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2화 >
“연예인 장례식 치고는 좀 썰렁하네?”
“데뷔한지 5년이 지났는데도 뭐 하나 뜬 곡이 없잖아. 당연한 결과지.”
“쯧쯧. 죽어서도 불쌍하다.”
장례식장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팬클럽 회원들이 날 막아 세웠다.
“참으세요, 회장님.”
“예. 괜히 소란 일으키면 더 안 좋게 볼 겁니다.”
3일 전에 팬클럽을 탈퇴했던 회원들이 전부 다 돌아왔다.
이들도 혜나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충격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다들 들어가시죠.”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장 안에 들어갔다.
연예인 장례식치고는 굉장히 단출했다.
장례식장을 지키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보통 연예인 자살 사건이라면 기자들이 모여들 법도 한데 그런 낌새도 없었다.
이것이 무명의 슬픔인가.
연예 기사라면 환장을 하는 기자들마저 외면하다니.
혜나의 그룹 멤버들은 어제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그중에서 눈물을 흘리다 쓰러진 멤버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은 일반인들도 장례식을 찾아올 수 있게 개방이 되었다. 하지만 찾아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우리라도 혜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장례식장 안에서 웬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저분은······.”
“혜나 씨 아버님 맞죠?”
“맞는 것 같아요. 예전 인터뷰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혜나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는데, 그가 연주 하고 있는 기타는 혜나의 것이 분명했다. 콘서트에서 가끔 혜나가 기타를 들고 나와 곡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 적이 있지 않던가.
“혜나야. 너까지 이렇게 가면 난 대체 어떻게 살라고?”
몇 번 기타 줄을 튕기다 그는 우리가 온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오셨는지······.”
“혜나 씨의 그룹 팬클럽 회원들입니다.”
“아아. 그러셨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향을 피우고 검은 영정 사진으로 남은 혜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항상 웃음꽃만 피우던 그녀가 이렇게 가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혜나는 제가 기타만 치면 항상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혹시라도 제가 기타를 다시 연주하면 나타나지 않을까 했는데······.”
말을 흐리면서 펑펑 눈물을 흘리는 혜나의 아버님을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결국 나도 그 앞에서 같이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팬클럽 회원들도 자책감을 느낀 것인지, 저마다 눈물을 훔쳤다.
“다들 오늘 고마웠습니다.”
“회장님. 혼자 돌아가셔도 괜찮겠어요?”
“아까 쓰러질 것처럼 우시던데.”
회원들의 걱정에 나는 손을 저었다.
지금은 그냥 혼자 정처 없이 걸어다니기만 하고 싶었다.
마침 하늘에는 눈이 내렸다.
혜나가 눈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는데, 이 꽃눈을 봤으면 우울한 마음을 잠깐이나마 풀지 않았을까.
처음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혜나는 데뷔 때부터 컨셉을 잘못 잡은 케이스였다.
그 밝고 청명한 여자를 소속사에서 신비주의 컨셉을 강요하는 바람에 오히려 안 좋은 효과를 낳았다.
토크쇼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도 신비주의 컨셉을 지키고자 말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이 마이너스 요소가 된 것이다.
팬들 중에서도 정말 찐팬들만 혜나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소속사를 비난했다.
소속사도 그것을 의식하고 뒤늦게 신비주의 컨셉을 취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나는 낙관적이고 활발한 혜나가 자살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 의하면 혜나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하기 전 유서를 남겼고, 그녀의 필체가 확실하다는 것을 그녀의 아버지가 확인했다.
그녀의 자살 이유는 길어지던 무명 생활과 1년 전에 병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빈자리가 가장 큰 듯보였다.
보석처럼 빛나던 밝은 성격도 세상의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꺾이고 마는 것일까.
혜나도 혜나지만, 혼자 남게 된 그녀의 아버지도 참 안쓰러웠다.
저러다 자기 딸의 뒤를 따라가겠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텅 빈 집안에 들어와 바닥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어차피 집에서 날 반겨 주는 사람은 없다.
고아로 태어나 고아원 생활을 하며 어찌어찌 공부해서 대학까지 들어갔다.
나 같은 고아에게는 국가 장학금이 지원되는데, 군대는 면제가 안 돼서 국방의 의무를 마쳤다. 어쩌면 가족이 없다는 외로움에 트윙클을 더욱 열심히 응원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알바도 하고 과외로 번 돈으로 생활비를 쓰고 있지만, 미래가 정해지지 않아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거기다 혜나가 자살을 하면서 삶의 목적이 전부 사라진 기분이었다.
디리링-.
맥주캔을 까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타 소리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이 새벽에 기타를 치고 지랄이야?
“음?”
그런데 기타 소리가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내 머리맡에서 말이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보았다.
그곳에는 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나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혜, 혜나?”
분홍색 머릿결을 찰랑 거리며 기타를 치고 있는 건 분명 혜나였다.
혹시 이건 꿈인가?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그녀의 분홍 머릿결이 붉게 물들어 가고 아름다웠던 그 모습마저도 흉측하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기타 연주도 점점 기괴하게 바뀌며 내 모든 신경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어둠으로 가득해져 버린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다.
나는 이 상황을 빠져 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쳐 댔다. 그러나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녀의 어두운 손길이 결국 내 얼굴에 닿았다.
* * *
“으헉-!”
