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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70화 (17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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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으로 향하는 길 내내 작년 생각이 났다.

그때와는 다른 길이지만 느낌은 비슷했다. 한 해를 완전히 마무리 짓는 것 같은 기분이면서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 걷는 것 같았다.

그래서 후련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너무 아쉬워서 시간이 흐르지 않길 바랐지만, 당연히 그럴 순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런 시간을 아쉬워하면서도 지금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랑 똑같따.”

다연이가 걸으면서 말했다.

“그래.”

이렇게 낯선 기분이 느껴질 때면 자연스레 다연이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만약 그날, 나도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다연이는 키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했다면 아마 그때보단 여유 있게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처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가 바꿔주길 바라면서도 나는 바뀌지 않았을 것 같다. 그저, 그런 바람을 가지고 지금도 살고 있었을 거다.

그때가 아마 내가 처음으로 했던 감정적인 결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화에 못 이겨 내렸던 충동적인 결정. 물론 그때 다연이 엄마도 그걸 노리고 했던 말과 행동이었고, 나도 그렇게 결정했었다.

지금은 그런 결정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잘못되고 답답한 결정일지 모르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봤을 땐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그랬기에 지금이 올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다연이의 졸업식 장소에 도착했다.

“우와..! 어리니집 졸업식보다 더 머시따..!”

다연이의 말처럼 그랬다. 더 화려했고, 더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마도 유치원의 예산이 어린이집보다 더 많기 때문에 이렇게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했다.

“진짜..?”

정인이 그렇게 물으니 다연이는 그제야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 사실 아니야. 아.. 어리니집이 더 조타···"

다연이가 어색하게 말하면서 안으로 향했다.

졸업식은 작년 어린이집 때보다 과정이 더 많았다.

아이들은 졸업식에 맞는 옷도 입었고 유치원 측에서는 지난 일 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저기 다연이다!"

정인은 어린이집 선생님답게 아이들이 많은 사진 속에서도 다연이를 찾아내서 말했다.

엄마도 옆에서 흐뭇한 얼굴로 영상을 지켜본다.

"흠···"

그런 영상을 보니 이제 다연이가 초등학생이 되는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내가 다연이를 끝까지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는데 엄마가 나타나고 상태도 호전이 되면서 그런 무게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그랬더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압박감은 사라지고 한결 더 가벼워졌다.

원래 나에게 다연이는 동생이라는 것보다 딸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내가 키워야 했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지금도 딸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무게가 더 가볍다.

비록 딸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느꼈다.

형식적인 유치원 졸업식이 끝났다.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유치원에서 계획했던 행사는 전부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사진을 찍는 것뿐이다.

"다연아 이리 와!"

정인이 말하자 목소리를 들은 다연이가 쪼르르 달려온다.

다연이를 부른 이유는 꽃다발을 주기 위해서 였다. 졸업식다운 졸업식에는 꽃다발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준비했다.

“와따!”

달려온 다연이는 꽃다발을 받고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꽃다발을 든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다.

“나도 다연이랑 찍을 거야..!”

“내가 먼저 찍을 거거든.”

졸업식에서의 다연이는 평소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

유치원에는 다연이 말고 다른 여자아이들도 많지만 다연이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다.

"줄 서면 내가 전부 다 찌거 주지!"

다연이가 우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다연이의 말대로 전부 줄을 선다.

"다연이 인기 많네. 그렇지?"

"응."

우리도 가서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보니 여기에 있는 다연이 친구 중에서는 이미 얼굴이 익숙한 아이도 있었다.

다연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된 이후로 우리 집에는 새 친구들도 많이 놀러 왔었다.

우리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올 만큼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다 모인 장소에서 많은 아이에게 인기가 많은 걸 보니 괜히 더 뿌듯해진다.

그렇게 사진 찍는 데에 열중하고 있을 때 작년의 이때처럼 혜원이네 부모님과 만났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랑 같이 오셨네!"

"네."

"어울려! 잘 어울려!"

"감사합니다!"

정인이 대답했다.

혜원이네 부모님도 우리 사이에 대해 알고 있다.

가장 친한 만큼 숨길 수도 없었고 굳이 숨길 생각도 없었다.

다연이는 친구들과 한참 사진을 찍은 후에야 다시 걸어왔다.

“휴··· 힘드러따.”

“인기 많네.”

“친구들이 전부 나랑 사진 찍고 싶대. 전부 다 같은 초등학교 가는 데도 그러케 말해써.”

“응.”

다연이의 말에는 묘하게 자랑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했어? 그럼 갈까?”

“웅, 다 해찌.”

확답을 듣고 나서야 우리들은 밖으로 나선다.

나가는 길에 다연이가 다녔던 유치원의 선생님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다연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선생님들과도 나름 친해졌다. 처음에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도 걸지도 않았었는데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유치원 선생님을 지나치는 정인의 눈빛이 묘하게 날카로웠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기에 그냥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밖으로 나왔다.

다연이도 그런 정인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물었다.

“언니, 왜 그래?”

“그냥··· 혹시나 해서.. 옛날 생각이 났거든.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생각이.”

“응..?”

“...그런 게 있어.”

그렇게 다연이의 유치원 졸업식도 끝이 났다.

.

.

.

유치원 졸업식이 끝났으면 이제 남은 건 초등학교 입학뿐이다.

이제 다연이는 완전히 어린이의 티를 지워냈다. 물론 다연이가 느끼기에 그랬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엔 아직도 한참 멀었다.

“나는 어르니야.”

“....아니야. 초등학생이지..”

그러자 다연이가 다시 대답했다.

