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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여자가 비빔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다연이는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상 다연이가 만든 음식이었으니 식당 사장이 손님을 보는 마음처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비빔밥은 손님에게 내기 전, 직접 섞어서 먹어볼 수 없었으니 더 그랬다.
“마시써?”
엄마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다연이가 물었다.
다연이 엄마는 오물거리면서 말했다.
“아직 먹고 있잖아.”
“마찌.”
차분한 말투다. 그래서 그런지 다연이도 이제 군말없이 기다리기로 한 모양이다.
여자는 음식을 심사하는 대회의 심사위원처럼 과묵하게 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다연이가 만들었다는 것 말고는 별 것 없는 비빔밥이지만 여자의 얼굴은 진지했다.
“...”
다연이는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것처럼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지금 내놓은 비빔밥은 다연이가 처음 만들어 본 비빔밥이기도 하고, 엄마에게도 처음으로 내놓은 음식이니 지금처럼 반응을 보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연이는 계속 그러다가 대신 나에게 말했다.
“마싯게찌..? 내가 열씨미 만드렀으니까 마싯게찌?”
여기에 대답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밖에 없었다.
“응···”
“조아.”
나는 강요 당한 대답을 하고 나서 다연이 엄마의 반응을 기다린다.
“음..”
곧이어 비빔밥 한 숟갈을 다 먹은 다연이 엄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연이는 뭐라 대답하지도 못하고 긴장되는 얼굴로 대답을 기다린다.
여자가 말했다.
“맛있어! 진짜 맛있네.”
“흐흐..! 그럴 줄 아라찌!”
진심으로 맛있는 것 같은 표정을 보고 나서야 다연이는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그리고 더 자신감이 차오르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 설명해죠!”
“뭘?”
“얼마나 마시썻는지 설명해죠.”
“큭큭, 알겠어. 설명해줄게.”
다연이 엄마는 한 숟갈을 더 먹을 뒤, 설명을 시작했다.
“음.. 일단 엄청 예쁘더라. 다연이가 잘 꾸몄어.”
“마자. 전부 다 맞는 마리지. 나는 엄청 잘 하는 사람이니까.”
“응.”
내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여자는 더 의기양양해진 다연이를 앞에 두고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양념도, 채소도 맛있더라. 전부 다 잘했어. 너무 잘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거또 맞는 말이지.”
“다연이랑 오빠랑 같이 잘했어. 이거 다연이 오빠도 같이 한 거잖아.”
“마자! 가치 해서 맛있어져찌.”
우쭐해진 다연이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말했다.
“그러면.. 이제 설명 안 하고 먹어도 되지..?”
“응, 이제 설명 안 해도 괜찮아.”
엄마의 설명에 충분히 만족한 다연이가 먹어도 된다는 말을 하자 다연이 엄마는 그제야 비빔밥을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음.. 맛있다!”
다연이가 잘 먹는 게 누굴 닮은지 알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다연이가 내게 말했다.
“진짜 마싯는 거 가따. 우리가 잘 해서 그런 거야.”
“그래.”
다연이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때, 식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와 다연이는 반사적으로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녕..!”
“안뇽!”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부터 친구였던 민재와 하민이였다. 하민이 옆에는 쌍둥이 동생인 지민이도 같이 있다.
셋이 같이 온 걸 보니 부모님과 같이 우연히 우리 식당에 왔다가 마주친 모양이다.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다연이도 평소처럼 인사를 받아줬다.
다연이 입장에서는 엄마에게 음식을 대접해줬을 때 친구들이 뜬금없이 나타난 격이지만 다연이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다연이 엄마의 존재는 이제 다연이의 친구들도 알고 있다. 요며칠 간 다연이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 준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다연이도 직접 말했다고 했다.
친구들은 여자에게도 인사를 한 뒤, 차례차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 새 식당은 분주해졌다.
나도 분주해진 사람들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딱히 할 일이 없던 다연이는 그냥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맛있어.”
여자는 비빔밥을 먹으면서 다연이에게 말했다. 식당은 소란스러웠지만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다.
그냥 말 뿐이 아니라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다연이도 잘 먹는 모습에 홀린 듯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우와··· 진짜 마싯게따..”
자기가 직접 만들어줬으면서도 다연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만큼 다연이 엄마는 잘 먹는다.
분명 아픈 사람인데도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먹고 있었다.
내가 저렇게 아파본 적은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보통 티비에 나오는 아픈 사람들은 저렇게 잘 먹지 못했던 것 같은데.
분명히 힘없이 수저를 들고 쓰러지듯 입에 넣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 다연이 엄마는 내가 티비에서 본 사람들과 달랐다.
