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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65화 (16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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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면 그때 만나요."

나는 통화를 마무리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이게 맞나...”

물론 이 말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건 것에 대한 후회는 절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선생님에게 했던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잘 모르겠다. 어떤 말이 더 좋았을지.

“하하..! 넘무 조아!”

그때 다연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연이가 있는 곳은 거실이었는데 티비에선 수박이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한창 방영 중이었다.

하지만 다연이의 시선은 티비로 가 있지 않았다. 애초에 티비는 켜두기만 하고 막상 다연이는 한글책을 보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보니 딱히 웃을 만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뭐 해?”

“꺄아!”

나를 본 다연이가 놀란 듯 소리 질렀다. 그러더니 당황한 말투로 입을 연다.

“나··· 나는 공부를 하고 이써찌..!”

“아까 수박이 보러 간다고 했잖아.”

“아..! 수바기는 지금도 보고 이써! 공부하면서 수바기도 가치 보는 거지..!”

계속 횡설수설하며 이상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다연이가 왜 이러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아까 통화하는 거 다 들었지?”

“...!”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뭔가 변명 거리를 찾으려고 하던 다연이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웅··· 근데에.. 들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들려써. 여기서 수바기 보다가 공부하고 이썼는데 다 들려써.”

“그래?”

“응.”

내 목소리가 조금 컸던 모양이다.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중간중간 목소리를 낮추긴 했는데 다연이에게까지 들렸던 것 같다.

다연이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선생님이랑 가치 밥 먹는다는 거 일부러 드른 거는 아니야..!”

다연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지만, 입가의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연이는 내가 선생님과 만나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일부러 드른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은 거지!”

“그래, 알겠어.”

“조아!”

내가 했던 말이 다연이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았다.

그 이야기가 끝난 뒤에 슬며시 웃고 있던 다연이는 내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다음부터는 안 드를께··· 사실 쪼금 궁금했어. 근데 일부러 드른 거는 아니지···”

“그래, 믿어.”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다연이가 없었으면 나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다연이가 어떻게 하든 괜찮다. 나쁜 일만 아니라면.

다연이가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이랑 언제 밥 먹기로 해써?”

“주말에.”

“오··· 조아조아··· 그러면 나는 예나 언니랑 가치 놀래.”

“그래, 물어볼게.”

“응!”

다연이는 주말이 기대되는지 평소보다 더 밝게 웃고 있다.

“잘 될 꺼야!”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연이 옆에 앉았다.

“...수박이 볼 거야.”

“나도 가치 보자!”

이 날은 한참 동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

.

.

다연이와 내가 기다리던 주말이 왔다.

오늘 같은 날에는 좋은 옷을 입고 싶었다. 물론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예나의 도움을 받았었다.

다연이도 오히려 자기가 더 들떠서 예나를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봤었고.

나는 미리 정해 놓은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다연이에게 검사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오..!”

나를 본 다연이가 놀란 얼굴을 했다.

“머.. 머시따!”

“...다행이네.”

“원래 이러케 머싯는 줄 아랐으면 매일 머찐 옷 입으라고 할 껄!”

다연이가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오히려 내가 더 부끄러워졌다.

“넘무 머시따! 빨리 가자!”

“그래.”

나는 다연이의 재촉과 함께 밖으로 향했다.

***

다연이의 선생님인 김정인은 어제 다연이 오빠의 전화를 받고 약속 장소로 나가는 중이다.

어제 전화를 받고 바로 떠올린 생각은 드디어 뭔가 성과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다.

식당에도 자주 찾아갔고 대화도 많이 나눴다. 그런데도 뭔가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고는 생각했었는데 그것마저 어제의 통화로 전부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늘은 특별히 평소보다 더 꾸몄다.

그렇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우와···”

거기에 다연이네 오빠가 먼저 와 있었다.

평소에도 잘 생기긴 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멋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훨씬 더 잘 생겼다.

만약 다연이가 없었다면 이렇게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정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다연아..!”

