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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다연이가 그렇게 기다렸던 밥돌이가 인터뷰를 이어나간다.
짧은 인사말과 그것보다 긴 소개가 이어진다.
“1세대 1인 방송인, 밥돌이입니다!”
티비 속에서 진행자가 소개하자 다연이의 눈이 더 커졌다.
“우와..! 밥도리가 티비에 나오다니···”
다연이는 새삼 실감이 안 가는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원래도 나름 유명했던 걸 알고 있지만, 휴대폰 영상 속과 티비 속은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밥돌이라고 합니다!”
“우오오···.!”
다연이는 닿지 않을 환호성을 질렀다.
아는 사람이 티비에 나온다는 건 생각보다 더 신기한 일이었다. 나조차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 다연이가 얼마나 신기해할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이 멍하니 보고 있던 선생님이 말했다.
“신기하다··· 다연이가 저런 사람이랑 친구라니..”
“내가..! 아기 밥돌이를 어른으로 만드러써! 밥도리가 그래찌. 원래 아기였는데 내가 어른이로 만드러때!”
“큭큭, 그래. 다연이 대단하네.”
“마자!”
다연이는 그렇게 말한 뒤로 1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인터뷰의 내용은 간단했다. 밥돌이가 어떻게 첫 방송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왔는지. 그리고 사건 사고에 대한 질문들까지 이어졌지만 밥돌이는 사건 사고가 없기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은 빠르게 넘어갔다.
“우와아···.”
다연이는 티비 속 밥돌이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한 눈빛이었다.
진행자의 능숙한 진행 실력으로 분명 재밌는 장면들도 많이 나왔지만 다연이는 살짝 웃기만 하고 계속 티비를 보고 있었다.
밥돌이가 티비에 나오는 모습이 다연이에게 나름 자극을 준 것 같았다. 앞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극.
친구도 아니고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밥돌이에게 7살짜리 어린애가 자극을 받다니.
이렇게 보고 있으니 다연이도 나중에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저렇게나 뚜렷한 목표가 있는 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길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새 인터뷰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티비 속 진행자가 말했다.
“...인터뷰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음.. 그러면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진행자의 말에 밥돌이가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말했다.
“네, 있어요.”
“아! 그러면 바로 하시죠!”
진행자가 손짓하자 밥돌이가 덧붙였다.
“그런데 제 방송 인생에 도움을 준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한테 하고 싶어요.”
“아..! 저는 누군지 알 것 같아요!”
밥돌이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진행자가 말했다.
그 사람은 다른 진행자와 달리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꿰뚫고 있어서 시청자가 원하는 질문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저 밥돌이님 영상 자주 보는데! 그 애기 말하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아시네요.”
“애기···?”
다연이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 아기가 자신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 말하는 건가..? 나는 아기 아닌데 나 말하는 거 맞는 거 가타..!”
다연이가 설레는 눈빛으로 다시 티비를 본다.
그때 진행자가 말을 이었다.
“그러면 영상 편지 한 번 가시죠!”
“네!”
오래전부터 해오던 진행 방법이었지만 밥돌이의 그 말을 자연스럽게 받는다.
다연이는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밥돌이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나 말하는 거야..? 난가?”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봤지만 일단 대답하지 않고 티비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곧 있으면 밥돌이가 말할 테니 일단 지켜보라는 의미였다.
“아.. 알게써. 내가 보고 이써야 게따..”
본격적으로 영상 편지를 시작하기 전에 옆에 있던 진행자가 밥돌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아기 이름이 뭐죠? 아,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뇨, 이름은 말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괜찮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다연이가 놀란 얼굴을 했다.
“아..! 그래서 밥도리가 나한테 무러봐꾸나!”
다연이는 밥돌이가 방송에 나가기 전, 밥돌이가 전화로 했던 질문을 떠올린 것 같았다.
다연이의 이름을 방송에서 말해도 되냐는 물음이었는데 다연이는 당연히 된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밥돌이가 방송에서 다연이의 이름을 언급하겠다는 뜻이었다. 다연이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다연이가 밥돌이의 방송을 기다린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연이는 놀란 얼굴로 계속 방송을 지켜본다.
밥돌이가 말했다.
“이름은 다연이에요. 아마 제 방송 봤던 분들은 아실 텐데.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꼬마죠.”
“네, 그러면 바로 다연이한테 영상 편지 가시죠! 이번에는 진짜입니다!”
진행자는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눈치였지만 일단은 하고 싶다는 말부터 진행시킨다.
진행자가 말하자마자 카메라는 밥돌이만을 비추고 아련한 음악이 흐른다.
밥돌이가 말했다.
“흠흠··· 아.. 다연아, 고마워! 다연이 덕분에 이 일 계속할 수 있었어. 내가 그때 형님 식당에 가서 다행이야. 만약에 안 갔었다면··· 방송을 그만뒀을 지도 모르지. 어쨌든··· 고마워! 나중에 과자 사 갈게!”
“알게써!”
밥돌이가 들을 리 없겠지만 다연이는 그렇게 말했다.
진행자가 말한다.
“오.. 그런데 그 애기가 뭘 해줬나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네! 그때는.. 제가 한참 방송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을 때, 만났죠. 거의 제 뮤즈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연이 덕분에 방송 일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고, 영감도 계속 얻고 있거든요!”
“그러면 다연이한테 더 잘해줘야겠네요! 장난감도 많이 사주세요!”
“하하! 안 그래도 만날 때마다 뭘 사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연이는 밥돌이의 인터뷰를 보고 그대로 멍하니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지금 다연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설레지 않을까 싶다.
다연이가 가끔 보기도 하는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다연이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그 프로그램은 다연이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설레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일 것 같다.
“....”
