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64화 (164/181)

-------------- 164/181 --------------

“안뇽, 갔다 올게.”

“그래.”

오늘은 다연이를 직접 유치원에 데려다주지 않고 통원 버스에 태워서 보냈다.

다연이가 손을 흔들었고 우리들은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다.

어제 이미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제보다는 기분이 한결 더 나았다.

비록 다연이가 없는 길이 심심하기는 했다. 만약 다연이가 있었더라면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 왔네.”

“네.”

곧이어 병원에 도착한 우리들은 병원 안으로 향했다.

그 이후로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곳은 여자가 이전에 자주 왔던 병원이여서 길도 헤매지 않았다.

나는 그 낯선 건물 안을 걸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어제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이 다시 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다연이나 여자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정신을 놓으면 안 됐기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고 기억했다.

“흠..”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이곳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너무 많고 버거워서 기억하기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꼭 기억해야 했던 이야기는 이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의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이다.

좋은 상태는 절대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그 말은 여자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처럼 당장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좋은 상황은 전혀 아니었지만.

병의 진행은 여자가 예전에 병원을 다닐 때와 비교해서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지 호전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치료는 받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입원해서 치료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항암 치료니, 뭐니 많은 말들을 했지만, 자세한 건 잘 기억나진 않았다. 그냥 당장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심을 뿐이다.

여자가 말했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자. 다연이한테 말하고 내일부터 입원할래.”

“네.”

나는 대답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 밖에도 다른 이야기들을 들었다.

암이란 건 전이되기에 위험한 건데 다행히 모든 것들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 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낫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꾸준히 치료를 이어나가는 것인데 목표가 없었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목표가 있었기에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자의 바람대로 다연이가 커가는 걸 끝까지 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 안심했었다.

전부 다 잘 됐으면 좋겠다.

.

.

.

해야 할 일들을 전부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꽤 많이 지나가 있었다.

처음부터 점심 장사는 못 할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늦을 줄은 몰랐다.

휴대폰도 뒤늦게 확인했었는데 부재중 연락이 와 있었다.

연락한 건 식당 앞 고등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나와 친구들이었다.

나는 예나에게 문자를 남겼다.

아마 수업 중일 거라고 생각해서 문자를 한 건데 곧바로 전화가 왔다.

“아저씨!”

주변에서 다른 소음이 들리는 걸 보니 아직 학교 안인 모양이다.

“응, 왜 전화한 거야?”

“아니.. 오늘 식당 문이 닫혀 있어서요. 애들이랑 다 같이 내려갔다가 놀라서 전화했어요.”

옆에서 다른 학생들이 누구냐고 묻는 소리도 들리고 다연이를 부르는 목소리도 들린다.

예나처럼 기다렸던 학생들이 생각보다 더 많았던 모양이다.

“미안. 오늘 다른 일이 있어서.”

식당 문에 오늘은 다른 사정이 있어서 쉰다고 글을 써 붙였는데도 놀란 목소리였다.

어제부터 말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오늘 식당을 쉬는 건 어젯밤에 결정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혹시 다연가 아픈 건 아니죠?”

예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마도 옆에 있었던 다른 학생인 것 같다.

“아니야, 다연이는 오늘도 유치원 갔어.”

“휴··· 다행이다. 다연이 아파서 쉰 줄 알았네.”

다연이는 아직도 학교에서 유명했다.

3학년이 졸업하면서 다연이에 대한 인기도 조금은 줄어들었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요즘 들어 처음 보는 학생들이 많아졌는데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인 것 같다.

예나가 말했다.

“그러면 저녁에는 식당 문 열어요?”

예나가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의 소음이 사라졌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응, 열 거야.”

“휴.. 다행이네.”

휴대폰 너머의 다른 학생들도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학생들이 자주 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우리 식당을 좋아했었나. 살짝 감동이다.

그때 예나가 말을 이었다.

“오늘 학교 급식 진짜 최악이었어요.. 아저씨 식당만 믿고 있었는데... “

아무래도 오늘은 학생들이 싫어하는 메뉴가 나왔던 것 같다.

급식을 대신해서 우리 식당에 온 건데 오늘은 문이 닫혀 있었던 거고.

“그래서 밥은 먹었어?”

“어떻게 먹긴 했어요..”

