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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은 느렸지만 뒤돌아보니 아주 빨랐던 것 같다.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변했고,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왔다.
지금 나는 결혼식장에 있다.
아침부터 요란하게 준비했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오는 동안에는 긴장돼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
“잼밌따..!”
다연이는 엄마와 같이 식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새 키가 많이 컸다. 언제 저렇게 자랐지.
결혼식장에 처음 올 때만도 저렇게 신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엄청 신나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잡은 결혼식장이 실내가 아니라 야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야외는 아니지만.
오늘 있을 결혼식은 야외에서 식을 올릴 수 있게 만든 건물 안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식사는 건물 안에서 하지만 결혼식은 뒤로 이어진 야외에서 한다. 굳이 보편적이지 않은 방식을 택한 건 나 때문이었다.
물론 정인도 그렇게 하는 것에 동의했지만 먼저 물어본 건 나였다.
이유는 답답한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인이 안에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면 거절할 마음은 없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도 아마 내가 많이 변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의견 충돌이 거의 없었다. 상대방이 완전히 싫어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웬만한 건 수용했다.
나도 그랬고 그녀도 그랬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다연이는 엄마와 같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다연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엄청 멋있어! 맛있는 것도 많고 예뿌다. 나비도 많아!”
야외와 연결이 되어 있는 만큼 다연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실제로도 멋진 곳이긴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
“오늘 여기서 결혼하는 거야? 언니랑?”
“응.”
그러더니 다연이가 웃으며 말했다.
“신기하다! 오빠가 결혼하는 거 싱기해! 그리고 머싯는 옷 입는 것도 싱기해!”
멋있는 옷. 다연이 말처럼 나는 멋있는 옷을 입고 있다.
그래봤자 정장이 전부지만 지금까지 이런 옷을 입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잘 생겨서 그런지 정장도 잘 어울리네.”
다연이 옆에 있던 엄마가 말했다.
나도 거울을 봤지만 잘 어울리는 건지 모르겠다. 워낙 이런 옷을 입어 본 적이 많이 없었기도 했으니까.
엄마가 다시 말했다.
“정인이는. 봤어?”
“네.”
그 말에 다연이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말했다.
“언니 예뿌지? 나도 봤는데 엄청 예뻤어!”
“응, 예뻐.”
내 말처럼 그녀는 예뻤다.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다연이가 다시 말했다.
“언니도 오빠 머싯대! 그래서 쓰러질 뻔해써.”
“응, 나도 봤어.”
일부러 호들갑을 떠는 건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그랬다. 거의 쓰러질 뻔한 걸 다시 붙잡았던 생각이 난다.
내 생각에는 장난치고 싶어서 일부러 더 그랬던 것 같다.
“근데 나도 예쁜 옷 입어따.”
“응.”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 결혼식의 화동은 당연히 다연이였다.
다연이가 해주길 바랐고, 다연이가 아니었다면 어색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때처럼 예쁜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식장에 방금 온 하객들이 하나, 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와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안녕하세요, 형님!”
“안녕.”
먼저 온 사람은 밥돌이였다. 아직 유명세를 잘 이어오고 있는 방송인.
덕분에 먼저 온 정인의 지인들이 밥돌이가 있는 곳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오늘 멋있네요. 형님이 이렇게 차려입은 건 처음 봅니다! 차려 입으니까 진짜 멋있네···”
밥돌이 답지 않게 감탄을 흘리며 나를 본다. 그러고 있으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역시··· 잘생긴 사람은 뭔가 다르군요···”
“마찌.”
“나도 잘생겨 봤으면...”
밥돌이는 나와 인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약간 시무룩해진 얼굴로 자리를 뜬다.
밥돌이도 충분히 잘생긴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밥돌이는 더욱 시무룩한 얼굴을 했지만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 있어서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재밌어진 것 같았다.
시간이 더 흐르자 아는 사람들이 더 도착하기 시작했다.
예나도 그랬고, 다연이와 친한 예나의 다른 친구들도 왔다.
“아저씨가 결혼하다니··· 솔직히 아직도 안 믿겨요···”
예나가 그렇게 말했다. 예나는 아주 예전부터 나를 봤으니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결혼이라는 단어와 많이 멀었으니까.
“학교는 어때?”
내가 물으니 예나가 대답했다.
“뭐.. 그냥 평소 같죠, 뭐. 아, 그리고 저 꽤 좋은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진짜? 대단하네.”
“대단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면서 큭큭 웃었다.
그 회사는 예나가 예전부터 목표로 했던 회사라고 한다. 요즘은 인턴을 하다가 기간이 끝나면 그 인턴들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예나는 인턴 일을 하면서 취미였던 사진 찍는 일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진 앞 일을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내게 좋은 일이 생겼듯 예나에게도 좋은 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그 뒤로 찾아온 사람은 혜원이네 부모님이었다.
이제는 상당히 친해졌는데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많이 의지하고 있다.
둘은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혜원이네 엄마가 혜원이와 같이 먼저 떠나자 문득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요?”
그러자 혜원이네 아빠가 대답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를 조심해야 한다니까요..!”
나는 그 말이 농담이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다. 혜원이네 아빠도 웃음기가 있는 얼굴로 말했고, 나도 따라서 웃으며 말했다.
“결혼한 거, 후회하세요?”
나도 장난스럽게 물었을 때, 혜원이가 뛰어와서 말했다.
“아빠! 저기에 엄청 예쁜 꽃이 이써!”
그리고 웃으면서 내게 대답했다.
“아뇨.”
