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181 --------------
다연이의 목소리가 밝다. 다연이는 나랑 같이 식당으로 오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 식당에 엄마가 있는 것도 좋아했다.
그럴 때면 조금 안쓰럽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연이도 엄마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다.
단지 지금은 그냥 엄마랑 같이 있는 것이 좋을 뿐이었다.
“오늘 엄청 신나 보이네.”
내가 다연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다연이가 대답한다.
“나는 원래 엄청 신난 사라미자나. 그리고 집에 올 때 유치원 버스 타는 것또 재미써서. 집에 오니까 생각난다.”
다연이는 어린아이답게 떠오르는 것을 두서없이 말했다.
지금은 평소보다 신나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래, 왔으니까 가방 놓고 손 씻고 와.”
“웅!”
그렇게 말하고 다연이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홀에 나와 다연이 엄마, 둘만 남겨졌을 때, 다연이 엄마가 말했다.
“다연이 잘 키웠네.”
“네.”
“내가 그랬어야 했는데. 미안.”
“괜찮아요.”
그런 말들이 오가고, 위로 헐레벌떡 올라갔던 다연이는 다시 저벅저벅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다연이가 나에게 작게 말했다.
“엄마는 책이 재밌나 봐.”
책을 보고 있는 여자를 보고 한 말이었다.
“응.”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는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옅게 걸려 있었다.
“뭐해?”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던 다연이는 별안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활짝 웃었다.
다연이가 내게 말했다.
“오빠, 나 엄마한테 마싯는 거 해줘도 돼?”
“맛있는 거? 왜?”
“나는 요리를 엄청 잘하니까 마싯는 걸 해주면 더 조을 거 가타.”
다연이가 요리를 잘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엄마가 좋아할 것 같다는 말도 맞는 말이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는 다연이에게 무슨 요리를 할 건지 물었다.
“김밥 해주려고?”
“아니!”
“..?”
지금까지 다연이가 할 수 있고, 또 해 왔던 음식은 김밥밖에 없다.
아직 다른 요리를 하기엔 다연이는 너무 어렸고 서툴렀기에 지금까지는 김밥이 다연이의 마스터피스였다.
그런데 다른 요리를 하겠다니. 내가 이해 못 한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다연이가 말했다.
“다른 거 할 꺼야.”
“다른 거 뭐?”
“비빔빱..!”
“비빔밥?”
“응!”
확실히 비빔밥 정도면 다연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빔밥도 김밥처럼 다연이가 딱히 요리할 것들은 없으니까. 계란프라이 같은 건 내가 해주면 되고 다연이는 플라스틱 칼로 상추나 채소 같은 것들을 짓뭉개듯 자르면 될 것이다.
김밥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도 아니니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해.”
“오···! 알게써.”
다연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
“응?”
“내가 마싯는 거 해줄까?”
다연이가 그렇게 물으니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맛있는 거 해준다고..? 다연이 요리한다는 말이야?”
"응."
"다연이 요리도 할 수 있어?"
“응! 나 요리 엄청 잘하는데!”
엄청나게 잘하진 않지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를 할 수 있긴 하니까.
“정말..?”
“응!”
다연이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다연이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나이대에 이런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그래서 다연이가 대단하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우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최고로 머찐 요리사야!”
다연이의 포부를 듣고 다연이 엄마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최고로 멋진 요리사 맞아. 그러면 맛있는 거 해줘. 근데 뭐 해줄 거야?”
“비빔빱!”
“그래, 그거 해줘.”
“응!”
힘 있게 대답한 다연이가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온다. 그리고 내 앞에서 멈췄다.
“나 비빔밥 어떻게 하는지 알고 이써. 근데 재료는 나 혼자 준비 못 해. 도와주라.”
“그래.”
어차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7살짜리 어린 애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조아.”
나는 다연이를 도와서 재료를 준비한다.
원래 비빔밥은 우리 식당에서 팔고 있는 메뉴였기 때문에 재료는 다연이가 굳이 새로 썰지 않더라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 만들 비빔밥은 다연이가 직접 만들어주기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다연이가 요리에 직접 관여하는 방향으로 갈 생각이다.
“그러며언··· 나는···”
다연이는 생각에 잠겼다. 아마 요리 레시피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굳이 재촉하거나 내가 말해주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느려도 괜찮다. 다연이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곧 방법을 떠올린 다연이가 내게 말했다.
“어.. 내가 당근이랑 양파 짜르고 오빠가 구워죠.”
“응.”
나는 그것들 말고도 버섯이나 다른 재료들도 다연이에게 말했다. 원래 식당에서 파는 비빔밥은 재료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진 않지만 이번에는 다연이 엄마에게 주려고 만드는 거니 평소보다 더 재료를 많이 넣어서 만들기로 했다.
재료가 풍부할수록 비빔밥도 맛있어지니까.
“내가 조심조심 짜를게..!”
“그래, 조심해.”
내 말에 다연이는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당근 자르기 시작했다.
당근은 미리 내가 자르기 쉽게 나름 다듬어서 다연이에게 건네줬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탁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연이는 손을 다치지 않게끔 나한테 배운 방법으로 당근을 썰고 있었다.
어차피 위험하지 않은 플라스틱 칼이어서 베일 리는 없겠지만 손 모양을 따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
“잘하네.”
나는 다른 일들을 이어나간다.
밥을 적당하게 그릇에 퍼 담고, 끓는 물에 데쳐 놓은 콩나물과 시금치를 다른 접시에 따로 놓는다.
나머지는 다연이가 재료를 썰고 나면 해야 하는 것들이어서 나는 양념장부터 만들기로 한다.
양념장은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이다.
