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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3화 (3/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3화 >

“이건 이렇게 그리고~.”

“응.”

“저건 이렇게 그려야징~.”

“그래. 잘 그리네.”

혜나는 학교에서 내 준 그림 숙제를 하고 있었다.

체육과 그림에 소질이 있다더니, 과연 그렇다.

누가 이걸 보고 10살짜리 초등학생이 그렸다고 생각하겠는가.

선이 삐뚤거리지도 않고 반듯하며 자신이 원하는 구도대로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나는 옆에서 혜나가 달라는 색깔의 색연필을 건네 줄 뿐이다.

“다 그렸다!”

4시간 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마침내 그림을 완성시켰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만 있는 게 굉장히 힘들 텐데, 혜나는 한번 집중을 하면 결코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난 그냥 달라는 건만 줬을 뿐인데도 어깨가 쑤시는 것만 같다.

“어때? 예쁘지?”

“아··· 으응.”

그림은 잘 그렸다.

하지만 떨떠름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무대 위에 올라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혜나의 모습이 그림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한테도 보여 줘야지~.”

그림을 가지고 쪼르르 엄마한테 달려가는 장혜나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림의 주제는 자신의 장래 희망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10살짜리 꼬마는 벌써 본인의 꿈을 확실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엄마! 이거 봐!”

“어이구. 우리 딸. 예쁘게도 잘 그렸네.”

“이건 나고, 이건 아빠고, 이건 엄마고, 이건 연욱이야!”

혼자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더니, 관중들 속에 가족들을 그려 놓았다.

“우리 혜나는 예쁜 가수가 되고 싶구나?”

“웅! 나중에 커서 예쁘고 노래 잘 부르는 가수가 될 거야!”

어머니는 그런 혜나가 너무나도 귀여워 죽겠는지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명이란 큰 물줄기와도 같다. 그 물줄기를 거부할 순 없다-라는 말이 있다.

가수라는 꿈이 혜나의 운명에 있어서 큰 물줄기가 아닐까?

과연 내게 그녀의 꿈을 짓밟을 권리가 있는 것일까.

“엄마. 나 피아노 배우고 싶어.”

“응? 피아노?”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는 거 보면 너무 멋있어.”

“푸훗. 그래? 그럼 학원 알아봐 줘야겠네?”

“엄마도 피아노 잘 치잖아.”

“하지만 엄마는 직장 다니느라 피아노 가르쳐 줄 시간이 별로 없어요. 대신 엄마 친구가 하는 피아노 학원이 있는데, 거기 가서 배우자. 어때?”

혜나는 악기 연주를 좋아해 피아노와 기타 모두 수준급으로 칠 수 있게 된다.

물론, 가수 활동을 할 당시 이런 그녀의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던 게 항상 아쉬웠다.

어머니는 혜나를 쓰다듬어 주다 슬쩍 내게 물었다.

“연욱이 너도 같이 학원 다닐래?”

“아뇨. 전 괜찮아요.”

대학 입시를 위해, 또 대학에 들어가서도 지겹게 친 것이 피아노다.

이번 생에서는 별로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 * *

“아아아~.”

아침에 일어나면 목을 풀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 혜나의 일상이었다.

나는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직 10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마의 목소리인데도 참 청명하고 맑다. 세상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누나는 노래하는 게 그렇게 좋아?”

“웅. 좋아!”

“가수가 정말로 되고 싶어?”

“웅-! 되고 싶어!”

“왜?”

“좋으니까!”

그래. 뭐, 아이의 꿈에서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겠냐.

그냥 좋으니까 하는 거지.

“연욱이도 같이 하자! 가수!”

“안 돼. 난 소질 없어.”

“왜에~. 누나가 잘 알려 줄게. 우리 연욱이 노래 잘할 거야. 목소리 너무 좋아.”

“으응? 내 목소리가 좋아?”

“웅. 목소리 너무 멋있어.”