“마자! 사실 나는 초등학생이야!”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하는 예비 소집도 다녀왔고, 이제 입학 날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필요할 가방과 학용품 같은 물건들을 사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주말마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어서 미뤄왔었는데 오늘은 여유가 있다.

다연이의 가방을 사는 일은 나와 다연이, 둘이서 하기로 했다. 가야 할 거리가 조금 멀었기 때문에 엄마는 따라오지 않기로 했다. 정인이도 다른 일 때문에 안 됐고.

“나는 예쁜 가방 살 거야.”

“그래.”

처음에는 수박이 가방을 사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았다. 아마 수박이 가방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교 가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나는 다연이가 그런 선택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캐릭터 가방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우리는 가방을 파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가 간 곳은 백화점이었는데 새 학기를 맞아서 그런지 가방을 많이 팔고 있었다.

우리는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가방을 파는 매장이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고 있던 찰나, 다연이가 한 곳을 가리켰다.

“쩌기 가자.”

한 눈에 봐도 예쁜 가방이 전시된 가게다. 그 가게의 주인아주머니가 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연이는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저벅저벅 걸어가서 가방 하나를 집는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 가방이 좋은가 보네!

“네.. 이게 조아.”

다연이는 이 가방이 좋은가 보다.

핑크빛이 돌고 있는 가방이었는데 완전한 핑크는 아니었다. 색감도 좋고, 부담스럽지도 않다.

몇 번 둘러보지도 않고 이 가방에 시선을 빼앗겨서 순식간에 결정했다.

“다른 거는 안 봐도 돼?”

“응··· 이거면 돼.. 이거면 전부 다 되는 거야···”

“...그럼 한 번 메봐.”

“응..”

다연이는 가방을 메더니 거울을 바라본다.

초등학생이 메기에도 좋은 가방이지만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도 스타일 좋은 가방이다.

“우와..! 너무 잘 어울리네!”

매장의 아주머니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식적인 칭찬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그건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가방이 인기가 많은데, 들어올 때마다 다 나가서 찾기 힘든 거거든요! 그런데..”

아주머니가 말을 잇는다.

“이 꼬마는 정말 잘 어울리네! 최고야!”

“최고다아···! 감사합니다!”

칭찬까지 들었고 다연이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이 가방을 사기로 했다.

“이 가방 모델보다 네가 더 잘 어울린다!”

“감사합니다!”

연이은 칭찬에 다연이는 더욱 자신감이 샘솟았고, 그 모습에 아주머니도 칭찬을 거두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툭 던지듯 다연이에게 물었다.

“몇 살이야? 가방 사는 거 보니까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 것 같은데?”

“마자요. 이제 초등학생이에요.”

“어머, 어디 초등학교야?”

“어··· 무슨 초등학교라고 해찌?”

다연이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하늘 초등학교.”

“마자! 하늘이야!”

그 말에 아주머니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아들도 하늘 초등학교 다니는데..!3학년이야.”

“아들..?”

“응! 이름 가르쳐 줄까?”

그 말을 들으니 아주머니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저 표정도, 말투도. 다연이가 마음에 든 거다.

반은 장난 섞인 말이겠지만 어찌 됐든 다연이가 마음에 들었다는 건 확실했다.

“민우랑.. 아이들이 이 말 들으면 펄쩍 뛰겠네..”

사실 유치원에도 적이 많았기 때문에 셋은 지금까지도 힘들었다. 그런데 초등학교로 가면 적으로 만들 아이들이 더 많아질 거다.

다연이가 말했다.

“이름 알면 조은 거지! 친구가 많으면 좋잖아요!”

“그래! 말해줄게. 이름은··· 배현우. 하늘 초등학교 3학년이야.”

“알게써요! 내가 다 기억해써.”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이제 나에게 물었다.

“아버님, 맞죠? 저희도 친하게 지내요. 같은 학부모인데.”

“오빱니다. 아빠 아니고요.”

“아! 그러시구나! 왠지 젊어 보이시더라고요.”

아주머니는 친한 척을 했다. 정말 다연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우리는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매장을 빠져나온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네.”

“네, 안녕히 계세요.”

아주머니가 그렇게나 다연이와 친해지고 싶다는 티를 냈지만 다연이는 가방에 집중하느라 잘 듣지 못했다.

“가방 예쁘다···”

가방은 선물 받은 작은 가방도 있지만 이렇게 학교 갈 때 쓰는 가방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연이는 더 설레는 것 같다.

“오···”

나는 가방에 한 눈이 팔려 있는 다연이를 천천히 이끌어서 집으로 향했다.

.

.

.

시간이 흐르고 다연이가 그토록 바랐던 입학식 날이 다가왔다. 오늘은 엄마도 같이 간다.

다연이는 아침부터 새로 산 가방을 메고 잔뜩 들뜬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준비는 이미 다 끝난 상태였다.

“빨리 가자! 나는 빨리 초등학생이 되고 시퍼..!”

다연이는 입학식을 해야 초등학생이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까부터 계속 보채고 있었다.

정인이도 같이 가야 하는데.

“알겠어, 가자.”

“응!”

우리는 같이 밖으로 나섰다. 정인이를 만난 다음, 같이 초등학교로 갈 생각이다.

졸업식과 똑같이 두 번째로 맞는 입학식이지만 초등학교로 간다는 건 유치원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뭔가 더 어른이 되는 기분이다.

다연이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언니이따. 빨리 가치 가자고 하자!”

“알겠어.”

다연이가 아까보다 더 빠르게 걸었다.

봄 (본편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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