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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왔어?”
주방으로 들어간 다연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둘의 대화를 옅듣는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는다.
“음..”
어차피 이야기를 엿들을 생각으로 자리를 뜬 건 아니니 둘에게서 시선을 떼고 복도 쪽으로 향했다.
다연이가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던 이유는 혹시 오빠가 다연이를 찾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지금 오빠가 자신을 찾는다면 깜짝 놀래키지 못할 거니까.
“조아.”
그렇게 말하고 복도 쪽으로 들어간다.
사실 다연이가 오빠 몰래 선생님을 부르려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수제비가 정식 메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왜냐하면 다연이는 수제비가 맛있었으니까.
거짓말 안 하고 진짜 맛있었다. 처음에 집에서 했던 수제비도 맛있었지만 오늘 식당에서 먹은 수제비는 그거보다 훨씬 맛있었다.
똑똑한 다연이가 생각하기에는 그 이유가 정성을 쏟는데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집에서 만든 수제비에도 정성을 쏟긴 했지만 옆에서 계속 지켜본 다연이의 눈에는 조금 달랐다.
집에서는 반죽을 조물조물 만들고 숙성시킨 것을 수제비로 만든 게 전부였다. 하지만 식당에서 쓸 반죽을 만들 때에는 분명 그 때와 달랐다. 반죽을 조물거리는 시간도 길었으며 채소도 더 신선한 것을 썼고 왜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을 더 쏟은 것 같았다.
“나는 봐써..”
분명 다연이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식당에서 만든 수제비가 더 맛있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지금 다연이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가 단순히 다연이 본인이 맛있는 수제비를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다연이는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야.”
물론 맛있는 수제비도 먹고 싶다. 하지만 그 맛있는 수제비를 많이 팔아서 식당이 유명해지는 것이 더 좋다. 그러면 손님들이 더 많아질 테니까. 수박이 인형이 더 생길지도 모르고.
마음 같아선 다연이도 당장 수제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지만 아직 7살이기에 쉽지 않다.
지난 일년 동안 요리에 대한 지식은 물론 키도 많이 컸다.
그 증거가 여기, 기둥에 새겨져 있으니 굳이 다연이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치.”
일 년 동안 기둥에 키를 잰 흔적. 엄청 많이 자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혼자 요리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수제비를 하는 법만 해도 그렇다.
다연이는 수제비 요리법에 빠삭하다. 오빠가 요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고 영상으로도 많이 접했으니. 게다가 아직 다연이는 잘 모르지만 재능도 있다. 하지만 다연이에겐 아직 신체적 한계가 있었다. 이건 시간이 흘러야만 극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다연이에게 필요한 건 뭘까.
바로 맛있는 음식이다. 혼자서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없을 뿐더러 다연이가 알기론 이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하는 사람은 오빠다. 그래서 다연이는 맛있는 수제비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여보세요...?”
드디어 전화가 연결되고 선생님이 전화를 받는다.
다연이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처음엔 오빠가 아닌 다연이라는 사실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지만 곧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물론 다연이도 선생님의 목소리가 작아진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왜냐하면 이번 전화는 선생님을 초대하기 위한 전화니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다연이는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올 거죠?”
선생님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다연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올 거라는 걸.
이 질문은 그냥 형식적인 질문일 뿐이다.
전화기 너머의 선생님이 대답했다.
“다른 일이 있긴 한데··· 알겠어. 갈게.”
“네, 빨리 오세요.”
무심한듯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그 너머로 웃음기가 묻어 있다. 그리고 다연이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선생님이 뜸을 들이고 이렇게 돌려 말하는 건 연기하는 거라고. 아마도 다연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지만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
익숙하게 전화를 끊고 다시 다른 번호를 찾는다.
“또 누구를 부르지?”
할 수만 있다면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부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번의 통화를 더 끝냈을 때.
“뭐해?”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으어!”
다연이는 무슨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
“....놀라써.”
뭘 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연이는 놀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
“뭐 하고 있었어?”
