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8화 (8/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8화 >

나는 일부러 조는 척을 해서 부모님의 호기심 천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안일했다.

딸 아이가 걱정 돼서 부모님이 빨리 퇴근한다는 걸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적어도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라도 들었어야 했다.

그저 혜나가 노래 부르며 연기하는 모습에 빠져 들어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았다.

‘천재라고 오해하면 매우 곤란할 텐데.’

코드 악보를 보고 피아노로 연주를 하는 것쯤이야 나한테는 쉬운 일이다.

실용음악과를 헛으로 다닌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음대를 나올 정도면 당연히 그런 악보를 연주하는 건 기본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 나이 8살. 그것도 피아노를 배운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놈이 신나게 곡을 쳐 댔으니, 부모님 눈에는 내가 무지막지한 피아노 신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떻게 얼버무리지?’

그냥 원장 선생님 치는 걸 보고 외웠다고 해야 하나.

그럼 진짜 천재인 줄 알고 부모님이 거는 기대가 커지실 텐데.

그뿐만 아니라 원장 선생님도 내게 이런 저런 피아노곡을 던져 연주를 해 보라고 할 수도 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치겠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실력은 그냥 평범한 대학생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들통난다.

‘사실 크게 고민할 거리도 안 되잖아.’

어차피 내가 무료로 학원을 다니는 기간은 한 달.

뭐, 몇 달 더 다닐 순 있겠지만 내가 지금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애 혼자 집에 있으면 부모님이 걱정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가 혼자 있는다고 해서 누가 잡아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걱정하실 순 있어도 내가 알아서 잘 하면 그 걱정도 눈 녹듯 사라지게 된다.

몸은 어려도 정신은 다 큰 성인이지 않은가.

‘그래. 조금만 다니다가 그만 두면 부모님도 더는 강요하지 않으시겠지.’

생각의 전환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란 말이 있다.

당장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둘 순 없으니, 초반에는 마음껏 내 음악 실력을 뽐내는 건 어떨까?

일명 천재 놀이.

저번 생에서는 재능 있는 천재들의 발끝만큼도 못 따라갔지만, 지금 나이에는 흉내를 조금 낼 수가 있다.

아! 천재는 매일 이런 시선을 받고 자랐구나-라는 걸 한번 느껴보고 딱 실력이 뽀록날 때쯤 그만 둘 생각이다.

‘재밌겠네.’

어릴 때 신동 소리 들어봤다는 경험담 하나쯤은 갖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 * *

“혜나야. 너무 긴장하지 마.”

“으응······.”

전날까지는 피아노 학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열심히 연습을 했던 혜나였다.

절대 떨지 않을 것처럼 항상 발랄하게 웃기만 했는데, 막상 오디션장에 오니 얼굴이 확 달라졌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자꾸만 주변을 스윽 둘러보게 된다.

‘긴장이 될 수밖에 없겠지.’

혜나 혼자 보는 오디션이 아니다.

이미 수십 명의 아이들이 오디션을 보기 위해 대기 중이었고, 부모들은 조금이라도 더 연습을 시키고 있었다.

그런 아역 배우 꿈나무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혜나는 점점 조바심이 날 것이다.

원래 사람은 그러기 싫어도 자꾸만 남과 본인을 비교하게 되어 있다.

본인이 더 잘하는 사람이라도 이상하게 남과 비교할 땐 한 없이 초라하게 보일 때가 많다.

“걱정하지 마, 누나.”

부모님과 함께 오디션장으로 따라온 나는 혜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누나가 제일 잘해.”

“정말?”

“응! 누나가 최고야!”

연습을 도와주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역시 혜나는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음악적 재능은 단순히 악기 연주가 아니라, 음악을 본인에 맞게 흡수해 그것을 소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음악과 교감을 한다는 것이었다.

음대에 다닐 때 교수들도 이점을 강조했었다.

음악과 하나가 되어라.

음악에 빠져 춤을 춰라.