나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자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젠장. 잊을 만하면 그 장면이 꿈에 나온다.
저번 생의 마지막 기억이 말이다.
“연욱아. 왜 그래? 또 악몽 꿨니?”
“아, 아니에요. 엄마.”
“애 땀 흘린 것 좀 봐.”
나는 부드럽게 땀을 닦아 주는 어머니의 얼굴을 응시했다.
“왜 그렇게 보니?”
“엄마 얼굴이 너무 예뻐서요.”
“호호-. 우리 아들이 보는 눈이 있네.”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이분이 내 어머니라는 것이 말이다.
“흐흐. 우리 아들이 날 똑 닮아 가지고 보는 눈이 있지.”
익살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오는 저분은 내 아버지.
그것도 장례식장에서 눈물로 기타를 치던 바로 그분이었다.
이 두 분이 내 부모님이라는 건 결국 무슨 뜻이겠는가.
“엄마아아-.”
“아이고. 애들 다 깼네, 다 깼어.”
칭얼대면서 엄마 아빠를 찾고 있는 저 여자 아이는 내 누나이자, 훗날 트윙클의 리더가 되는 장혜나였다.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나한테 묻지 마라.
나도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죽은 장혜나를 자취방에서 마주한 뒤 나는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 보니 갑자기 8살 꼬마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장혜나의 남동생 장연욱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한 가지 소름인 건, 장혜나에게는 동생이 없었다. 그녀는 외동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장혜나의 남동생이 되어 버린 것일까.
벌써 이 몸을 하게 된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여보. 당신이 혜나 재우고 있어. 난 연욱이 재울 테니까.”
“응. 알겠어.”
아버지는 팔로 내 머리를 받친 채 옆에 누웠다.
기타를 치면서 혜나의 죽음을 슬퍼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 건만, 지금은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얼굴이다.
“우리 아들. 얼른 코 자야지? 내일이면 처음으로 초등학교도 들어가는데.”
“예. 그럴 게요.”
“우리 아들은 존댓말도 잘하고 너무 착해. 으이구. 이뻐라.”
한 달 동안 이 집에 생활하면서 혜나의 부모님이 얼마나 자상한 분들인지 알게 됐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면서 혼란스러운 한 달을 보냈다.
“드르렁-.”
나를 재우려고 온 양반이 먼저 잠에 곯아 떨어졌다.
코도 열심히 골아 주시는 바람에 오던 잠도 다 달아나 버렸다.
나는 한쪽 팔을 이마에 올리고 생각에 잠겼다.
어쩌다 내가 혜나의 남동생이 된 것일까.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 회귀? 환생? 아니면 빙의?
빙의는 아니지. 애초에 혜나에게는 남동생이란 존재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내가 자취방에서 봤던 죽은 혜나의 모습이 관련 있다는 건데······.
아무렴 어떠랴.
중요한 건 내가 시간을 되돌려 혜나의 남동생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즉, 나는 이번 생에서 그녀가 또 다시 자살을 하는 걸 막을 수가 있다.
이것은 그녀의 불행한 인생을 바꿔 주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
* * *
“잼민이들의 삶도 쉬운 게 아니구나.”
한창 자야 할 나이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등교를 해야 하는 초등학생의 삶이 참 가혹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고등학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더 끔찍한 건 나이 20살이 되면 한번 다녀온 군대를 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쌍욕이 찰지게 입에 박힌다.
나는 애꿎은 무릎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씨발.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십자인대 하나를 콱······.”
“씨발?”
“으응?”
“너 엄마한테 이를 거야. 또 욕했다고!”
깜짝이야.
언제 온 건지 혜나가 내 뒤에 있었다.
“내가 언제 쌍욕을 했다고 그래?”
“방금 들었어. 씨발이라고 한 거!”
“아니야. 누나가 잘못 들은 거야. 근데 누나 숙제는 했어? 어제도 안 해서 혼났다며.”
“하, 할 거야!”
이제는 아이돌이 아니라 내 친누나가 되어 버린 혜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집에 먼저 들어갔다. 나와는 2살 차이지만, 뭔가 내 누나라기보다는 어린 꼬마애를 보는 심정이다.
“에휴. 몸은 이런데 정신머리만 다 큰 청년이니 원.”
집에 들어오니 신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혜나는 벌써 가방을 벗어 던지고 피아노 앞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어머니는 그런 혜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고 귀여웠는지 웃음꽃이 가득 했다.
하지만 난 웃을 수가 없었다.
어린 혜나의 모습에서 벌써 끼가 넘쳐 흐르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혜나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네?”
“웅! 난 커서 가수가 될 거야!”
“오구오구. 그래. 우리 혜나는 꼭 훌륭한 가수가 될 거예요.”
위험하다.
혜나는 이미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모두 음악에 거부감이 없다.
혜나가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가까이 지내게 된 건 순전히 부모님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분은 음악을 사랑하고, 심지어 대학 가요제에서 만나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로 음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자기 딸만큼은 하고 싶은 음악을 시켜 주고 싶은 것 같았다.
그 결과 혜나는 연예인들의 대학교라 불리는 서울예전으로 입학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며 20살에 데뷔를 하게 되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악착 같이 공부를 하여 대학교에 들어간 것을 보면 그녀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난 그녀의 꿈을 짓밟아야 한다.
그녀가 또 다시 지옥 같은 아이돌 생활을 하게 놔둘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