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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누구야?”
갑작스런 민우의 등장에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문 쪽을 바라본다.
그 곳엔 방금 전의 다급한 목소리와 걸맞게 숨을 헐떡거리는 민우가 문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문을 열고 있는 바람에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식당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나, 민우야···”
민우는 자기 누나에 대한 화를 간신히 가라앉히면서 자기 이름을 말했다.
민혜가 밥돌이의 동생인 것처럼 민우도 예나의 친구인 가인이의 동생이다. 의도치 않게 다연이와 나를 포함한 세 집의 남매가 이 식당에 모이게 된 것이다.
아직 밥돌이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올 예정이니까.
상황을 보니 민우가 저러는 이유는 자신의 누나인 가인이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식당에 가는 것을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민우의 말에 가인이가 대답했다.
“너 자고 있었잖아. 학교 안 간다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잤으면서.”
“그럼··· 누나가 나 깨웠어야지···!”
“청소하기 싫어서 자는 척하다가 잠든 거잖아.”
“...”
그 말에 민우는 뭐라 대꾸하지도 못하고 숨을 거칠게 몰아 쉰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본다.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수 많은 눈들. 그 중에는 다연이의 눈도 있었다.
민우는 그런 다연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미안···”
누나에게 사과를 하며 어깨를 툭 늘어뜨렸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민우는 다연이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연이는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니까.
다연이는 아이답게 화를 내는 건 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정당하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이유로 누나에게 화를 내는 건 다연이의 기준에 들어 맞지 않을 테니까.
그런 민우의 말에 다연이게 말했다.
“괜차나. 왜냐하면 아직 피자 안 머겄거든! 그러니까 빨리 와서 앉으면 돼!”
“응..”
그리고 민우가 터벅터벅 걸어온다. 다연이 옆에 선 민우가 다연이에게 물었다.
“옆에 앉아도 돼?”
“응, 그런데 의자가 업써.”
“내가 의자 가지고 올 거야.”
일이 일단락 되어서 다행이다.
민우는 다연이 옆에서 입을 꾹 닫은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있다. 여전히 아쉬운 감정이 남아있는 모양이지만 결국 목표는 이뤘으니 가만히 있을 뿐이다.
어찌됐든 다연이는 봤고, 피자도 먹기 전에 왔으니까.
“아저씨, 그러면 저는 시작할게요.”
“그래, 근데 여기가 불편하면 위로 올라가서 해도 돼.”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그러면 위로 가서 할래요.”
나는 피자 만드는 법 같은 건 전혀 모른다. 애초에 이렇게 일반적인 곳에서 만들 수 있는 건지도 모르고 있었고.
가게에서 배달만 시키던 그런 피자를 집에서 만들다니. 그래도 자신이 만들고 먹는 방송을 진행하던 밥돌이라면 다양하게 알지 않을까, 해서 하라고 한 거다. 민혜도 옆에 있었기에 대강은 알고 있겠지.
“나도 구경할래.”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고선 민혜의 옆에 선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다연이는 요리에 관심이 많다. 특히나 이번 요리는 다연이에게 아주 낯설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 설레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식당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 이번에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이었다.
나는 우선 식당에 찾아온 손님을 상대한다. 이 곳은 집이 아니라 식당이니까 늘 손님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하겠지. 다연이 혼자였다면 조금 불안했겠지만 다른 아이들도 많으니 그렇게 걱정되진 않았다.
손님에게 요리를 낸 다음, 떠나는 손님을 배웅한다.
“안녕히가세요.”
나는 그러고 난 뒤에 의자에 앉았다.
지금 시간대에는 손님들이 잘 오지 않으니 이렇게 여유가 있다.
아이들은 전부 위 층으로 올라갔다. 그 곳이 여기보다 더 공간의 여유가 있었고, 뭔가를 하기에도 편했으니까.
그 때문인지 위 층은 조금 시끄러웠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피자 만드는 법에 대한 영상을 보기로 한다. 내가 전혀 접해본 적 없는 요리라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먹어본 적은 많지만 해 본적은 없다. 사실 어제도 대충 훑어봤지만 한 번 더 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다.
피자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별 것 없었다. 반죽을 만들고 발효시키는 게 번거로운 일이었는데, 민혜가 말하길 자기는 이미 집에서 반죽까지 전부 만들어왔다고 했다.
그것마저 밥돌이가 한 거라고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해서 반죽만 완성되면 그리 힘든 과정은 없었다. 그 위에 재료들을 올리고 오븐에 구우면 완성된다.
물론 문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중간 과정이 있겠지만.
“음···”
나도 직접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긴 했지만 식당을 비워둘 순 없기에 여기 그대로 앉아있을 거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때, 위 층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음의 주인은 민혜였다. 지금 피자를 만드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왜 왔어?”
“아, 혹시 양파가 있나 해서요. 가져온 줄 알았는데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래.”
식당에 남는 게 양파니 주는 건 그리 힘들진 않았다.
“썰어줄까?”
“네, 채썰기로 해주시면 돼요.”
“그래.”
이것도 쉬운 방법이었기에 빠르게 착착, 썰어준다.
내가 그러고 있을 때, 민혜가 말했다.
“아, 방금 전에 오빠랑 통화했는데 치킨도 사온데요.”
“치킨은 왜?”
“다연이 준다고요.”
그러면서 웃었다.
밥돌이가 다연이를 위해 그런다는 것이 고맙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가 베풀 틈도 없이 밥돌이는 뭔가를 더 가지고 왔었으니까.
그래서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미안하잖아.”
“미안하긴요..! 저번에 오빠가 뭐든 다 해준다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저도 오늘 여기 오게 된 건데.”
“그래도.”
