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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
다연이가 내 아들의 볼을 건드리면서 말했다.
아들 이름은 이주호. 내가 지은 이름이다.
이제 중학생이 된 다연이는 주호를 임신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었다.
여태까지 동생이 없었으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카이긴 하지만 동생인 것도 맞으니까. 내가 다연이를 딸이라고 생각하면서 키웠던 것처럼.
“너무 귀엽다아···”
주호는 눈을 뜨고 다연이를 보고 있었다.
나도 처음 봤을 때, 많이 감격스러웠다. 내 아들을 처음 보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일이었으니까.
다연이가 말했다.
“그러면··· 나 이제 고모야?
얼굴을 보니 고모라고 불릴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 같았다. 살짝 웃기도 했다.
“응, 고모 맞아.”
“와···!”
이제 다연이는 14살이나 됐지만, 아직 어렸을 때의 버릇은 남아있었다.
놀라는 반응도 옛날과 비슷하다. 활짝 웃으면서 크게 뜨는 눈.
그런 반응을 보이던 다연이가 주호의 볼을 쿡쿡 찔렀다.
“귀여워.”
주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연이를 바라본다.
주호는 나를 닮았다. 성격만은 정인이를 닮길 바랐다.
한참 다연이를 보던 주호가 활짝 웃었다.
성격이 날 닮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네 고모야.”
“햐..!”
아직 말도 못 하는 주호가 목소리를 낸다.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내가 고모인 줄 아는 것 같아..!”
“그런가 보네.”
고모가 된 다연이는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을 했다.
“주호 귀엽다···”
다연이는 좋은 고모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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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시간은 더욱더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다연이는 우리 집에 더 자주 놀러 왔다. 이유는 주호 때문이었는데 주호를 처음 본 날은 거의 한 달 동안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우리 집으로 왔었던 것 같다.
그 덕에 정인이도 나름 편했었다.
다연이는 아기를 돌보는 데에도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서 다연이는 고등학생이 됐다.
다연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조리 고등학교였다. 어려서부터 요리사가 꿈이었던 다연이는 중학교 때부터 조리고 진학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리고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해서 다연이는 요리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열심히 했다.
주변에서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데 명문고를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었지만 다연이의 목표는 확실했다.
그만큼 다연이는 공부도, 요리도 전부 잘했다. 물론 주호와 놀아주는 것도 정말 좋아했다.
“나, 내일 기숙사에 가.”
“알고 있어.”
조리고에는 기숙사가 있고, 다연이는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게 바로 내일이다.
다연이는 내일부터 집을 나서지만 우리는 우울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연이가 바랐던 순간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어제 본 민우의 얼굴이 달랐다.
초등학생 때 했던 말과 달리 둘은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다. 다만 민우의 짝사랑은 10년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다연이는 자신이 바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아직 사귀지 않는 것 같았다. 다연이에게는 이뤄야 할 꿈이 있었으니까.
“고모···”
주호가 다연이에게 말했다.
가지 말라고 하진 않았지만, 살짝 울먹이는 것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있었다.
“영영 가는 거 아니잖아. 다시 올 거야.”
다연이가 웃으며 말했다.
클 때까지 다연인가 많이 놀아줬으니 이렇게 아쉬워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주호는 어눌하게나마 대답했다.
“웅··· 또 올 거야..”
그다음 날, 다연이는 집을 떠났다.
아직 완전히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기숙사로 갈 뿐이었지만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치 큰딸을 사회에 내보내는 기분이었다.
떠나는 날에 나는 다연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내가 결혼하고 난 뒤, 얼마 뒤에 차를 샀기 때문에 운전은 이미 익숙했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다연이에게 말했다.
“집에 올 때 엄마나 오빠한테 미리 연락해.”
“응, 알겠어. 전화할게.”
그리고 옆에 있던 주호가 말했다.
“안뇽, 고모..!”
“안녕!”
그렇게 차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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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다연이는 진학한 조리 고등학교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보여줬다.
각종 요리 경연 대회에서도 꾸준히 수상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다연이의 목표에도 걸음을 크게 내딛고 있었다.
그렇게 다연이가 19살이었을 무렵, 주호에겐 동생이 생겼다.
“아기 동생이야.”
이제 6살이 된 주호가 동생을 보면서 말했다.
“아빠, 이름이 뭐라고 해써찌?”
“이주은. 주은이야.”
“마자.”
주은이는 여자아이였다.
내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되다니. 주은이를 보는 순간에도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주인이는 나와 정인이를 반반씩 닮았다. 아직 아기인데도 너무 예쁘다.
“내가 오빠야.”
주호가 말했다. 당연히 주은이는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주호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둘은 크면서 많이 싸울 거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도 있겠지. 그게 보통의 남매였으니까.
