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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가 엄마에게 유치원에 데려다 달라고 말하기 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다연이는 엄마에게 유치원 입학식 때 있었던 일과 입학하고 나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꼭 해야만 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작지만 아직 남아있는 유산 같은 것들. 다연이 엄마는 자신이 죽고 난 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다연이가 듣지 않을 때 했다.
그렇게 나눴던 많은 이야기들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오세요.”
“...”
이것도 다연이를 위한 제안이었다.
다연이가 엄마와 작은 기억이라도 나눴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면 나중에 다연이가 더 힘들 거야.”
“그래도 그게 나아요.. 아마도 나을 거에요.”
나는 내가 가진 기억들을 한 번 짙게 훑어 본 다음 말했다.
물론 슬플 거다. 그럼에도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떨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엄마가 기억 안 나거든요.”
다연이는 나와 다르게 자라야만 한다. 그래야 했다.
“...그래."
다연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병원은요. 치료 안 하실 거에요?”
“그것보다 여기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나중에 더 안 좋아지면 병원에 갈게. 마지막은 거기서 보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에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딱히 다른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은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뿌옇고, 다른 뭔가를 떠올릴 수도 없었다.
나는 단지 내 잘못된 생각과 결정에 여자와 다연이가 다치지 않게끔 주변을 더듬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네.”
멍한 대답이었다. 내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서 내놓는 답이 아니라 상황에, 말투에 못 이겨 튀어나온 말이었다.
딱히 다른 답을 해줄 수도 없었다.
내 인생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다른 해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다.
잠시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을 때, 어딘가에 있던 다연이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리고 많이 놀란 얼굴로 뭔가를 들이밀었다. 그것 사탕이었다.
다연이가 말했다.
“어··· 엄청 큰 사탕이다..!”
다연이가 다가오자 무거웠던 분위기도 순식간에 풀어졌다.
다연이는 놀란 얼굴로 내게 커다란 사탕을 내밀었다.
“오··· 진짜 크잖아.”
나도 그 사탕을 보고선 반사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 정도로 큰 사탕이다.
어디 광고에나 나올 만큼 큰 사탕.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거 어디에 있던 거야?”
나는 다연이가 이상한 걸 가지고 온 건 아닌지 그렇게 물었다.
그 때 다연이 엄마가 대신 대답했다.
“그거 내가 사 놓은 거야. 장보다가 그게 보여서 다연이 주고 싶었어.”
“오.. 엄청 큰 사아탕이다아..”
다연이는 이렇게 커다란 사탕은 처음봤기에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러케 큰 사탕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거야..! 머시따아···”
다연이는 사탕에 완전히 혼을 빼앗긴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연이는 사탕도 좋아하고 멋있는 것도 좋아했으니 지금 다연이의 눈앞에 놓인 사탕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거운 이야기를 그만두고 다연이를 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도 다연이가 없었다면 의미가 없는 이야기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좁은 곳에서 뛰어다니는 다연이를 보며 가만히,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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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다연이는 커다란 막대 사탕을 손에 쥐고 엄마에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내일 유치원에 데려다달라는 말이었다.
다연이 엄마는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에도 다연이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응? 나 유치원에 데려다죠!”
아마도 다연이는 알게 모르게 다른 아이들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당연히 엄마라는 존재가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을 거다. 지금까지는 애써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눈앞에 엄마가 있다.
다연이는 이참에 다연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바로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일 말이다.
“왜..? 지금까지.. 오빠랑 잘 갔다며···?”
다연이 엄마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찌. 근데 엄마랑도 가고 시퍼. 엄마랑은 한 번도 안 가봐짜나.”
“음···”
다연이의 부탁은 간단했다. 그럼에도 다연이의 엄마가 고민하는 이유에 대해 서툴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정을 떼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다연이 엄마에게 자신의 끝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에도 엄마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응? 안 돼..?”
다연이도 깊이 고민하다 내뱉은 말이었다. 다연이 엄마도 그런 다연이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더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이 자리에서 둘을 지켜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
한참 생각하던 다연이 엄마는 다연이 대신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될까?”
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가 그러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다연이가 나처럼 후회하지 않았으면 했고, 다연이 엄마도 그랬으면 했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 내가 판단할 수는 없었다.
다연이 엄마가 대답했다.
“그래, 그러자.”
“오..! 조아!”
다연이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엄마랑 같이 유치원에 간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은가 보다.
신이 난 다연이는 다시 이어서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가는 거니까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자! 그러면 더 조은 거야.”
“응..?”
다연이의 말에 엄마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다연이의 말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말해도 오려고 하지 않았던 다연이의 엄마는 결국 다연이 말을 따라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넘무 조은 거야..!”