나중에 다연이에게 직접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같이 밥을 먹은 지 하루가 지났다. 어제는 꽤 재밌었다.

밥 말고도 다른 것들도 이것저것 했었는데 전부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 어색했다.

“어제 나 성생님이랑 전화 해짜나.”

“응.”

“근데 선생님이 나한테 고맙따고 해써.”

“왜?”

다연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몰라, 나도. 근데 이 말도 해따.”

“뭐?”

“오빠랑 가치 논 거 엄청 재미썼대. 다음에는 나도 가치 놀고 싶대.”

“음··· 알겠어.”

다음 주에도 만나기로 했으니 다연이도 같이 가면 되겠다.

그러고 있던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근데 우리 지금 뭐하러 간다고 해떠라?”

“전에 다연이 엄마가 살던 집 정리하러. 쓰레기 치워야 해.”

“어.. 마따..! 그래찌!”

지금 우리는 다연이 엄마가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집으로 가는 중이다. 예전에는 내가 살았던 집.

필요한 건 전부 챙겼다고 했으니 내가 할 일은 집 안을 청소하는 것뿐이다. 집을 다시 팔기 위해서라도 집 안을 정리해야만 했다.

다연이는 다른 곳에 맡겨두고 오는 편이 더 나았을 거다. 이곳에는 다연이가 놀 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다연이를 맡아줄 곳도 많이 있다. 하지만 다연이가 같이 따라오고 싶다고 말하는 바람에 같이 오게 됐다.

“다 왔다.”

집 앞에 서 있으니 다연이가 말했다.

“사실 마리야··· 내가 왜 오빠 따라왔는지 아라?”

“응..? 아니.”

“나도 이제 머싯는 7살이니까 도와주려고 와써. 청소하려는 거지?”

“응···”

“나도 이제 청소할 수 이찌.”

“대단하네···”

사실 다연이가 있다고 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맙다.

“그러면 청소하자!”

“응.”

나는 다연이와 같이 집 청소를 시작했다.

집은 생각보다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다연이 엄마가 쓰레기를 버리기만 할 수 있게 거의 정리를 다 해놨지만 그런데도 아직 쓸어 담지 못한 것들도 몇 가지 있었다.

어쩌면 이 집과 물건들에 트라우마가 있을지 모르는 나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 이거 어디다 버려?”

다연이가 자기 몸집만 한 봉투를 들고 말했다. 다연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거 더러워. 그렇게 들지 마. 오빠가 할게.”

“웅···”

사실 다연이도 무거웠는지 커다란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연이가 도와준다는 건 좋지만 다연이도 힘들 거다.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다연아, 그러면 이거 오빠가 다 치울 테니까 다연이는 혼자 놀고 있을래?”

“음··· 그러며언.. 그러케 할까?”

다연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응, 그렇게 해. 아니면 방에서 영상 보고 있을래? 휴대폰 줄게.”

“오오··· 그거또 조아!”

“그래.”

내가 다연이에게 휴대폰을 쥐여주니 방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도와주겠다더니. 하지만 원래 저 나이대의 아이들은 변덕이 심한 편이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청소를 이어나간다.

나는 여자가 미리 쓰레기를 담아 놓은 봉투를 보면서 생각했다.

여자가 배려를 해줬다는 건 고맙지만 이제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

하지만 진짜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쓰레기봉투에 담겨 있는 물건들과 이 집의 익숙한 방을 볼 때면 어릴 적이 떠올랐다.

다연이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올 때도 떠올랐던 느낌이었지만 그때는 다연이 엄마를 처음 만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지금보다는 트라우마가 덜했다.

그런 것들을 알면서도 나는 이곳에 오기 주저하지 않았다.

그건 여태까지 다연이와 같이 있으면서 배워왔던 것들이기도 했다.

“흡..!”

나는 아버지의 물건이 담긴 봉투를 들어서 바깥에 나가서 던져 버렸다.

