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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는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여전히 초콜릿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많이 배고프긴 했던 모양이다. 구석에서 초콜릿을 까먹을 정도면.
“안 숨어도 되는데.”
“...밥 먹기 전에 머그면 안 된다고 했는데에··· 내가 머겄어.”
이해한다. 지금이면 딱 배가 고플 시간이니까. 그래서 수제비를 한 거기도 하고.
늘 먹던 시간에 먹었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학생과 대화를 나누느라 시간이 조금 흘렀으니까. 게다가 때마침 학생이 초콜릿까지 줬으니 먹지 않고는 못 베겼던 모양이다.
“괜찮아. 대신 수제비가 맛없어지겠지.”
“...!”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가 놀란 얼굴을 한다. 다연이에겐 밥이 맛 없어진다는 말이 더 충격이 큰 것 같다.
“밥이.. 맛 없어 진다고..?”
“응, 밥 먹기 바로 전에 단 걸 먹으면 맛 없어지지.”
두 눈이 떨리고 오물거리던 입이 멈췄다.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하던 다연이는 손에 쥔 초콜릿 봉지를 한 번 바라본다.
그리고 작게 떨리는 손.
“밥 다 먹고 먹을 걸···”
후회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입에 넣은 초콜릿을 뱉을 수도 없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그건 다연이가 용납 못할 거다.
아무리 맛 없어진다고 해도 이미 먹고 있는 건 전부 삼켜야 하다.
“어··· 어떻게 하면 다시 마시써져..?”
“음···”
정확하 이유는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생각해본다.
초콜릿을 먹으면 밥이 맛 없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지나치게 단 맛이 입에 맴돌기 때문이 아닐까.
“물로 헹구면 괜찮지 않을까?”
“알게써.”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가 서둘러 초콜릿을 삼키고 주방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간다. 표정은 사뭇 진지했고 동작은 다급했다.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한 번 겪어보는게 더 나은 것 같다.
확실한 건 다연이는 이제 두 번 다시 밥을 먹기 전에 초콜릿을 먹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저 표정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럼에도 초콜릿을 뱉지 않는 걸 보면 먹는 걸 정말 좋아하기는 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요리해주는 맛도 있었고.
그게 좋은 점이기도 했다.
"퉤."
주방으로 달려가서 다급하게 입을 헹구는 다연이. 학생은 그런 다연이를 티비 속 캐릭터를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다급한 입 헹굼을 마친 다연이가 다시 쪼르르 걸어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표정은 불안했고 배는 고파 보인다.
“다 된 거야..? 나 이제 밥 머거도 돼?”
“응.”
다연이가 바라는 것처럼 됐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먹자.
우리는 그제야 자리에 앉아서 수제비를 먹기 시작한다.
아직 기온이 낮아서 식당 안에는 차가운 기운이 맴돈다. 하지만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애매한 기온 속에서 수제비를 한 숟가락 담아서 올린다.
그리 춥지는 않지만 수제비가 따뜻한 탓에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하얀 김을 따라 수제비의 향도 같이 퍼진다.
숟가락 가득 올라가 있는 국물과 채소들. 먼저 국물을 맛본다.
“...”
깔끔한 국물과 잘 익은 채소들. 깊고 깔끔한 국물은 생각보다 더 중독적이다.
후루룩, 국물을 한 입 들이키고 나서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다시 국물 생각이 나서 숟가락을 집어들게 된다.
그렇게 국물을 충분히 즐기고 난 뒤, 수제비도 한 입 먹는다.
처음에 맛 본 것처럼 맛있게 잘 만들어졌다. 적당한 두께로 떼어내서 식감도 좋고 맛도 좋다.
저번에 떡국을 만들었을 때와 비슷하지만 맛은 많이 다르다. 어느 것 하나가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 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으니까.
“마시써?”
아직 한 숟가락도 뜨지 않은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그 옆에 있던 학생도 그제야 수제비를 한 술 먹기 시작한다.
“응, 맛있어.”
늘 하던 대답이었지만 그때마다 그랬듯 정말로 맛있었다.
특별하게 탄성을 내지를 만한 맛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계속 생각나는 맛. 특별한 음식에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듯이, 잔잔한 맛도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거나 종종 생각나곤 한다.
이 수제비는 그런 맛이었다.
“후우···”
다연이가 숨을 크게 내쉬고 숟가락을 살며시 집어 들었다.
