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74화 (174/181)

-------------- 174/181 --------------

휴대폰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그러면 오빠한테 글짜 쓸까?”

“다연이가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러며언··· 써야지.”

다연이도 현우와 친해지고 싶었던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나는 한글 왕이니까 이제 검사 안 받아도 글씨 잘 써···”

아니면 다연이는 그냥 자기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 확인 하고 싶어서 댓글을 다는 것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 됐든 지금 다연이의 눈빛이 열정적이니 된 거겠지.

“으응··· 친하게에··· 지내자아···”

다연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글을 쓴다.

“앞에 잘 봐. 넘어져.”

“응."

우리는 천천히 위층으로 향했다.

***

지금 예나는 혼자서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길도 오랜만에 걸어보네.'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으니 왠지 그렇게 감성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한 달도 안 됐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나는 우리나라에서 꽤 알아주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학교 이름을 말한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곳. 게다가 학비도 싸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할머니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공부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식당에 다연이가 생겨서 힐링을 할 수 있었다는 건 더 좋은 점이었다.

“흠···”

다연이는 그것 말고도 많은 도움을 줬다.

수능 전날의 일이나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도 다연이의 간단한 말이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끼쳤다.

예나는 늘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이제는 그 고민이 얼추 해결됐지만.

사실 아직도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다만 꼬마인 다연이가 늘 내비치는 자신감처럼 자신을 가지고 뭔가를 해본다면 더 나아질 것 같긴 하다.

“내일 가기 전에 다연이나 한 번 더 봐야겠다.”

일찍 올라가서 알바도 해야 하고, 한 번 올라가면 잘 내려오지 못할 테니까 마지막으로 다연이를 보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

지금은 아침이다. 다연이가 학교에 가는 날이었고, 그래서 주말보다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지금 상황에는 꼭 필요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일나따!”

아침부터 다연이가 소리치며 뛰어다닌다.

덩달아서 나도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인다.

오늘은 왜인지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아주 늦게 일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인다면 지각은 하지 않을 만한 시간이다.

다연이는 등교 준비를 했고, 나는 혜원이네에 전화해서 오늘은 따로 가자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혜원이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하! 지훈 씨가 실수할 때가 다 있네요!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늦잠 잔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돼서 오늘은 혜원이 혼자 가야 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혜원이도 혼자서 학교 갈 수 있으니까요!”

“네.”

인사가 오가고 전화가 끊어졌다.

이렇게 늦잠을 잘 때야 몇 번 있을 만한 일이지만 나와 다연이, 엄마가 전부 늦잠을 자는 건 정말로 오늘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제 특별히 다른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빨리 씨서야 대!"

다연이는 엄마와 같이 빠르게 준비를 하는 중이었고 그 사이에 나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어···”

시간이 없다. 정확하게는 여유롭지 않았다.

아침은 먹고 가는 편이 더 좋지만 나는 혹시나 해서 준비하고 있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다연아, 지금 밥 먹으려면 더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그래도 밥 먹을래?”

“밥 머글 꺼야!”

역시 다연이는 밥이 없으면 안 된다.

어차피 그럴 줄은 알고 있었다. 다연이는 더 빠르게 움직였고 나는 간단하게 챙겨 줄 메뉴를 생각해본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토스트 같은 것이 제일이겠지만 지금 집에는 빵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평소처럼 먹기에도 애매한 시간.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걸 하기로 했다.

바쁜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자 다연이 역시 아주 좋아하는 것.

“그러면 간장 계란밥 먹을래?”

“조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특히 아침에 급하게 나갈 때 좋다.

그런 만큼 레시피도 아주아주 간단하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도 편하지만, 맛도 있는 음식이다.

나는 어디에서 대답하는지 모를 다연이의 대답을 듣고 바로 음식을 시작하기로 한다.

먼저 따뜻한 밥을 푼다. 나와 엄마 몫의 밥은 나중에 할 거다. 지금 급한 건 다연이가 지각하지 않는 거니까.

“빨리 씨서야 밥을 마니 먹을 수 이써..!”

또 집 안 어딘가에서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목소리가 다급해 보이는 게 다연이 몫의 아침을 빨리 차려줘야 할 것 같다.

간장 계란밥은 이름 그대로 간장과 계란이 들어가는 밥이다.

이름만 듣고 맛을 떠올려도 알 수 있을 만큼 무난하고 맛있다.

나는 밥을 푼 다음, 계란 프라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원래 내가 간장 계란밥을 먹을 때 선호하는 스타일은 계란을 반숙으로 만들어서 나중에 밥 위에서 터뜨려 먹는 것이다.

물론 완숙도 좋지만 이렇게 먹을 때는 반숙이 조금 더 좋았다. 고소한 맛도 더 느껴지고 비벼먹는 밥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먹다 보니 다연이도 그걸 즐기게 됐다.

그래서 계란은 반숙으로 하기로 했다.

타닥.

계란 프라이에서 모닥불 속 장작 같은 소리가 난다. 비록 지금 상황은 그렇게 여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리 하나는 좋다.

나는 보통 세기의 불에서 계란을 구워간다. 마침 상황을 보니 다연이도 준비를 얼추 마친 모양이다.

완성된 계란 프라이를 꺼내고, 하얀 밥 위에 올려준다.

계란 프라이의 겉면이 살짝 타서 갈색빛을 띠고 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보기에도 좋고, 반숙도 잘 됐다.

“밥!”

준비를 마친 다연이가 후다닥 달려온다. 뒤에 서 있던 엄마는 지친 듯 이마를 훔쳤다.

