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69화 (169/181)

-------------- 169/181 --------------

“...이러케 해써.”

위층으로 올라가니 다연이가 손을 하늘 위로 뻗은 채, 엄마에게 말하고 있었다.

“...?”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궁금해진 내가 다연이에게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엄마가 나한테 어떻게 식물을 잘 키우냐고 무러써. 그래서 대답해줘찌.”

“식물..?”

“응, 엄마는 잘 못 한대. 빨강이랑 파랑이랑 초록이 키우는 거. 그래서 나한테 무러본 거야.”

“아.. 그래.”

그래서 했던 대답이 아마 다연이가 말했던 주문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저 주문이 먹히진 않았겠지만 뭔가를 가르쳐 주는 게 좋았나 보다. 엄마도 다연이의 재롱을 기분 좋게 보고 있었다.

“내가 저번에 자라나라! 라고 말했던 거 알려줘써. 그랬더니 쪼금 자라나써.”

“응.”

나는 최대한 잘 대답해준다.

다연이 나이 정도는 그렇게 믿어도 된다.

그렇게 다연이가 한참 식물을 자라나게 하는 법에 대한 설명을 끝마친 다음 말했다.

“알게찌? 이러케 하면 안 죽고 잘 자라.”

“크크, 알겠어.”

엄마가 대답하자 다연이도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아래층으로 향했다.

엄마는 아직 더 쉬고 싶다고 해서 거기에 있기로 했다.

다연이도 딱히 내려와서 할 건 없었지만 옆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다연이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 보는 거라고 말했으나 사실 그것보단 아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아, 조금 있으면 예나가 올 거야. 다연이 보러.”

“응? 왜..? 언니 엄청 중요한 시험 있다며.”

“어···.”

나는 해야 할 말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몰라, 그냥 보고 싶대.”

“음.. 그래. 알게써.”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이어나간다.

다연이는 홀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요리에 관련된 책을 펴서 보고 있었다. 글자를 읽을 줄은 알지만, 글을 위주로 보는 건 아니었다.

그냥 맛있는 음식 사진을 보면서 이건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질 때면 그제야 자세하게 글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다가 모르는 건 나에게 물어보면서 페이지를 넘긴다.

우리가 잠시 그러고 있으니 예나가 식당에 도착했다.

다연이는 예나를 보고 책을 덮고선 담백하게 말했다.

"와따."

“안녕···”

예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요 며칠간 식당에 오지 않아서 몰랐는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초췌한 얼굴과 힘없는 행동까지.

다른 학생들도 예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예나는 특히 더 심한 것 같다.

터벅터벅 걸어오던 예나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다연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언니 엄청 힘들어..?”

“응··· 다연이는 수능 안 쳤으면 좋겠다···”

예나가 특히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긴 하다. 나도 수능을 보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딱히 학업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그랬던 건가.

다연이는 그런 예나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둘의 역할이 바뀐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다.

다연이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언니는 왜 우리 식땅에 와써?”

“...다연이는 드루이드니까.. 행운을 받으려고 왔지..”

“..?”

예나가 말하는 걸 보니 확실히 힘들긴 한 모양이다.

게임 같은 이야기를 하다니. 내가 예나에게도 다연이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해줬기 때문에 다연이가 드루이드 같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런 농담을 하는 것 같다.

“다연이는 드루이드니까 나한테 축복을 줘···”

다연이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간신히 알아차리고선 대답했다.

“알게써. 내가 축복을 주께.”

그리고 예나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다 해따. 축복 줘써. 이제 잘 될 꺼야! 내일 시험도 잘 치게찌!”

“응···.”

그래도 예나는 여전히 힘이 빠진 얼굴을 했다.

내가 보기에 저건 아무리 다연이가 옆에 있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수능이 지나야만 해결되는 문제다.

“잘 되겠지..?”

“당연하지!”

다연이는 축 처진 예나의 모습에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지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밝은 목소리에 축 늘어져 있던 예나도 움찔거렸다.

다연이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못 해도 괜차나!”

“진짜..?”

“응! 못해도 다시 하면 되지! 될 때까지 하면 되는 거야! 나도 내가 못하는 요리는 오빠한테 계속 가르쳐 달라고 하거든!”

열정적으로 의견을 토해내던 다연이가 예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러니까 괜찮은 거야! 나도 열씨미 하니까 못하던 요리도 할 수 있게 돼써!”

“응···”

“또 하면 되는 거니까 못해도 되는 거야..! 와!”

다연이는 자신의 연설에 심취해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마치 박수를 바라는 것 같아서 내가 박수를 쳐줬다.

충분히 박수 소리를 만끽한 다연이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예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언니는 뭐가 되고 싶어서 열씨미 공부하는 거야?”

“되고 싶은 거... “

예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몰라··· 사진 찍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돈이 안 돼서.. 좋은 대학 들어가서 취업하려고···”

“흠.. 하고 시픈 게 이쓰면 좋지마안... “

다연이는 다시 열정적인 강사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없어도 괜차나! 원래 그러케 하는 거지! 나도 처음에는 하고 시픈 거 없어써. 근데 막 이것저것 해 보니까 생겨써! 그러니까 언니도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해도 되는 거야!”

“오···”

나는 다연이가 들리지 않게 소리 냈다. 괜히 지금 다연이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강의에 집중하는 것 같으니까.

솔직히 내가 봐도 대견하다. 어떻게 7살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다연이가 말을 이었다.

