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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6화 (6/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6화 >

“연희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혹시 애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 걸려온 연희의 전화에 효진은 화들짝 놀랐다.

혹시라도 애들한테 무슨 일이 생겨서 전화가 온 것일까?

“아. 미안. 많이 놀랐어? 내가 다른 시간에 전화를 할 걸 그랬다. 애들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야. 방금 전에 레슨 끝나고 돌아갔어. 사실 다른 일 때문에 전화한 거야. 혹시 통화 돼? 혜나 일 때문인데.”

다른 일도 아니고 자식 일이라면 모든 부모가 기꺼이 시간을 내 줄 것이다.

“응. 괜찮아. 말해 봐.”

“저번에 혜나 꿈이 가수라고 했었지?”

“맞아. 그게 왜?”

“그게··· 우리 언니 알지?”

“가희 언니? 당연히 알지. 잘 지내셔?”

“응. 요즘 뮤지컬 판에서 일하거든. 그런데 연출감독이랑 지휘자가 좀 깐깐한가 봐. 아역 배우를 뽑는 오디션을 두 번이나 열었는데 다 까 버렸대.”

뮤지컬에서는 연출가와 지휘자의 입김이 가장 세다.

특히 배역에 맞는 배우를 고르는 오디션을 열 때는 연출가보다는 지휘자, 그러니까 음악감독의 선택권이 더 높다. 왜냐하면 직접 음을 맞추고 무대를 함께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 지휘자와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배우를 뽑을 땐 지휘자의 의견을 대체적으로 따르는 편이다.

“문샛별 지휘자라고 뮤지컬 판에서는 유명한 음악감독이 있어. 벌써 뮤지컬만 50개를 소화한 대단한 분이지. 아무튼, 이번에 우리나라 기획사에서 직접 만들어 올리는 뮤지컬이 있는데, 그 뮤지컬 담당을 하면서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체크를 하고 있대. 그래서인지 아역 배우를 아직도 못 뽑은 상태고.”

“아역 배우 비중이 좀 되나 봐? 다른 배우들은 다 뽑았는데 아역 배우를 아직 못 뽑은 걸 보면.”

연희만큼은 아니어도 효진도 가끔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물론, 육아 때문에 지금은 잘 보러 다니지도 못 하지만.

“뭐, 다른 배우들이야 네임드들만 뽑아도 티켓 판매량이 쭉쭉 올라가잖아. 그런데 아역 배우들 중에서는 딱히 네임드가 있는 게 아니니깐. 그리고 역할 비중도 나름 있고. 그래서 더 신중하게 뽑는 것 같아. 이번에 처음 올리는 공연이기도 하잖아.”

“근데 갑자기 왜 그 얘기를 하는 거야?”

“음. 혹시 혜나를 오디션에 참가시켜 볼 생각 없어?”

“으응?”

“솔직히 혜나는 또래 애들보다 돋보이게 예쁘잖아. 목소리도 좋고. 거기다 성격도 밝아서 적응을 잘 할 거 같던데.”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제안이라 효진은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혜나의 꿈이 가수라는 걸 지지하긴 했지만, 아이가 꿈을 이루도록 계획을 세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친구가 혜나의 꿈을 위해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미안.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말을 했나?”

“응? 아니야. 나야 너무 고맙지. 그런데 그 오디션이라는 거 경쟁이 조금 세려나?”

“경쟁이 좀 치열하긴 하지.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중에 혜나가 정말 가수 데뷔를 하려고 한다면 오디션에 대한 감각을 익혀 놓는 게 좋지 않을까?”

틀린 말이 아니다.

혜나가 꿈을 이루려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섣불리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 좋은 경험이 되겠지. 그래도 당장 결정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 남편이랑 상의도 해 봐야 하고, 혜나의 의견도 물어봐야 하니깐.”

“응. 아직 일주일 정도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결정해. 혹시라도 오디션 나가게 되면 나한테 미리 말해. 뭐부터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 줄 테니까.”

“고맙다, 애.”

“에이. 뭘. 고마운 건 나지. 요즘 내가 혜나랑 연욱이 보는 맛에 산다니깐? 아무튼, 잘 상의해서 결정해 봐.”

전화를 끊고 나서 효진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잠깐이나마 상상했다.

혜나가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모습을 말이다.

* * *

“어휴. 귀여운 내 아들.”