고추장 위에 참기름과 깨도 넣고 잘 섞어준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
하지만 그런 고소한 향도 잠시, 곧 고추장의 매운 향에 완전히 뒤덮여서 끝내 자극적인 매운 향만 남게 됐다.
나는 완성된 양념장을 옆에 놓아두고 다연이 쪽을 바라본다.
조심조심 채소를 썰어나가던 다연이도 이제 다 끝난 것 같았다.
“다 해따. 나 엄청 잘한 거 가타.”
다연이가 나를 보며 아까보다 더 우쭐한 얼굴을 했다.
다연이는 나에게 충분히 자랑했다고 생각하는지 이제 엄마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그 표정을 지었다.
“잘했어.”
다연이 엄마는 손뼉까지 치며 그렇게 말했다.
더더욱 우쭐해진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비빔밥을 만드는 데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
나는 다연이의 지휘에 따라서 채소들을 익히기 시작한다.
이번에 만들 비빔밥에는 우리 식당에 있는 채소가 거의 다 들어갔다. 물론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건 뺐지만 비빔밥에는 다양한 채소가 들어가는 것이 더 맛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다.
“다 꾸운 건 나한테 죠. 내가 예쁘게 올릴게.”
“그래.”
비빔밥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보기에 예쁘다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채소와 붉은 양념은 맛있기도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으니까.
그 역할은 다연이에게 전부 맡기기로 하고 나는 화룡의 눈을 찍어 줄 계란 프라이를 만들기로 한다.
드디어 마지막 조각을 얹고 나서야 고개를 든다.
“후아..! 다 돼따!”
나는 계란 프라이를 놔두고 다연이가 완성한 비빔밥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 잘해써?”
다연이가 묻는다.
어디서 보고 배웠는지 채소들을 색깔 별로 가지런하게 올려놓았다. 꼭 유명 잡지의 표지처럼 비빔밥만의 특색을 잘 살렸다.
“우와··· 엄청나게 잘했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진짜 다연이는 천재가 아닐까.
내가 요리하는 모습과 영상만 보고도 예쁘게 세팅을 했고, 요리를 지시하는 것도 7살이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다연이는 천재가 맞다.
“얼마나 잘했길래 그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연이 엄마가 물었다.
“아니야..! 조금 이따가 보여 주께!”
다연이가 그 말에 호들갑을 떨며 비빔밥을 가린다.
혼자서 잔뜩 신이 난 다연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 엄청 잘한 건 가봐..! 오빠도 잘했다고 해꼬.. 엄마도 엄청 보고 싶대!”
“응, 엄청 잘했어.”
“크크, 그러면 이제 엄마한테 주까?”
“아니, 잠깐만.”
아직은 주면 안 된다.
계란 프라이를 완성하고선 아직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을 장식할 계란이 없어도 비빔밥은 당연히 비빔밥이 될 수 있겠지만 없으면 생각나게 하는 것이니 넣는 것이 훨씬 좋다.
나는 마지막으로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 됐어. 이거 오빠가 갖다줄까?”
“아니, 내가 할래. 내가 해도 돼?”
“응, 그래도 돼.”
내 말에 다연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비빔밥을 담은 그릇을 번쩍 들어 올렸다.
쟁반이 아니라 비빔밥 그릇만 들어 올렸던 탓에 내가 수저를 들고 다연이를 뒤를 따라가야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는 다연이를 보니 괜찮았다.
텅.
다연이가 아주 자랑스럽게 비빔밥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다연이가 잘 만든 비빔밥이다.
나도 도와주긴 했지만 다연이가 한 것도 충분히 많았다.
“어때? 나 머시찌?”
다연이가 만들어 온 비빔밥을 보고 멍한 얼굴을 하던 다연이의 엄마는 곧 놀란 눈을 했다.
“우와.. 다연이 진짜 멋있네..? 이거 오빠한테 배운 거야?”
“응..! 오빠가 가르쳐 줘찌. 이거 저언부 다! 오빠가 가르쳐 준 거야.”
“오.. 진짜 대단해..”
“그러치!”
다연이가 우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웃었다. 많이 만족스러운 것 같다.
“빨리 머거 봐..!”
“알겠어.”
“호오···”
내가 계란 프라이를 완성했을 때도 다연이는 여전히 집중해서 비빔밥을 장식하고 있었다.
다연이는 젓가락질이 서툴렀기에 채소를 담아놓은 그릇 채로 들어서 슬금슬금 얹어가며 장식을 했다.
다연이는 비빔밥에 빠질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나와 다연이는 그 앞에 의자를 가지고 와 앉아서 엄마의 반응을 살펴본다.
다연이는 많이 기대되는지 나를 보고 만들어 놓은 비빔밥 바라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 먹어볼게?”
“응.”
다연이 엄마는 다연이의 시선을 받으면서 비빔밥을 열심히 섞는다.
공들여 만들었던 모양이 다 흐트러졌지만 다연이는 별로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냥 맛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섞으면서 모양은 흐트러졌지만, 비빔밥의 향은 주변으로 더 짙게 흩어졌다.
근처에 있던 나와 다연이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우와.. 마싯는 냄새. 오빠도 마싯는 냄새나지?”
“응, 나. 맛있는 냄새.”
“호오..”
우리는 비빔밥 먹는 모습을 부담스럽게 보고 있었다.
다연이 엄마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기에 다연이는 계속해서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먹을게.”
“응!”
오히려 다연이 엄마도 다연이의 시선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다연이 엄마는 숟가락 가득 비빔밥을 담는다. 붉게 물든 밥알과 갖가지 채소들. 그리고 작게 조각난 계란 프라이도 보인다.
“마시게 머거.”
다연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비빔밥 한 숟가락을 먹는다.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