푹.

봉투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군다.

아버지의 물건이라고 하기엔 별것 없는 것들이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것이라곤 옷과 술병이 전부였으니까.

그랬던 아버지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착하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었다.

나는 내 엄마와 다연이의 엄마가 왜 아버지와 같이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도 있을 거다.

그렇기에 함부로 단정 짓지 않았다. 대신 나는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저것들은 내가 직접 바깥에 버릴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면서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언젠가 극복해야 한다면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이제는 무섭지 않다.

두렵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 아버지라는 이름의 트라우마를 깨지 못한다면 평생 이대로 머물러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깨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집에 남은 아버지의 흔적들을 내 손으로 지우는 것. 그래서 이 세상에 더 이상 아버지의 것들을 남겨두지 않는다.

나와 다연이는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다.

다연이나 나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었기에 내가 만든 합리화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이건 내가 해결해야 했고, 나만 해결할 수 있었다.

다연이는 내가 겪은 일들을 겪지 않았으니까.

내가 완전히 끊어버린다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내가 마주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갔다.

다연이 엄마가 미처 치우지 못한 것들도 전부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끝을 꽁꽁 싸매어서 밖으로 던진다.

그런 행동들이 조금 거칠었다.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의 일들이 생각나면서 정말로 화가 났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봉투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처음에는 작았던 행동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졌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 방에 있을 다연이가 생각나서 그런 행동을 멈췄다.

물론 다연이는 계속 방에 있으니 소리는 잘 들리지 않을 거다. 들려도 그냥 청소하는 중에 나는 소리라고 생각할 거다.

“···”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면서 화가 났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화를 낸 적은 이번이 두 번째였던 것 같다.

처음은 다연이 엄마가 다연이를 처음 우리 집에 데리고 왔었던 때고, 두 번째는 지금이었다.

지금도 처음 울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뭔가 막혀 있던 것이 뚫린 기분이다. 이제 앞으로도 내가 화를 내고 싶거나 울고 싶으면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이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아버지의 물건들을 내팽개치면서 그렇게 사라졌다.

“흡.”

나는 숨을 다시 들이마신다.

“후..”

그리고 다시 내쉬었다.

쌓였던 화가 날숨을 타고 사라진 것 같았다.

차분해졌고, 앞을 가로막던 벽을 무너뜨린 기분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다연이가 있는 곳으로 간다.

“다연아.”

“응?”

다연이는 여전히 휴대폰 속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 속 인물은 밥돌이였다.

내가 말했다.

“이제 가자.”

“응! 조아!”

나는 마당에 쌓아 놓은 쓰레기를 양손에 쥐었다.

조금 무거웠지만 괜찮다.

이것들은 가는 길에 버릴 거다.

그때 다연이가 물었다.

“그러며언.. 이제 이 집에는 안 올 거야?”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응, 안 올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 집에서 벗어났다.

이제내 발목을 잡는 기억은 없다. 그냥 내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던 것뿐이다.

그건 내가 이겨낸 트라우마였다.

***

그다음 날 아침이 됐다.

어제 나름 커다란 일이 있었던 다연이 오빠와는 달리, 다연이는 재밌었던 기억만 있다.

다른 집에서 휴대폰 영상을 보면서 노는 것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흠..!”

아침 일찍 일어난 다연이는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다연이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어제부터 다연이 스스로 계획했던 일이었는데, 바로 다시 돌아온 봄에 맞는 일들을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빨강이랑 파랑이를 다시 옥상에 꺼낼 거야.”

지난겨울 동안 집 안에 머물러 있었던 식물을 다시 햇볕이 잘 드는 옥상에 꺼내 놓는 일이다.

다연이 나름의 중요한 일이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미리 계획한 일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다연이에게는 의미가 깊은 일이다.

다연이는 티비에서 봤던 말을 따라 했다.

“할 슈 이따!”

정말 쉬운 일이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넘치게 하는 주문이었다.

다연이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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