그 무렵 다연이는 한창 바쁠 때여서 주은이가 두 살 때 처음으로 봤다.
조카가 두 명이나 생긴 건 다연이의 입장에서도 꽤 놀랄 일이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엄마가 말했다.
“역시 내가 이 집에서 나가길 잘했어.”
엄마도 아이들을 많이 좋아하셨다. 많이 감격스러웠는지 거의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볼 정도였으니까.
“나중에 고모랑 같이 놀러 가자.”
어느새 20살이 된 다연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내가 6살의 다연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러자 아이들이 대답했다.
“지금 놀러 가요오..! 고모랑 놀고 시퍼!”
“크크, 나중에 주은이가 조금 더 크면 그때 같이 가자.”
“네에!”
주은이는 아직 말을 잘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호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둘은 벌써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했던 생각처럼 아이들은 꽤 많이 싸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사이에 일어난 재밌는 일은 감히 일일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지만, 이것까지 설명한다면 아주 오랫동안 말해도 끝을 맺지 못할 거다.
그만큼 내 아이들을 키우는 건 힘들면서도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육아 경력도 있었으니 더 좋았던 것 같다.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정인은 경력직 육아라는 말이 웃기다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찌 됐든 오늘은 지나간 날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날이었다.
매번 잊을 만 하면 오는 날이긴 했지만.
오늘은 다연이가 집으로 내려오는 날이다.
“오늘 고모 와!”
주은이가 뛰어다니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주은, 조용히 해.”
“오늘 고모 오는 날이야!”
“엄마! 이주은이 시끄럽게 해!”
내 예상처럼 아이들은 자주 싸웠다. 그만큼 자주 화해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집 안은 조용해질 틈이 없었다.
나는 잔뜩 신나 있는 주은이에게 말했다.
“주은아, 아빠한테 와.”
“응!”
그러자 주은이가 내 무릎에 앉았다. 이렇게 있으니 주은이도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았다.
다연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 여러 식당과 회사에서 러브 콜이 쇄도했었다.
그만큼 다연이는 자신의 꿈이 가까워져 있었다.
자격증도 많이 땄고,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경험도 많이 쌓았다.
결국 다연이는 어느 유명 호텔 다이닝에 취업했다. 물론 다연이의 최종 목적은 자신만의 식당을 차리는 것이다.
그동안 충분히 실력을 쌓는 것이 취업의 목표였다.
그런 바쁜 와중에 다연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고 했다. 오랜만에 엄마와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고모가 선물 사준다고 해찌!”
아마도 주은이는 그 사실 때문에 이렇게 신나있는 것 같았다.
주은이가 말을 이었다.
“고모가 빨리 와쓰면 좋겟따!”
“조금 있으면 올 거야.”
“마자!”
내 말처럼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전화가 왔다.
다연이는 아직 차가 없다. 그래서 내가 데리러 가야 했다.
“고모 왔데. 아빠가 데리고 올게.”
“알게써! 빨리 와야 대!”
“응.”
나는 딸의 귀여운 당부를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아이들의 바람처럼 다연이가 왔다.
“고모!”
학교에 다닐 때와 비교해서는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지치진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었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애기들!”
나름 성공한 동생의 금의환향에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다연이에게 받은 선물을 가지고 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애기들 너무 귀엽다.”
“응.”
“몇 살이야?”
“주호는 10살, 주은이는 5살.”
“진짜 많이 컸네.”
다연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웃다가 같이 놀자는 주은이의 말에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날 아이들은 다연이와 같이 잘 때까지 놀았다. 아이들이 워낙 다연이와 친하기도 했고, 특히 주은이는 낯을 전혀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더 재밌게 놀 수 있었다.
주호는 조금 더 과격하게 놀고 싶었는지 도중에 나에게 왔었지만, 어찌 됐든 주은이는 다연이와 온종일 놀았다.
하지만 그렇게나 좋은 시간도 끝은 있는 법이다.
그다음 날, 점심을 먹고 이제 다연이가 갈 시간이 됐다.
주은이는 벌써 울먹거리고 있었다.
“고모··· 안 가고 계속 나랑 가치 놀면 안 대..? 나 엄청 재밋게 놀 쑤 있는대···”
“고모가 나중에 또 올게. 그때도 선물 가지고 올 거야.”
“그래두···”
울먹거리며 말하자 다연이가 슬쩍 웃으면서 주은이와 눈을 맞춘다. 그리고 말했다.
“고모가··· 어렸을 때 주은이 아빠한테 배운 게 있는데. 가르쳐 줄까?”
“응..? 뭔데..?”
