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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바깥에서 고생만하다 먹는 수제비여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었다.
“후아···”
“맛있지?”
“네.. 맛있습니다···”
차가운 눈은 바깥에서 원없이 맞았다. 옷가지들로 꽁꽁 동여맸지만 찬 바람은 그것 마저 뚫고 들어왔다.
솔직히 힘들었다. 몰아치는 눈보라와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고들. 그래도 지금 이 따뜻한 수제비를 먹는 순간에는 그런 생각들이 전부 사라졌다.
“후··· 자주 와야겠네요..”
“ 그 정도로 맛있지? 내가 맛있을 거라 했잖아.”
순경이 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수제비를 먹기 시작한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오랜만이었고, 이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식당도 거의 처음이었다.
지금은 그냥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크으···”
목구멍을 넘어가는 수제비의 국물이 환상적이다.
***
다른 손님도 없는지라, 나는 주방에 앉아서 손님들이 먹는 모습을 힐끗 훔쳐보고 있었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식당 운영에는 손님들의 반응이 중요하니까. 그런 내 옆에서 밥돌이와 다연이도 같이 보고 있었다.
“경찰 아저씨들이 마싯대..?”
“응, 그런 것 같아. 잘 들리진 않는데 맛있다고 하는 것 같네.”
그러자 다연이가 마치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찌, 나도 먹어봤는지 마시써써.”
“나도 그래.”
그 옆에 있던 밥돌이가 했던 대답이었다.
다시 손님들을 가만히 보고 있던 다연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수제비 많이 팔릴 것 같다고 말해써.”
“맞아, 다연이 덕분에 더 맛있어진 것 같아.”
“흠..! 나는 엄청 잘 맞추는 사라미지..!”
다연이의 예상이 잘 들어맞아서 더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근데 다연이는 수제비가 많이 팔릴 걸 어떻게 알았어?”
“추우면··· 따뜻해지고 싶짜나. 그러면···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찌.”
“응.”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근데 우리 식당에는 따뜻한 음식이 떡볶이랑 어묵이랑··· 막.. 이러케 있는데.. 매운 거는 시러할 수도 이써. 근데 안 매운 거는 전부 다 조아하지.”
“오··· 맞아.”
밥돌이도 진지한 눈빛으로 듣는다.
“그리고 나는··· 매운 거 머그면 땀 나. 그러면 더 추워져. 그래서 매운 거는 안 조아.”
“그래서 수제비가 많이 팔릴 거라고 한 거구나?”
“응,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는··· 내가 수제비가 먹꼬 싶거든.”
“...그래, 얼른 해 줄게.”
예리한 추리다. 하지만 솔직하게 나도 그렇고 밥돌이도 그렇고 떠올리지 못할 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나만 하더라도 오늘 식당 문을 열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식당의 사장님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추운 날이니까 따뜻한 음식이 많이 팔린다. 어묵도 그렇고 수제비도 그렇고.
그런데도 섣불리 결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확신이 없어서였다. 그것 말고도 우리 식당이 분식집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많은 메뉴 때문에 오히려 더 고민 된 것도 사실이었다.
“응, 나 배고파아···”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다.
당연한 이치였지만 눈보라가 너무 세서 손님들이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렇게 생각해서 어묵과 수제비를 많이 준비했는데 팔리지 않으면 어쩔까 하는 생각들이 계속 들었다.
다연이의 말은 그냥 단순히 나에게 확신을 준 것 밖에 없었다. 잡다한 생각들은 그만하고 그냥 따랐다. 단순하게.
물론 다연이 같이 7살 아이의 입장에선 대단한 생각이다. 오히려 천재다.
다른 아이들은 할 수 없는 생각일 거다.
“다연이 진짜 천잰데?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어떻게 7살이 이런 생각을 하냐구요..!”
되려 밥돌이가 더 흥분해서 말했다.
“맞아, 천재야.”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수제비를 시작한다.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끼니를 때울 한 끼가 더 중요했다. 다연이가 천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거니 우선은 밥부터 먹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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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맛있게 먹었네요!”
밥 먹으러 왔던 경찰들이 식사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선다.
“정말 너무 맛있었어요. 이제 다시 일하러 가야 하지만··· 그래도 좋네요.”
“감사합니다.”