아버지. 제 볼에 얼굴을 비비시는 건 괜찮은데, 송구하오나 수염은 좀 깎아 주시죠.

심히 따갑습니다.

“우리 아들은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잘생겼을까? 이게 다 이 애비 덕분이지. 그럼.”

나는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멋쩍게 미소를 보였다.

차마 수염이 따갑다는 말을 할 순 없었다. 왠지 그랬다가는 혼자 풀이 죽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보. 그만 하고 이제 와서 앉아. 치킨 다 식겠다.”

“아. 그래. 우리 연욱이 좋아하는 치킨 먹으러 가자~.”

치킨. 좋지.

이런 옛날 통닭과 양념치킨은 항상 환영이다.

이상하게 세월이 지나가면서 우리가 어릴 때 맛 본 오리지날 치킨의 맛이 사라지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기분탓인가 싶었는데, 지금 먹어 보니 기분탓이 아니라 정말로 치킨 맛이 달라진 거였다.

“연욱아. 천천히 먹어. 애가 치킨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먹는다니깐? 호호.”

어머니의 말에 나도 최대한 자제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푸근한 미소를 보였다.

“내가 오늘 상사들한테 이리 깨지고 저리 깨졌는데 우리 애들 입에 맛있는 게 들어가는 걸 보니 갑자기 하나도 안 힘드네. 100번은 더 욕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예전에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퇴근하실 때 종종 맛있는 걸 사왔는데, 자기도 어른이 되고서야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고 말이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일부러 맛있는 걸 사서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준다고 한다. 애들이 그걸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위로를 얻는 것이다.

지금 아버지의 마음이 딱 그런 게 아닐까?

“아빠. 너무 맛있어!”

“그래. 우리 혜나 맛있게 많이 먹어.”

아버지는 나와 혜나의 볼을 번갈아 쓰다듬으며 정작 본인은 닭 한 조각 먹지 않고 있었다.

“여보. 오늘 연희한테 연락이 왔었어.”

“응? 무슨 연락?”

“가희 언니 기억하지? 예전에 몇 번 봤었잖아. 그 언니가 요즘 뮤지컬 판에서 일을 하는데, 지금 아역 배우 한 명이 안 뽑혀서 오디션을 다시 준비 중이래.”

“그런데?”

“연희가 그러더라고. 혜나 꿈이 가수이지 않냐고. 혹시 오디션 준비해 볼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

응? 오디션?

이게 갑자기 무슨 얘기지?

나는 열심히 뜯고 있던 치킨을 내려놓고 두 분의 말을 경청했다.

“음. 내 의견보다는 혜나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혜나는 어떻게 생각하니?”

“웅? 오디션?”

“그래. 오디션. 저번에 우리 같이 어린이 뮤지컬 보러 갔던 거 기억나?”

“웅. 기억나!”

“그때 혜나도 같이 노래 부르고 싶다고 했었지? 여기 오디션을 보면 혜나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대.”

어린이 뮤지컬과 일반 뮤지컬은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봐도 될 정도다.

부담감도 대단하고, ng 없이 한번에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돌발 상황에 대비를 해야 한다.

혜나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불안한 마음에 혜나의 얼굴을 슬쩍 살펴보았다.

이런.

저 광채가 나는 눈동자를 보라.

당장 무대 위에 올려주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고 싶어!”

“혜나야. 그런데 이건 어린이 뮤지컬이랑은 많이 달라. 어른들이랑 같이 연기도 해야 하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불러야 돼. 괜찮겠니?”

“웅! 노래 부르는 거 좋아. 연기하는 것도 해 볼래!”

혜나의 씩씩한 모습에 부모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내 기억으로 혜나는 어릴 때 뮤지컬 아역 배우로 데뷔한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이번 오디션 때 떨어진다는 건가?

‘실망이 크겠는 걸.’

뮤지컬 판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있다.

소속사에 들어갈 때 이력으로 낼 수도 있고, 뮤지컬 판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긴다. 물론,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은 그리 크다고 볼 순 없어서 꼭 좋은 루트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수의 꿈을 꾼다면 한번쯤 도전해 볼 만한 시장이긴 했다.

실용음악에서 일하다 뮤지컬 쪽으로 빠진 선배들이 많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디션이 언제라고?”

“일주일 뒤. 연희가 오디션에 필요한 것들이 뭔지 말해 준다고 했어.”