뭔가 확 얼굴이 달아올랐다.

남에게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은 처음 받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하고 있는 몸은 내 전생의 것과 다르다.

새로운 얼굴, 새로운 목소리.

모든 게 다 새 것이었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좋은가?

아니. 넘어가지 말자. 혜나는 원래 착해서 뭐든 다 좋다고 칭찬할 아이다.

“예쁜 아가들~. 얼른 나갈 준비 해야지? 늦으면 안 돼요~.”

“우웅-!”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토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전자 피아노로 몇 가지 동요를 연주했다.

어머니도 우리가 학교를 가면 바로 출근을 하셔야 할 텐데, 아침부터 참 고생이 많으시다.

혜나가 아침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니, 매번 피아노를 쳐 주신다.

나는 아침이라 몽롱한 정신으로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아이 몸을 해서 그런가 아침마다 일어나기가 더 힘들다. 아니. 그냥 난 원래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혜나는 아주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어떻게 일어나자마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가 있지?

나는 조용히 혜나의 재롱과 어머니의 연주를 듣다 무의식적으로 툭 말을 내뱉었다.

“음-. 세 번째랑 여섯 번째 마디가 틀렸네. 박자도 평소보다 빠르고.”

그러자 어머니는 흠칫 거리며 연주를 멈추셨다.

“우리 연욱이. 방금 뭐라고 했어?”

“예?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머니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그렇게 바라보지 마십시오. 저도 깜짝 놀랐으니까.

아침이라 그런가 갑자기 왜 나도 모르게 헛소리를 했지? 거기다 난 청음도 쓰레기라 누구의 연주를 판단할 실력이 되지 않는데.

“엄마~. 다시 연주해 줘.”

“아. 그, 그래.”

괜한 말을 꺼냈다가 어머니의 묘한 눈길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애써 눈총을 피하며 토스트를 얼른 먹어 치웠다.

그렇게 조금 어색한 아침 식사가 끝난 뒤, 우리는 어머니 차에 올라 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

“모두 조심해서 다녀와~.”

“웅. 엄마. 사랑해!”

혜나가 어머니 볼에 입을 맞추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다녀올게요.”

나는 쭈뼛쭈뼛 있다가 쏜살 같이 차에서 내리려 했다. 하지만 발을 빼기도 전에 어머니가 나를 붙잡았다.

“연욱아. 넌 또 엄마한테 뽀뽀 안 해 주고 가려고?”

어머니. 제가 몸은 이래도 정신은 다 큰 성인이라 솔직히 부끄럽습니다.

내가 부모 없이 자라서 그런가, 부모님에게 감정 표현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다.

혜나는 쉬지 않고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그 점이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

빠져 나갈 타이밍을 놓쳤다.

어머니는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어쩔 수가 없다.

“하, 할게요.”

어머니는 기어코 볼 뽀뽀를 받고서야 밝게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고는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어이구. 예쁜 내 새끼.”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엄마가 일찍 들어올 거야. 그때 혜나 피아노 학원 등록하러 가자.”

“저도 같이 가요?”

“응. 연욱이도 한번 가서 봐봐. 막상 가 보면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잖니?”

애들 다니는 피아노 학원은 연주가 아니라 거의 소음에 가깝다.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음대를 노리는 게 아니지 않은가.

태권도 학원처럼 그냥 엄마가 보내니까 다니는 애들이 수두룩하다.

정상적인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들으려면 입시 준비 학원에 들어가야 한다.

거긴 애들은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피아노를 쳐 대고, 괴물들이 득실대는 곳이라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물론, 완전 먹귀인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웃기긴 하다.

청음도 안 돼, 작곡도 안 돼, 심지어 연주도 안 돼.

대체 무슨 근자감으로 음악 대학에 들어가 혜나의 노래를 작곡해 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만약 정말 작곡을 해줬으면 그런 민폐가 없었을 것이다.

“알겠어요, 엄마.”

