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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가 다시 설명했다.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간다.
다연이의 말은 결국 이거였다.
자기도 내가 하는 것처럼 옆에서 자신이 만든 음식을 팔아보고 싶다는 것.
“그러케 해도 돼?”
“음···.”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 이유는 뭔가 걸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왜애..? 안 돼···?”
걸리는 것이라 함은 말로 하나하나 늘어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우선은 우리 식당에서 팔고 있는 것과 같은 메뉴라는 것.
그다음은 음식의 퀄리티였는데 다연이는 조금 더 연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다연이는 다연이만의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연이만의 무기라 함은 어린 나이를 꼽을 수 있다.
밥돌이와 밥돌이의 시청자까지 사로잡았을 정도니까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음··· 진짜 요리하는 거 하고 싶어?”
다연이가 하고 싶다는 걸 막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나쁜 것도 아니니까.
다만 이번에는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서 다연이의 다짐을 묻는 것이었다.
내가 물으니 다연이가 대답했다.
“응..! 왜냐하면 나는 요리사가 되고 싶기 때무니지!”
시간이 꽤 오래 지났지만 다연이의 꿈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미 이런 부분에서 다연이는 이미 충분히 열정적이었다.
내가 힘주어 말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자..!”
“오오..! 그러케 쎄게 말하다니..! 조아!”
덩달아 나도 열정적으로 됐다. 장사에 대한 다연이의 열의가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근데 그렇게 하려면.. 다연이 생각이랑은 조금 다르게 해야 할 것 같아.”
“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연이만의 음식을 만들어서 파는 건 안 될 것 같다.
그런 행위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도 있을뿐더러 사실상 내가 도와주지 않고는 힘든데, 축제 당일에는 바쁘기 때문에 다연이를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안 되는 게 많거든.”
“흐음···”
대신 예전처럼 김밥은 다연이가 직접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두 살이나 더 먹었기 때문에 김밥의 퀄리티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생각해본 결과 다연이 말대로 김밥을 옆에 놓고 파는 게 아니라 원래 내가 하던 역할을 다연이가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니가 김밥 만드는 일은 나 대신 다연이가 하는 거다.
내 도움도 받고, 힘들면 쉬면서. 그렇게 해도 될 것 같다.
다연이가 물었다.
“그러면 어떠케?”
나는 내가 생각한 방법을 말했다.
“다연이가 옆에서 파는 거 말고.. 그냥 오빠를 도와서 김밥을 만들어 줘.”
“무슨 마리지..?”
“그러니까.. 원래 오빠가 김밥 만드는 걸 다연이가 해 달라고. 오빠랑 같이 손님들한테 음식을 주는 거지.”
“....”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다연이는 이내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대답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게따! 이제 다 알게써!”
진짜로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말없이 다연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다연이가 대답했다.
“오빠가 김빱 만드는 거 대신에 나보고 하라는 거지?”
“응.”
“그럼 이제 내가 우리 식땅에서 김빱 만드는 사라미네?”
다연이는 신난 듯 그렇게 말했다.
비록 예전에도 이 자리에서 김밥을 만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 이 말은 다연이에게 조금 다르게 와 닿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진짜 요리해서 김빱 파는 사람으로 된 거야..?”
“....아마.”
“와!”
다연이는 아마 내가 다연이를 인정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예전의 다연이는 아는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김밥을 나눠줄 수는 있었지만 손님들에게 팔 음식을 만들 만큼의 퀄리티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8살이 된 만큼 다연이의 손은 더 커졌고, 솜씨도 더 좋아졌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그때 동안 연습을 하면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대신 그동안 열심히 연습해야 해. 축제가 시작할 때까지 잘 못 만들면 못 시켜주니까.”
나는 조금 냉정하게 말했다. 작은 식당의 사장이지만 음식을 만드는 건 그래야 했다.
이건 이전에도 종종 했던 이벤트성 요리가 아니니까.
다연이도 내 말의 뜻을 알아듣고는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렇게 진지한 얼굴을 처음 본다. 나도 다연이의 다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열심히 해.”
“알게써어..!”
아마 이보다 더 굳게 다짐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연습해야징.”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다.
.
.
.
다연이가 다짐한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다연이는 거의 매일 김밥 마는 연습을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축제 날까지 내가 만족할 만큼의 퀄리티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연이가 많이 컸다고는 해도 아직 8살이기도 하고, 보통의 8살은 그 정도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연이는 가능했다.
“후··· 다 했다.”
다연이는 방금 막 김밥 마는 연습을 끝내고 이마의 땀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물론 다연이의 이마에 땀은 나지 않았다.
“이거 봐. 머찌지?”
“....”
다연이가 자신이 만든 김밥을 보여준다.
“머.. 멋있어.”
멋있다.
예쁘게 잘 말려 있는 김밥. 내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한 퀄리티다.
“이제 나 요리사야?”
다연이가 묻는다. 다연이도 자신이 잘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응, 요리사 맞아.”
“흠..! 오빠도 이제 잘 웃네.”
이제 웃는 것도 편해졌다.
나는 다연이의 결과물에 만족하면서 얼른 축제 날이 오길 바랐다. 그래야 다연이의 솜씨를 자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다연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잘하는 사라미야!”
다연이가 자신 있게 외쳤다.
.
.
어느새 금방 다가온 축제 날.
우리 식당은 늘 그렇듯 인기가 많았지만, 그 중 다연이가 만드는 김밥은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귀여워... 내 김밥도 맛있게 해줘.”
“네!”