나는 계란 반숙을 올려놓은 밥 위에 참기름과 간장을 뿌려준다. 참기름 대신 버터를 넣는 방법도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집에 남은 버터가 없다. 그 방법은 나중에 써먹기로 하고 우선은 완성한 밥을 낸다.

“자, 먹어.”

“시간이 업쓰니까···! 빨리 머거야 돼!”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다연이에겐 아침을 안 먹는 선택지는 없다. 밥은 무조건 먹어야 한다.

나와 엄마는 다연이의 등교를 마치고 난 다음 아침을 먹기로 했다. 나는 다연이가 밥을 먹는 동안 챙겨야 할 다른 것들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엄마가 전부 끝내 놓은 다음이었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엄마가 말했다.

“시간 충분하지?”

“네, 빨리 움직여서 충분해요. 안 뛰어도 될 거예요.”

“다행이네.”

늦잠을 자긴 했지만 그렇게 늦지도 않았고, 다연이의 준비도 빨랐기 때문에 지금 다연이가 밥 먹는 속도를 보고 있으면 충분히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평소 등교하는 시간보다는 늦겠지만 늘 여유를 가지고 출발했던 탓에 지각은 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다연이는 열정적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이제 보니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빨리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밥이 맛있어서 그렇게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마시따!”

그 와중에도 맛있다는 말은 잊어버리지 않는 걸 보니 그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잘 지은 밥과 반숙으로 익은 계란. 그리고 그런 밥의 간을 전체적으로 맞춰주는 간장과 고소한 냄새의 참기름까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이 먹고 있는 것이겠지만.

“음···”

갑자기 입맛이 당긴다. 다연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나도 이걸 먹어야겠다.

그렇게 열심히 밥을 퍼먹던 다연이가 곧 수저를 내려놓는다.

“크하..! 마시따!”

그새 식사를 마친 거다.

호쾌한 목소리를 내던 다연이가자리에서 일어선다.

“역시 마시써!”

번개 같은 칭찬을 한 다연이는 다시 쪼르르 달려가서 양치한다.

“빨리 학교 가야지.”

다연이가 중얼거렸다.

잠시 후, 모든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선다.

나와 엄마도 다연이를 뒤따라가서 배웅했다.

“오늘은 엄마랑 오빠랑 가치 나오네.”

“늦잠 잤으니까.”

이상한 대답이었지만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냥 대답한 말이다.

곧 다연이가 손을 흔들면서 학교로 향했다.

“안뇽!”

“안녕, 잘 갔다 와.”

“응!”

엄마가 여느 엄마처럼 그렇게 말했다.

“...”

다연이가 완전히 사라지고, 잠깐 돌던 침묵 사이로 엄마가 말했다.

“..이제 밥 먹을까?”

“네.”

무사히 등교를 시키고 나니, 뒤늦게 허기가 몰려온다.

배고파. 밥 먹어야지.

***

다연이는 열심히 걸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당연히 지각은 하지 않았다.

혜원이와 같이 갈 수 없었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늦잠을 잔 만큼 지각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지금 다연이는 수업을 듣는 중이다. 교실 앞에서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어나가던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부터 받아쓰기를 시작할 거예요. 저번 주에 미리 말했었죠?”

“네.”

받아쓰기. 물론 다연이도 이미 알고 있었다.

심지어 다연이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왜냐하면, 한글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아쓰기는 자신 있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문장을 쓰면 돼요.”

“네.”

교실 안에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고, 다연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시작할게요. ···. 일 번, 철수가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받아쓰기가 시작됐다.

잠시 후, 처음 하는 받아쓰기가 끝났다.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알고 있었는데..!”

아쉬움에 터져 나오는 한숨 섞인 탄식과 자신의 점수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가 함께 튀어나온다.

다연이는 그중에서도 자신의 점수에 만족하는 아이였다. 다연이 옆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다연이의 점수를 보고 말했다.

“우와··· 백 점이야..!”

“응, 나 공부 열씨미 해꺼든!”

“우와아···”

반면에 옆자리 남자아이의 점수는 80점이다. 낮은 점수는 아니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점수는 아니었다.

남자아이는 자신의 점수를 보고 있다가 다연이에게 말했다.

“어··· 그러면 나.. 가르쳐 줄 수 있어..?”

“받아쓰기?”

“응..! 받아쓰기 가르쳐 줄 수 있어?”

다연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응..!”

사실 남자아이는 받아쓰기를 부모님에게 배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연이가 가르쳐주는 받아쓰기라니. 공부가 두 배는 더 잘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남자아이는 비록 80점을 받았지만 100점을 받은 다른 아이들처럼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다연이는 학교 수업을 완전히 마친 다음, 친구들과 같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짧은 학교생활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왔다. 사실 너무 짧아서 다연이는 조금 더 오랫동안 학교에 있고 싶었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같이 놀면서 하교를 할 때면 빨리 마치는 것도 나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쑥날쑥한 이상한 생각이지만 다연이는 그랬다.

“나 오늘 받아쓰기 백 점 받아써!”

다연이가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던 때, 저기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응..?”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다.

다연이는 생각했다.

‘어디서 봐찌?’

분명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다.

곧 그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아이가 다연이 앞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안녕, 나는 배현우야. 어제 댓글 썼어.”

“어..!”

“오늘 처음 보는 거야.”

“마자!”

현우는 그 순간 주변에 있던 다연이 친구들의 눈빛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전 4. 달라진 점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