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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에게 냉면을 서빙하기 전, 민우는 식당의 주방 입구에서 냉면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민우의 엄마가 말했다.
“거기서 뭐해?”
“그냥 보고 있어.”
민우는 이 집의 막내다.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막내였기에 민우가 아무리 복잡한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누나나 부모님에게 그 생각의 의도를 들킬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민우의 엄마는 민우가 단순하게 그냥 보고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또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제대로 말해. 뭐하려고?”
그렇게 묻자 민우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다연이한테 직접 주려고..”
그런 것 쯤이야 상관없긴 했지만 민우가 가서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랐다.
특히나 다연이는 오늘 고깃집의 매출까지 늘려준 장본인이었기에 최대한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도 민우가 서빙하는 것 쯤은 상관없을 테니 그러라고 했다.
“그렇게 해. 어차피 하나 뿐이니까 안 무거울 거야.”
“응..!”
“안 쏟게 조심하고. 이제 9살이니까 잘 할 수 있지?”
“당연하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민우에게 냉면을 담은 쟁반을 건네준다.
“잘 갔다 와.”
“응!”
사장님은 민우가 다연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디 다연이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길 바랄 뿐이다.
잠시 후, 냉면 서빙을 마치고 민우가 다시 돌아왔다.
냉면 서빙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민우는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민우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다연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오늘따라 우울해보이는 다연이의 기분을 바꿔주기 위해서 이런 일들을 벌였던 것이다.
“흠··· 부족해.”
하지만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직 다연이의 기분이 완전하게 풀어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우는 왜 그런 건지에 대해서 생각에 잠겼다.
“음..”
누나는 그런 민우를 이상하다는 듯 보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다가 떠올린 이유는 이랬다.
바로 민우가 직접해준 뭔가가 없었다는 것.
민우는 다연이를 위해 과자와 장난감을 많이 가져왔지만 그것들이 다연이의 기분을 바꾸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연이는 맛있는 고기를 먹고 기분이 바뀐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민우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나도 다연이가 먹고 싶어하는 걸 줘야 돼.”
하지만다연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아직도 옆에 쌓여 있는 많은 과자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왕이면 민우가 직접해준 음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민우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뭘 줘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엄마, 쟤 또 뭐 이상한 거 할 건가 봐.”
그런 민우를 지켜보고 있던 민우의 누나가 말했다.
그 말대로 민우는 이상한 걸 할 생각이었다. 누나가 보기엔 이상한 것이 맞다. 민우에게는 아니었지만.
민우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은 과일이었다. 다연이는 고기와 냉면을 먹었으니 후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겠지만..
“아니지.”
다연이는 그렇지 않을 거다. 그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연이에게 줄 과일로 떠올린 것은 사과였다.
사과는 후식으로도 먹기 적당할 뿐더러 엄마가 다른 손님들에게도 종종 내주곤 했던 과일이니까.
물론 지금은 사과가 제철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이라면 식당엔 없다.
하지만 요 며칠 전에 아빠가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해서 사놨던 것들이 몇 개 있었다. 민우는 그 사과를 집에서 들고 왔었다.
민우는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사과를 보여준다.
“어머, 이걸 또 언제 가져왔대..?”
“나 이거 다연이한테 주고 싶어.”
민우가 그렇게 말하자 민우의 엄마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말했다.
“음··· 그래. 다연이한테는 뭐든 줘도 괜찮아. 그럼 깎아줄까?”
“아니, 내가 깎을래.”
“네가?”
“응, 그거 줘. 감자칼.”
당연하게도 민우는 진짜 칼로 사과를 깎을 수 없다. 하지만 감자칼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엄마에게 사과를 조각 내달라고 말한 뒤, 감자칼로 껍질을 깎으면 될 것이다.
“알겠어, 조심하고.”
“응.”
나름 오랜 시간이 지나고, 사과가 완성됐다.
민우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공을 들였다고 해도 충분할 만큼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는 다르게 결과물은 그리 좋지 않았다.
“모양이···”
하지만 민우는 그 사실을 모른다. 단지 옆에서 보고 있던 엄마와 누나가 그렇게 말할 뿐이다.
“좋지?”
“응···”
민우가 상처 받지 않게 그렇게 말했다.
이제 민우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 완성된 사과 조각을 다연이에게 선물해주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좋아할까.
“이거 갖다주고 올게!”
“....그래.”
민우는 당당한 걸음으로 다연이에게 향했다.
***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과 조각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온 사과라고 해도 믿을 만큼 모양이 이상했다.
자른 면을 보면 칼로 깎은 것 같지는 않았다. 민우는 아이인 만큼 당연히 그랬겠지만.
그렇다면 뭘로 깎았는지 생각해봤다. 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 감자칼로 깎거나 했겠지. 아이들이 쓸 수 있는 칼은 그 정도 밖에 없을 테니까.
“이.. 이거 진짜 이상해..?”
조금 당황한 민우가 다연이에게 물었다.
민우는 생각보다 그리 표정 변화가 많은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누가봐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민우의 말에 무심코 대답했던 다연이는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선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아니야..! 안 이상해! 내가 잘못 말해따.”
“그치..? 안 이상하지?”
그렇게 말했음에도 다연이의 눈빛은 그대로 였다.
이건 진짜 지옥에서 돌아온 사과 같다. 모양도 그렇고 먹어보진 않았지만 맛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연이가 말했다.