남을 똑같이 따라하지 말고, 너만의 해석으로 음악을 연주해라.

참 난해한 말들이다.

그 당시에는 뭔 개소리인가 싶었는데, 이 몸을 하고 나면서부터 그게 무슨 뜻인지 조금씩 이해가 됐다.

이 몸뚱이가 어려서 습득이 빨라 그런 건지, 아니면 지금껏 몰랐던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혜나는 음악에 온몸을 맡기며 자신만의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본능적으로 할 줄 아는 사람을 우린 이렇게 부른다.

‘천재’라고

“그래. 혜나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욱이랑 같이 열심히 연습했잖니. 엄마는 최선을 다 한 혜나가 너무나도 기특해.”

“맞아. 우리 혜나는 뭘 해도 잘 하는 아이잖아. 이 아빠는 혜나가 잘할 거라 믿어.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너무 신경 쓰지 마렴.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부모님은 어떻게든 혜나가 부담 갖지 않고 오디션장에 임할 수 있게 옆에서 응원을 해 주었다. 부모님도 이렇게 긴장하는 혜나 모습은 처음 봤는지 안절부절 못했다.

어머니, 아버지.

혜나를 응원하시는 건 좋은데, 왠지 두 분이 더 긴장하신 것 같습니다.

그것이 혜나에게 고스란히 전염 되는 것 같고.

원래 아이들은 순수해서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상대가 슬프면 같이 슬프고, 행복하면 같이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지금처럼 부모님이 더 손발을 떨면서 긴장하면 혜나도 똑같이 그러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난 혜나의 두 손을 덥석 붙잡았다.

“혜나 누나. 나를 봐.”

“으응?”

“누난 잘할 거야. 그냥 연습이라고 생각해. 긴장이 될 땐 우리가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불렀던 걸 떠올리면 돼. 남들이 보는 건 다 무시해 버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 마디 더 얹었다.

“다 박살내 버리고 와.”

* * *

“잘 다녀와, 우리 딸~.”

재현과 효진은 어린 딸이 총총 걸음으로 오디션장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다 아빠 무릎 위에 앉아 작은 한숨을 내리쉬는 연욱이를 보고 풉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연욱이 응원 받고 혜나가 힘이 샘솟는 모양이야.”

“그러게. 엄마 아빠도 못 하는 걸 우리 아들이 해냈네? 너무 웃겨. 다 박살내 버리고 오라니.”

“어쩔 때 보면 우리 연욱이는 너무 어른 같단 말이지.”

재현은 귀여운 아들의 볼 살을 톡톡 건드렸다.

이에 질세라 효진도 연욱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떼기를 반복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이 부드럽고 탱탱한 촉감. 해 본 사람만 안다는 마성의 촉감이었다.

이미 연욱이는 반쯤 포기한 얼굴로 부모님의 손길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지금 보면 오히려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님, 아버님.”

그렇게 볼터치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였다.

어느 아이 엄마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죄송한데, 혹시 이 아이도 오늘 오디션 보는 건가요?”

화들짝 정신을 차린 부부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효진은 손사래까지 쳐 댔다.

“아니요. 그냥 누나 오디션 보는 거 응원하러 온 거예요.”

“아하. 그렇군요.”

그러자 그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이 아이도 오늘 오디션을 보는 건가 하고 깜짝 놀랐어요. 애가 어쩜 이리도 잘생기고 귀여운지. 너무 좋으시겠다.”

“어머. 감사해요. 그런데 남자 아역 배우는 이미 다 뽑은 거 아니었나요?”

“아. 못 들으셨구나. 원래는 다 뽑은 거였는데, 며칠 전에 배역 맡은 애 하나가 갑자기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연습을 못 하게 됐다네요. 그래서 오늘 오디션을 다시 열은 거고요.”

“그렇구나······”

“호호. 아무튼, 다행이네요. 딸 아이 오디션 꼭 합격하길 바랄 게요.”

발걸음이 가벼워졌는지 아이 엄마는 빠르게 사라졌다.

