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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연이가 만들려고 한 건 고양이의 집이었다. 어제 눈을 피해 들어왔던 고양이가 아직도 안 쓰는 방에서 자고 있으니 그 동안 고양이 집을 만들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만든 고양이 집은 뒷마당에 둘 것이다.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다연이가 만든 집으로 도망가면 될 테니까.
만들 재료는 충분하다.
상자도 있고, 지붕으로 쓸 플라스틱 덩어리도 있으니 테이프를 이용해서 잘 만든다면 금방 고양이 집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시작하자!”
그리고 다연이가 고양이 집을 열심히 만들어 나간다.
***
“....뭐 해?”
일어나보니 다연이가 없었다. 또 일찍 일어나서 뭘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밖으로 나와보니 거실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주변에 널려있는 잡다한 물건들과, 형태를 잡아가고 있는 뭔가. 누군가의 집처럼 보였는데 저런 걸 왜 만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양이 집 만드러.”
고양이 집이라면 바깥에 놔둬야 할 텐데 저런 상자와 플라스틱으로 잘 될진 모르겠다.
안 그래도 하나 사두려고 했었는데 직접 만들 줄이야.
“그래, 열심히 만들고 있어.”
“응.”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하는 게 좋으니 내버려둔다.
.
.
.
간밤까지 눈이 너무 많이 왔다.
쌓인 눈은 발목을 넘어섰고 거리는 빙판길이 됐다. 그래서 그런지 자동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종종 보이는 자동차들도 사람이 달리느니만 못한 속도로 천천히 도로를 주행하고 있을 뿐이다.
“너무 많이 왔어···”
나는 그 앞에서 해야 할 일을 한다. 가게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었는데 앞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서도, 이 앞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었다.
창고에서 쓸 만한 것을 가져와서 열심히 식당 앞을 쓴다.
다연이는 여전히 뭔가를 만드는 데에 열심이었고, 나는 그런 다연이를 내버려두고 내 일에 집중한다.
“...”
열심히 쓸다보니 그 많던 눈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원래 혼자서 한다면 시간이 꽤 걸릴 일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니 순식간에 일이 끝났다. 그 사람들 중에는 근처 마트의 주인 아주머니도 있었고, 새로 생긴 채소가게의 주인, 출근을 하는 다연이의 선생님도 있었다.
1년 전만 같았어도 누군가와 인사할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다.
“오늘도 출근하세요?”
당연한 말일테지만 집에 있는 다연이의 모습과 대비가 되서 그렇게 물었다.
“네, 아이들이 안 와도 할 일은 많아서요.”
아쉬운 얼굴로 오늘 저녁에 꼭 들리겠다고 말한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정말 출근을 하기 싫은 모양인지 얼굴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식당 앞에 쌓인 눈을 전부 치우고 나서, 나는 다시 창고로 돌아갔다.
아까는 거실에 있던 다연이가 이제 복도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있었다.
“다 만드러따!”
드디어 고양이 집을 완성시킨 모양이다.
고양이를 위해 만든 것이겠지만 바깥에서도 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그것 보단 고양이가 마음에 들어 할지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고양이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힘들게 만들어줘도 쓰지 않으니까.
부디 좋아해주길 바랄 뿐이다.
“청소 다 해찌? 그러면 이제 고양이 보러 가자!”
“그래.”
고양이의 치료는 다 끝났기 때문에 다시 밖으로 보내는 김에 다연이가 만든 고양이 집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자신만만한 얼굴에 양 손으로는 힘들게 만든 고양이 집을 들고 있다.
박스와 플라스틱 뭔가를 이어서 만든 집이다. 허접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꽤 머리를 쓴 것 같다.
고양이 집으로 사용한 박스는 고양이가 우리 집에 머물고 있을 때 마음에 들어하던 박스였다. 대부분의 고양이가 그렇듯 고양이들은 박스 같은 걸 좋아했다.