다연이는 어제도 그랬듯 여전히 김밥을 잘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만든다는 느낌은 당연히 난다.
나는 그런 느낌을 손님들이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줄 서야 대요. 아저씨.”
다연이는 주문하러 온 손님에게 말했다.
비록 주문은 내가 받지만 다연이도 신경을 써서 한 말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줄까지 설 정도로 다연이 표 김밥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귀여워··· 어떡해..”
그중에서는 다연이의 귀여움에 반한 사람도 있었고.
“어떻게 이렇게 어린 애가 김밥을 잘 만들지..? 나는 이 나이 때에 만화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다연이의 요리 솜씨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마싯는 김빱 만드러 줄게요.”
둘 중 어느 쪽이든 다연이의 김밥을 기다린다는 사실은 똑같았다.
나는 주문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빠르게 처리한다.
“나 잘하지?”
다연이가 작은 손으로 열심히 김밥을 말면서 나에게 물었다.
“응, 엄청 잘해.”
말 그대로 엄청 잘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이의 김밥을 기다린다는 것 자체만 해도 그 사실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었다.
다연이만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다연이가 김밥을 만들 때면 조용해지는 식당 분위기.
다연이는 이미 요리사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 다 돼써요!”
다연이가 나에게 말했다. 일하는 순간에, 우리는 사장과 직원의 사이였기 때문에 다연이는 나에게 존댓말을 썼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다연이의 말에 나보다 먼저 튀어나온 건 이제 막 차례가 돌아온, 김밥을 주문한 손님이었다.
나는 그 손님에게 말했다.
“제가 가져다드릴 테니까 안 나오셔도 돼요.”
“아.. 네.. 죄송합니다···”
다연이의 김밥이 이렇게나 인기가 많다.
나는 김밥을 가지고 서빙을 한다. 원래 김밥은 많이 팔리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다연이는 서빙도 배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손님이 진심으로 밝은 표정으로 김밥을 받는다. 그리고 손님이 앞에 앉은 일행에게 말했다.
“먹지 마. 사진 찍어서 인별에 올려야지.”
다연이의 김밥은 아마도 더 유명해질 것 같았다.
주변에 앉은 다른 손님들은 먼저 받은 손님의 김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다연이가 다시 김밥을 말기 시작할 때, 모두 사라졌다.
“...”
모두 숨을 죽이고 다연이가 김밥 마는 모습을 지켜본다.
반듯하게 펴 놓은 김과 야무지게 흩뿌리는 밥알. 그리고 그 위에 차곡차곡 올라가는 김밥의 속 재료까지.
“흠···”
그리고 두툼해진 김밥을 차근차근 말아준다.
예전과는 다르다. 다연이의 솜씨는 이제 수준급의 반열까지 올라섰다.
한번 말 때마다 손으로 꾹꾹 누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단단하게 말린 김밥은 다연이의 손에서 벗어났음에도 풀리거나 터지지 않고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해써!”
“잘했네.”
다연이는 칭찬에 만족한 듯 웃었고, 기다리던 손님들도 그랬다.
“내가 전부 다 해주꺼야.”
손님들은 다연이의 다짐을 들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더 재촉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다연이는 김밥 만들기를 이어나갔고, 나와 손님들은 숲속에서 힐링하듯 가만히 기다렸다.
바쁜 축제 틈 속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나름 좋았다.
.
.
다연이의 김밥은 연일 매진을 했다.
매진이라 함은 다연이가 지쳐서 더 김밥을 말지 못하게 됐을 때를 의미했는데, 매일 그렇게 되어서 하루 정도는 쉬기도 했다.
입소문을 탔는지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더 모여들었다.
그렇게 날이 지나서 축제의 마지막 날. 나는 다연이에게 쉬라고 했는데도 다연이는 더 일을 하고 싶었는지 오늘도 나와서 김밥을 싼다.
“나는 마싯는 거 만드는 사라미니까.”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열심히 김밥을 말았다.
다연이가 만든 김밥에 감동한 손님들의 수많은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그 속에서 다연이는 당연한 말인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감사 인사는 빼먹지 않는다.
오늘도 그렇게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식당에 반가운 얼굴이 왔다.
“안녕, 다연아.”
“...?”
처음에 다연이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다연이가 얼굴을 확인했을 때, 누군지 금방 알게 된 것 같았다.
“선생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의 선생님은 아니다.
나는 그 얼굴이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아주 예전에 다연이와 예나와 고등학교로 놀러 갔을 때 만났던 고등학교의 선생님이었다.
나를 닮았다고 했던 조용한 남자 선생님과 매번 붙어 다녔던 여자 선생님.
“안 잊어버렸네.”
“당연하지!”
오랜만에 본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식당에 꽤 자주 방문했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들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둘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고등학교로 출근할 때 입는 옷이 아니라 이렇게 사복을 입고 있으니 보이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마치..
‘커플 같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은 다연이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다연이에게 종이 봉투 한 장을 건넸다.
“이게 뭐예요?”
선생님들이 대답했다.
“청첩장.”
“청첩짱..?”
“응.”
그게 뭔지 알고 있던 나는 조금 놀란 얼굴을 했고, 모르던 다연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야..?”
“선생님들 결혼한다고.”
“...!”
그제야 다연이도 놀란 얼굴을 했다.
“진짜..?”
“응!”
다연이는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본다.
“선생님 결혼한대!”
“응.”
선생님이 말했다.
“다연이가 와 줬으면 좋겠어서. 와줄 수 있어?”
다연이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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