다연이는 설레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휴대폰에 있는 시간을 슬쩍 들여다보고선 말했다.
“해 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지금 가야 될 것 같아요. 어떻게 하실래요?”
“...가자.”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표정이 묘하게 밝았다. 나도 그런 다연이와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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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연이 엄마는 이전에도 우리 집에 와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안까지 들여다 봤었지만 그 날은 집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나갔었다. 다연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강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여기가 우리 집이지..! 넘무 조은 집.”
다연이의 호들갑에 엄마가 작게 대답했다.
“응, 좋은 집이네.”
뭔가 아련한 목소리였다.
나는 뭐라고 말하려 했다가 다연이 엄마의 표정을 보고선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자고 가는 거지!”
“응.”
“호오··· 조아.”
우리는 여전히 신이 난 다연이와 같이 집 안으로 향했다.
다연이도 그 사실에 기대가 되는지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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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이 됐다.
어제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일들은 너무 낯설어서 그런지 어색하게도 느껴졌었다.
그렇다고 해서 힘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좋았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다연이가 그토록 바랐던 유치원 등원 시간이 찾아왔다.
어제 엄마와 약속했던 그 때가 말이다.
“후우··· 후···”
다연이가 설레는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의 손을 꼭 잡는다.
다연이가 나에게 말했다.
“오빠는 오늘 집에 이써..! 나는 엄마랑 가치 갔다 올게.”
“응.”
그런 다연이의 말이 딱히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저 다연이가 나에게는 없었던 엄마의 자리를 다시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습을 보니 내가 했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잘 갔다 와.”
“응!”
활기찬 다연이가 세차게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다연이의 엄마가 다연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후..”
나는 식당에 혼자 남아서 숨을 내쉬었다.
평일 이 시간에 식당에 있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늘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갔을 시간인데.
1년 만에 겪는 낯선 시간이었지만 다연이도, 다연이 엄마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니 더 편안해졌다.
“후···”
나는 조금 늘어난 여유를 느끼면서 식당을 열기 위한 준비를 한다.
“다행이야.”
문득 그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
한편, 엄마와 같이 유치원 근처까지 도착한 다연이는 우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연이도 알고 있지만 태양 유치원에는 통원 버스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다연이의 오빠가 유치원에 직접 연락해서 통원 버스 대신 알아서 가겠다고 한 것이다.
“다 왔네.”
“응!”
물론 다연이 엄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둘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히 세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아서 일일이 기억해 낼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좋은 이야기들이었다는 것만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엄마랑 가치 와서 엄청 좋타!”
“나도 좋아.”
“응!”
다연이 엄마는 문득 그런 다연이의 대답이 듣기 좋아서, 밝은 목소리에 미소가 절로 나와서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응.”
이건 아마도 슬픈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가장 밝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한동안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연이는.. 오빠랑 같이 있는 거 재밌지?”
“응..! 마싯는 것도 매일 해줘서 더 조아.”
“그래. 다행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빠한테도 많이 해달라고 해.”
“응!”
다연이 엄마는 잠시 눈을 떼고 저멀리 있는 벚꽃 나무를 본다.
아직 벚꽃이 피지 않은 앙상한 나무였다.
그 나무를 눈에 담은 엄마가 다시 천천히 다연이에게 시선을 옮기고선 말했다.
“다연이랑 계속 같이 있으면 좋을텐데. 밥 먹는 것도 보고... 나중에는 다연이가 결혼하는 것도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치?”
“그러면 가치 살면 되지..! 나 조아하는 친구들도 엄청 많아서 볼 수 이써..! 밥도 마니 먹어서 볼 수 이꼬.”
다연이가 자신있게 말했다. 마치 우쭐한 수달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오랫동안 생각한 다음 다연이에게 말했다.
“..대신 자주 올게. 가끔씩은 자고 갈게.”
“오..! 조아!”
“그래.”
담담했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끝낸 다연이 엄마는 다연이를 유치원으로 보냈다.
“안뇽! 유치원 마치고 또 보자!”
“응.”
한동안 다연이를 보던 엄마는 다시 걸어서 식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흠..."
오늘따라 날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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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도착한 다연이는 평소보다 많이 우쭐한 얼굴로 저벅저벅 안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힘이 넘친다. 그래서 더 좋다.
저벅저벅 걸어간 다연이는 선생님과 같이 배정된 반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안뇽!”
덩달아 강해진 아침 인사!
강한 인사에 미리 도착해 있던 다른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다연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다연이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동시에 인사했다.
“안녕, 다연이!”
“응!”
다연이가 모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받았다.
다연이는 태양 유치원에 온지 며칠만에 이 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