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화 (1/200)

내 최애의 남동생이 되었다

=======================================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화 >

“너 또 그 인기도 없는 걸그룹 파고 있냐?”

누워서 뉴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친구 녀석이 핀잔을 주었다.

“그 걸그룹 데뷔한지 5년 정도 됐다며? 근데도 아직 그 모양이면 뻔하지. 재능이 없는 거야.”

“개소리 하지 마. 우리 트윙클 애들이 얼마나 재능 넘치는데! 단지 곡을 잘못 만났을 뿐이야. 소속사가 병신인 거지.”

“소속사 타령 하기는. 지금 잘나가는 걸그룹들 봐라. 노래가 다 고만고만해도 뜰 애들은 뜨게 되어 있잖아. 그냥 재능이 없는 거라니깐?”

개새끼. 맞는 말만 존나 골라 하네.

반박을 하고 싶어도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친구 놈은 피식 비웃음을 날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화풀이라도 하려고 중지를 높이 들며 소리쳤다.

“두고 봐. 우리 트윙클은 반드시 뜬다!”

하지만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

과연 뜰 순 있을까?

데뷔한지 5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데뷔한 트윙클은 걸그룹에 대해서 아예 관심조차 없던 내 메마른 가슴에 싹을 틔우게 해 주었다.

사실 트윙클이라는 걸그룹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트윙클의 리더인 혜나 때문에 입덕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재능이라면 반드시 뜰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 트윙클은 여전히 제자리였고, 내는 노래들 모두 저 밑바닥으로 파묻혀 버려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혜나는 연기에도 도전을 했지만, 하필이면 이상한 작품에 걸려 연기 인생도 조지고 말았다.

그래도 힘을 내라고 어떻게든 팬 사인회에 매번 참석해 응원을 해 봤으나, 이젠 팬 사인회도 열지 않는다.

소속사도 아예 포기를 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저 오늘 탈덕합니다.

그런데 내부에서부터 분열이 일어났다.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붙잡았다.

-부회장님. 부회장님까지 이렇게 떠나시면 우리 트윙클은 누가 응원한답니까?

-이제 저도 지쳤습니다. 1년 동안 감감무소식이잖아요. 멤버들도 다 SNS 안 한지 오래됐고요. 이 정도면 해체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맞아요. 저도 더는 못 해 먹겠네요.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걸그룹은 노래도 좋고 스타일도 훌륭하더라고요. 전 거기로 갈아 타겠습니다.

-저도 그만 탈덕하겠습니다. 트윙클, 참 오랫동안 응원해 왔는데 이제 보내줘야 할 거 같습니다.

가뭄의 콩 나듯이 있던 팬클럽 회원들 역시 하나 둘 탈덕을 하기 시작했다.

팬클럽 회장으로써 나는 마지막까지 그들을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떠난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회장님도 그만 하세요. 그동안 노력 참 많이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인기가 없다고 해도 우리 팬클럽 회원들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1년 동안 멤버들이 전부 잠수를 타고 있어요. 이건 우리를 무시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분명 뭔가 사정이 있겠죠.

-전 그 사정이 뭔지 알고 싶지도 않네요. 아무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회원까지 탈퇴 선언을 하고 톡방을 나가 버렸다.

회장인 나만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었다.

“후-. 씨발.”

나는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졸업 연주회가 코앞인데, 작업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팬클럽까지 폭파된 마당에 누가 과연 트윙클의 컴백을 환영해 주려 할까.

아니. 회원들 말대로 트윙클은 정말 해체된 것일 지도 모른다. 어차피 관심도 받지 못 하고 있으니, 그냥 발표를 안 한 것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그들을 기다려 주는 팬들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끝을 내는 건 뭔가 아닌 것 같았다.

“이 새끼는 곧 있음 졸업인데 여기서 노가리를 까고 있네. 청승맞게 혼자 뭐하냐?”

이런 저런 생각에 흡연장에서 오랫동안 죽 치고 앉아 있자 동기들이 흡연장에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음대 다니는 놈들치고 담배 안 피는 놈, 술 안 마시는 놈이 없다.

“졸업 연주회 준비하는 것도 좆같고, 내 덕질 생활도 좆같아서 그런다.”