대화를 끝낸 혜원이네 아빠는 지금 가겠다고 말하면서 자리를 뜬다.
나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서 온 사람들을 살펴본다.
“오..”
작게 하는 결혼식인 만큼 실내에서 하는 결혼식보다는 하객이 조금 적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흔한 친구도 없었다. 그렇기에 예나가 그런 말을 했을 때도 나름 납득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걸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예전 생각도 났다. 저 수 많은 사람과 처음 알게 되었던 날이 어렴풋이나마 떠올랐다.
전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내 결혼식에 초대할 만큼 친해졌다.
“...”
괜스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결혼하게 될 정인에 대해서도, 모인 많은 사람에 대해서도.
“밥돌이는 내 친구에요!”
다연이는 밥돌이와의 인맥을 자랑하는 중이었다. 다연이의 저런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 재밌다.
“흠..”
문득 오늘은 날이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결혼식을 올리기엔 정말 좋은 날.
.
정말 많은 인사를 나눴고, 많은 축하를 받았다.
내가 이렇게 아는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였다. 비록 직접 초대하긴 했지만 막상 지금이 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서 당연하게도 결혼식의 순간이 찾아왔다.
안 그런 척했지만 많이 긴장됐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서 먼저 결혼식이 진행되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정인이를 기다린다.
“...”
앞에 앉은 엄마가 우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진짜 엄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생각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살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뒤이어 정인이가 밑에 깔린 카펫을 걸어온다.
그 모습이 예뻤다. 아주 많이. 주변의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예뻐서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시작하겠···”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렸었기 때문에 자세하게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그 순간이 행복하다고만 느껴졌다.
이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그래서 더 기억에 새겨 넣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정인이도, 엄마와 다연이도, 그리고 하객석에 앉아서 웃고 있는 친구들도.
‘그렇게 예뻐?’
정인이 입 모양으로 들리지 않게 말했다.
“...”
나는 대답 대신 환하게 웃었다.
대답은 너무 뻔했으니까. 그래도 뒤늦게 대답을 했다.
'응.'
잠시 후, 다연이가 걸어왔다.
드레스를 입고, 손에는 반지를 들고 있었다.
예전에 봤던 그 모습이지만 그때보다 더 당당했고, 더 기분 좋아 보였다.
지금, 이 순간이 자랑스럽다는 것처럼. 그래서 자신이 더 빛내고 싶다는 것처럼.
“고마워.”
“응..!”
내가 반지를 받으며 말하자 다연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언니 엄청 좋지?”
그 순간 뭔가 다연이에게도 결혼 허락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응, 좋아.”
“조아.”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다연이가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반지를 끼워준다.
그렇게 하니 그제야 마음이 진정된 기분이었다. 긴장되는 건 여전했지만 적어도 떨리진 않았다.
때마침 더욱 밝아진 햇볕과 같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휘날리지 않게, 더워지지 않게 불어온 바람이었다.
나는 정인이를 마주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행복할 거라고. 그렇게 단순한 생각을 했다.
너무 단순했기에 평생 기억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정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결혼식을 이어나간다.
그날의 결혼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평생 기억할 수 있는,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거니까.
지인들과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와중에 다연이가 와서 내게 물었다.
“근데.. 언니는 이제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해?”
나 대신 정인이가 대답했다.
“새언니! 아니면 그냥 언니라고 해도 돼.”
“오오··· 그러면 언니는 나를 뭐라고 불러?”
“어···.. 아가씨..?”
“아가씨!”
다연이가 그 호칭에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지금 당장은 명칭이 어색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잘 적응해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다연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맛있는 걸 먹으러 사라지자 정인이 나에게 속삭였다.
“이제··· 다연이한테.. 존댓말 해야 하는 거야..?”
“그거야 다연이랑 둘이서 정하면 되지 않을까?”
“흠..”
어색한 상황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이 상황도 좋아서, 그래서 웃었다.
그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감히 뭐라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좋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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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난 다음,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엄마의 병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안심하지는 않았다.
당연하게도 재발해서는 안 되니까.
엄마는 근처 다른 알바하거나 내 일을 도와줬다. 더 짐이 되기 싫어서 일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가서 살기 시작하셨다. 원래 살던 집은 신혼집으로 썼다.
엄마는 내쫓는 모양 같아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원래 여기가 네 집이잖아.”
그래서 내가 여기에서 계속 살게 됐다.
아, 그리고 다연이도 그때부터는 엄마와 같이 살게 됐다.
여긴 말 그대로 신혼집이었기에 다연이도 엄마와 같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거의 매일.
정인이도 그러길 원해서 의견 충돌은 생기지 않았다.
우리 식당은 그 이후로 여러 방송에도 나왔었다.
예전부터 밥돌이의 방송에는 몇 번 나왔지만 최근 들어서 밥돌이의 대외 활동이 줄어들 때쯤에는 우리 식당에서 방송을 자주 켜곤 했었다. 생방송도 자주 했고, 녹화도 엄청 자주 했다.
그 덕분인지 밥돌이와 친분이 있는 개인 방송인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심지어는 공중파에서도 찾아왔었다.
그 이후로는 정말 손님이 많이 찾아왔던 것 같다.
원래부터 손님들이 많기도 했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손님들이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 근처 지역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곤 했었으니까.
어찌 됐든,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내가 결혼한 지 3년이 더 지났을 때, 그러니까 다연이가 14살. 중학교 1학년이 됐을 때.
“오빠! 아기 어디에 있어? 내 조카!”
학교를 마친 다연이가 뛰어와서 말했다.
내 아이는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아들이었다.
외전 9. 완전한 결말 (2)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