뭐든 받으면 받은 만큼 다시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그러려고 노력하기도 했었고.
그 말에 웃으면서 민혜가 대답했다.
“그러면 오빠가 왜 그러는지 제가 말씀드릴게요. 이거는··· 말 안 하려고 한 건데.. 아저씨만 알고 있어야 돼요.”
“응.”
무슨 말을 할 건지 모르겠지만 잠자코 듣기로 한다.
“그게···”
나는 민혜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민혜가 한 이야기는 새로운 건 아니었다. 여태까지 밥돌이와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조금씩 있었던 것들이었고, 그래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긴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민혜의 입으로 들으니 밥돌이가 어땠을지 알 수 있었다.
민혜가 말하길 밥돌이는 아마 다연이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어딘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자신이 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 거라 말했다.
“아저씨도 알고 계셨겠지만 저희 오빠가 슬럼프를 조금 오랫동안 겪었거든요.”
처음에는 먹방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지만 점점 과열되는 먹방 컨텐츠의 인기로 경쟁자들이 많아지게 됐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넘길 수 있었지만 그 뒤로 먹방 자체의 인기가 식어버리게 되고, 밥돌이는 그 때부터 슬럼프를 겪게 됐다고 했다.
“응, 대강은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밥돌이가 자세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민혜의 입으로 전해 들으니 밥돌이가 어땠을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슬럼프에 파묻혀 버리는 건 아닐지, 그래서 잊힌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도 사라지진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들을 했을 것이다.
“다연이 아니었으면 지금은 아마 울고 있었을 지도 모르죠.”
민혜는 밥돌이의 동생 답게 큭큭, 웃었다. 결국엔 일이 잘 풀렸으니 그럴 수 있었던 거겠지만.
그렇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 때 당시의 밥돌이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계속되는 슬럼프에 방송을 포기하려고 했을 정도로. 나름의 노력도 많이 했지만 그 때마다 만족할 만한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다연이를 만난 뒤로 잘 풀렸던 거죠. 물론 다연이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도 있지만···”
그렇긴 하지만 사실 다연이는 딱히 한 게 없다. 그냥 맛있게 요리를 하고 먹었을 뿐.
“그것보다는.. 다연이는 뮤즈였죠! 영감을 주는. 오빠도 다연이를 만난 뒤로 자신감도 생겨서 그 자신감으로 새 컨텐츠를 만든 거죠. 물론 아저씨네 식당도 영감을 줬고요.”
“그래? 다행이네.”
우리가 뭘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다.
민혜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빠가 뭐라도 하고 싶대요. 그래서 다연이의 노예를 자처한 거고요.”
“응.”
“그러니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그것도 안 하면 오빠가 더 미안할 거에요.”
“...알겠어.”
다연이는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도움을 줬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서야 실감이 갔다.
“아, 그리고 다연이는 저희 가족한테도 복덩이에요.다연이 덕분에 오빠가 돈을 잘 버니까요. 그리고 요즘에 아빠가 여기 자주 오시죠?”
“응.”
밥돌이네 아버지가 자주 오시긴 했다.
“아빠한테는 다연이가 거의 세 번째 자식이라니까요! 오빠가 가져온 것들 중에는 아빠가 준 것도 많아요.”
“그래, 다행이야. 전부 좋아해서.”
다행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도 다연이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 양파 다 썰었네요.”
“응. 접시에 담아줄게.”
가져가기 편하게 접시에 담고 있을 때, 식당 문이 벌컥 열린다.
그 자리엔 밥돌이가 서 있었다.
“형님! 저 아직 안 늦었죠?”
급하게 왔는지 얼굴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그 말에 민혜가 대답했다.
“응, 안 늦었어. 아직 피자도 하고 있는 중이고.”
“휴,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저벅저벅 들어왔다. 마침 밥돌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렇게 나타났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제말하면 온다더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다연이는 어디에 있어요?”
“위에. 다른 애들이랑 같이 있어.”
“아, 그렇군요.”
“올라가 봐.”
“네.”
그렇게 밥돌이와 양파를 쥔 민혜가 같이 올라가려고 할 때, 밥돌이가 나를 불렀다.
“형님은 같이 안 가세요?”
“나는 여기 지켜야 하잖아.”
“음··· 어차피 지금은 손님 많이 안 올 시간 아닙니까? 같이 가서 구경만 조금하다가 같이 내려와요. 민혜가 다 한다고 해서 저도 눈도장만 찍고 형님이랑 같이 내려올 겁니다.”
그래, 어차피 손님도 안 올거고 어떻게 만드는지 나도 궁금했기 때문에 잠깐만 올라갔다 내려와도 되겠다.
“알겠어, 같이 가자.”
그래서 나도 뒤따라 위로 향했다.
집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건 오랜만인 것 같다. 저번에 다연이 친구들이 왔을 때 이후로 이런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북적일 거란 생각과는 다르게 2층으로 올라오니 아이들은 전부 부엌 쪽으로 몰려 있었다.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고 있을 때 그 무리 중에 있던 예나가 우리가 온 걸 확인하고선 말했다.
“민혜야, 저거 봐!”
예나의 밝은 목소리에 나도 시선을 옮긴다.
“다연이가 파프리카 썰고 있는데.. 너무 귀여워!”
예나의 손가락 끝에 있는 다연이는 뭔가를 썰고 있었다. 칼은 다연이의 전용 칼인 플라스틱 칼이었다. 날카롭지 않아서 잘 잘리진 않지만 안전한 칼.
다연이가 그 칼을 들고선 말했다.
“오빠, 이거 봐! 내가 다 해따!”
다연이 밑에는 가지런하게 잘린 파프리카들이 늘어져 있었다.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