일주일?

준비 시간이 너무 짧다. 보통 오디션 공고를 최소 3~5개월 전에 낸다고 들었다.

역시, 준비 시간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거였나.

“연희한테 고맙네. 이렇게 잘 챙겨주고.”

“그러니깐. 난 진짜 생각도 못 한 건데. 신경 써 주는 게 너무 고맙더라고.”

“나중에 같이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하자.”

“응. 그래야겠어.”

뮤지컬. 뮤지컬이라···.

학교 과제 때문에 나도 몇 번 보긴 했다.

재미없는 건 정말 더럽게 재미없고, 재미있는 건 몇 번을 더 보러 갈만큼 마성의 힘이 있다. 하지만 티켓 값이 10~14만원이나 한다는 함정이 있어서 자주 보러 가진 못했다.

특히 뮤지컬은 배우마다 해석하는 게 다르고 노래를 부를 때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라 정말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뮤지컬을 10번 넘게 보러 다닌다. 배우들마다 무대에 올라오는 시간이 달라 티켓을 여러 개를 잡아 놓고 보는 것이다.

뮤지컬은 인터넷을 통해 듣는 것보다 직접 가서 실황으로 들을 때 느낌이 너무나도 달라 그 맛에 중독되어 버리는 맛이 있다.

거기다 이번에 혜나가 오디션을 보러 가는 뮤지컬의 이름이 절묘했다.

“괴물이라는 뮤지컬인데, 프랑켄슈타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거래.”

뮤지컬 괴물.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을 하고 외국까지 수출을 하게 되는 몇 없는 국산 히트작이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를 다녔을 당시 과제로 1번. 그 후 뮤지컬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2번이나 더 봤던 뮤지컬이기도 했다.

* * *

“가지마, 빅터! 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어른들은 우리가 함께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난 널 계속 기다릴 거야.”

오디션에 참가하겠다는 말에 원장 선생님이 대본과 오디션 곡 악보를 직접 뽑아서 혜나에게 건네주었다.

혜나는 오디션 준비를 위해 연습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난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두 시간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일반 팬은 언제든 탈덕을 할 수 있지만, 팬클럽 회장은 영원한 팬이라고 했던가.

그래. 이것이 성덕이로구나.

이대로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한다.

“힝. 너무 어려워.”

“괜찮아. 잘하고 있어.”

“정말? 연욱이는 맨날 누나 잘한다고만 하잖아.”

내, 내가?

아니. 그래도 냉정할 땐 냉정한 사람이다.

“누나가 대사 틀리고 음정 틀려도 다 잘한다고만 하고!”

“그, 그랬나?”

“연욱이가 도와줘. 나 꼭 이거 하고 싶어.”

"내가 뭘 본다고 과연 알까?"

"그냥 뭐가 문제인지 말해 주면 내가 고쳐 볼게."

혜나의 간절한 눈빛을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나간 상태고,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은 것 같았다. 혼자 오디션 준비를 하는 게 어린 혜나에게는 외롭고 힘든 싸움일 것이다.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야.

“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내가 막 틀렸다고 뭐라 해도 울면 안 돼?”

“웅-! 괜찮아!”

찐팬의 마음으로는 혜나가 두꺼비 소리를 내도 흐뭇하게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이 뮤지컬의 감독이라면 혜나가 어떻게 보일까 라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혜나를 위한 일이라면 말이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혜나가 들고 있는 대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여기서 딕션이 안 돼.”

제일 거슬렸던 부분이다.

일단 발음부터 고쳐야 한다.

뮤지컬 배우에게 딕션은 생명과도 같은 능력이다.

노래 실력만 좋다고 다 뮤지컬 배우로 쓸 순 없다.

대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뮤지컬 배우의 실력을 가늠하게 한다.

“딕션?”

“거기다 여기 첫 곡 부를 때 시작 부분에서 너무 음이 흔들려. 바이브레이션을 넣으면 안 된다는 소리야. 그냥 누나의 클린한 목소리로 불러도 충분할 거야.”

“바이브레이션? 그게 다 뭐야?”

우리 혜나. 아직 갈 길이 멀구나.

나도 음악적으로 부족한 게 많지만, 꼭 이 배역을 맡고 싶다는 혜나의 바램을 이뤄 주고 싶었다. 지금부터 스파르타로 연습을 하면 조금이나마 붙을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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