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44화 (144/181)

-------------- 144/181 --------------

“살까..? 사지 말까..?”

짧은 순간 동안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다가 곧 결정했다.

“안 살 거야.”

사지 않을 거다. 이 결정엔 다연이의 단호한 다짐도 영향을 줬지만 결정적인 건 저번에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연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연이가 질 줄 알 때,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거라는 말이었다.

사실 다연이는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들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는 애써 잊고 있었던 거다.

그래도 뒤늦게서야 다시 떠올리게 되어서 다행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지만 눈을 질끈 감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거리가 멀어지자 의외로 금방 괜찮아졌다.

“괜찬차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초콜릿이었는데 막상 한 걸음만 나아가니 초콜릿에 대한 생각은 금새 사라졌다.

“오···”

다연이는 혼자 감탄을 내뱉으며 걸어갔다. 그리고 깨닫는 것도 있었다.

참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막상 마음 먹고 나면 그리 힘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오빠한테도 말 안 해쓰니까 머그면 안 돼.”

다연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야 할 것들을 손에 쥐고 계산대에 도착했다.

손에는 소세지와 사탕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 놓는다.

“이게 전부야?”

“네.”

마트 아주머니가 다연이를 내려다 본다.

사실 마트 아주머니는 아까 다연이가 초콜릿 앞에서 고민하던 것을 전부 지켜봤다.

어른의 경험으로 봤을 때, 다연이는 초콜릿을 사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결국엔 초콜릿을 고르지 않았다.

다연이의 오빠인 지훈이의 성격으로 봤을 땐 사지 말라고 말한 건 아닌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다른 이유는 두 가지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돈이 부족했거나, 나머지 하나는 먹고 싶은데 참았거나.

첫 번째 이유라면 안쓰럽지만 두 번째 이유라면 대견한 거다. 특히나 이제 7살이 된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한 건 정말 대견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먼저 돈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러면 돈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줘.”

“네에.”

다연이가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고 돈을 꺼낸다.

뒤이어 꺼낸 건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다연이가 고른 건 소세지와 사탕. 그것들을 사고 남은 돈으로 초콜릿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다. 오히려 남는다.

그 돈을 본 아주머니가 생각했다. 다연이는 돈이 없어서 초콜릿을 못 산 것이 아니라 초콜릿이 먹고 싶지만 열심히 참았던 것이었다.

“...”

"...돈 주세요오."

다연이는 잔돈을 주지 않는 아주머니에게 말했고, 아주머니는 감격에 젖은 얼굴로 다연이를 바라본다.

“진짜 착해..”

마트의 아주머니도 자식이 있다. 비록 다연이처럼 어리진 않았지만 징그럽게 커버린 아들들도 이렇게 귀여울 때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이렇게 착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지훈이가 혼자서도 잘 가르친 모양이다.

“...?”

그 말을 들은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그냥 왜 저렇게 말하는지 궁금했다.

마트 아주머니는 눈가를 훔치는 시늉을 하더니 성큼성큼 걸어가서 뭔가를 가지고 온다.

그건 아까 다연이가 살지 말지 고민했던 초콜릿이었다.

초콜릿을 본 다연이는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분명 방금 전에는 괜찮았는데 다시 이렇게 눈에 보이니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다연이는 눈을 감기로 했다.

그러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말했다.

“자, 다연이한테 이거 줄게.”

“...? 왜요?”

“음.. 다연이가 착해서. 아까 이거 보고 있었지?”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다연이가 착해서 주는 선물이야. 나중에 오빠가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해. 알겠지?”

아주머니가 초콜릿을 내밀었고, 다연이는 그 초콜릿을 붙잡았다.

동그란 눈으로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의심하고 있는 중이다.

“진짜.. 이거 머거도 돼요..?”

“응, 가져가서 먹어도 돼.”

“오··· 감사합니다아..”

다연이는 초콜릿을 봉지 안에 넣었다. 그리고 꾸벅 인사를 한 뒤, 마트를 빠져나온다.

“우와··· 착한 일을 해서 초콜릿이 생긴 거야···”

아무리 다연이라고 해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래서 초콜릿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자신이 했던 착한 행동 때문이라고 했다. 먹고 싶은 것을 앞에 두고 잘 참아서 그런 거다.

“오··· 조아..”

사실 다연이는 아직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것 하나 만큼은 분명히 알았다.

착한 일을 하면 다른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

다연이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

다연이와 아이들이 심부름을 간 동안, 나는 핫도그를 하기로 했다.

소세지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다연이가 오고 난 뒤에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까지만 해야겠다.

일단 핫도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막대에 꽂아서 먹는, 축제 같은 곳에서 자주 보이는 그런 핫도그와 미국식으로 빵 사이에 끼워서 먹는 핫도그가 있다.

오늘 내가 할 핫도그는 막대에 꽂아서 먹는 핫도그다. 이유는 그 쪽이 다연이가 더 신선하게 느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러기로 했다.

축제 기간에는 우리 식당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종류의 핫도그지만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서 만드는 거면 오히려 미국식 핫도그가 더 만들기 쉽다.

하지만 조금 번거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도 나름 재밌기 때문에 오늘은 막대에 꽂혀 있는 핫도그를 만들려고 한다.

“아이들이 없으니까 조용하네.”

혼잣말처럼 식당에 아이들이 없으니 적막하다.

버릇처럼 틀어 놓는 티비 소리같이 있으면 소란스럽지만 없으니 허전하다.

그럼에도 간만의 적막은 나름대로 좋았다.

