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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문은 철제로 되어있었다. 낡고도 녹이 슨 문.
나는 그 문을 살짝 밀었다. 그러자 철제문이 스르르 열린다. 문단속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주 작은 마당이 보인다. 나는 몇 걸음 만에 마당을 가로질러서 집 안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선다.
그리고 곧이어 문을 두드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자를 기다렸다. 그러자 조금 있다 다연이의 엄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많이 놀란 얼굴이었다. 야위기도 했다.
다연이 엄마는 정말 우리가 올 줄 몰랐다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친구라는 사람의 말이 맞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집. 우리는 그 집 한가운데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 여기는 어떻게 왔어..?”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럴 만도 했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직접 찾아올지 전혀 몰랐을 테니까.
물론 우리가 여기로 오게 될 거라는 건 나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친구분이 우리 식당에 오셨어요.”
“응..?”
친구의 말처럼 다연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바로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연이는 어제의 말을 듣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들어서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일단 대강 뜻만 알 수 있게 말하기로 했다.
“어제 친구분한테 다 들었어요. 대충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아···”
그 친구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다연이의 엄마는 친구가 누구인지, 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강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다연이의 엄마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딱히 동정하기 위해 꺼낸 말은 아니다. 어차피 여자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다만 옆에 다연이가 있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한 말이었다.
끄덕.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묻고 싶은 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전부 한꺼번에 쏟아낼 순 없었다.
나는 많은 질문 중 하나를 골라내서 입을 열었다.
“...다연이가 만나고 싶다 해서 왔어요. 다연이가 보고 싶어 해서 온 거예요.”
이곳에 온 이유는 다연이가 결정이 가장 컸기 때문에 우선 그 말부터 했다.
여자는 잠시 다연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많이 컸네.”
여자가 먼저 운을 떼자 다연이도 덩달아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별것 아닌 대화였다. 여태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지난 1년 동안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다연이와 엄마의 대화에는 어색함이 묻어있지 않았다.
한참 대화를 이어나가다 다연이와 엄마와의 대화가 끝이 났다.
별것 없는 내용의 이야기였지만 다연이와 다연이 엄마에겐 그렇지 않았다.
다연이도 이제 대화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내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이제는 나만 남았다. 다연이 엄마에게 하려고 생각했던 질문들과 꼭 들어야 하는 대답들만 남아서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응..”
“...둘이서만 하고 싶어요.”
엄마가 아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여자도 다연이에게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연이도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겠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옆에 있던 다연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러.. 나도 듣고 시퍼..”
다연이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대강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진지한 분위기와 둘이서만 하고 싶다는 말. 다연이는 똑똑했으니 이것만으로도 어떤 대화가 오갈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연이 역시 자기도 듣고 싶다는 말을 쉽게 꺼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다연이의 엄마를 바라본다.
“...”
다연이의 엄마도 그 말을 듣고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쉽게 할 수 있는 결정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다연이의 의견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다연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다연이가 언젠가는 알아야 할 이야기였으니까.
다연이의 엄마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다연이도 듣자.”
여자가 울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연이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연이 엄마가 쏟아낸 말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나는 식당에 찾아온 다연이 엄마 친구에게 이미 들었던 내용들. 그래서 이번 설명은 다연이를 위한 말이었다.
지금 자신은 아프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런 드라마 속에서의 흔하디흔한 이야기였다.
너무 흔해서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였지만 어찌 됐든 다연이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다.
다연이 엄마와 다연이 사이에 작은 대화가 오가고, 곧이어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이 잔잔하게 흩어지자 내가 말했다.
“그런데.. 왜 저한테 다연이를 맡겼어요..?”
처음 다연이와 살게 됐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 궁금증은 지금에 이르러서 더욱 커졌다.
지금 다연이 엄마의 모습을 볼 때 그녀는 아직도 다연이를 아끼고 있었다.
아파서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의 입으로 확실하게 듣고 싶었다.
“그때는 내가 얼마 못 살 거라고 생각했거든.”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 뒤로 쏟아낸 말을 이랬다. 여자가 가지고 있던 병은 빠르게 안 좋아졌으며 그래서 다연이를 맡길 곳을 미리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떠올렸던 것이 나였고 처음에 했던 예상처럼 내가 다연이를 키우게 만들기 위해서 강하게 말을 했다고 한다.
보육원이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꺼냈던 이유도 그랬다.
“네.”
뭔가 상황들이 너무 극적이었다. 비현실적인 것 같다고도 생각했지만 내 처지를 떠올리곤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나만 해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데.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뒤로는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였다.
자신은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있었고 앞으로는 정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
드라마 속이라면 이렇게 뻔하고 막장인 이야기는 없을 거라며 티비를 꺼버렸겠지만, 막상 내 앞에 닥치니 이야기가 달랐다.
어떻게든 이해해야 했고 또, 납득해야 했다.