“마시써찌요..! 원래 마싯는 거에요. 오늘은 다른 손님들이 없어서 특히 마시써찌.”
“그래, 잘 먹었어.”
다연이는 한껏 우쭐해진 얼굴로 말했다.
“안뇽!”
식당에 찾아온 경찰 손님들은 다연이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눈보라 속으로 들어간다.
문 너머로 손님들을 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경찰 아저씨들 밥 엄청 마싯게 머거따. 내가 다 봐써. 특히 저 사람은 엄청 빨리 머거따.”
“응.”
다연이가 가리킨 건 어떤 순경이었다. 실제로 내가 보기에도 열과 성을 다해서 먹는 것처럼 보였으니 다연이 말이 맞다.
“내 생각에는 저 경찰 사람은 또 올 거 가타.”
“또?”
“응, 엄청 마니 올 것 같은데.”
옆에 서 있던 밥돌이도 말했다.
“다연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게 다 맞지!”
“응..! 다 마찌.”
그리고 우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 대접을 끝냈으니 이제는 우리가 식사를 할 차례다.
“저도 같이 먹어도 되는 건가요..?”
밥돌이가 그렇게 묻길래 대답했다.
“응, 당연하지.”
“밥 먹짜!”
옆에 있던 다연이가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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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도 꽤 시간이 흘렀다. 바깥에 눈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도 손님들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한 번에 많은 손님은 오지 않았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우리 식당에 방문했다. 가장 잘 팔린 메뉴는 단연 다연이가 선택한 수제비와 눈 내리는 날씨와 잘 어울리는 어묵이었다.
그 동안에도 밥돌이는 계속 식당에 있었다. 이제는 다연이에게 특별한 취급도 받지 못한 채, 어딘가의 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다.
“형님··· 제가 뭐 도와드릴건 없나요?”
“없어. 그냥 놀고 있어.”
“네에···”
방송까지 쉬는 마당에 밥돌이는 아무런 의지도 없이 그렇게 허공만 바라보며 있을 뿐이다.
집에도 딱히 가지 않는 걸 보니 저렇게 심심한 듯 보여도 그렇게 무기력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가끔은 저렇게 있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 그냥 내버려둬야겠다.
그렇게 멍하니 있던 밥돌이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의자에 뉘인 몸을 들썩였다. 그리고 혼잣말을 한다.
“아..! 뭐하는 거야. 다연이랑 놀아주러 왔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니···”
그 말에 옆에서 가만히 혼자 놀고 있던 다연이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봤을 땐 다연이는 혼자서 잘 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 쉬러 온 거 아니니까 열심히 놀아야지.”
다짐하듯 말한 밥돌이가 자세를 바로 잡는다. 머리를 정리하고 흐리멍텅한 눈도 똑바로 뜬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옆에 있던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점심 먹은 지도 꽤 됐는데.”
“먹꼬 시픈 거..?”
“응.”
조금 지친 것 같은 다연이도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역시 다연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건 단연 먹을 거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찌.”
“정말? 뭔데?”
그러자 다연이가 씨익 웃으면서 내 휴대폰을 가져간다. 뭔가를 열심히 뒤지더니 영상 하나를 찾아서 밥돌이에게 보여준다.
“응..? 이게 먹고 싶어? 혹시 한 번도 안 먹어본 거야?”
다연이가 뭘 보여줬는진 모르겠지만 밥돌이가 말하는 걸 보니 낯선 음식은 아닌 것 같다.
다연이가 말했다.
“아니, 머거봐찌요. 근데 지금은 이게 먹고 시퍼.”
“음··· 이건 좀 힘든데···”
“왜..? 안 돼요..?”
“아니.. 안 되는 건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 봐. 배달은 안 되니까 직접 만들어 줄게.”
“직쩝..! 알게써.”
그리고 밥돌이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궁금해진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뭐가 먹고 싶어?”
“피자!”
“피자..?”
피자라면 다연이의 대답처럼 먹어본 적 있는 음식이다. 그것도 가끔 시켜 먹을 정도로 다연이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많이 먹어 봤잖아. 그런데도 먹고 싶어?”
“응!”
피자를 만들어 준다니. 혹시 밥돌이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이미 다연이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이 날씨에 피자 배달이 될 리는 없으니까 밥돌이 알아서 잘 하겠지.