그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재현은 주변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조용히 효진에게 속삭였다.

“여보. 주변 엄마 아빠들이 우릴 무섭게 노려보고 있어.”

“응? 진짜?”

“슬쩍 한번 봐봐.”

효진은 남편 말에 따라 빠르게 사위를 스윽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친 부모들마다 경계심이 가득한 눈동자로 효진 부부네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른 고개를 다시 아래로 내린 효진이 재현에게 말했다.

“다들 왜 저러는 거야?”

“방금 저 아줌마 말 못 들었어? 다들 경계하는 거지. 우리 연욱이 인물이 워낙 탁월하니깐.”

“그, 그런가? 기분이 좀 이상하네.”

“그치? 연욱이는 오디션 보는 애도 아닌데, 벌써부터 무수한 경계를 받고 있다니.”

재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심드렁하게 앉아 있는 연욱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랑 아빠는 벌써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우리 아들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네?”

“여보. 이 정도 시선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오올. 우리 아들. 정말 그런 거예요? 매우 좋은 자세야.”

재현과 효진은 모르고 있었다.

······

연욱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

“다음 들어오게 해.”

“예, 감독님.”

문샛별 음악감독은 짙게 숨을 내쉬면서 아메리카노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런 그녀의 눈치를 슬슬 보고 있던 연출감독이 말했다.

“문 감독. 이제 그만 결정하지? 너무 깐깐한 거 아니야?”

“저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어요? 다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서 그런지 원······.”

“그 나물에 그 밥이면 그냥 아무나 뽑아. 고작 아역 배우잖아.”

“감독님. 고작 아역 배우라니요. 이번 뮤지컬에서 아역들의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하는 말씀이세요? 감정선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하면 우리가 원하는 인상을 관객들에게 심어 줄 수 없단 말이에요.”

“뭐······ 그래. 문 감독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내 입이 방정맞았네.”

김세원 연출감독은 제 입을 손으로 때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깐깐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는데, 문샛별에 비해서는 새 발의 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문샛별의 지휘 실력은 뮤지컬판에서 단연 으뜸인 것을.

뮤지컬은 음악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신비스러운 무대다. 당연히 배우들의 목소리도 중요하겠지만,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지휘자의 실력은 더욱 중요하다.

어떤 지휘자의 손에 의해 오케스트라가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날 무대의 퀄리티가 달라지고, 배우들의 리듬도 달라진다.

배우들에 맞춰서 연주를 한다고 해도 어느 순간 배우들이 오케스트라의 리듬에 따라가기 마련. 모든 건 라이브로 진행되기 때문에 완급 조절을 조금이라도 잘못하는 순간, 무대가 엉망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런 점에서 문샛별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고, 그녀는 이번 뮤지컬에서 그동안 없던 전율을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배역을 고르는 것이었다.

작품의 완성을 위해 흥행이 보장된 대배우들 몇몇을 깠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을 보면 그녀는 이 무대에 진심일 터.

그것을 알기에 연출감독도 더는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열정이 곧 뮤지컬의 성공으로 이어질 테니까.

“안녕하세요! 장혜나입니다!”

별 감흥 없이 펜을 돌리던 문 감독은 귓가에 울리는 청명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한눈에 봐도 지금껏 지원한 여자 아이들 중에서 가장 예쁜 얼굴이었다.

저번 오디션 때는 못 보던 얼굴이라 흥미가 갔다.

“이름이 혜나라고?”

“예!”

“얼굴처럼 예쁜 이름이네. 우리 혜나 노래 한번 해 볼까?”

스태프들과 감독들이 심사석에 앉아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시선을 한몸에 받는 건 처음이라 혜나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때 연욱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 귀여워서 확 깨물어 주고 싶은 예쁜 내 동생.

신기하게도 긴장감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혜나는 연욱이가 했던 말을 속으로 되뇌였다.

‘긴장하지 말자. 연습이라고 생각하자. 연욱이랑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돼.’

그리고······.

‘내가 다 박살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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