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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중얼거릴 정도로 졸업식이 싫은 모양이다.
지금의 다연이는 헤어지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다연이의 마음에 쏙 들 좋은 음식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 말이다.
“다연아, 조금만 기다려. 아침 해줄게.”
“으응···”
평소라면 뭘 해줄지 물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조용하고 빠르게 만들어 줘야겠다.
방금 전에 결정한 것처럼 오늘 아침은 샌드위치다.
그것도 채소가 많이 들어간, 아삭아삭한 샌드위치. 다연이는 고기라면 눈에 불을 켜고 먹으니 고기도 넣을 예정이다.
“아.. 또 눈이 오면 어린이집 안 갈지도 몰라··· 그러면 졸업식도 내일 하겠지..?”
부엌 한 구석에 드러누운 다연이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애써 무시하며 샌드위치 만드는 것을 이어나간다.
오늘 아침으로 만들 샌드위치는 간단하면서도 맛있어야 한다. 물론 이 맛의 기준은 철저하게 다연이을 향해 맞춰져 있다.
맛있는 고기가 들어가야 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줄 채소도 충분해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샌드위치를 만들 재료를 준비한다.
준비한 재료는 식빵과 양상추, 슬라이스 치즈, 계란과 아직 굽지 않은 베이컨이다. 아침으로 대충 먹기엔 재료가 조금 많지만 오늘은 그런 번거로운 과정도 꼭 필요했다.
“음..”
이렇게나 많이 준비했음에도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한참 동안 생각하던 나는 곧 필요한 것을 떠올리고선 냉장고를 다시 열었다.
필요하다기 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먹을 거리인데도 잊어버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건 바로 귤이다.
얼마 전에 다연이네 선생님께 받은 과일이었는데 귤을 얻은 대신 우리 식당에서 만든 요리를 잔뜩 내줬던 것이 생각났다.
귤이 필요한 이유는 내가 샌드위치를 만드는 이유와 비슷했다.
귤의 신맛이 다연이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진 않을까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진 않겠지만 후식의 역할은 잘 해줄 거다.
“눈아, 빨리 와아···”
이제는 배경음악처럼 익숙해져 버린 다연이의 한탄을 들으며 샌드위치 만들기를 이어나간다.
먼저 식빵을 구워야 한다. 겉면에 버터를 바르고 그대로 프라이팬 위에 올려준다.
프라이팬에 올라간 식빵은 조용하고 꾸준히 구워져간다. 너무 조용해서 마치 구워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대로 놔둬도 타지 않을 것처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다. 조용히 구워가는 식빵의 잔잔한 향이 콧 속으로 스며들 때쯤, 식빵을 뒤집어 준다.
고소하면서도 푸근한 향이다. 식빵도 알맞게 잘 익었다. 타거나 덜 구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잘 구워진 식빵은 우선 밖으로 꺼내 놓는다.
작은 소리를 내며 접시 위에 놓여 있는 식빵. 아직은 만지면 뜨거울 거다. 물론 뜨거운 게 문제 될 건 없다. 다른 재료들을 준비하는 동안 충분히 식을 거니까.
이제 베이컨을 구울 차례다. 이번에 만들 샌드위치에서 베이컨의 의미는 크다. 무려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유일한 고기였으니까.
그런 이름에 걸맞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올라간 베이컨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겨지고 있었다.
지글지글.
베이컨 굽는 소리가 크게 들리자 누워있던 다연이가 고개를 슬쩍 들어서 이 쪽으로 바라본다.
“...?”
소리만 들어도 뭔가 맛있는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뭐지..? 머하고 있는 거야?”
“베이컨 굽고 있어.”
“..그러쿠나.”
다시 누워있을 줄 알았던 다연이가 슬금슬금 부엌 쪽으로 다가와서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역시 다연이의 기분을 바꾸는 데에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며언.. 나는 여기에 앉아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을게···”
“그렇게 해.”
나는 다연이의 시선을 받으며 요리를 이어나간다.
처음에는 꽤 크던 베이컨이 구워지면서 서서히 줄어들어 간다. 크기가 작다고 생각했지만 갖가지 재료들이 들어가는 샌드위치에선 나름의 매력적인 맛을 내줄 거다.
기름에 흠뻑 젖은 베이컨을 키친타올 위에 올려서 기름기를 빼는 동안, 적당히 열기가 빠진 식빵에 소스를 발라준다.
소스는 별 것 없다. 마요네즈를 조금 바르는 것이 전부다. 원래라면 머스타드와 마요네즈를 섞어서 발라주는 편이 좋겠지만 아쉽게도 머스타드는 없다.
뜨거웠던 식빵은 적당하게 식었다. 마요네즈를 바른 다음, 그 위로 베이컨을 얹어준다.
마지막으로 계란을 기름에 지지고 적당하게 구워졌을 때 베이컨 위에 더한다.
베이컨의 짭쪼름한 맛과 계란의 담백한 맛이 잘 어울릴 거다. 이렇게만 하더라도 충분히 다연이가 좋아할만한 조합이지만 오늘은 이것만으론 안 된다.
베이컨과 계란의 열기가 어느 정도 빠지고 나서, 나는 슬라이스 치즈를 꺼내어 그 위를 덮는다.
치즈가 스르르 녹아내리면서 식빵을 충분하게 뒤덮는다. 조금 늘어진 치즈 위로 적당한 크기의 양상추를 올려 놓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극적이었던 샌드위치의 모양새에 양상추가 더해지자마자 건강한 음식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상추가 고기를 전부 가려서 그런 건가.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다른 식빵을 덮어 주고 나면 다연이의 기분을 바꿔 줄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일단은 나와 다연이 몫의 샌드위치를 하나씩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고 나중에 더 먹고 싶다거나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하나 더 만들면 된다.
