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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내일 결혼해?”
다연이가 물었다.
그 말에는 나 대신 정인이 대답해줬다.
“아니, 나중에 하게 되면 다연이한테 제일 먼저 말해줄게.”
“네!”
그렇게 말하는 정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많이 밝아있었기에 나는 내가 맞는 대답을 했다고 스스로 안심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내 한숨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빨리 결혼하면 조케따!”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
.
우리는 결혼식을 기다리는 동안 화동으로써의 예행연습도 마쳤다.
식장을 걸어보기도 했고, 연습도 몇 번 했다. 다연이는 실수도 없이 연습을 무사히 끝냈다.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다시 돌아와 기다리던 나는, 결혼식 준비가 거의 다 끝났을 무렵 말했다.
“이제 갈까?”
“응.”
그사이에도 지루해하지 않고 정인이와 열심히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다연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우오.. 아까 봤는데도 엄청 예쁘다아..”
다연이는 꾸며진 식장을 보면서 말했다. 장식물들이 천장과 벽면을 치렁치렁 장식하고 있었고, 식장 안에는 멋있고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넘쳤다.
“근데 다연이가 제일 예뻐.”
정인이 그렇게 말했다.
그 말처럼 사람 중에서도 단연 다연이가 가장 예뻤다. 너무 예뻐서 빛이 난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우와..”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쏟아진다.
우리는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 다연이가 나가야 할 타이밍을 기다리기로 한다.
“사람드리 전부 다 오빠만 봐···!”
“아니야, 다연이 보는 거야.”
“나를..?”
“응.”
처음에 다연이는 그런 시선을 조금 즐겼지만, 어딜 가나 쏟아지는 시선 때문인지 조금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왜 나를 보고 이찌..?”
“예뻐서 그런 거야.”
그러더니 다연이는 더욱 쭈뼛쭈뼛하며 정면을 주시한다.
다연이는 원래 사람들의 시선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은 적은 없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좁은 식당에 꽉 들어찬 손님들의 관심을 받는 것과 예식장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건 조금 다르니까.
“흠..!”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시선을 즐겼던 터라 시간이 지날수록 다연이는 점점 적응해 나갔다.
대중들의 관심에 점점 적응해 나가는 라이징 스타처럼, 그래서 결국 탑의 자리로 올라가는 연예인처럼.
“자신 있게 있어도 돼.”
“응!”
이제 다연이는 적응했다. 곧 있으면 시작할 화동 역할도 잘 해낼 것이다.
둥.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듯 스피커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조명이 꺼지면서 결혼식이 시작된다.
“우와...! 머시따..!”
다연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명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예식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두근두근해.”
다연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자.”
“응.”
결혼식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진지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유쾌하지만 지나치게 가볍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진행되는 결혼식을 보면서 혹시 나도 언젠가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다연이도 나중에 크면 결혼을 하지 않을까, 란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 생각이 너무 터무니없이 멀게만 느껴져서, 그래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니 어쩌면 그런 생각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지 않을까, 아주 잠시나마 그런 생각도 들었다.
"..."
그랬더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날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했다.
“후우.. 후.”
다연이는 숨을 내쉬면서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화동으로써의 역할이 바로 코앞까지 와닿자 아주 조금 긴장이 됐던 모양이다.
그러고 있을 때 사회자가 말했다.
“신부 입장하겠습니다!
다연이가 화동으로써 활약을 펼치게 되는 건 신부가 입장하고 신랑 신부가 서로 인사를 하고 난 뒤였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연이 잘할 수 있지?”
“그러치!”
벌써 적응을 마치고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였다.
나는 안심할 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어두운 조명을 두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린다.
조금 소란스러운 안과 그것과 대비되는 밝은 분위기.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다연이가 나설 차례가 됐다.
“간다아..!”
기합을 넣고 단상 위로 올라간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다연이가 있는 곳을 주목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다. 이 장면을 카메라로 담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화동이 오고 있네요!”
사회자는 다연이에게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이어나갔다.
그동안 다연이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너무 느리지 않고, 빠르지도 않을 만큼의 속도였다.
“귀.. 귀여워···”
밑에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다연이를 향한 칭찬만 들려왔다.
반면에 다연이의 걸음걸이는 조금 딱딱해 보였다. 입가에는 미소를 띄우고 긴장도 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걸음걸이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일테니 그럴 만도 했다.
“...”
다연이는 위로 올라가서 신랑 신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연이를 향한 칭찬은 끝이지 않았다.
“나도 저런 딸 낳고 싶다···”
그 말에 약간 뿌듯한 기분이 든다.
당연히 그것 말고도 다른 말이 많았지만 다연이를 찍는 데에 집중했더니 잘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걷던 다연이는 마침내 신랑 신부가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결혼반지를 내민다.
그러는 중간에 다연이가 뭐라고 말하면서 웃었지만, 너무 멀어서 들리지는 않았다.
신부가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침내 다연이의 역할이 끝났다. 그 역할이 끝나니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자신의 역할을 마친 다연이를 데리고 온다.
“나 잘해써..?”
다연이는 오자마자 그것부터 물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심 불안했던 모양이다.
“응, 잘했어.”
“휴우··· 잘해서 다행이다. 선생님도 조아해써.”
“그래, 다행이네.”
다연이는 자신이 긴장한 것보다 선생님이 좋아했다는 것이 더 기쁜 것 같았다.
“엄마한테 보여줄 영상은 찌거써?”
“응, 잘 찍어 놨어.”
“아주 조아.”