“그래. 학교 잘 다녀오고! 사랑해 우리 아들.”

“저, 저도요.”

나는 간신히 차에서 빠져 나왔다.

휴. 이런 시간을 어려워하면 안 되는데.

겉으로 티를 내진 않으시지만, 어머니가 분명 나 때문에 서운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학교 성적으로 보답해 드리면 되겠지?

“꺄아아악-!”

“받아라! 질풍킥!!”

“야! 내 딱지 내놔!!”

“내 팽이가 최강이다!!”

흠. 여긴 언제 봐도 야생이군.

이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 잼민이 월드인가.

내가 전생에서 초등학교를 어떻게 다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분명 이것보다는 조용했던 것 같다.

이래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맡는 선생님들이 스트레스를 못 이겨 사표를 던지는 거구나.

나는 점잖게 자리에 앉아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로 우당탕 뛰어다니다 넘어지면 울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어 버린다.

참 마음 가는대로 노는 나이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지 않은가.

정말 다들 순수하고 귀여운······.

파악-!

“히히힛!”

한 놈이 내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죄다 바닥에 떨어뜨린 뒤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때릴까?

어차피 나이도 동갑인데.

후-. 아니다. 참자. 참을 인 세 번이면 군자라고 했다.

“바보 장연욱! 바보 바보! 똥쟁이래요!”

“헤헤. 똥쟁이 장연욱!”

초등학교에는 한 가지 신비로운 것이 있다.

이상하게 애들이 똥과 방귀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뿡뿡이 같은 캐릭터가 탄생했고, 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똥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예전에 유아교육과 교양 수업을 들었을 때도 0살부터 저학년 아이들은 똥과 방귀에 환장한다고 배웠다.

그것 때문에 아이들은 누가 화장실에 큰일을 보러 가면 아주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그저께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을 갔다가 아이들이 죄다 몰려온 적이 있었다. 그걸로 하루 종일 날 놀리고 있는 것이다.

근데 딱히 수치스럽다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냥 애들이 귀엽다.

“똥쟁이 장연욱! 똥쟁이래요!”

물론, 선 넘는 몇몇 애들 빼고.

“야.”

“똥쟁이 장연욱!!”

“변기에 쳐 넣어서 아가리에 똥 쑤셔 버리기 전에 닥쳐.”

“······.”

살면서 이런 충격적인 문장은 처음 듣는 모양인지 아이는 굳은 자세로 서 있기만 했다.

좀 심했나?

미안한데, 형이 옛날부터 한 성깔 했단다. 음대 다니면서 입에 걸레를 물고 다녔어.

선배들 욕, 교수들 욕, 정치인들 욕까지.

내 동기들도 그냥 욕하는 건 지겨웠는지 정말 창의적인 비유와 어법을 섞어 가며 욕을 해 댔다. 만들라는 곡에 창의성이라고는 1도 없으면서 욕 하나는 참 창의적이게 잘한 것 같다.

"볼 일 다 봤으면 이제 저리 가. 훠이~."

나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담아 책상 위로 원위치시켰다.

그런데 그때 얼굴도 잘 모르는 여자애가 다가와 날 불렀다.

“저기 연욱아.”

“으응?”

“이거.”

그 아이는 반듯하게 포장된 무언가를 건넸다.

그런 뒤 어디론가 후다닥 뛰어가 사라져 버렸다.

다시 보니 우리 반 애도 아니었다.

“뭐야? 그거 뭐야?”

방금 전까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남자애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내 옆에 착 달라붙었다. 나는 포장지를 빠르게 뜯어보았다. 뭔가 여자한테 선물 받은 건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음?”

포장지 안에는 작은 휴대용 티슈가 있었다.

“우하하! 휴지다. 휴지! 똥쟁이 휴지다!”

뭐지. 예쁘게 포장해서 사람 멕이는 건가?

아까 애들 순수하다는 말은 취소.

잼민이들은 결코 순수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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