그리고 지붕으로 쓴 플라스틱은 나름 비나 눈을 막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물론 저렇게 만들어도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집이 망가질 것이 뻔하니 비가 안 맞는 곳에 놔둬야겠다.
우리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서 고양이를 안고 밑으로 내려온다.
이미 다연이의 손길을 잔뜩 받아서 그런지 내 손길도 피하지 않았다.
멍한 눈을 하고 있던 고양이는 뒷마당으로 내려오고 나서야 다시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다.
“자, 고양이..! 내가 집 만드러써! 엄청 멋찐 집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다연이가 직접 만든 고양이 집은 보잘것 없었지만 그래도 만든 성의가 있어서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게다가 아이가 만든 것 치고는 상당히 잘 만들었다.
고양이는 지금까지 충분히 휴식을 즐겼다고 생각했는지 하품을 길게 쩍, 하면서 몸을 쭉 편다. 기지개를 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가 봐도 머시찌? 내가 오늘 아침 동안 만드러써.”
그럼에도 고양이는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지금은 몸을 푸는데 집중할 뿐이다.
나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고양이가 하루동안 집에 있어서 지금 몸풀고 있나봐. 조금 있다가 다시 물어보자.”
“응!”
아직도 잔뜩 기대하고 있는지 자신있게 말했다.
곧이어 준비를 끝낸 고양이가 말똥거리는 눈으로 우리 쪽을 바라본다.
고양이도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린 다연이가 말했다.
“고양이 이제 준비 됐으니까 빨리 와봐. 와서 집 좋은지 봐야 돼.”
그러자 고양이가 천천히 다가온다.
어제까지 푹 쉬었기에 컨디션은 좋아보였다. 사실 쓰러진 이후로는 딱히 어딘가 아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잠시 상황을 살피던 고양이가 다연이를 바라본다. 그러고 있다가 다시 이상하게 만들어진 집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한 번 울었다.
“내가 만든 집이야. 드러가 봐.”
다연이의 말에 고양이가 집의 냄새를 맡는다.
흥미가 돋을 거다. 왜냐하면 그 집은 고양이가 좋아하던 상자로 만든 집이니까.
고양이는 익숙한 냄새가 나는지 코를 킁킁 거리다가 상자에 몸을 비빈다.
“좋지? 엄청 조치? 고양이가 조아하는 상자니까!”
고양이는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의 눈치로 보고 있다가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 몸을 말고 가만히 누워있는다.
“와..! 고양이도 좋나 봐..!”
“그런가 보네.”
솔직히 조금 걱정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
고양이는 다연이에게 집을 선물 받았다.
이렇게 집까지 선물 받으니 어제 했던 꾀병이 조금 미안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와서, 고양이에게 집을 선물한 다연이가 고양이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고양이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바깥에 있는 게 더 좋은데..’
어제야 너무 추워서 집 안으로 들어간 거지만 사실 고양이는 지금의 자유로운 생활이 좋다. 그래서 이 식당을 지키면서도 다른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거고.
딱히 이 곳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이 곳을 지키고 맛있는 밥을 얻어 먹는 것뿐.
물론 조금 정이 생기긴 했지만.
그렇기에 지금 고양이에게 놓인 이 상황은 단순하게 새로 만든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고양이가 머물 곳을 완전히 이 곳으로 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 고양이는 완전히 이 집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내가 만든 집이야. 드러가 봐.”
고양이는 다연이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곧 결정했다. 결정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시간도 꽤 길었기에 결정은 금방 내릴 수 있었다.
“조치?”
결국 고양이는 이 집의 고양이가 되기로 했다.
어디 가지 않고, 여기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받은 것들도 많았으니 이제 해 달라는 식당 지키기에 힘을 쏟아야겠다.
이 식당의 고양이가 되기로 했으니 이제 꾀병 같은 건 안 부려도 되겠지. 집에 들어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될 테니까. 이제 고양이는 완전히 이 식당의 고양이니까.
고양이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새로 생긴 집에 엎드렸다.