다연이는 내가 찍어 놓은 영상까지 확인하고 난 다음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만족하고 난 뒤에는 선생님들의 결혼식을 얌전히 감상한다.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친한 사람이 축가를 불러주기도 했으며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과정들이 전부 끝난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솔직히 결혼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결혼식은 이렇구나, 나도 나중에 저 자리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처음 와보는 결혼식이라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이제 가자.”
“집에 가는 거야?”
“아니.”
“그러엄..?”
“밥 먹으러.”
“와!”
역시 다연이는 먹는 걸 좋아한다.
사실 처음부터 미리 말해서 다연이도 밥을 먹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확하게 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물어본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식장을 나서려던 때, 다연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다연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번 결혼식의 신부인 선생님이었다.
“성생님!”
다연이도 반갑게 화답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려고. 다연이 덕분에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성생님이 조은 거면 나도 조아요! 나도 나아중에 오빠가 결혼할 때 이러케 또 할 꺼야.”
“크크, 그래. 알겠어. 그 때는 선생님이 갈게.”
선생님은 대화를 더 이어나가고 싶어 했지만 상황상 그럴 수가 없어 보였다.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잘 가, 다연아. 우리 또 보자!”
“네! 보고 시프면 다시 만나면 되는 거니까!”
“그래, 안녕.”
“안뇽!”
선생님은 우리와도 인사를 한 뒤 되돌아갔다.
다연이도 열심히 손을 흔든다. 너무 열심히 흔드는 바람에 손이 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참 열심히 손을 흔들던 다연이가 다시 뒤돌아서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가자, 밥 먹으러!”
“그래, 가면 많이 먹어.”
“마니 머글 꺼지!”
그날의 점심은 기억에 남은 만큼 아주 맛있었다.
.
.
.
선생님들의 결혼식에 갔다 온 지 시간이 꽤 흘렀다.
봄이 있던 계절이 초여름이 되었으니까.
“뭐 먹을래?”
“아이스크림 머글 꺼야.”
“그래.”
그중에서도 지금은 여유로운 평일의 어느 날이었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그리고 나른한 오후. 때마침 다연이도 친구들과 놀러 가지 않고 집에 일찍 왔다.
“무슨 아이스크림?”
“나는 수바기 아이스크림.”
“알겠어.”
다연이에게 갖다주는 김에 나도 하나 먹기로 한다.
다연이는 식당 앞에 앉아있었기에 나도 식당으로 나가서 다연이 옆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자.”
“마싯겠따!”
시간이 지나도 수박은 여전히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수박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 수박은 다연이의 몫이니까.
다연이가 말했다.
“엄마는 아직 바께 이써?”
“응, 근처 산책하고 있어.”
“그러면 여기에서 기다리면 되게따.”
“그래.”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 있으니 바람이 불어왔다. 약간은 더운 바람이었지만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으니 시원하게도 느껴진다.
“나는 수바기 아이스크림 열 개도 먹을 수 이쓸 거 가타.”
먹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먹는 아이스크림은 팥 맛이었다.
“오빠가 먹는 건 어른들이 먹는 거야.”
“응.”
다연이는 뭐든 잘 먹지만 그럼에도 더 선호하는 건 있었다.
내가 먹고 있는 팥 맛 아이스크림은 선호도가 가장 낮은 아이스크림 중 하나다.
“그래도 맛있어.”
“그러니까 오빠가 마니 먹는 거야.”
물론 나는 이걸 좋아한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앉아있으니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지면에 내리쬐는 햇볕, 그리고 우리가 앉아있는 곳을 덮고 있는 식당 건물의 그림자.
이 모든 게 좋다. 시원하고, 왜인지 모르게 개운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다가 말했다.
“다연이는 좋아하는 남자애 없어?”
“좋아하는? 오빠가 언니 조아하는 거처럼?”
“응.”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흐음··· 있는 거 가타.”
“누군데?”
티를 내지 않아서 없는 줄 알았는데.
다연이가 말했다.
“...미누 오빠. 미누 오빠가 좋은 거 가타.”
“왜?”
“미누 오빠는 나를 조아하거든. 엄청. 그래도 그거 때문에 조은 건 아니야. 나도 그냥 조아.”
수많은 경쟁자들 중에서 민우의 노력이 눈에 띠었던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이 이 말을 들으면 울겠는데.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우리는 다시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계속 생각했듯이 다연이는 나의 어린 시절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런 다연이를 내가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바기 마시써.”
“나도.”
이렇게 나른한 지금을 평소의 다른 하루처럼, 특별한 오늘처럼, 잊지 않을 것이다.
봄이 되면 피는 벚꽃처럼, 그 뒤의 여름이 오면 이곳에 앉아서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나는 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어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 말을 들은 다연이가 나를 보더니 똑같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두 고마워.”
뭐가 고마운지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서로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키워줘서, 내가 바뀌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날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도 엄마가 올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엄마다.”
저 멀리서 엄마가 걸어온다.
그 모습을 보고서 다연이가 말했다.
“엄마 마중 가자!”
내가 대답했다.
“그래.”
어느 일상처럼, 수많은 날 중 하나처럼. 그렇게 오늘도 흘러간다.
잔잔한 바람을 타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면서.
나는 의자에서 일어선다.
“빨리 가자!”
“응.”
그리고 걸어간다.
밖으로 나서니 햇볕이 따뜻했다. 초여름인데도 그랬다.
마치, 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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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부터 3년이 지났다.
다연이는 11살이 됐다.
그리고 오늘은, 내 결혼식 날이다.
외전 8. 완전한 결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