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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가 아팠던 건 아마도 엄마와 있었던 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날 다연이는 엄마와 깔끔한 이별을 했다. 처음의 두리뭉술한 이별과는 다르다.
그리고 다연이는 아직 잘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나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도 알았고, 엄마가 아직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다연이처럼 어린 아이에게는 조금 과한 감정과 스트레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앓아누운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연이는 이렇게나 아팠지만 그래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엄마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과 자신을 싫어해서 버린 게 아니라는 것. 이것만으로도 컸다. 적어도 다연이가 컸을 때, 나처럼 떠오르지도 않는 엄마를 상상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아직도 답을 모르겠지만 내가 내린 결정의 결과는 그랬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는 다연이 스스로 이뤄낸 것이다.
바로 엄마를 만나러 갈 수 있게 된 것. 다연이 스스로 꺼낸 말이었고 나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자세한 건 시간이 흘러야 아는 것이겠지만.
“후··· 이제 거의 다 나은 거 가따.”
오늘은 다연이가 아팠던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날이다.
다연이가 아팠던 3일 중 첫째 날은 식당 문을 닫았고 어제와 오늘은 시간을 단축해서 열고 닫았다.
그리고 지금은 식당 문을 완전히 닫고 올라온 상태였다.
“보자..”
나는 다연이가 아직 열이 있는지 확인했다.
“음.. 열은 없네.”
“전부 다 나아찌.”
“아니야, 아직은 조금 더 있어야 돼.”
한 번 많이 아파서 그런지 다연이의 얼굴은 어제보다 조금 괜찮아져 있었다.
그 날의 기억도 많이 옅어진 듯했다. 차라리 이렇게 되니 그 날의 일을 떠올려도 전보다는 괜찮을 것 같았다.
우울했던 그 날의 구체적인 기억들을 옅어지고 이제부터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좋은 기억이 크게 남을 테니까.
“내일은 전부 다 낫게찌? 나 이제 누워있는 거 시러..”
“응, 약 잘 먹고 잘 먹으면 금방 나아.”
“응.”
아직 유치원에 들어갈 때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유치원에 가기 위한 준비는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이지만 다연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그렇게 있다 보니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됐다. 사실 식당을 열고 있느라 저녁을 먹는 시간이 조금 늦춰졌다.
어제까지는 다연이에게 죽을 먹였지만 오늘은 다른 것을 먹일 수 있으니 간만에 맛있는 음식을 해줘야겠다.
그러는 편이 다연이가 더 빠르게 나을 것 같았다.
“근데에 오늘도 죽 머거?”
“아니, 오늘은 다른 거 먹을 거야.”
“오..! 뭐 머글 거야?”
다연이는 며칠 만에 반짝이는 눈을 하면서 물었다.
이런 반응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됐다. 혹시 계속 우울해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다행이다.
물론 아직까지 약간의 무기력함은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대답했다.
“몰라. 아직 결정을 못 했는데. 뭐 먹을래?”
뭐든 먹어도 된다. 이틀 동안 참았고 오늘은 상태도 많이 회복됐으니 죽보단 다연이가 좋아하는 걸 먹는 편이 회복에 더 도움이 될 거다.
내 말을 듣던 다연이가 곧바로 대답했다.
“고기. 고기 먹꼬 싶따.”
“그래.”
고기를 먹으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일단은 고기를 사야 했고, 집에 쌓아놓았던 야채도 떨어지는 바람에 상추처럼 고기와 같이 먹을 것들도 사야 했다.
그래도 3일 만에 나은 다연이가 먹고 싶다고 했으니 사줄 거다.
고기와 야채를 사기 위해 움직이려던 때, 문득 내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나와 다연이는 흠칫 놀라며 휴대폰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유는 다연이 엄마와 만났을 때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 날 전화번호를 교환했던 일은 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울리던 벨 소리는 다연이 엄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혹시 다연이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옆에 있던 다연이도 숨을 죽이고 가만히 내 휴대폰을 엿본다.
“후···”
휴대폰을 확인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연이의 엄마가 아니었다.
“누구야..?”
다연이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민우. 누군지 알지?”
“응.”