우울한 목소리였다. 예나가 말을 잇는다.

“그럼.. 이따 저녁에 가면 다연이도 있는 거죠?”

“응, 원래 매일 있었잖아.”

“휴, 다행이네. 아저씨네 식당도 매일 문 열었는데 오늘은 아니었잖아요. 혹시나 해서요. 그러면 이따가 갈게요.”

“그래.”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운 좋게 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오늘 저녁에는 학생들이 많이 올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내가 통화하는 걸 듣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장사가 잘 되나 보네. 다행이다.”

“네, 다연이 덕분에요.”

여자도 며칠 동안 우리 식당에 머무르고 있어서 대략적인 것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물었다.

물론 다연이가 예나 학교의 연예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구나.”

여자가 그런 말을 하면서 의자에 앉는다.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당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있던 집 처분에 대한 문제나 여자가 당장 내일부터 병원에 입원하게 될 거라는 사실은 다연이가 오면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연이도 알아야 할 이야기니까.

‘장사 준비해야겠다.’

지금은 다연이가 올 때까지 장사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시작한다.

.

.

.

“나는 머싯는 사람이야!”

다연이가 식당에 오면서 처음으로 한 말이다.

“비빔빱을 잘 만드는 사라미지!”

다연이에게 들었는데 어제 직접 친구들에게 만들어줬던 비빔밥 이야기가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 꽤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친구들이 전부 다 내가 엄청 머싯다고 해써. 선생님도 내가 대단하대..!”

“응, 대단해.”

실제로 어제 다연이가 했던 요리는 대단했다.

7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진두지휘와 먹음직스러운 장식까지. 다연이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요리사나 다름없을 것이다.

“후후··· 나는 엄청 머싯는 요리사가 돼야게따.”

다연이가 선포하듯 말했다.

우쭐한 미소를 짓던 다연이가 자랑스럽게 걸음을 내딛는다.

“나 가방 놔두고 오께.”

“그래.”

매일 하던 것처럼 다연이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갔던 다연이가 다시 내려왔을 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다연이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설령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연이를 옆에 두고 말하는 것과 그러지 않는 건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와따.”

잠시 후 다연이가 내려왔다.

나는 곧바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다른 말로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자연스럽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안에도 다연이의 표정은 그리 우울하지 않았다.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부터 치료를 시작하겠다는 말이었기에 그런 것 같다.

나는 말을 끝낸 다음 다연이에게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응, 이제부터 엄마는 병원에 있겠다는 말이자나.”

“맞아.”

다연이는 엄마가 간다는 말에도 괜찮은 듯했다. 물론 아쉬움은 있겠지만 예전처럼 완전히 헤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병원 가도 괜차나. 어차피 보고 싶으면 다시 보면 되자나. 어디에 있는지도 아니까.”

“그래, 맞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다연이도 많이 큰 것 같다.

“헤어져도 괜찬치. 다시 만나면 되니까. 그리고 나는 엄마가 다 나았으면 좋겠어.”

“그래, 고마워.”

다연이 엄마가 대답했다.

다연이도 잘 이해한 것 같으니 이제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여자가 치료를 시작하면 남아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에 대한 건 우리끼리 대화를 하면서 집은 팔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나서 치료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같이 살기로 했다.

“다연이가 다 크거나.. 지훈이 네가 결혼하면 그때는 나가서 살 거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여자가 그런 말을 하자 다연이도 같이 큭큭, 하며 웃었다.

결혼 이야기에 웃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물론 여자의 말은 지나치게 희망적이었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됐으면 했다.

옆에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그러면 엄마는 오늘도 우리 집에서 잘 거야?”

“아니, 오늘은 집에 가서 물건들 정리하려고. 내가 정리할 테니까 지훈이 너는 나중에 버릴 것만 버려줘.”

“네.”

그렇게 말한 여자는 이제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고 말하자 여자가 대답했다.

“지금 가야 해지기 전에 도착하지.”

다연이가 식당을 떠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안뇽, 나중에 또 봐.”

“응, 안녕.”

처음과 같은 인사였지만 당연히 처음과는 달랐다.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는 인사는 슬프지 않다.

“그러면 우리는 뭐하지?”

다연이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오빠는 준비해야지.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이 많이 올 거래.”