익숙한 냄새가 밴 상자 안은 생각보다 더 따뜻했다.
***
“다연아! 내가 왔다!”
고양이에게 집을 만들어 준 뒤로 시간이 흘러서 오후가 됐다.
어제와 달리 노곤한 햇볕과, 그래서 더 축 늘어져 있는 다연이는 식당에 찾아온 예나와 친구들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제 밥돌이와 통화했던대로 피자를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피자다!”
식당에 들어온 건 피자가 아니라 예나와 친구들이었지만 다연이는 그렇게 말했다.
어제 밥돌이와 같이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집에서 피자를 만들어도 되겠냐는 말과 밥돌이의 동생인 민혜가 피자를 직접 만들 줄 안다는 말.
어떻게 만들 줄 알게 됐냐는 질문에는 예전에 방송에서 했던 피자 만들기를 민혜에게도 가르쳐 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엔 우리 집에서 직접 만든 피자를 먹게 됐다는 사실만 남았는데 피자라는 거창한 이름 치곤 만들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는 말도 했었다.
“다연이는 나보다 피자가 더 반갑구나···. 내가 만들어 주는 건데..”
“아.. 아니지..! 나는 사실 언니가 더 반갑찌! 그래서 언니 보는 김에 피자도 먹고 시픈 거야.”
“큭큭, 그래. 그렇구나.”
다연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들어온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밥돌이가 없길래 왜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 오빠는 일이 있어서 회사로 갔어요. 사실 예전부터 정해져 있던 건데 잊어버리고 있었나봐요. 그래서 오빠는 나중에 올 거에요. 피자는··· 뭐, 제가 해 보죠.”
“피자해죠!”
아무래도 다연이는 밥돌이나 민혜보단 피자를 더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민혜는 그런 다연이를 보면서 큭큭 웃은 다음,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겠어, 빨리 해볼게.”
“응..! 그럼 나도 도와줄래. 내가 도와주면 더 빨리 끝나게찌? 그리고 언니도 편할 거야.”
최근 요리에 자신감이 생긴 다연이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맞아, 다연이는 요리 잘 하니까. 그런데 이거는 위험한 거야. 뜨겁거든. 오븐도 써야 돼.”
“아··· 오븐..! 뭔지 알고 이써. 우리 집에 있는 거다. 그거는 뜨거운 건데.”
“그래, 그건 뜨거워서 나 혼자 해야 돼. 대신 다연이는 저기 가서 애들이랑 놀고 있어. 전부 다연이 보러 온 거니까.”
“음··· 알게써. 못 도와주지만 내가 저기에서 보고 이쓸게.”
“그래.”
그리고 다연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간다.
다연이 말처럼 우리 집엔 오븐이 있다. 조금 더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욕심내서 샀던 거였는데 생각보다 쓸 곳은 많이 없었다.
그래도 그리 비싼 건 아니어서 한 때의 물욕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가끔씩 썼던 건데 오늘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다행이다.
다연이가 돌아갔을 때, 밥돌이의 동생인 민혜가 내게 말했다.
“아저씨는 식당 손님 맞이해야 하니까 제가 다 할게요.”
“안 도와줘도 돼?”
“네! 상관없어요.”
“조금 미안한데.”
다연이를 위한 피자였으니 그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리고 아저씨 주방을 쓰는 건 전데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죄송합니다.그냥 피자를 하나 사 오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저희 오빠가 조금 이상해서.”
“아니야.”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상관없었다. 그리 힘든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손님들도 많이 없으니 도와줘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텅.
추운 겨울 바람을 몰고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열었다.
나름 거칠게 열었지만 문을 연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아이였기에 그리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뭐야? 네가 여기 왜 왔어?”
식당에 온 아이는 민우였다. 예나와 같이 온 친구인 가인이의 동생이기도 한 9살 민우.
민우가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누나만 다연이 보러 가면 어떡해..! 나한테도 말했어야지.”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등장이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