저 진지한 얼굴을 보니 아직도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아까 먹은 초콜릿 때문에 수제비가 맛이 없진 않을지. 지금 다연이에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제 머거 볼게···”
땀이 나는지, 습관인건지 다연이가 손으로 이마를 훔치면서 말했다. 그리고 수제비를 가득 담은 다음, 입 속으로 집어 넣는다.
수제비를 오물거리는 다연이를 학생과 내가 지켜보고 있다. 학생은 다연이의 팬답게 집중해서 보고 있다. 어쩌면 초콜릿을 선물해 준 사람이 자신이라서 더 긴장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 마싯는데에··· 얼마나 마싯는 건지 모르게써.. 초콜릿 맛도 쪼금 난다..”
“몇 번 더 먹다보면 괜찮아 질거야.”
“응....”
먹는 재미가 인생의 전부인 사람처럼 우울한 얼굴을 하는 다연이를 보니 문득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었어?”
그런 나를 보고 다연이가 묻는다.
“아니.”
“여기가 씰룩해따.”
그러면서 입꼬리를 가리킨다.
나는 왠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해져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수제비.. 맛있어?”
학생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다연이와의 사건 때문에 조금 주눅 들어 있었던 학생이 밝은 얼굴을 했다.
“네, 진짜 맛있어요! 원래 파는 음식이라고 해도 진짜 다 믿을 것 같습니다.”
학생의 얼굴을 보니 다연이 앞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벌써 수제비를 거의 다 비웠다. 확실히 큰 덩치만큼 먹는 양도 꽤 많은 것 같다.
“우와··· 진짜 그런 거 가타. 벌써 거의 다 머겄따.”
다연이가 학생의 그릇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연이도 꽤 놀랐는지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
밥돌이를 바라볼 때의 눈빛 같다. 약간의 존경과 인정을 담은 눈빛.
“오··· 그거 진짜 대다네··· 그렇게 마싯게 많이 먹는 사람은 밥도리 밖에 못 봤는데에..”
아직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다연이도 학생이 많이 먹을 줄 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 맞다. 다연이는 많이 먹는 사람 좋아하지?”
드디어 자신의 강점을 찾은 듯 학생이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자 다연이가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니야. 나는 많이 먹꼬 또 마싯게 먹는 사람을 조아해요.”
“맞아. 밥돌이 방송에서도 그렇게 말하더라.”
“흠..! 오빠도 알고 이써써. 나는 유명하니까..!”
처음의 의심은 완전히 날아간 것 같다. 그런 다연이를 보고 학생이 말했다.
“그럼 나는 맛있게 먹는 사람이야?”
“음···”
그 질문에 다연이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선 학생을 살핀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쪼금. 아직 밥도리처럼 어엄청 마싯게 먹지는 않는데 그래도 마싯게 잘 먹거요. 조금만 더 마싯게 머그면 오빠도 밥도리 동생할 수 이써. 내가 밥도리랑 친하니까 밥도리 동생할 수 있게 물어 볼게요.”
“큭큭, 그래. 고마워.”
다연이만의 문법과 단어가 섞여 있어서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강 밥돌이의 방송 인맥 라인으로 넣어주겠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다연이는 밥돌이와 그 정도의 친분은 있다. 저번에 밥돌이가 자신이 계속 방송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다연이 덕분이라고 말했었으니까.
이렇게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다연이가 꽤 거물이었다. 벌써부터 인맥이 탄탄했으니까.
“진짜야..! 나 밥도리랑 엄청 친해!”
“그래, 나도 알아. 얼마 전부터 밥돌이 방송 보기 시작했거든. 다연이 때문에.”
“조아조아.”
이제 둘은 꽤 친해진 것 같다.
나는 학생의 그릇에 수제비를 더 채워준 다음, 다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다연이가 보기에도 학생이 그럭저럭 잘 먹는지, 밥돌이의 먹방을 구경하듯 가만히 지켜본다.
“잘 머거. 밥도리 동생할 수 이따.”
다연이는 그렇게 조금 더 지켜보더니 다시 물었다.
“근데 오빠는 수제비 마시써? 이거 우리 오빠가 식당에서 팔 거라고 했는데.”
“응, 맛있어.”
학생은 나를 보면서 말을 잇는다.