정확히 말하자면 민우가 아니라 민우의 누나였지만.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평범한 인사말이 오가고 본격적으로 왜 전화를 걸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왔다.
“다연이 어린이집 졸업했다면서요?”
“응, 졸업한 지 조금 됐어.”
뒤늦은 축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다연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휴대폰을 스피커로 바꿔서 다연이도 같이 들을 수 있게 바꿔 놓는다.
“안뇽.”
다연이가 인사를 하고 민우 누나인 가인이가 반갑게 대답했다.
“안녕! 근데 목소리에 기운이 없네..”
덩달아 가인이도 목소리가 축 쳐진다.
“괜차나. 아팠는데 이제 다 나아찌.”
“다행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가인이는 마침내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나간다.
“아, 다연이 졸업한 기념으로 맛있는 거 주고 싶어서 전화했어! 고기 주려고.”
“조아..!”
안 그래도 오늘 고기를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바로 오면 돼. 아무것도 가지고 올 필요 없어요!”
“응.”
당부의 말이 몇 번이나 더 오고 난 뒤에야 전화가 끊겼다.
조금 갑작스럽긴 했다. 다연이가 졸업식을 한지는 시간이 꽤 지난 시점이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맙지 않은 건 당연히 아니다.
사실 다연이의 졸업 축하 전화를 받자마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연이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어린이집의 졸업이면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정말 고마웠다.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고기 먹으러 갈래?”
“응.”
평소처럼 활기찬 대답은 아니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다연이와 나는 오랜만에 일어서서 식당으로 향했다.
고기 먹으러 가는 다연이의 표정이 이런 건 오늘이 처음이다.
분명 웃고는 있었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묘하게 우울한 분위기가 묻어 있었다.
나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지금 가고 싶어서 가는 거 맞지?”
다연이의 얼굴에 뭔가 우울한 분위기가 내려 앉아있는 것 같아서 일부러 장난기를 섞어서 말했다.
그 말에 다연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웅, 마자. 고기 먹고 시퍼서 가는 거야.”
“...그래.”
아무래도 이건 시간이 충분히 흘러야만 나아질 것 같다.
다연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우울감은 아마도 반드시 겪어야만 할 기분일 것이다.
그런 기분을 이겨내는 데에 맛있는 고기를 먹는 것도 좋을 거다.
우리는 금방 식당에 도착했다. ‘불타는 고기’라고 적혀 있는 식당은 저번에 왔을 때와 똑같았다.
여전히 특이한 이름이다.
식당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손님들이 많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특히 손님들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안으로 들어서자 우리를 발견한 민우와 가인이가 반겨준다.
“어서 오세요..!”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우리를 맞는다.
“안녕.”
그 옆에 서 있던 민우도 수줍게 인사했다.
“웅, 안뇽.”
다연이도 똑같이 인사한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평소 다연이의 목소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연이의 힘없는 목소리에 민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우도 다연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짐작한 모양이다.
민우는 다연이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말했다.
“안 좋은 일 있어..?”
조심스런 말투였다. 혹시 물어보면 안 될 것을 물어본 건 아닌지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아니.”
다연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히려 간단해서 더 무슨 일이 있는 것만 같다.
그래도 민우는 더 물어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물러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민우의 누나가 나에게 살짝 묻는다.
“다연이 무슨 일 있어요?”
이렇게 묻는다고 해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이건 우리의 개인적인 일이니까.
예나는 알려줬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일이 있었어. 어제까지 아프기도 했고.”
가인이는 내가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러면 얼른 맛있는 고기를 내줘야겠네요..! 다연이는 고기를 좋아하니까!”
그 말을 들은 다연이가 대답했다.
“마자.”
평소보다 밝진 않지만 그렇다고 많이 우울하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의 얼굴도 웃고 있었다.
“그러면 얼른 자리에 앉아요. 기다리고 있으면 좋은 고기 가져다드릴게요.”
“응.”
그 말을 따라서 다연이와 나는 테이블에 앉는다.
원래라면 장난도 치면서 기다렸을 다연이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얼른 예전의 다연이가 더 보고 싶어졌다.
“배고파.”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아이들의 어머니가 고기를 들고나오신다.