“오.. 그러쿤! 그러면 나는 여기에 앉아서 인사하는 사라미 돼야 게따.”

“...그렇게 해.”

나는 그런 다연이를 내버려 두고 장사 준비를 이어나간다.

그러는 순간에도 엄마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다연이가 슬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

오늘 저녁에는 말 그대로 손님들이 쏟아졌다.

점심때 식당에 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지 식당에 오는 학생마다 다연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다연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내가 다음부터는 예나 언니한테 말해주께! 그러면 괜차늘 꺼야.”

학생들은 다연이의 말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면서 고맙다고 했다.

다연이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운 것보다는 그냥 다연이가 말하는 게 귀여웠던 것 같다.

그렇게 학생들이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반가운 얼굴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와.. 선생님이다! 엄청 반가워!”

다연이가 외쳤다.

요즘 유치원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유독 선생님을 반기고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네.”

실제로 오랜만에 본 건 아니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에게도 음식을 내줬고, 식당을 가득 채우던 학생들은 그때부터 서서히 식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비좁기까지 했던 식당에 다시 여유가 생겼다.

그런 식당의 분위기와 반대로 다연이는 급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성생니임! 이거도 머거.”

손님으로 온 선생님에게 이것저것을 나눠주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표정이 밝다.

“큭큭, 다연아 왜 이렇게 많이 줘.”

“그냥 마니 머겄으면 좋게써.”

다연이가 선생님에게 가져다준 건 밑반찬들이었다.

뭔가를 주고 싶은데 마땅히 줄 것이 없으니 밑반찬이라도 많이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친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이.. 오늘따라 뭘 많이 주네? 혹시 선생님한테 뭐 부탁할 거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거 없찌! 그냥 마니 머겄으면 조겠써서 그래요.”

“음··· 이상해..”

그 말을 남기고 선생님이 식당을 나선다.

나는 식당을 나서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또 오세요.”

“네!”

사실 다연이가 이것저것을 가져다줄 동안에도 나는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역할들을 다연이가 대신해줘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던 것 같기도 하다.

“선생님 갔네.”

“응.”

“흠···”

다연이는 평소답지 않게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다연이의 뒤를 따라서 다시 식당 안으로 향했다.

.

.

오늘은 저녁 시간 이후로 손님들이 많이 없어서 장사를 빨리 접었다.

지금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늘 하던 식당 마감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다연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빠, 오늘 아침에··· 엄마가 오빠한테 하라고 했던 말 이짜나..”

“아.. 맞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었다.

“그거 말해주까? 지금 말하는 게 조을 거 가타.”

“음.. 그래. 해 줘.”

나는 별다른 말이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이어나간다. 그러면서 다연이의 말을 들었다.

“잘 들어야 해···”

“응, 듣고 있어.”

일순간 다연이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더니 말했다.

“엄마가 그러는데에... “

“응.”

“.....선생님이 오빠 조아한다고오··· 말하래.”

나는 그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다연이를 본다.

“선생님이..? 나를?”

“응, 그러니까 성생님한테 꼭 친하게 지내래. 안 그러면 놓친데.”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다연이 엄마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여자도 선생님과 몇 번 만나긴 했지만 나로써는 잘 모르겠다.

그러더니 다연이가 말했다.

“알게찌?”

“....응.”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

.

.

식당 마감을 하고 집으로 왔지만 다연이가 했던 말은 계속 머리에 남아있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전화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단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또 하나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좋아하나?

“흠···”

아주 잠깐 생각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오빠 뭐 해?”

그때 다연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묻는다.

내가 대답했다.

“전화.”

“오..! 그러면 나는 수바기 보고 있을게!”

“응.”

그러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연결음이 몇 번 들리고.

턱.

전화를 받았다.

“전화하셨네요! 무슨 일이세요?”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당연히 다연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말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말했다.

“어.. 정인 씨.”

“네?”

“주말에.... 같이 밥 먹을래요?”

“밥이요? 다른 식당에서요?”

“네.”

“좋죠!”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다연이랑 같이 가는 거죠? 그러면 다연이가 좋아할 만한 식당을 찾아야 할 텐데..”

“아니요. 그러니까..."

나는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말을 이었다.

"....둘이서만요."

그 순간 휴대폰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좋아요!”

트라우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