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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34화 (13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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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부는 바람과 계속해서 내리는 눈. 다른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크지만 지금 민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싫다고 말한 다연이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연이가 대답하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민우의 머릿속에는 수만가지의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다연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말을 잘못했나, 하는 생각까지 끊임없이 머릿속을 휘젓던 찰나, 다연이가 대답했다.

“나는 친구들이랑 가튼 학교 가고 싶꺼든. 그래서 가기 시러.”

“응..?”

다연이가 입을 여니 단호하다 못해 딱딱하다고 생각했던 표정까지 풀어지는 것 같았다. 사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다. 단지 다연이의 말에 충격을 받은 민우가 잘못 보고 있었던 것이다.

민우가 멍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덧붙였다.

“근데..! 오빠가 싫은 건 아니야.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서 그런 거야.”

다연이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다연이는 지금 민우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싫다고 말한 뒤에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민우의 표정과 정신줄을 놓은 듯 흐릿한 초점.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짜..? 나 싫어서 안 오는 거 아니고..?”

“당연하지! 나는 아무도 안 시러.”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자 민우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솔직히 다연이가 싫다고 말했을 땐 정말 자기가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오해하기 충분한 표정이었고 말투였다. 물론 지금 다연이가 하는 말로 미루어봤을 때는 의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민우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민우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로 다연이를 데려올 방법과 내키진 않지만 다연이의 친구들도 같이 올 수 있는 방법.

민우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근데 방법이 있어···”

“뭔데?”

“...같이 가면 되지.”

“?”

말해줬음에도 다연이는 여전히 이해 못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민우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연이 친구들도 같이 우리 학교에 오면 되지···”

정말 내키지 않았다. 사실 내키지 않다기보단 싫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랬듯 민우는 다연이의 친구들이 싫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엔 남자 애들만 포함됐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말해야지.

“다 가치? 어떻게..? 다른 학교 가고 시픈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어떠케 같이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 갈 수 이써?”

“왜냐하면···”

민우는 그렇게 운을 뗀 다음, 잠시 생각했다.

다연이가 친구들과 같이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올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미리 들었다.

이 지역에 초등학교는 두 곳이 있다. 둘 중 한 곳을 골라서 갈 수는 있지만 다연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서 사는 아이들은 보통 민우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온다.

그 이유는 가깝기 때문이다. 다른 한 곳은 꽤 멀어서 차를 타야 하는데, 그렇기에 그 초등학교를 선택하는 부모는 거의 없었다.

민우는 다연이의 오빠도 그럴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우가 곧장 다연이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진짜?"

"응, 진짜야··· 아마 다연이 오빠도 그렇게 말할 거야···”

“그러쿤..! 그러면 나는 오빠랑 같은 초등학교 갈게!”

“휴···”

민우는 다연이의 확답을 받아낸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별 것 아닌 일이다. 굳이 다연이의 답을 받지 않아도 다연이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미리 엄마에게 확인도 했고 혼자서 나름 알아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다연이의 입으로 답을 받아내는 건 조금 다른 의미였다. 민우가 더 안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민우 역시 답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 때문에 다연이에게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고.

“다행이다..”

그래도 답을 들었으니 다행이다. 이제 안심할 수 있다.

그 때 놀고 있는 아이들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구덩이 담 넘듯 벽을 넘어들어 왔다.

“고양이다!”

식당을 지키는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다시 벽 위로 올라갔다. 다연이 혼자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른 아이들이 많이 있어서 신변의 위험을 느낀 탓이다.

“고양이도 놀러 왔나 봐.”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고, 민우는 혼자 그 자리에 남아있다.

“그래도 다행이야···”

민우는 다연이가 대답해준 사실에 만족하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곳에 온 목표는 달성했으니 이제 더는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휴..”

빨리 다연이가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더 자주 볼 수 있을 테니까. 그 남자애들은 여전히 싫을 테지만.

***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잘 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팥이 끓는 동안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다. 눈은 치워도 끝이 없이 내렸고, 그 때문에 손님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기에 내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흠···”

대신 나는 팥죽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휴대폰으로 몇 가지 정보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내가 알아본 정보는 다연이의 유치원에 대한 것들이었다. 당연히 미리 알아봤었지만 이렇게 틈만 나면 다시 확인하곤 했다.

이유는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와 같았다. 조금 불안했기 때문이다.

처음 가 보는 곳이니까.

여러 번을 확인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괜찮은 곳 같긴 한데.

휴대폰으로 유치원에 대한 정보를 보고 있는 사이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나는 서둘러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준 뒤에 오래 동안 끓고 있었던 팥을 확인해본다.

“오..”

팥이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눌러봤는데 생각보다 잘 뭉개진다. 다 익은 모양이다.

“다 됐네. 이제 불끄고 나와.”

주무시고 계신 줄 알았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이제 남은 건 팥알들을 체에 걸러서 꾹꾹 누르며 팥물을 만들어내는 일뿐이다. 그런 다음엔 이 물로 팥죽을 만들어야 한다.

“네.”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나는 준비한 체에 팥물까지 전부 걸러낸 다음에야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 혼자 그 무거운 팥물을 드는 건 힘드니까.