보통 서빙은 아이들을 시키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왜인지 직접 나오셔서 고기를 건네고 있었다.
“자, 다연이 배고프지?”
아이들의 어머니, 지금은 이 식당의 사장님께서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이는 손에 든 고기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 졸업한 거 듣고 아줌마가 선물을 가져왔지!”
“선물..!”
이 동네 사람들은 다연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전부 알고 있는 듯했다.
선물과 고기. 다연이는 이것 두 개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선물로 고기를 준다니.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다.
텅.
사장님이 자신 있게 고기를 내려놓고선 설명을 이어나간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귀여운 애가 어린이집 졸업을 했으니까 우리도 선물을 준비한 거야.”
“오··· 나는 귀여워요..”
그 말에 웃고 있던 사장님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민우가 다연이 이번에 어린이집 졸업했다고 얼마나 말을 하던지. 진짜 확 내쫓아버리고 싶었지만..”
“아, 엄마..!”
“그래, 안 할게.”
민우네는 아직도 사이가 좋다.
사장님이 가져온 고기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특별히 소고기를 준비했지. 다연이 소고기 뭔지 알고 있지?”
“네에, 엄청 마싯는 거 자나요.”
“맞아, 등심이랑 부채살. 많이 먹어.”
등심이랑 부채살이라니. 아무리 고기에 대해 잘 모르는 나라고 할지라도 그 부위가 꽤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다.
특히 이렇게 선물로 주기에는 많이 비싸다.
“어.. 너무 비싼 선물인데요..”
“괜찮아요. 저희 민우랑 가인이도 많이 얻어 먹었는데요.”
“그래도..”
“그리고 다연이가 저희 식당 홍보도 해줬다면서요? 그것도 고마워서.”
나는 그 말에 다연이를 본다. 다연이는 오랜만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어?”
“응!”
그 뒤로 다연이한테 들었는데 '불타는 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저번에 일기장에도 적었고 친한 학생들에게도 여기 오라고 가끔식 말했었다고 한다.
일기장에 적었다면 나를 거쳐 갔을 텐데 습관적으로 글을 보다 보니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우쭐한 미소를 짓고 있던 다연이를 내버려 두고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한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그래요! 처음엔 이런 거 주려고 해도 그렇게 거절을 하시더니..! 요즘은 잘 받아서 좋네요.”
그랬었나. 잘 몰랐지만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바뀌게 된 데에는 많이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 컸다. 많이 받는다고 해도 그만큼 다시 배풀면 되니까.
“고기다아···!”
소고기를 보던 다연이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그래도 여전히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처음보다는 눈에 띠게 밝았다.
“비싼 고기야.”
내가 다연이에게 말해주자 다연이가 대답했다.
“비싼 고기면 마싯겠지?”
“응,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말해야 돼.”
“응..! 감사합니다!”
다연이의 말을 듣고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맛있게 먹어. 그래야 선물 잘 받는 거야.”
“네..!”
사장님은 그 말을 남겨두고서 자리를 떠난다.
“마시게따···”
소고기를 바라보던 다연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
한편 민우는 식당 한 구석에서 다연이가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민우가 느끼기에 오늘 다연이는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평소 같았으면 기분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오늘은 그런 날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민우의 예리한 통찰력을 이용해서 봤을 때는 다연이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렇게 밝던 다연이를 우울하게 만들 정도의 일.
“으···”
그런 생각을 하니 민우는 문득 화가 나서 혼자 의자를 아주 약하게 걷어찼다.
혹시라도 세게 찬다면 엄마가 혼낼 것 같았다.
민우가 화가 난 이유는 당연히 다연이를 우울하게 만든 그 뭔가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우는 금새 마음을 다잡았다. 다연이를 우울하게 만든 그것은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당장 민우가 다연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가 있을 것이다.
민우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살폈다.
다연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뭘 해야 할까.
“그래.”
문득 뭔가를 떠올린 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집을 향해 달려간다. 민우의 집은 식당 바로 옆에 있다.
“어디 가?”
민우의 누나인 가인이가 물었다.
“집에.”
“집에 왜?”
“다연이한테 뭐 주고 싶어서.”
“...?”
가인이는 쏜살같이 달려가는 민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