“하긴. 네가 음악에 재능이 존나 없긴 하지. 좋아하는 걸그룹도 인기 없는 애들이고.”

“레알 그렇긴 해.”

“···씨발.”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수긍의 욕설이 튀어 나왔다.

동기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

음악 대학 중에서 그나마 알아준다는 J 대학교에 들어왔지만, 음악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절실하게 통감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난 음악에 재능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음악을 하고 있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이 새끼 꿈이 트윙클인가 뭔가 하는 걸그룹한테 노래 만들어 주는 거잖아. 그래서 음악하고 있는 거래.”

“아. 진짜? 그래서 실용 음악으로 들어온 거야?”

“에이. 구라겠지.”

동기들이 농담 삼아 말하고 있지만, 난 아니었다.

나는 물고 있던 담배를 끄면서 말했다.

“진짜야.”

“뭐?”

“진짜라고 새끼들아. 그리고 트윙클한테 노래 내 주는 게 아니라 우리 혜나한테 솔로곡 주는 게 내 목표야.”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풉-!”

“크하하-! 방금 우리 혜나라고 한 거냐?”

“미친 새끼. 내가 올해 들어본 개소리 중에 제일 참신했다.”

한참을 웃던 동기들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잔소리를 해 댔다.

“네 전공이 작곡이긴 해도, 가수들한테 곡 내주는 작곡가 되는 게 쉬운 줄 아냐? 그리고 그쪽 세계가 존나 더럽고 불공평하다는 거 너도 알잖아.”

“평생 소속사 밑에서 노예 생활만 해야 할 걸? 네가 만든 곡인데도 다른 놈이 만들어낸 것처럼 포장돼서 나간다고.”

“그래. 그 바닥은 줄 없으면 못 올라가. 차라리 교수님 밑에서 구르다가 너도 교수를 하던가, 아니면 학원 차려서 잼민이들 돈이나 빨아.”

음대생들의 현실적인 목표였다.

작곡의 세계, 그것도 가요 작곡가들의 세계는 참 비정하고 잔인하다.

보통 소속사 작곡가들은 대다수가 불합리한 계약을 맺고 있는데, 자기가 거의 다 만들어 놓은 곡을 기획사가 가져가서 조금만 다듬은 후에 다른 이의 이름을 걸고 곡을 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공평하다고?

소송을 걸겠다고?

기획사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만약 거기서 소송을 걸거나 이의를 제기할 경우, 그 작곡가는 영원히 가요계에 발을 들일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이 고이다 못 해 썩어 버린 대한민국 가요계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소속사 작곡가들을 노예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누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곡을 해서 곡을 내놓느냐?

뒤에 배경이 있는 놈이거나 기획사 메인 작곡가들이 노예가 만들어 놓은 곡들을 선별한 뒤 자기 입맛대로 바꿔 버려 가요계에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음대생들 중 큰 꿈을 품고 작곡 세계에 발을 들였다가 눈물을 흘리며 그만 두는 사람들이 많다.

차라리 피아노 같은 악기 쪽 전공을 하는 것이 더 희망이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작곡을 하겠다면, 가요계에 나름 줄이 있는 교수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 진출을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된다.

문제는 우리 대학에 그만한 영향력을 가진 교수가 없다는 것이고,

“넌 음악에 재능도 없잖아.”

내가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네가 청음이 좋냐, 아니면 연주 실력이 좋냐? 작곡 실력은? 너 과제 곡 발표할 때마다 교수님들한테 양파처럼 까이는 걸 몇 년을 봤는데?”

“그거야 마지막 날에 발로 쳐 쓰니까 그런 거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야. 내가 발로 쳐 써도 네 거 보단 나아. 너처럼 과제 밀려서 다 발로 휘갈겨. 그런데도 난 A 받았다?”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음대생 학생들도 과제 압박이 굉장히 심하다.

특히 교수가 원하는 스타일 대로 곡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들이 많은데, 이것저것 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 대다수 학생들이 발로 휘갈기듯 곡을 써서 낸다. 그리고 거기서 재능의 차이가 드러난다.

재능이 넘치는 놈들은 곡을 휘갈겨 써도 교수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렇지 않은 놈들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교수에게 까여야만 한다.

당연히 나는 후자였다.

내 곡은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아 본 적이 없다.

“잘났다. 씨팔.”