할머니는 체에 걸러진 팥 앙금을 잘게 부순 다음, 물을 더 넣어주면서 팥물을 만들었다.

지금은 팥물이 약간 묽게 보이지만 이건 앙금이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맛있는 팥죽을 만들기 위해서는 팥물이 더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체에 거른 팥물이 생각보다 더 많이 나왔다. 아이들과 할머니, 그리고 나까지 먹을 양이라서 보기에도 꽤 많다.

평소라면 이렇게 많은 양을 식당에서 할 수 없었을 거다. 손님들이 많았을 거고, 그래서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손님이 적어서 오히려 다연이에게 팥죽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됐다.

“이제 쌀 넣고 끓이기만 하면 돼. 처음에는 윗 물만 넣고 끓이다가 나중에 전부 다 넣어.”

“네.”

남은 과정은 이게 끝이다. 슬슬 끓이면서 저어주다가 아이들을 부르면 될 것 같다.

나는 우려낸 팥물을 냄비에 적당히 쏟아붓고, 그 위로 쌀을 넣는다.

팥죽은 두 종류로 만들 수 있다. 하나는 쌀알이 들어간, 그래서 먹을 때 든든한 팥죽과 하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새알심만 넣어서 조금 더 부드럽게 즐길 수 있는 팥죽.

할머니가 선택한 방법은 전자였다. 그게 옛날부터 먹어온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팥죽은 보기엔 예쁘겠지만 확실히 쌀알을 넣는 편이 더 배부르긴 할 것 같다. 든든하게 먹는 걸 좋아하는 다연이도 이러는 편을 더 좋아할 거다.

‘이제 새알심을 만들어야지.’

팥물이 끓는 것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 동안 새알심을 만든다.

숙성시킨 반죽을 꺼내서 돌돌 말아준 다음, 새하얀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서 동그란 새알심으로 만든다.

갈색빛의 팥죽에 고명처럼 올라가는 새알심. 팥죽에 파묻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심심한 팥죽의 식감에 먹는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없으면 서운한 재료다.

나는 그것들을 여러 개 만들어준 다음, 한 곳에 모아둔다.

부글부글.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 쌀알을 넣은 팥물이 끓기 시작한다.

냄비 가장 밑에서부터 끓는 물길을 타고 겉으로 올라오는 쌀알들. 아직은 묽어서 팥죽의 모양이 나지 않지만 냄새는 나름 좋다.

옅지만 팥죽을 생각나게 하는 냄새다.

“냄새 좋네.”

나는 팥죽 냄새를 맡으면서 요리를 만들어 나간다.

양이 많아서 젓는데 힘이 들어간다. 아이들이 많은 건 좋지만 그만큼의 음식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아이들이 만들어 달라고 한 건 아니지만.

적당히 끓은 팥물 위로 넣다 남은 나머지 팥물을 쏟아붓는다. 밑에는 팥 앙금이 남아있어서 팥물이 조금 더 묵직해졌다.

팥 앙금이 밑으로 가라앉아서 냄비에 들러붙지 않게 열심히 저어준다. 그러면서 미리 만들어 놓은 새알심을 팥죽 위로 풀어준다. 그러자 서서히 가라앉는 새알심들.

이제는 인내의 시간이다. 먹기 좋게 완성될 때까지 저으면 된다.

“....하하!”

한참을 열심히 만들다보니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뭘 하고 있는지 여태까지보다 소리가 크다.

소리가 조금 더 커지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손님들이 시끄러우면 안 되니까.

그 때 밑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팥죽이다.”

목소리의 주인은 민우였다. 내가 열심히 젓고 있는 팥죽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

이제 팥죽은 거의 다 완성이다. 묽지 않고 질은 걸 보니 이제 먹어도 될 것 같다.

색깔도 먹음직스럽게 바뀌었고 쌀알도 잘 풀어졌다.

마침 민우도 왔으니 민우를 시켜서 아이들에게 오라고 말하면 되겠다.

“민우야.”

“네?”

“애들 좀 불러줄래? 팥죽 먹으라고.”

민우는 잠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나는 완성된 팥죽을 꺼낸 뒤, 그릇과 수저를 하나하나 가지고 나온다.

그렇게 팥죽을 덜어놓을 준비를 끝낸 다음에 고개를 드니 홀에 있는 손님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뭐지..?”

많지 않은 손님들 중에서 유독 한 사람이 내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뭔가 강렬한 눈빛이다. 우연히 이 쪽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아니었다.

저 사람은 분명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다.

‘혹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시끄러웠나?’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시끄러워서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듣기에도 조금 시끄러웠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뒷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이 전부 도착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얘들아, 조용.”

조용히시켰지만 어린 아이들이 그렇듯 소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이 곳을 노려보는 손님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당장이라도 이 쪽으로 걸어온 기세다.

내가 시끄러워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려 할 때.

저벅.

그 손님이 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굳은 얼굴과 걸음걸이. 시끄러웠다면 명백하게 내 잘못이니 사과해야만 했다.

그 때 그 손님이 입을 열었다.

“혹시··· 그것도 파는 겁니까..?”

“네..?”

손님은 팥죽을 가리키며 말갛게 웃었다.

“그 팥죽··· 너무 맛있어 보여서요.”

또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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