“이거.. 애벌레 같다. 과일 수호대에 나오는 악당이야. 그거 닮아써.”
“진짜..? 나는 그거 안 봐서 잘 몰라.”
“그거 마자.”
애벌레 같다는 말이 칭찬은 아니겠지만 민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찌됐든 다연이가 재밌어 하면 된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민우가 말했다.
“그럼 이거 먹어볼래? 내가 줄게.”
민우는 자신있게 말하면서 함께 가져온 포크로 사과를 집어서 다연이에게 내밀었다.
포크 끝에 꽂혀 있는 사과 조각.
“으.. 이상해···”
다연이는 그 사과 조각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마치 진짜 살아있는 애니메이션 속 악당을 본 것 같은 얼굴이다.
“....”
그 모습에 충격 받은 건 민우였다. 꼭 고백에 실패한 남자 아이 같은 얼굴이다.
다연이는 뒤이어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다시 알아차리고선 먹겠다고 말했다.
“아..! 미아내! 내가 또 이상하게 말해따..! 오빠가 까끈 사과 이상하다고 한 거 아니야!”
“응..”
하지만 민우는 이미 상처 받은 얼굴이었다. 비록 다연이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누가봐도 그래보였다.
“으··· 먹는 다아..! 다여니가 이거 머거..!”
다연이는 조금 당황했는지 평소답지 않은 말투와 표정으로 사과를 베어문다. 다연이가 먹는 걸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그런데.... 찡그린 얼굴로 사과를 먹자마자 다연이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응..?”
“맛있지?”
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연이와 맛있냐고 묻는 민우.
그런 민우의 표정이 조금 간절해 보인다. 곧이어 다연이가 대답했다.
“응..! 마시따!”
“휴..”
생긴 건 저래도 생각보다 맛있는 모양이다.
하긴 그래봤자 사관데 다를 건 없겠다. 왜 아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오빠도 머거 봐..! 이거 엄청 달콤한 사과다!”
“맞아. 맛있는 사과라서 내가 가지고 온 거야.”
그렇게 말하는 민우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나는 다연이의 말대로 사과를 먹기 시작했고,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민우도 내가 권하자 깎아온 사과를 같이 먹었다.
“오..”
사과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적당한 단맛과 특유의 아삭거림은 길었던 식사 끝에 남아있었던 음식들의 잔향을 깔끔하게 마무리 시켜줬다.
모양은 많이 이상했지만 확실히 맛은 있다. 물론 이건 민우 덕이 아니라 그냥 맛있는 사과를 샀을 뿐이지만.
게다가 이 달콤한 맛. 사과라는 과일이 입가심에 제격이었기 때문에 내가 특히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맛있었다.
분명 지금은 제철이 아닐 텐데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과를 먹고 있을 때 다연이가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모양은 이상한데 마시는 이써....”
“그렇네.”
우리는 그렇게 사과를 전부 해치웠다.
“잘 먹었어.”
“나도!”
나와 다연이는 민우에게 말했다. 그러자 민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좋아···”
민우도 나름대로 만족해서 다행이다.
다연이가 맛있게 먹는 걸 바랬을 테니 목표도 달성했고.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처음엔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가져왔었다. 그러나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사장님은 반대했다.
게다가 다연이의 의도치 않은 홍보 덕분에 고기도 더 많이 팔렸다고 하니 우리는 그냥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일들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시 헤어질 시간이 왔다.
여기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은 단연 민우였다. 그 심정이 표정에 온전히 드러날 정도였으니까.
민우가 그러고 있을 때 사장님이 말했다.
“다연이 잘 가. 앞으로도 자주 오고. 맛있는 거 많이 줄 테니까..!”
“네..!”
“어유.. 다연이는 잘 먹으니까 보기 아주 좋아. 오빠 닮아서 그런 건가?”
“음.. 맞는 거 가타요.”
그런가. 닮은 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민우가 말했다.
“맞아. 아저씨랑 다연이랑 닮았어요. 먹는 거도 비슷하고 행동하는 것도 비슷해. 웃는 건 안 비슷하지만.. 그리고 아저씨는 안 귀여워.”
“그래..”
그 말에는 민우의 사심이 많이 섞여 있었다. 어찌됐든 남들이 보기엔 나랑 다연이랑 닮아 보이는 구나.
단지 외모만 아니라 행동에서 많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긴 다연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내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았고 처음에 만났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연이는 나와 많이 다르다. 더 밝고 활기차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그러자 문득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내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다연이처럼 됐을까.
그런 감상적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민우가 말했다.
“근데 다연이는 귀여워···”
“고마워!”
다연이와 민우, 둘이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런 생각들이 금새 날아갔다.
우리는 얼른 인사를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안뇽.”
“안녕! 다음에 또 와.”
“응!”
짧은 인사에도 민우는 열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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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그 동안 다연이와 같이 엄마를 만나러 가기도 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나는 다연이의 엄마에게 별 다른 감정을 느끼진 않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연이가 후회할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말이다. 그래서 그랬다.
같이 집에서 살자는 이야기도 살짝 꺼냈지만 그건 다연이의 엄마가 반대했다.
그냥 이대로 가끔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물처럼 빠르게 흘러가서 오늘은 다연이의 유치원 입학식 날이 됐다.
“후우··· 오느른.. 유치원에 가는 날이야아···”
다연이는 평소답지 않게 긴장되는 심경을 잔뜩 드러내며 말했다.
단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