“아··· 아무거또 안 해써. 그냥 사진 찍고 이써따. 복도가 예쁘네에..”
그러면서 사진을 찍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들키기 싫은 뭔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모르길 바라는 것 같으니 묻진 말아야지.
“민호 간대. 인사하자.”
“알게써.”
그러면서 순순히 따라나선다. 여전히 연기를 하는 것처럼 어색해 보이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안뇽, 또 와.”
“응.”
“수바기한테도 고맙다고 말해주세요.”
“알겠어. 말해줄게.”
다연이는 여전히 수박이와 민호가 같은 사람인줄은 모른다.
방금 전에 놀란 이유가 우리 둘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왜 그런 거지.
민호가 사라질 때까지 문 앞에서 배웅을 마친 다연이가 다시 복도 쪽으로 들어간다.
해야 하는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은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쁜 일은 아닐테니까.
.
.
.
나른한 오후, 수제비를 배부르게 먹었더니 잠이 몰려온다. 자면 안 되는데.
그럼에도 자꾸 눈이 감긴다. 특별히 밤을 세우지도, 잠을 뒤척이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을 버티다 결국 졸음에 못 이겨 눈을 감았다.
“졸려?”
그게 내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
.
“흠···”
얼마 뒤에 다시 잠에서 깼다. 얕게나마 한숨 자고 나니 개운하다.
이제와서 생각난 거지만 아까 졸렸던 건 다연이 덕분에 많이 몰려온 손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확 늘어난지는 꽤 됐지만 그 동안의 피로가 누적됐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수제비까지 배부르게 먹고 날도 좋아서 잠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니 주변에서 사람들의 대화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들려온다.
“선생님만 부른 게 아니구나···”
“....내가 다 불러찌.”
다연이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오긴 한 모양이다.
내가 자고 있어서 기다린 것 같다.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건 식당 사장의 자세가 아닌데.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해 서둘러 일어난다.
“죄송합···.”
“어, 이러나따.”
서둘러 일어났는데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손님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손님은 맞지만 전부 아는 얼굴이었다.
다연이의 선생님도 있고, 예나도 있고 밥돌이와 예나 친구들, 그리고 민우까지 있었다.
“뭐야..?”
내가 그렇게 물으니 다연이가 대답한다.
“내가 다 불러찌! 수제비 머거 보라고!”
웅성웅성 거리던 소리가 이 소리였구나.
모인 사람들과 자랑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다연이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놀라찌?”
“응···”
다연이만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미소 짓는다.
.
.
.
다연이의 선생님이 다연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다연아,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들도 같이 부른거면 그렇다고 말해줄래..?”
“네! 알게써요!”
선생님은 왜인지 실망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고 다연이는 밝게 대답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밥돌이와 예나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중이다.
“우와, 나 밥돌이 처음 봐···”
“나도···”
이렇게 보니 밥돌이가 유명하긴 한 것 같다. 저렇게나 인지도가 높다.
“크크, 봤지? 나 유명하다니까.”
밥돌이가 자기 동생에게 말했지만 동생은 인정하기 싫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는다.
“밥돌이도 다연이랑 엄청 친한가봐요? 전화하니까 한 걸음에 오고.”
“당연하지! 다연이 부탁이라면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해줄 건데 이 정도는 쉽지!”
“조아.”
식당이 소란스럽다. 모두 내가 만든 수제비를 먹어보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다연이에게 수제비를 정식으로 내놓기 전,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었는데 아마도 그 말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 다연이는 반드시 수제비가 정식 메뉴로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때 선생님이 말했다.
“수제비 때문에 불렀죠?”
“네.. 죄송합니다..”
혹시 다연이 때문에 억지로 오진 않았을까 싶었는데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안 죄송해도 되요. 저도 먹고 싶어서 온 거니까.”
이 상황의 원인인 다연이는 선생님 옆에서 우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와달라고 하니까 다 와써. 전부 다 수제비가 먹꼬 시퍼서 온 거지!”
“....그래.”
“나 잘해찌?”
