

“연욱아. 누나가 오디션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지 않니? 조금이라도 괜찮으니까 누나랑 연습했던 거 이 감독님한테 보여 주면 안 될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중국집으로 들어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을 생각에 들 떠 있었던 연욱은 적잖게 당황했다. 뜬금없이 오디션이라니?

그냥 하기 싫다고 해야 할까?

그래. 무슨 오디션이냐. 나는 자장면이 더 먹고 싶다.

하지만 연욱이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혜나가 소리쳤다.

“우리 연욱이 노래 엄청 잘 불러요! 피아노도 잘쳐! 연기도 잘해요! 연욱아. 꼭 해! 누나랑 같이 뮤지컬 하자!”

다른 사람의 말은 다 거절할 수 있어도 혜나의 말만큼은 거절하기가 힘든 연욱이었다.

“그··· 그럴게요.”

* * *

흠-. 오디션이라.

내 평생 뮤지컬 오디션을 보는 일이 다 생기는군.

“연욱아. 감독님만 잘 따라오면 돼.”

나는 문샛별 감독의 뒤를 따라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뮤지컬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지휘자가 바로 문샛별이다.

전생에서 문샛별 지휘자의 특별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뭔가 낯설었다.

“문 감독. 충분히 쉬었어?”

“예. 그리고 뜻밖의 수확도 있었어요.”

“으응?”

“지금 바로 오디션 볼 거니까 준비해 주세요. 아참. 지금 오디션 볼 애는 프로필이 없어요. 정식으로 오디션을 신청하지 않아서요.”

“아니. 대체 누군데 그래?”

문 감독은 나를 앞으로 내세워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름은 장연욱. 아까 마지막으로 오디션 봤던 혜나 있죠? 그 애 남동생이에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는 이 남자가 연출감독인 모양이다.

그는 날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이쿠. 어디서 이렇게 잘생긴 애를 데리고 왔대? 방금 그 혜나라는 애도 예쁘게 생겼더니만. 애는 한 술 더 뜨네. 더 떠. 아가. 나이가 몇 살이니?”

나는 애답게 양손가락을 펼쳐서 대답했다.

“여덟 살이요.”

“그래? 아휴. 귀여워라. 아저씨가 한 번 안아 봐도 될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이 양반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하하하! 이런 아들 하나 있으면 내가 소원이 없겠네.”

“아까는 혜나 같은 딸 있으며 소원이 없겠다고 하시더니.”

“뭐, 둘 다 있으면 더 좋지! 연욱이 부모님은 참 좋으시겠다. 이 얼굴을 365일 볼 거 아니야.”

두 감독이 호들갑을 떨자 스태프들도 관심을 보이며 우리 쪽으로 몰려 들었다.

“와. 감독님. 이 아인 누구에요?”

“진짜 잘생겼다. 사진 한번만 찍어도 돼요?”

“꺅. 너무 귀엽다. 나도 사진 한 방만 찍을래. SNS에 올려도 되죠?”

스태프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문 감독이 막아 세웠다.

“잠깐. 사진 찍는 건 좋은데, SNS에 올리는 건 안 돼. 연욱이 부모님 허락 없이는 절대 올리지 마.”

“호호. 사진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포토타임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문 감독은 내 손을 잡고 오디션 무대 위로 올려 주었다.

“자. 오디션 준비하자. 연욱이는 일로 와. 여기에 서서 누나랑 했던 연습 그대로 보여 주기만 하면 돼.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독들이 심사석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문 감독은 연주자에게 시작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난 내리쬐는 빛에 눈을 살짝 찡그렸다.

눈이 부시다.

화려한 조명이 날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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