“왜 그래. 꼴 받냐? 흐흐.”

“꼬우면 너도 잘 하던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땐 술이 최고다.

“됐고. 술이나 마시자.”

“갑자기? 근데 난 찬성.”

“개뜬금이네. 나도 찬성.”

“벌써 이틀째 술을 안 마셔서 나 지금 당 떨어지는 거 같음. 나도 찬성.”

이놈들은 저녁 늦게까지 술을 먹은 뒤, 다음 날 일어나서 소주팩에 빨대를 꽂고 마신다. 그럴 만도 한 게, 내가 이제까지 만나본 음대생들 중 흡연이나 음주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술을 마셔야 작곡이 더 잘 된다나 뭐래나.

근데 나도 알딸딸한 상태가 돼야 곡이 더 잘 써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몇 번 있었다.

이게 심해지면 마약에 손을 대게 되는 거라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고 항상 선배들이 주의를 주긴 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털어 내고자 동기들과 함께 자주 가던 술집으로 들어갔다.

“항상 먹던 세트로 먹을 거지?”

“오케이.”

동기들 모두 소맥파라서 우린 항상 시키던 대로 안주와 술을 주문했다.

그래. 오늘은 복잡한 생각하지 말자. 나쁜 생각은 알코올로 다 씻어 내는 거다.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과자를 씹고 있을 때였다.

“야. 저거 네가 덕질하는 그 가수 아니야?”

“응?”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뒤에 있는 TV를 가리키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난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뉴스 속보가 떠 있었다.

[트윙클 멤버, 장혜나. 오늘 오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 * *

“어후. 미친 새끼. 술도 잘 못 마시는 새끼가 뭐 이렇게 많이 쳐 마셨어?”

“놔! 이거 놔! 나도 혜나 따라서 뒤져 버릴 거야!”

“병신아! 연예인 자살하는 거 하루 이틀이야? 왜 네가 따라 죽으려고 지랄이야, 지랄이!”

동기들은 만취한 나를 자취방까지 끌고 와 눕혔다.

“또라이 새끼. 그냥 확 뒤지라고 놔둘까?”

“그러고 싶은데 저러다 진짜 약 먹고 뒤져 버리려고 하면 어쩌려고?”

“씨발. 괜히 술 먹으러 왔다가 개고생이네.”

말은 저렇게 해도 내 걱정이 되긴 했는지 서로 자취방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불침번이라도 서 주자.”

“이 새끼 술 취해서 혼자 뭔 짓 할지 모르잖아. 우리가 있어 줘야지.”

“맞아. 그래도 치킨 한 마리 정도는 괜찮잖아?”

그럼 그렇지.

이놈들은 내 지갑을 뒤져 카드를 꺼내고 냉장고에 있는 술도 꺼냈다.

“한 마리로 되겠어? 1인 1닭 안 하면 안 먹음.”

“아까 술집에서도 존나 쳐 먹은 놈이. 근데 1인 1닭은 킹정이지.”

“얼른 시키기나 해. 이 새끼 깨서 우리 거 뺏어 먹으면 어쩌려고.”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각자 먹고 싶은 치킨 브랜드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광광 울음만 터트렸다.

저것들이 건배를 하며 닭다리를 뜯고 있을 때도 나는 베게에 파묻혀 눈물로 시트를 적셨다.

5년이란 세월 동안 내가 혜나에게 작곡을 해 주는 날을 상상하며 응원 해 왔는데, 그녀가 이렇게 가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 응원해 주지 못 한 내 잘못 같아 눈물이 나왔고, 그녀가 지금까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알아주지 못 해 더욱 미안했다.

“에휴. 저것도 궁상이다.”

“야. 그만 쳐 울고 술이나 한잔 더 해.”

“그래. 그런 건 술로 잊어야 돼.”

“됐어. 씨발놈들아.”

“어? 이 새끼 술 깨 있었네?”

“그런데 지금까지 술 취한 척 하고 있었던 거야? 소름.”

그냥 다 꺼졌으면 좋겠다.

많이 울기도 했고, 태어나서 이렇게 술을 퍼 마신 것도 처음이라 나는 스르르 눈이 감겼다. 동기들이 뭐라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점점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냥 이대로 혜나를 따라 영원히 잠들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드는 우울한 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