“그러타고 오빠가 말해찌!”

다연이가 말을 끝내자 예나가 멍한 눈으로 다연이를 보고 있었다.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 건지 알겠다. 아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만큼 다연이의 말은 깊이 있었고, 연설도 훌륭했다.

“그리고 일하면서 언니하고 시픈 사진 찍는 거 하면 되자나!”

“와··· 다연이 대단하네···”

예나는 단순한 리액션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 예나도 뭔가 배운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가 하고 싶은 건 일 하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좋은 대학이 내 목표야!”

“그래!”

"일단 거기서 차근차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지!"

"조아!"

예나가 덩달아 밝은 목소리로 말했고, 다연이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뭔가 유치원생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물론 다연이가 물어본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하기 위해서 가끔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만 그 말을 이용해서 다연이가 이렇게 멋있는 연설을 할 줄은 몰랐다.

다연이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예나가 말했다.

“나도 좋아! 오늘 오기 잘했다. 다연이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어! 긴장되는 것도 사라졌고. 수능 잘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자아!”

내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예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기에 지금 예나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수능 당시의 컨디션이나 예나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성적은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예나가 오늘 자신감을 얻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고마워, 다연아! 이제 집에 가서 공부해야겠다!”

“조아아!”

둘 다 열정이 넘치는 상태로 헤어졌다.

예나는 자신감을 얻었고, 다연이는 더 신났다.

“나도 공부해야지! 일딴 한글 공부부터 열씨미 할 거야. 그래야 요리 책을 더 잘 일글 수 이쓰니까!”

“그래, 잘 생각했어.”

열정이 타오르는 다연이가 후다닥 달려가서 한글책을 가져온다.

안 그래도 자주 보던 한글책이었기에 표지나 옆부분이 많이 해져 있었다. 그건 다연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한글 왕이 될 거야···"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책 속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보통 어린 애들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후로 한글을 완전히 뗀다고 하던데 지금 다연이는 거의 한글을 마스터한 상태였다.

물론 어려운 말은 잘 모르지만, 다연이 정도는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뛰어난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한글 왕이 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다니.

아마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면 백 점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덩달아 조금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편안하고 기분 좋은, 그런 기분이 든다.

지금 당장은 어떤 단어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는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연이가 예전보다 달라진 것들이 많이 보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른스러운 말을 해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여태까지 없었던 일들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더 좋다는 것이다.

“....”

막연한 따뜻함과 이상하리만치 일렁이는 기분을 처음 느껴봤음에도 좋았다.

“공부할 꺼야···”

그렇게 말하면서 한글책에 시선을 집중시킨 다연이를 지켜보다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열심히 공부하면 먹을 걸 줘야지. 이왕이면 달달한 게 좋겠다.

“과일이 있으려나.”

나는 냉장고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이틀 뒤, 예나가 수능을 보는 날이 왔다.

다연이도 덩달아 이른 아침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다연이는 그만큼 예나의 상태도 궁금해했지만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혹시 예나가 그 전화를 계기로 페이스를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르니까.

“내가.. 긴장돼···”

다연이가 중얼거렸다.

“잘 될 거야.”

“마찌··· 잘 되게찌..”

다연이는 그렇게 긴장되는 마음으로 유치원으로 향했다.

막상 가서 놀다 보면 금방 잊을 거라 생각했다.

다연이는 다시 유치원으로 향했고, 시간이 흘러 오후가 돼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내게 예나의 수능에 관해 묻는다.

“언니는 시험 잘 쳤대?”

“몰라, 아직 전화 안 왔어.”

공교롭게도 수능이 끝나는 시간과 다연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비슷했기 때문에 아직은 전화가 오지 않았다.

“웅···”

조금 더 기다리자 예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걸 확인한 나는 휴대폰을 다연이에게 건네준다.

“어.. 언니 시험 잘 쳤어?”

“...”

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응..? 언니?”

다연이가 되물었을 때도 대답하지 않았다.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

훅..!

그때 식당 문이 활짝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건 예나였다. 표정이 밝다.

“언니!”

다연이가 외쳤고.

“다연아..!”

예나도 외쳤다.

예나는 수능을 잘 본 것 같다고 했다.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가채점을 해봤는데 실제로 평소보다 잘 봤다고 했다.

“내가 말해찌?”

그 소식을 들은 다연이는 더욱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응..! 나는 믿고 있었지!”

어제 받았던 드루이드의 축복 효과가 좋았던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예나와 다연이는 그 이후로도 둘이서 한참을 놀았다.

나는 전에 약속한 대로 먹을 것들을 많이 내줬고, 곧이어 예나의 친구들도 식당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

.

.

겨울은 가을보다 더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오늘은 가장 중요한 날일 것이다.

다연이가 물었다.

“나··· 이제 초등학생 되는 거야..?”

“아니··· 유치원 졸업식부터 끝내고 초등학교 입학식도 해야지.”

“아.. 마따..!”

오늘은 초등학교 입학식도 아니고 초등학교에 가는 날도 아니다.

바로 유치원을 졸업하는 날이었는데 나에겐 이 순간이 생각보다 익숙했다.

작년에 어린이집 졸업식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빨리 가자.”

“알게써.”

작년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엄마와 정인이가 같이 간다는 거다.

“나는 준비 다 돼따.”

“그래, 가자.”

우리는 작년의 오늘처럼 집을 나서서 유치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빠르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