핫도그를 만드는 법은 이전에 민혜와 밥돌이가 만들었던 피자의 반죽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했다.

반죽을 만든 이후에는 소세지에 반죽과 빵가루를 묻히고 튀기기만 하면 끝이다.

생각보다 레시피가 간단하지만 집에서는 기름 때문에 주저하게 되는 메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는 식당이고 쓸만한 도구들은 전부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우선은 반죽부터 만들기로 한다.

반죽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간의 물과 이스트, 강력분처럼 저번 피자를 만들 때 썼던 재료들이 필요하다.

나는 필요한 재료들을 넣고 열심히 섞어준다.

‘...너무 조용해.’

나는 이상한 어색함을 느끼면서 반죽을 젓는 팔에 속도를 더해준다.

서로 뭉쳐있던 반죽 덩어리들이 차츰차츰 풀어지면서 진득한 죽처럼 변해간다. 점점 더 진득해져서 반죽을 젓던 팔에 피로감을 느낄 때쯤, 그만둔다.

열심히 반죽을 휘젓던 사이에 완성이 됐다. 정말 별 것 없지만 이렇게 하면 반죽은 끝이다. 발효를 위해 기다려야 하지만 내가 움직여야 할 건 끝이 났다.

이제 다연이가 올 때까지 해야할 건 없다.

반죽은 발효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고, 튀김에 사용할 빵가루는 이미 만들어 뒀다.

다연이가 보고 있었다면 핫도그가 먹고 싶어서 반죽에 눈을 떼지 못했을 것 같지만 지금은 다연이가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반죽을 다른 곳으로 옮겨두고 의자에 앉아 다연이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렇게 앉아있으니 졸음이 몰려온다.

날이 살짝 풀려서 햇볕도 나른하다. 기분 좋은 온도와 조용한 식당은 졸음이 몰려오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눈에 힘이 풀리고 그렇게 서서히 잠이 들려던 찰나, 식당 문이 열렸다.

“안뇽!”

“....안녕.”

다연이가 왔다.

다연이의 뒤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행히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다연이가 건네주는 봉지를 받아서 안에 든 것들을 꺼낸다.

“근데 언니들은 어디갔어?”

“잠깐 밖에 나갔어. 저기 들어오네.”

때마침 타이밍이 좋게 아이들이 들어온다.

“언니!”

다연이는 아이들에게 달려가고, 나는 다연이가 제대로 사왔는지 확인한다.

내가 다연이에게 사오라고 말한 건 소세지와 사탕뿐이었지만 다른 걸 사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돈이 남는다면 다른 걸 사와도 괜찮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것을 잊었고, 다연이가 마트로 가기 전에 말해주지 않았다는 걸 후회했다.

그렇기에 봉지에 다른 것이 담겨 있어도 딱히 혼내거나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아··· 마따..!”

예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다연이는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놀란 얼굴로 나에게 달려온다.

그 동안 나는 봉지에서 다연이가 사온 것들을 꺼내 놓는다.

사 오기로 했던 소세지와 사탕. 그런데 그것 말고도 뭔가가 봉지 안에 들어있었다. 뭐지.

“안 대..!”

초콜릿이다. 이것도 다연이가 산 건가.

내가 그 초콜릿을 보고 있을 때 다연이가 와서 말했다.

“그.. 그거는.. 마트에 있는 아줌마가 준 거야..! 나 착하다고. 그래서 줘써.”

“음··· 그래.”

사실 샀다고 해도 꾸짖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도 다연이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걸 숨기려고 온 것 같다.

나는 다연이가 놀라지 않게 대답했다.

“다연이가 샀어도 괜찮아.”

“응···”

그럼에도 다연이는 조금 놀랐는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짜 그래도 상관없는데.

울먹이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뭔가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게 있었던 모양이다.

“혼내는 거 아닌데.”

“진짜···?”

“응.”

다연이는 내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게도 내 표정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다연이는 나름 다르게 이해한 모양이다. 내가 정말 화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도하던 다연이는 잠시 후에 다시 우울한 얼굴을 하고서 말을 잇는다.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거 가타··· 그냥 초콜릿 안 받을 걸.”

“왜?”

“왜냐하며언··· 허락 안 받은 거자나.. 내가 초콜릿 먹고 시퍼서 그냥 아줌마한테 받아 온 거자나···”

“아니야, 아주머니가 다연이한테 준 거니까 괜찮아. 그리고 꼭 나한테 허락 받을 필요는 없어. 다연이도 혼자 결정할 줄 알아야지.”

나도 다연이가 나를 의지하는 건 좋지만 기대기만 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아직은 이른 때지만 배울 필요가 있으니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다연이가 입을 연다.

“그런데··· 내가 나쁜 결정을 하는 어떠케..? 내가 하고 시퍼서 했는데.. 나쁜 일이면?”

다연이가 어떤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나도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내가 말해줄게. 그건 나쁜 일이라고. 그리고 고치면 되지.”

“음···. 그러쿠나.”

드디어 이해를 한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 것 아니지만 이번 일로 다연이가 뭔가를 배울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앞으로 다연이를 키우다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을 거다. 나조차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걸 가르쳐줘야 할 때 말이다.

뭐가 옳은 일이고, 그 상황에 내가 어떤 일을 했어야 하는지 나도 잘 짐작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생각해보기로 마음 먹고 난 뒤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 뭐해?”

다연이가 물었다.

“핫도그 해야지.”

“핫도그···! 마싯는 거 조아!”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평소대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 주방으로 향했다.

사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