“진짜 맛있어요. 팔아도 되는지 고민하고 계셨으면 고민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바로 팔아도 될 정도 퀄리티에요. 지금은 방학 때문에 얼마 안 팔리겠지만.. 개학하면 다른 애들도 많이 먹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조아.”
“그래, 안 그래도 조금 고민하고 있었는데. 팔 수 있게 해 볼게.”
거의 팔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고민할 거리가 많았다. 이번 주말에 예나에게도 물어보려고 했을 정도로.
식사는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났다. 학생은 원래 빨리 먹었고, 다연이는 그런 학생을 보면서 더 열심히 먹었다.
다연이는 수제비를 먹으면서 초콜릿을 먹었던 일은 자연스레 잊은 것 같았다. 더 이상 맛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맛있다는 말만 끝없이 늘어 놓을 뿐이다.
“후.. 잘 먹었습니다.”
“잘 머거써!”
숨을 내뱉으면서 늘어지는 다연이를 보니 꽤 만족스런 식사였던 것 같다.
우울했던 처음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오빠, 수제비 이제 우리 식땅에서 파는 거가 되찌?”
후련한 얼굴을 하던 다연이가 다시 확인하듯 묻는다.
“아직 잘 몰라. 예나한테도 물어봐야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어떤지 물어보고 싶거든.”
저번에 메뉴를 추가했을 때는 예나와 다연이의 의견만 듣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 동안 아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이번에는 저번처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식사 대용으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까 조금 더 신중하고 싶다.
“음··· 그러면 먹는 사람들이 많으면 더 조은 거야?”
“많이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지.”
“오.. 알게써.”
다연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뭔가를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은 나도 다연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1년 정도 같이 살았으면 꽤 오래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연이가 예상할 수 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나는 학생에게 물었다. 이 학생에게는 인형탈과 관련해서 물어볼 게 많았으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름이 뭐야?”
“아, 저는 장민호입니다. 저기 위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그렇게 잡다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마음 같아선 바로 인형 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옆에는 옆에는 아직 다연이가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쯤하고 다연이를 보낼 구실을 만들어야겠다.
한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말한다.
“오빠.”
“응?”
살짝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 저기에서 놀고 있을래.”
왠 일인진 모르겠지만 다연이가 알아서 빠져준다면 나도 좋다.
“그래. 놀고 있어.”
“그럼 나 휴대폰죠.”
“응.”
다연이를 떠나보내고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궁금한 것들에 대해 전부 물어봤었는데 자세하게 대답해줘서 그 때 일의 내막을 알 수 있었다.
내 생각대로 새로 생겨난 가게에서 알바를 했다고 한다. 인형탈을 쓰고 하는 알바였는데 우연히 다연이와 마주쳐서 여기로 온 거라고 했다. 다연이가 수박이를 좋아하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고.
“그런데 왜 그 다음 날엔 안 왔어?”
“아.. 그 때 알바하다가 빙판길에 넘어져서 인형 탈이 찢어졌었거든요. 그래서 못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거 입고는 못 올 것 같고···”
춥긴해도 빙판길은 아직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물으니 민호가 대답했다.
“얼마 전에 비 왔었잖아요? 버려진 통에 담겨 있던 빗물이 쏟아지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냥 버려진 통에 담긴 빗물이 넘어져서 얼게 된 거라 누굴 탓하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얼마 전에 비가 오긴 했다. 그렇게 많이 오진 않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억세게 운이 안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그 때의 상황에 대해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좋은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없이 도망간 건 아니니까.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민호는 다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연아.”
비록 수박이의 모습으로는 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연이의 배웅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다연이를 불렀다. 선물까지 사왔는데 이 정도 팬 서비스는 있어야 하니까.
“....”
그런데 다연이가 대답이 없다.
무슨 일이 있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연이를 찾기 위해 안 쪽으로 향했다.
***
지훈이 한참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다연이는 복도 구석에서 열심히 휴대폰을 만지는 중이었다.
“어··· 선..생님.”
다연이가 휴대폰에 적힌 글자를 느리게 읽는다.
이유는 방금 전에 오빠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수제비를 맛볼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말.
이렇게 전화를 해서 친한 사람들을 부른다면 오빠가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깜짝 놀라는 좋은 일인 거다.
사실 그런 의미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제비를 손님들에게 내는 모습을 다연이가 빨리 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까 먹었던 수제비가 너무 맛있었거든.
“전화할 거야.”
다연이가 다짐하듯 작게 말했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