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181 --------------
***
오늘은 다연이가 유치원 입학식을 하는 날이다.
“후··· 오늘이 와따..”
다연이는 솔직히 오늘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어쩌면 어린이집의 졸업과 유치원 입학 날짜 사이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의 시간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엄마도 만났고 아팠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서 시간이 꽤 길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호오···”
사실 다연이는 이 정도 일로 쉽게 긴장하지 않는다.
유치원 입학이라니. 예전에 어린이집에 입학할 때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친구들도 많고 그 때와 비교해선 다연이의 자신감도 눈에 띄게 높아졌으니까.
그래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생겼었다.
“...”
그렇게 생각했는데도 막상 오늘이 되니 조금 떨린다.
사실 어제부터 떨렸다. 유치원 입학식에 대한 두려움이 번진 떨림은 아니고 그냥 입학식에 대한 기대가 전해진 떨림이었다.
그러니까 긴장은 되지만 무섭진 않다는 말.
게다가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이 정도 긴장은 괜찮을 거다. 다른 친구들도 같이 가니까 더더욱 그럴 거고.
다연이가 말했다.
“오늘 선생님도 오는 거 알지?”
“응.”
오늘 오는 선생님이라는 건 당연히 어린이집의 선생님을 말했다. 지금은 다연이의 선생님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냥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다연이가 유치원 입학식에 어린이집 선생님을 부른 이유는 있었다.
“선생님은 오빠를 조아하니까···”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제 다연이는 어린이집도 안 다니니 눈치 볼 필요는 없다.
다연이는 그저 판을 깔아줄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괜히 뿌듯해진다.
“후.. 나는 천재야.”
다연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빠가 말했다.
“밥 먹어.”
“응!”
밥이란 매일 먹는 거지만 그럼에도 밥 먹는 시간은 늘 기분이 좋다.
특히 오빠는 요리를 잘하니 먹는 재미도 있다. 그렇기에 다연이는 더욱 더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침을 먹기 위해 테이블로 향했다.
***
우리는 아침도 먹고 씻으며 등원 준비를 해나간다.
예전에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에는 이렇게 입학식을 거쳐서 가지 않았다. 다연이는 어린이집의 운영 중간에 들어갔으니까.
어린이집에 특별히 입학식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하지만 유치원의 입학식이란 어린이집의 그것보다 조금 더 중요한 행사라고 생각했다.
전에 알았다시피 유치원은 어린이집과 달리 교육을 하는 곳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초등학교로 들어가기 전에 예행연습을 하는 곳이라고도 생각했다.
“나 양말도 시너야 하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물었다.
“응··· 당연하지..”
“알게써.”
오늘따라 다연이가 묘하게 시간을 끄는 것 같다. 긴장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오늘의 입학식에는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도 많이 오실 거다.
그래서 다연이의 엄마도 오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었다.
“수바기도?”
“아니..”
“응.”
하지만 다연이 엄마의 대답은 달랐다. 자기는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었다.
물론 이 말은 다연이 없이 둘이서만 했던 대화였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왜 그런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러며언··· 김빱은?”
“아침 먹었잖아..”
“그래찌.”
아마 다연이의 엄마는 정을 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다연이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다연이와 엄마가 나름의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그러는 편이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오늘은 안 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나름대로 노력을 할 생각이다. 평소의 나답지 않은 행동일테지만 왜인지 그러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준비 다 했으면 가자.”
“응.”
그렇게 우리들은 식당을 나서서 유치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가는 길에 다연이의 어린이집 선생님도 만나서 같이 걸었다.
어제 다연이가 직접 연락했다고 말은 했었는데 진짜로 같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걷던 중에 다연이가 말했다.
“흐헤헤.. 어린이집 선생님이랑 가치 유치원에 가네?”
다연이는 뭐가 좋은지 그렇게 실실대며 걸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유치원을 간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가는 내내 그렇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가는 길에 선생님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연이가 꼭 오라고 해서..”
전혀 죄송한 얼굴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오히려 죄송한 건 난데 이렇게 대답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닙니다. 제가 죄송하죠..”
“아..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유치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하..! 조아!”
다연이는 양 손에 선생님과 내 손을 잡은 채 그렇게 웃고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흥에 못이겨 말했다.
“엄마, 아빠 같자나..!”
선생님께 실례가 되는 말이 아닐까 싶었지만 얼굴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어린 아이의 말로 넘기는 것처럼 선생님다운 웃음을 짓고 있어서 다행이다.
“잘했어···”
그런 선생님의 말 뒤로 다연이가 말을 이었다.
“진짜 우리 엄마는 집에 이찌만..!”
“..?”
나는 다연이의 말에 흠칫 놀랐다. 다연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다연이가 이 말을 꺼낸 걸 보니 이제 다연이는 엄마라는 말을 피하지 않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말을 잘 꺼내지 않았던 예전과 비교해선 확실하게 달라졌다. 이렇게 바깥에서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문득 다연이 엄마를 직접 찾아갔던 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가 한 선택이 틀렸으면 어떡하냐는 생각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었다.