“헤어지는 걸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차피 우리가 만나고 싶으면 나중에 만날 수 있잖아. 주은이가 고모한테 만나서 놀고 싶다고 말하면 고모가 나중에 놀러 올게.”
“웅..”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어.”
“흡··· 마자..!”
주은이가 눈물을 훔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마찌!”
그제야 주은이는 눈물을 그쳤다.
꼬마가 힘차게 외치니 빵빵한 볼이 찰랑거렸다.
“그걸 기억하면 돼.”
“응..!”
다연이가 가기 전에 말했다.
“그러면 고모 갔다 올게.”
“알게써! 나중에 꼭 우리 집에 와야 대!”
“응!”
그렇게 나는 다연이를 태우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우리는 가는 길에 옛날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밥돌이의 방송은 여전히 건재하고, 혜원이는 그림에 재능을 보여서 미대를 졸업했다는, 내가 전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예나 언니한테 연락 왔는데.. 언니 회사 그만두고 사진 찍는 일 하고 있대.”
“응, 몰랐어? 예나 그걸로 꽤 유명하다던데.”
“그래? 나도 내 일 하느라 몰랐네.”
예나도 오랜 방황 끝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물론 겸업을 하면서 사진 쪽 일이 잘 풀려 일을 그만두고 그쪽으로 집중한 거지만.
“언니, 엄청 유명한 모델들 사진 찍어준데.”
“응, 그렇다고 하네.”
다연이는 이제 안 것 같지만 사실 이미 예나는 그쪽에서 나름 유명하다고 했다.
늦게 시작했지만, 재능이 좋았기에 금방 유명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속의 노력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거다.
다연이는 모르고 있었구나.
우리는 다시 잡다한 이야기를 하면서 차를 몰았다.
그러다가 다연이가 말했다.
“나, 민우 오빠랑 사귀어.”
“진짜?”
“응.”
갑작스럽게 말해서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그럴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민우는 잘 해줘?”
“큭큭, 응. 잘해줘. 너무 잘해주지.”
하긴 지금 다연이의 나이가 23살이니 17년 동안 짝사랑 외길이었다.
내가 알기로 민우는 옆길로 샌 적도 없었다.
결국 잘 됐다니. 이제는 민우가 시간이 지나도 다연이에게 잘하는지 감시해야겠다.
16년 동안 외길이었으면 사실상 증명된 거나 마찬가지지만.
“다행이네. 다행이야.”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다행이다. 모든 게 잘 돼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그 뒤로 더 대화를 나누다가 버스 터미널에서 헤어졌다.
헤어짐은 무섭지 않다.
이제는 너무 커버려서 당연한 말이었지만 예전에는 다연이에게도, 내게도 큰 도움이 됐던 말이었다.
다연이가 말했다.
“나 이제 갈게.”
“응.”
그리고 조금 멀어졌을 때 다연이가 다시 말했다.
“아, 그리고 주은이 방 서랍장에 돈 봉투 놔뒀으니까 그걸로 조카들 맛있는 거 사줘. 엄마도, 새언니도. 엄마한테는 이미 용돈을 주긴 했지만. 오빠가 안 받을 것 같아서 거기에 몰래 놔뒀어.”
“왜 그랬어. 안 그래도 되는데.”
그러자 다연이가 웃었다.
“나도 오빠 돈 잘 버는 거 알고 있어. 그냥 고마워서. 내가 어렸을 때 말했잖아. 돈 벌면 다 줄 거라고.”
그 말에 우리 둘 다 웃었다.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으니 돈을 거절해도 다시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어. 고마워. 네가 준 돈은 잘 모아서 너 시집갈 때 돌려줄게.”
“반만 그렇게 해. 반은 애들 맛있는 거 사주고.”
“그래.”
“이제 진짜 갈게.”
“응.”
어렸을 때처럼 손을 흔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런 것도 어른의 모양새 중 하나니까.
그냥 다연이도 이제 어른이 됐구나, 싶었다.
나는 다시 차로 돌아가서 시동을 건다.
조금 떨어져 있는 이 순간에도, 내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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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얼마나 더 지났는지 모르겠다.
지난 시간 사이에 달라진 것이라면 다연이가 잘 다니던 호텔 다이닝을 퇴사했다는 것, 자신만의 식당을 차렸다는 것, 그래서 지금까지 나름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름이 아니라 꽤 잘 됐다.
식당을 차릴 때 내가 보태준 돈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벌써 다 갚았고, 이번에는 자신의 차까지 마련했다.
차를 산 첫날에는 아이들을 태우고 근처를 드라이빙했던 것이 생각났다. 살짝 무표정한 주호와 들뜬 주은이의 얼굴.
자신의 목표를 전부 이뤄서 그런지 차를 마련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다연이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 상대는 민우였다.