당연히 아픈게 거짓말 일리는 없다. 그건 여자가 가지고 있는 약들과 다른 진단서 따위를 확인해봐서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냥···
“저것도 유전인가···”
다연이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해도 돼.”
“먹꼬 시퍼···”
“자, 먹어.”
다연이는 아기새처럼 비빔밥을 받아 먹은 뒤 말했다.
“호오··· 진짜 마싯는 밥이다아···”
그렇게 다연이도 비빔밥에 거의 혼을 빼앗긴 얼굴을 하고 있으니 괜히 옆에 와서 앉아있던 다연이 친구들의 시선이 다연이를 향해 닿았다.
먹음직스런 비빔밥과 먹음직스럽게 비빔밥을 해치우는 모습. 그리고 다연이의 서툴지만 확실한 감상까지.
“너무 마싯어서 내가 안 만든 줄 아라써.”
그런 말과 행동에 옆에서 다연이를 훔쳐보고 있던 민재와 하민이가 물었다.
“그거.. 다연이가 만든 거야..?”
“응. 아.. 근데 내가 전부 다 만든 거는 아니야. 나랑 오빠랑 가치 만들어찌..! 그래서 마시써.”
“우와···”
친구들의 입장에서 다연이가 음식을 만들었다는 건 아주 대단한 일이었다. 비록 내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다연이 또래의 아이들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연이를 거의 존경 섞인 눈으로 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감탄을 흘리고 있던 아이들에게 다연이 엄마가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 다연이 좋아한다는 애들이구나? 맞지?”
“..!”
여자의 말에 친구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다연이의 눈치를 살핀다. 혹시 다연이가 싫어하진 않을까 싶은 얼굴이었다.
여자의 말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이들 중, 의외로 다연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자.”
“..!”
그 말에 더 놀란 눈을 했지만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다연이가 곧바로 말을 잇는다.
“내 친구들은 전부 다 나를 조아해. 그래서 민재랑 하민이도 나를 조아하지..!”
친구들은 다연이의 말에 조금 실망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이들은 아마도 다연이가 알아채 주길 바랬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친구들도 티를 내고 있긴 했는데 다연이는 아직도 잘 모른다.
여자가 말했다.
“큭큭, 그래. 친구로 좋아하는 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우리 다연이 좋아해줘서 고마워.”
그러자 아이들이 딱히 뭐라고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다연이를 좋아한다는 걸 다연이 엄마에게 들켜서 그런 거라고도 생각했다. 비록 다연이에겐 들키지 않은 것 같지만 다연이의 엄마에겐 들켰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해야할 반응은 한 가지 뿐이었다.
다연이 엄마에게라도 잘 보이는 것.
잠시 그러고 있던 아이들 중, 하민이가 입을 움찔 거리더니 말했다.
“마자요..! 나는 다연이 조아하지. 감사합니다.”
“나.. 나도야..!”
민재는 그런 하민이가 못마땅스러웠는지 곧바로 뒤이어 말했다.
“그래, 그래.”
다연이 엄마는 그런 둘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다연이만 어색하게 웃은 채,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을 뿐이다.
하민이는 그런 다연이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민재도 그런 하민이를 따라서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런 이상한 분위기는 다연이 엄마가 비빔밥을 이어서 먹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흐트러졌다.
아이들이 다시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을 때, 하민이가 물었다.
“이 비빔밥··· 다연이가 했다고 했지?”
“응, 나랑 오빠랑 가치. 근데 엄청 마시써.”
“응..”
다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하민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다연이가 만든 비빔밥 먹고 싶따··· 엄청 마싯을 텐데.”
그 말에 다연이가 입꼬리를 움찔거리면서 대답한다.
하민이의 말이 기분 좋은 모양이다. 자고로 음식을 만들어 주는 사람은 만들어 준 음식이 맛있다고 할 때, 가장 기분 좋은 법이니까.
“그러며언··· 내가 해주까?”
“진짜..?”
“응, 마싯을 거니까 내가 해줄 수 이찌..! 아, 먼저 오빠한테 물어보고. 그래야 해줄 수 이써.”
“응..! 조아.”
그 말에 민재도 뒤늦게 말했다.
“나도! 나도 해줘..!”
“응, 내가 무러볼게.”
“응.”
자신있게 대답한 다연이가 나에게 달려온다.
다연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친구들이.. 내가 한 비빔빱이 먹고 싶대. 또 해죠도 돼..? 오빠가 도와줘야 하니까 오빠한테 무러보는 거야.”
다연이는 설레는 얼굴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래, 도와줄게.”
“조아··· 그러면 내가 해준다고 할게!”
“응.”
다연이가 친구들에게 말하러 달려가고, 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다.
다연이랑 같이 하려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지금부터 빠르게 해야겠다.
.
.