“...응.”
그래도 전부 다연이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이렇게 한 걸음에 달려온 건 조금 신기하다.
내가 아까 했던 생각처럼 이 지역에서 다연이의 영향력은 많이 큰 편인 것 같다.
상황이야 어찌됐든 모두 수제비를 먹으러 왔으니 얼른 요리를 해야겠다.
“전부 다 수제비 머글꺼죠?”
다연이가 그렇게 묻고 모두가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모두 다 같은 메뉴를 먹는 것도 좋지만 다른 선택지도 생각해뒀기에 내가 말했다.
“김치 수제비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수제비랑 김치 수제비 중에 하나 고르시면 돼요.”
김치 수제비는 그냥 수제비를 메뉴에 넣으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같이 고민했던 메뉴였다.
이름에 김치가 들어가는 만큼 매콤한 맛을 추구하는 음식이다.
내가 그렇게 물으니 잠잠하던 사람들 속에서 밥돌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김치할래요! 매코옴! 하게 해주세요!”
“응.”
나는 그렇게 모든 주문을 받고, 요리를 시작한다.
요리의 과정은 이전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같은 수제비를 만들 뿐이니까.
대신 밥돌이 몫의 김치 수제비는 조금 다르다. 국물을 만드는 과정에 김치도 같이 들어가니까. 거기다 고춧가루와 매운 맛을 더욱 치켜올려줄 청양고추까지 넣는다.
“오.. 맛있는 냄새가 난다!”
홀에서 저렇게 말하니 왜인지 모를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기대하고 있으니 더 맛있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가.
그냥 수제비에서도 좋은 냄새가 나지만 코를 잡아 끄는 건 단연 밥돌이 몫의 김치 수제비였다. 강렬한 냄새와 색깔. 매운 향은 입맛을 더 돋구어준다.
김치는 김치찌개에 넣던 푹 신 김치를 넣었다. 신 김치를 넣는 게 국물 맛에도 더 좋다.
김치 수제비는 처음 만들어 본다. 잘 됐을지 기대가 됐기에 한 숟가락 맛을 보기로 한다.
“잘 됐네.”
그렇게 혼잣말이 나올만큼 잘 됐다. 특유의 매운 맛도 좋고 신 김치를 넣으니 김치찌개처럼 매력적인 국물 맛도 난다. 게다가 수제비라는 특징이 있으니 김치찌개와는 또 다르게 맛있다.
매운 걸 좋아하는 밥돌이에게 딱 맞는 음식인 것 같다.
보글보글 끓으면서 국물 속을 헤엄치는 채소들. 그 중에 있는 청양고추도 매력적인 국물 맛에 한 몫한다.
청양고추만의 깔끔하면서도 매혹적인 매운 맛. 단순하게 맵다고 하는 감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이다. 혀가 아프다는 말보단 그럼에도 또 먹고 싶다는 말이 어울린다.
그렇게 완성된 수제비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퍼 담는다.
“다 돼써?”
“응.”
수제비를 자랑할 생각에 벌써부터 싱글벙글인 다연이가 물었다.
천천히 담으면서 홀을 바라본다. 저마다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있는 모습. 그 속에서도 유독 밥돌이의 모습이 눈에 띤다.
휴대폰을 번쩍 들어서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 표정만 봐도 좋은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휴대폰을 보고, 다시 다연이를 본 밥돌이가 놀란 눈으로 크게 말했다.
“다연아, 고맙다!”
밥돌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연이에게 다가가 악수를 한다.
다연이는 밥돌이가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지 잘 몰랐지만 그냥 악수를 하는 게 재밌는 듯 웃고 있었다.
“나는 고마운 사라미야!”
밥돌이가 말을 이었다.
“나 다시 떡상했다! 다연이가 해준 떡국 영상이 잘 됐어!”
“그게 뭔지 모르지만 조아!”
밥돌이가 갑자기 말하는 바람에 아직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다연이가 밥돌이와 똑같이 만세를 하면서 소리쳤다.
"만세!"
수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