16년간의 외길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민우를 집에 데리고 왔었다. 다연이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서 나름의 테스트를 할 생각이었다.
민우는 예전부터 나와 아는 사이였음에도 우리 집에 오니 얼굴이 굳어졌다.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아저씨 큰일 나써.”
민우가 현관문을 넘어오자마자 주은이가 무서운 표정으로 했던 말이었다.
테스트는 별것 없었다. 그냥 술을 많이 먹였고 주사를 살폈다.
결과는 이미 어렸을 때 봤던 성격처럼 합격이었다. 그것도 내 기준을 훨씬 웃도는 정도였다.
민우는 주사가 없었다. 술을 많이 마신 와중에도 정신은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연이나 다연이의 자식들은 나 같은 어린 시절을 겪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허락했고, 엄마도 동의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오늘은,
다연이의 결혼식 날이었다.
“나비가 날아가요!”
주은이가 어렸을 적 다연이처럼 결혼식장을 돌아다니며 말했다.
다연이의 결혼식도 야외에서 진행됐다. 내 결혼식을 보고서 다연이도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나비를 쫓아가던 주은이가 나에게 말했다.
“아빠, 나비 잡아죠.”
“나비 잡으면 아플 수도 있으니까 그냥 지켜보자. 대신 나비가 어디로 가는지 보는 거야. 친구 나비를 찾는 것도 재밌으니까.”
“흠··· 알게써!”
아주 오래전의 그날처럼 다연이 결혼식의 화동은 주은이였다. 주호가 같이 하면 좋겠지만 주호는 너무 커버렸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주호도 이제 중학생이었으니까.
신부가 된 다연이는 예뻤다.
그날의 정인이가 생각날 정도였다. 주은이도 그런 다연이가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했었다.
우리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혼식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빠 안뇽!”
주은이가 손을 흔들며 내게 인사했다.
나는 다연이의 아빠 자리를 대신해서 입장을 같이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먼저 하객석에 앉아 있었고, 나는 다연이와 같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동안 나의 우선순위는 나에서 다연이로, 정인이로, 그리고 다시 주호와 주은이로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다연이와 같이 입장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 문득, 다연이는 정말 내 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연이는 내 첫째 딸이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결혼식 날이 다가오니 그런 생각이 한 발 크게 다가왔다.
딸을 시집보내는 기분 같은 게 아니다. 정말 내 딸을 시집보내는 순간이었다.
나와 다연이는 때를 기다리며 서 있다.
그러고 있을 때 다연이가 말했다.
“오빠.”
“응.”
그리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입을 열었다.
“고마워.”
나도 씨익 웃은 다음 말했다.
“나도 고마워.”
“...”
다연이는 내 말에 대답 없이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 눈물 나려고 하잖아. 벌써 울면 안 되는데.”
“울지 마. 주은이랑 주호가 놀릴 거야.”
“그럴 것 같아서 꾹 참고 있어.”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었지만, 더이상 할 말은 없었다.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고생했다는 말, 잘 살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고맙다는 말이 전부였다. 짧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어느새 신부 입장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다연이와 같이 앞으로 걸었다.
이렇게 걷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마치 주마등 같기도 했다.
하지만 주마등과 달리 떠오른 건 행복한 기억들뿐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행복한 기억들. 그래서 나는, 웃었다.
내 앞에는 민우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다. 나는 씨익 한 번 웃고는 다연이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행복해. 내 동생, 내 딸.”
“고마워. 많이.”
울먹이는 다연이의 손을 놓고 나는 자리로 되돌아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매번 했던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들은 반복해서 떠올랐다.
내가 처음으로 화냈던 날, 울었던 날, 웃었던 날. 그때는 항상 다연이가 있었다.
그런 감정도 다연이에게서 배웠다. 어떻게 화내는지, 어떻게 우는지, 웃는지.
그래서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웃는다.
그때 주은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울어?”
“...응.”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물이 흘렀다.
그간 고마웠던 생각이 떠올라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슬퍼서 우는 건 아니다. 반대로 너무 기뻐서, 행복해서 울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작게 말했다.
“잘 살아.”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까지 함께 해준 아내의 손도 잡았다.
손을 잡으면서 행복한 이 순간을 즐겼다.
헤어짐은 슬픈 것이 아니다.
다시, 만나면 되는 거니까.
실제로든, 기억 속에서든.
내게 있었던 모든 순간이.
정말, 정말로 전부 다.
좋았다.
나는 활짝 웃었다. 내가 다연이에게 배웠던 가장 소중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수십, 수백 번도 넘게 말했던 단어였다.
그런데도 또 다시 말하고 싶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연다.
“고마워.”
내가 꼭 잡은 가족들의 손이 따뜻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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