이전에 다연이를 키웠을 때는 나처럼만 되지 않기를 생각하면서 행동했지만 그 때의 선택은 내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응..?”
하지만 선생님은 다연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연이의 엄마가 안 계신 줄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었고.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선생님에게 말했다.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아.. 말씀하시기 곤란한 일이면 안 하셔도 돼요..”
나도 다연이가 말하기 싫어한다면 굳이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다연이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다.
이건 나중에 다연이와 이야기를 나눈 뒤 말해야겠다.
“네.”
나는 선생님의 말에 대답한 뒤,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다연이의 유치원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전에 어린이집이 있었던 곳과 비교해선 거리가 꽤 있는 편이지만 걸어서 가기엔 그리 멀지 않은, 그런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간다면 금방 도착하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다연이가 걸어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선생님이 다연이에게 말했다.
“아주 잘했어, 다연이..”
“나는 원래 잘하는 사라미니까요..!”
선생님과 다연이는 무슨 이야길 하는지 사이가 좋아보였다.
선생님은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걷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태양 유치원에 금방 도착했다.
“오.. 나 유치원 처음 와 보는 거야···”
다연이가 유치원 앞에 도착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도착한 유치원은 생각보다 신기했다. 내가 유치원에 다녀본 경험도, 기억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예상보다 더 화려하고, 뭔가···
“...멋있네.”
유치해 보였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어쩌면 내 눈에는 당연히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때는 유치하지만 다연이에게는 그러지 않은 것 같았다.
“진짜 머시따..!”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안 쪽으로 향했다.
안 쪽은 다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 있었다. 입학식 답게 북적북적한 사람들의 틈에 끼여서 들어갔다.
“오..!”
유치원 안에는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도 눈이 갔지만 우리의 시선을 가장 강하게 잡아 끈 것은 유치원 안 쪽에 장식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뭔가 되게 화려한 것들이 잔뜩 장식이 되어있다. 하지만 그 곳에 모인 아이들은 장식을 구경할 틈도 없이 잔뜩 긴장해서는 배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머시따!”
그 중에서 다연이만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나도 저기 가서 앉으면 되는 거야?"
"응, 저기에 앉아있어."
"응!"
대답한 다연이는 내가 가리킨 의자로 쪼르르 달려가서 앉는다.
다연이가 앉은 의자는 우리 바로 앞에 있는 의자였다.
그 덕에 다연이도 우리와 같이 있을 수 있었고 우리도 다연이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입학식에는 다른 아이들도 많았다.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다녔을 때 친했던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안뇽!”
“안녕!”
다연이가 어린이집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고, 우리도 다른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그 중에는 혜원이네 부모님도 있었다.
“아..! 선생님도 오셨구나!”
“네..”
나는 선생님이 당황하지 않게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려 했지만 혜원이네 부모님은 내가 말을 충분히 이어나가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정확하게 뭘 알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걸 봐선 내 짧은 변명이 나름 도움이 됐던 모양이다.
나는 옆에서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혜원이네 부모님과 선생님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연이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
“안뇽!”
다연이는 여전히 친구들과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입학식에는 처음보는 친구들이 많이 왔으니 다른 아이들도 자기가 아는 친구들과 모여 있는 경향이 있었다.
뭔가 이렇게 보고 있으니 내가 다연이의 아빠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런 마음으로 다연이를 키우고 있긴 했다. 한 번도 아빠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왜인지 마음은 그랬다.
나는 다연이의 오빠였지만 그런 위치로는 다연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연이를 키우기 위해선 아빠가 되어야만 했다. 나도 그런 역할을 반갑게 받아 들였고.
오히려 그게 더 편했다.
그랬기에 지금 유치원에 입학하는 다연이의 모습을 보는 건, 생각보다 더 새로운 기분이었다.
옆에서는 선생님과 혜원이네 엄마가 아직도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었을 걸요?”
“저.. 정말요..? 다연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최대한 조심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름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다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의 무리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아이들은 여자 아이 두 명과 남자 아이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아이들이 다연이와 친구들의 앞에 멈춰섰다.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안뇽!”
다연이가 먼저 인사했고 다른 아이들도 다연이를 따라 인사했다.
다만 다연이를 좋아하는 남자 아이들만 떨떠름한 얼굴로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자 다가온 다른 여자 아이들이 웃음을 지으면서 다연이에게 말했다.
“너 예쁘다. 나랑 친구할래?”
그 말에 다연이와 같은 어린이집의 친구였던 민재와 하민이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아마 여자 아이는 상관없지만 같이 따라온 남자 아이들이 탐탁치 않은 모양이다.
다연이의 인기가 많은 건 언제 봐도 기분 좋은 일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더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팝콘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만큼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
“응! 친구하자!”
다연이는 그 여자 아이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여자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이자 남은 건 이제 남자 아이들 뿐이었다.
다연이와 같은 어린이집 출신인 민재와 하민이. 그리고 다가온 남자 아이 둘.
그 중 한 명이 말했다.
“나도 쟤랑 친구할래."
그 때 민재와 하민이가 남자 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말했다.
"안 돼."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