오늘 저녁 손님들은 대부분이 비빔밥을 주문했다. 아마도 민재와 하민이의 가족이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게 아니면 비빔밥을 만든 뒤, 아이들이 잘 먹고 있는지 빤히 지켜보고 있었던 다연이 때문에 시선이 쏠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진짜 진짜 맛있다!”
다연이가 만든 비빔밥을 먹고 있던 친구들이 소리쳤다.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은 반짝였고, 숟가락을 잡은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다연이가 직접 만드는 모습을 봤고, 또 그 음식이 맛있었기 때문에 이러는 것 같다.
다연이의 친구들이 보기에 다연이는 불가능한 일을 했었으니까. 적어도 아이들의 시선에서 볼 때는 그랬다.
“다연이는··· 천재야..! 엄청 예쁜 천재야···”
아이들이 두서없이 칭찬을 이어나갔고, 다연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느 새 다연이의 친구들은 칭찬을 늘어놓기를 그만두고 다연이가 해준 음식을 먹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홀이 조용해지자 다연이가 천천히 주방 쪽으로 걸어왔다.
“후우..”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만족한 다연이가 긴 숨을 몰아쉰다.
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다연이가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예쁜 장식에 사진을 찍어가는 손님도 있어서 그런지 다연이는 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잘해써···”
“맞아.”
내가 대꾸했다.
아이들과 가족들은 다연이가 직접 서빙해준 비빔밥을 깔끔하게 비워냈다. 그리고 말했다.
“아까 봤는데.. 이거 애기가 다 한 거야?”
“쪼끔이요..! 오빠랑 가치 해써.”
“고마워. 진짜 맛있었어.”
“감사합니다!”
다연이는 여느 음식점의 사장님처럼 꾸벅 인사를 했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던 손님들이 줄줄이 식당을 나섰고, 시간이 흘러서 식당에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다연이와 나, 다연이 엄마만 남았다.
“나는 요리사야···”
다연이가 작게 중얼거린다. 아직도 자신감에 취해있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그런 다연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딸 잘해.”
“마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다시 시선을 들어서 다연이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왠지 그런 모습들을 보는 것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느낀 기분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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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끝내고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다연이 엄마도 오늘은 여기에서 자기로 했기 때문에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들떠 있었다.
집으로 간 이후에는 별 다른 일 없이 그냥 할 일만 했다.
내일 다연이 등원을 위한 준비라던지 야식으로 뭘 먹을지 같은 시덥잖은 고민들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연이가 말했다.
“아, 마따. 나 오늘 유치원에 있는 선생님이 숙제 하라고 해따.”
“숙제? 뭔데?”
“오늘 별 이야기를 해꺼든. 그래서 밤에 별이 있는지 보고 오래.”
“음.. 그래.”
숙제라고 하기엔 별 것 없었지만 유치원 생 아이들에겐 꽤 괜찮은 숙제인 것 같다.
다연이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나도 몇 달 간은 별을 본 적은 커녕 하늘도 본 적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치원 선생님의 숙제는 나름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옥상으로 올라가서 숙제를 했다.
너무 별 것도 아닌 일이어서 순식간에 끝낸 다음 다연이가 먼저 집으로 내려갔다.
“벼리가 많은 거 봐쓰니까 일기짱에 써야게따.”
다연이 말처럼 오늘은 별이 많았다. 그 별들에 감명 받은 다연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일기를 쓰러 내려간다. 요즘 한글 실력이 물 올라서 내가 없어도 서툴게나마 글을 쓸 수는 있었다.
물론 한글 책과 대조하며 글을 쓰는 바람에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인 건 틀림없었다.
나도 뒤따라 내려가려 했지만 때마침 옥상으로 올라온 고양이 때문에 쓰다듬다가 가기로 했다.
장사를 하고 있는 중에는 고양이를 봐도 그냥 보는 것에만 만족했기 때문에 쓰다듬을 기회가 많이 없어서 그랬다.
그렇게 고양이를 만지고 있을 때, 언제 왔는지 다연이 엄마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나는 슬쩍 인사를 한 다음, 고양이 만지기를 이어나갔다.
“오늘은 따뜻하네.”
“네.”
그 말처럼 다른 날에 비해 오늘은 따뜻했다.
점점 완연한 봄이 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시간은 한동안 조용하게 흘렀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거니는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부는 잡다한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조용하던 와중에 여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안 죽을래..”
나온 말은 뜻 밖이었다.
“네..?”
내가 다시 물으니 여자가 대답했다.
“이상한 말인데··· 죽기 싫어졌어.”
어두워서 가로등의 불빛만 옅게 비치고 있었다. 그 불빛으로 여자의 표정이 보였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나는 괜히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하늘을 봤다.
오늘은 까만 하늘에 별이 많이 떠 있었다.
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