“그런데.. 병원은 안 갔어요?”
그렇게 물으니 여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에는 갔다가.. 이제는 안 가고 있어.”
다연이 엄마는 병의 회복에 큰 차도가 없자 차라리 그 돈을 아끼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치료를 계속 이어나갈 만한 돈도 없었고.
사실 그런 결정을 내린 지는 시간이 꽤 됐다고 한다.
“엄마.. 마니 아파..?”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다연이가 입을 열었다.
우울한 얼굴이다. 이럴까 봐 말하지 않으려 했던 건데.
“아니, 괜찮아.”
그래도 계속 피할 수만은 없었으니 차라리 엄마의 입으로 전해 듣는 것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도 정답은 잘 모르겠지만.
우울한 얼굴을 하던 다연이는 기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울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냥 내 옷자락을 꼭 잡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으니 다연이 엄마가 입을 열었다.
꼭 해줄 말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도.. 남은 돈은 꽤 있어. 이 집도 팔면 돈이 될 거고.”
진지한 얼굴이었고, 나에게도 나름 중요한 말이었다.
비록 돈을 바라고 온 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도 다연이는 어떻게든 내 돈으로 키웠고, 당연히 부족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돈을 여자가 쓰지 않고 모아뒀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아버지가 남긴 자그마한 재산을 어떻게 했을지에 대한 생각 말이다.
돈이 너무 적어서 별것 없겠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했었다. 물론 그런 궁금증도 다연이를 키우게 되면서 생각할 틈이 없게 됐지만.
그런데 여자가 그 돈을 모아뒀다고 말하고 있었다.
“적은 돈이지만.... 너랑 다연이한테 주고 싶어서 남겨놨어.”
그 후로 여자가 했던 말은 이랬다.
여태까지 모아뒀던 재산이 있고 나중에는 이 집까지 처분하라는 말이었다.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은 다음, 마지막으로 꺼낸 말은 이랬다.
“고마워, 다연이 키워줘서. 정말로..”
이번에는 첫 만남 때처럼 돈을 받지 않겠단 말은 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지금 여자의 처지가 불쌍해져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처음과 달리 여자의 속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100만 원에 아이를 판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도. 그리고 어떤 마음이었을지도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입 밖으로 걸러 나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런 잡념들은 열심히 내 안을 맴돌다가 그냥 사라질 뿐이다.
그 뒤로도 짧은 대화 몇 마디가 오갔다. 다연이도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울음 섞인 목소리로 꺼냈고 나는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던 대화가 끝이 났고, 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 가 볼게요.”
“응..”
어색한 말을 건네고 나와 다연이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우리 뒤를 여자가 따라왔다. 배웅하기 위함이었다.
“...”
우리는 말없이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인사를 하기 위해 뒤돌아서 서로를 마주 본다.
그러고 있을 때, 다연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랬던 다연이는 바닥을 보면서 우물거리더니 나에게 천천히 말했다.
“오빠... 우리.. 나중에 엄마한테 또 와도 돼..? 와서 가끔씩만 가치 놀아도 돼..?”
많이 생각하고 말한 것 같았다.
다연이는 아직 엄마가 그리울 나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여기에 데려온 것이기도 했고.
그러자 다연이의 엄마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다연이가 이런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다연이와 여자에게 말했다.
“응, 그래도 돼.”
내가 그 말을 하자 다연이가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이 다연이를 보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나 역시 여자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다연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 오늘은 일단 갈게요. 가기 전에 휴대폰 번호라도 주세요.”
“응..”
나는 번호를 받은 뒤,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다연이 엄마를 내버려 두고 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해는 이미 지고 난 뒤여서 더 우울하게 느껴졌다.
다연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도 그렇지만 다연이도 지금 많이 혼란스러울 거다.
솔직히 나도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은 혼란했고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이 다연이에게 큰 영향을 끼칠 줄 알고 있었지만 어떤 결정이 가장 다연이를 위한 결정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도착한 집 안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얼른 집 안의 불을 켜고 다연이의 상태를 본다. 오는 길에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런 거다.
“음..”
다연이는 많이 울어서 눈이 부어 있었다. 그리고 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졸려.. 자고 싶따···”
“그래, 간단하게 밥 먹고 자자.”
“응···”
오늘은 에너지를 소비할 일이 많았다.
나는 최대한 다연이를 위해서 움직인 다음 잠을 청했다.
평소라면 바깥에서 간간이 고양이나 지나가는 사람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아무도 다연이의 잠을 방해하지 않았고, 우리는 조용한 어둠 속에서 잠이 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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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그다음 날, 다연이는 우리 집에 온 이후로 가장 많이 아팠다.
열도 높이 올라서 병원을 갔다 온 다음에는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숨 푹 자면 나을 거야.”
나는 그런 다연이의 옆을 장승처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