열심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밥돌이가 뭔가를 찾다, 나에게 말했다.
"아, 형님. 혹시 피자 여기에서 만들어 줘도 될까요? 마음 같아서 저희 집에서 하고 싶은데 이 날씨에 못 갈 테니까요."
"응, 상관없어."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건다.
피자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테지만 그래도 밥돌이가 다연이를 위해 하겠다는데 하지 말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딱히 그럴 필요도 없고.
뚜르르.
짧은 연결음이 들리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다. 스피커로 바꿔놨기 때문에 상대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그래, 민혜야.”
전화를 건 상대방은 밥돌이의 동생이자 예나의 친구였다.
민혜는 자기 오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까칠하게 말했다.
“왜? 누가 나한테 전화해도 된다고 했지?”
다른 남매는 저러는 게 보통인 모양이다.
“뭐 부탁할게 있어서.”
“그러니까 누가 부탁해도 된다고 했냐고?”
누가보면 일생일대의 원수와 통화하는 줄 알겠다.
하지만 그렇게 까칠하던 목소리도 밥돌이의 한 마디에 금새 바뀌었다.
“다연이 부탁 받아서 전화한 건데.”
“.....다연이?”
“응, 나 지금 형님네 식당에 있거든. 다연이도 같이 있는데 피자가 먹고 싶대.”
“....왜 나한테 말 안 했지?”
“나간다고 했잖아.”
“다연이 보러 간다는 말은 없었잖아.”
다연이와 나는 밥돌이와 민혜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자를 먹는다.
자기들끼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밥돌이가 말했다.
“그래서 빨리 피자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 가져와. 지금 피자 집은 문 안 열 테니까. 집에 없는 재료 있으면 사 오고.”
밥돌이의 말을 들은 다연이가 후다닥 뛰어가서 말했다.
“아니야..! 지금 밖은 추우니까 오늘 오면 안 돼. 오면 얼어.”
아마도 다연이는 이제야 밥돌이가 민혜에게 전화한 이유를 안 것 같다. 집에서 필요한 재료를 모아 식당까지 오라는 밥돌이의 말을 알았다.
다연이가 말하자 조용히 있던 민혜가 입을 열었다.
“....진짜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은데 지금 나가면 넘어져서 석유가 될 거야. 오늘은 안 되고.. 내일 갈게.”
남매 아니랄까봐 하는 말도 비슷하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남매가 전화를 끊는다. 결국 피자는 내일이나 눈이 오지 않는 날에 만들어 주기로 했다.
“휴··· 안 와서 다행이야.”
민혜를 말리는 데에 성공한 다연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피자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미안···”
“아니야, 괜차나. 어차피 내일 만드러 준다고 해쓰니까. 오늘은 과자 먹어야지이.”
피자 이야기는 금세 잊은 다연이가 과자를 쌓아둔 곳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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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바깥은 어두워지고 눈보라는 약해졌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정도였기에 밥돌이는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안뇽, 밥도리···”
“안녕, 또 올게.”
거의 하루종일 있었음에도 다연이는 아쉬운 모양이다.
매일 하던 것처럼 작별 인사를 하고 밥돌이를 보냈다.
“내일은 어린이집에 갈 수 이써쓰면 좋게따.”
“그러면 피자는 못 먹는데?”
“어린이집 갔다 와서 머그면 되지! 언니는 그 때도 올 거야.”
“그래.”
그런 잡다한 이야기를 끝내고, 우리도 식당을 접고 집으로 향했다.
***
다음 날, 눈이 멎었다. 오늘도 먼저 일어난 다연이가 어제처럼 창 밖으로 보면서 감상에 빠진다.
“오늘도 어린이집 못 간다고 해써.”
어제 오빠가 말해준 사실이었다. 어젯밤에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눈이 그쳐도 이미 쌓인 눈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어제의 다연이였다면 똑같이 아쉬워했겠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오늘은 피자를 먹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도 오지 않았고, 그렇기에 언니들도 우리 식당에 올 수 있다.
“조아. 아주 조아.”
아주 좋은 거다. 시중에 팔고 있는 피자도 맛있지만 직접 만든 피자를 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된다.
“읏짜..”
하지만 넋 놓고 피자만 기다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연이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해야지.”
다연이는 다짐하듯 말하고선 방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