“다 됐어. 먹어.”
내가 샌드위치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다연이는 의자에 앉아서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연이는 내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뚱한 표정이었지만 샌드위치를 본 다음은 살짝 웃음기가 있는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우울했던 처음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일부러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샌드위치네.”
“응.”
다연이가 손가락으로 샌드위치를 찔러보는 동안 나는 귤을 가지고 오기로 한다.
샌드위치랑 귤을 같이 놓고 보니 둘이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상큼한 맛은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 앞에 놓아두기로 한다.
“이제 머그면 돼?”
“아니, 마실 거 가지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응.”
마실 것으로는 오렌지 주스를 가져올까 했지만 귤이 있었기에 오렌지 주스 대신 우유를 가져온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다음, 테이블 위로 놓는다.
“오.. 마싯게따..”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웃음을 참을 수 있었지만 완성된 아침 요리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웃음 참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벌써 다연이의 기분이 바뀐 것 같다. 아마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다면 확실하게 바뀔 것이다.
“이제는 머거도 되지..?”
“응.”
내가 허락하자마자 양 손으로 샌드위치를 집어 든 다음, 최선을 다해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한다.
다연이에게는 샌드위치가 조금 컸기 때문에 절반으로 잘라서 가져다줬다. 그래서 다연이는 절반으로 잘린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먹었다.
아삭.
한 입 크게 베어 물자마자 양상추와 구운 식빵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경쾌하면서도 기분 좋아지는 소리다.
“우오..!”
다연이는 샌드위치를 우물거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저렇게 밝은 얼굴을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을 먹을 때도 저런 얼굴을 하지 않았다.
채소를 씹으면서 기분이 좋아졌으면 했던 내 바램이 이루어진 모양이다.
“마시따아!”
그리고 우유를 한 입 가득 마신다.
입 안을 가득 채웠던 샌드위치 조각들이 따뜻한 우유에 밀려 사라진다.
“크으..! 내가 머거 봐떤 샌드위치 중에서 제일 마시써!”
“다행이네.”
다연이의 기분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내가 한 음식이 목적을 잘 이뤄낸 것이다.
단순하게 맛있기만 한 음식과 지금 다연이가 원하는 음식은 다르니까. 그렇기에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만든다는 결정은 꽤 좋았다.
다연이가 샌드위치를 분쇄하고 있을 때, 나는 다연이의 말처럼 맛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샌드위치를 한 입 먹어본다.
그러자 가장 먼저 양상추의 아삭한 식감이 느껴진다. 그런 다음 곧이어 계란프라이의 포근한 감촉과 더불어서 베이컨의 짭쪼름하고 자극적인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샌드위치를 먹자마자 다연이가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입으로 샌드위치를 없애고 있던 다연이는 그릇을 전부 비우고 나서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후우··· 마시써따..!”
이제 안 좋았던 기분은 전부 사라진 것만 같았다.
다연이가 샌드위치를 빠르게 먹어치우긴 했지만 어른인 나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나는 다연이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사이에 후식으로 먹을 귤을 미리 까서 다연이에게 건낸다.
“이거도 먹어.”
“응!”
정말로 졸업식 일은 전부 잊어버린 모양이다.
밝은 얼굴로 대답한 다연이가 귤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잘 만든 샌드위치도 기분 전환에 큰 역할을 하지만 역시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과일이 잘 어울린다.
게다가 시기가 조금 지나긴 했지만 귤은 아직도 충분히 맛있을 때다.
“호··· 귤도 마시따아..”
샌드위치에 이어서 귤의 달콤함에 취해버린 다연이는 졸업식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저 지금 달콤한 맛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상큼하고도 경쾌한 맛. 귤 하나를 전부 먹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다음 귤로 손이 가게 하는 중독적인 맛이다.
게다가 따뜻한 이불 속에서 먹는다면 중독성은 두 배가 될 테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식사를 하는 사이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꾸물대서는 안 된다.
“다 먹었으면 씻으러 가자.”
다연이는 우물거리고 있던 귤을 꿀꺽 삼킨 다음, 말했다.
“웅.”
일어났을 때보다 훨씬 기분 좋아진 다연이가 실실 웃으며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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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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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도 같이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의 졸업식이란 별 것 아닌 행사였으나 그럼에도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인사를 하는 절차가 있었기에 그 동안 다연이와 같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은 식당을 조금 늦게 열 수 밖에 없었다.
졸업식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진행되지만 유치원의 졸업식처럼 커다란 행사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단지 아이들이 나중에도 추억할 수 있게 현수막 아래에서 사진을 찍거나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린이집은 유치원에 가기 전, 잠시 거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다연이와 같이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다연이가 말했다.
“아.. 졸업식 하기 시러···”
아침을 먹었을 때와 달리 다시 힘이 빠진 얼굴이었다.
“다여나!”
그 때 저 앞에서 모여있는 다연이의 친구들이 외쳤다.
다연이는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친구들은 졸업식이 좋나봐···”
“나는 졸업식이 조아!”
중얼거리던 다연이의 말을 들은 혜원이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다연이가 대답한다.
“나는 시룬데··· 혜워니는 왜 조아하는 건지 모르게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다연이의 말에 혜원이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여니는 졸업식이 시로?"
"웅.."
축 늘어지는 다연이의 얼굴과, 그럼에도 여전히 밝게 웃고 있는 혜원이의 얼굴이 대비된다.
혜원이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웃는 얼굴로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많이 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