다연이는 떨리는 눈으로 우리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눈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 이름을 불러따··· 저 사라미··· 내 이름을 불러써··· 나느은··· 유명한 사람인 건가..?”
그렇게 다연이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더듬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밥돌이였다.
나는 내가 받지 않고 다연이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다연이가 받아.”
“응···”
다연이는 전화를 받고 말했다.
“여보세요..?”
“응, 다연아! 지금 내가 나오는 거 보고 있지?”
“네···”
밥돌이와의 대화는 전부 들리게 해 놨다.
밥돌이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그러면 내가 다연이 이야기한 것도 들었지?”
“저.. 전부 드러써··· 엄청.. 머싯는 말이야···”
다연이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방송에서 말한 것처럼 전부 다 다연이 덕분이야! 나중에 갈 때 장난감이랑 맛있는 거 사갈게!”
“어··· 으응··· 조아요오..”
다연이는 아직도 조금 당황한 상태인지 평소답지 않게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 밥돌이가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언급해준 건 좋은 모양이다.
다연이가 말을 이었다.
“어.. 어.. 우리 식땅에 또 와.. 밥도리는 우리 오빠가 해주는 음식 조아하니까··· 와서 머거야 대···”
“알겠어! 일 끝내고 바로 갈게!”
“응···”
다연이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아직 실감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상상만 했던 일들이 현실로 벌어졌으니 그럴만도 했다.
곧이어 밥돌이가 나오는 분량도 끝이 났지만 다연이는 아직도 그 기분에 취해있었다.
붕 뜬 기분. 어떨지 아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다연이가 언급된 건 나도 나름대로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다연아, 괜찮아?”
그런 다연이에게 선생님이 물었다.
“응, 괜차나. 엄청 조은 일이자나요.”
다연이는 그냥 조금 놀랐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졌는지 슬쩍 웃기도 했다.
“밥도리는 나랑 친구라고 자랑하고 싶었나 봐..! 티비에서도 이야기하다니.”
“그러게. 그런 것 같아.”
놀란 감정에서 벗어난 다연이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렇게 밥돌이가 티비에 나오게 된 이야기는 끝이 났다.
우리는 이렇게 모인 김에 저녁까지 먹었다.
다연이는 선생님과 놀았고, 그 덕에 나는 솔직히 조금 편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익숙한 이별이었기에 다연이도 평소처럼 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안뇽.”
“응, 안녕.”
그렇게 가려던 선생님이 다연이에게 말했다.
“우리 다음에는 다 같이 놀러 가자. 알겠지?”
“오..! 어디로 놀러 가?”
“음··· 다연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알게써! 나 방학하면 가요!”
“그래!”
다연이가 선생님에게 말했다.
“안뇽, 언니!”
“안녕!”
다연이도 이제 선생님의 바람처럼 언니라고 부를 준비가 된 모양이다.
다연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 이제부터 선생님한테 언니라고 해야게써.”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음.. 그런 것도 맞는데··· 그냥 나도 언니라고 하고 시퍼. 우리 자주 볼 건데 선생님이라고 하면 안 되자나. 어린이집도 졸업했는데.”
“음··· 그래. 맞아.”
뭔가, 다연이에게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
.
.
시간이 또 흘렀다. 하염없이 흘러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그사이에 우리는 선생님과 놀러 가기도 했고, 다연이가 선생님을 부르는 호칭이 언니로 완벽하게 바뀌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달라진 건, 다연이의 선생님과 나도 사귀는 사이가 됐다는 거다.
그런 다음에는 다연이에게 새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길 바랐지만, 아직 어린 다연이는 종종 그렇게 배운 호칭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다연이가 부르는 호칭을 고쳐줬다.
이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정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겠지만.
정인은 나보다 한 살 어리다. 예전에는 나이를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음..”
그리고 또 다른 소식은 엄마가 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했다는 것이다.
기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극적인 호전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건 확실했다.
엄마는 퇴원하고 나서부터 우리 집에서 살고 있다.
예전에 했던 생각처럼 잘 되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은 몸이 좋지 않기 때문에 통원 치료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이 주변 산책로를 틈틈이 돌면서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근처에 아는 사람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 동시에 상태가 많이 호전된다면 할 일도 찾고 있다.
“후···”
지금은 겨울이다. 나는 차가운 손에 입김을 불어 넣어서 손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예나의 수능까지 이틀 남은 날이다.
마음 같아서는 예나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마음껏 해주고 싶지만, 수능 일주일 전부터는 음식도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주려면 수능 끝나고 해달라는 말도 같이 했었다.
“오빠, 엄마는 어디이써?”
다연이는 유치원에서 방금 막 도착했고,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위에. 쉬고 있을 거야. 엄마한테 인사하고 와.”
“응, 인사하고 내려오께.”
“그래.”
그렇게 다연이가 위층으로 올라간 사이,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린다.
정인이 일줄 알았는데 예나였다.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으니 예나가 힘이 다 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혹시 다연이 옆에 있어요···?”
“...조금 있으면 올 거야. 왜?”
“아··· 그러면 식당에 있다는 말이구나...”
다시 힘없는 목소리로 예나가 대답했다.
“그러면 다연이 보러 가도 돼요..? 수능 스트레스 때문에 다연이를 한 번 보고 수능 봐야 할 것 같아요오···.”
예나는 다연이가 피로회복제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수능이 이틀 남은 상황에서도 다연이를 보러 오겠다니.
“...네 기분이 나아진다면 그래도 되지.”
“네··· 오늘은 힐링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다연이는 드루이드니까..”
“음···”
나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다연이가 드루이드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때 위층에서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라나라!”
“...?”
어쩌면 다연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서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다연이는 뭘 하고 있길래 드루이드 같은 주문을 외치는 걸까.
문득 나는 그게 궁금해져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효과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