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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은 다연이의 간식으로 주기 위해 만든 음식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수박이가 왔었고.
다연이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면서 학생을 바라본다. 아직까지는 뭔가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분명 주먹밥은 수박이한테만 줬는데 어떻게 이 학생이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만 있었다.
“....”
학생은 숨을 죽이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최대한 빠르게 맞는 정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연다.
“...수박이가 줬어.”
“응?”
“나 일하는 곳에 수박이가 왔다고 했잖아··· 그 때 수박이가 준 거야.”
“....”
다연이는 그 말이 맞는지 잠시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형사처럼 생각에 잠겨 있던 다연이는 머릿속에서 치열한 진실 공방을 끝낸 뒤, 턱에서 손을 뗀다.
“음··· 맞는 거 가타. 거짓말 아니야. 오빠는 수바기 선물도 가지고 와쓰니까.”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근엄한 얼굴로 있던 다연이는 학생의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보고 나서야 눈을 떼고 시선을 돌린다.
학생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의심의 끈은 놓지 않았다. 아직도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주먹밥은 마시써써?”
“응··· 맛있더라.”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 학생이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 쭈뼛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수제비도 원래 팔던 메뉴였나요? 저는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
“아직 파는 건 아니야. 새 메뉴로 넣으려고.”
“그러면.. 제가 처음으로 먹는 건가요..?”
“아니, 처음은 다연이가 어제 먹어봤고, 두번째지.”
“오···”
아직 학생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다연이가 말했다.
“수바기 친구라서 주는 거에요.”
“고마워.”
다시 존댓말을 시작한 걸 보니 완전히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럴 때 빨리 수제비를 만들어서 줘야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릴 것 같다. 다연이는 맛있는 걸 좋아하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해야겠다.
수제비를 시작하려던 와중에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그 때문에 제대로 된 요리는 시작도 못하고 미리 바깥에 꺼내놓은 재료들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놓여 있는 재료는 미리 만들어 놓고 숙성시킨 반죽과 수제비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들, 그리고 양념으로 들어갈 간장이었다.
“우와, 반죽도 직접하시네요?”
다연이의 눈초리가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앉아있던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응, 전문점처럼 많이 팔 건 아니라서 이왕이면 맛있게 하려고.”
“와··· 맛있을 것 같아요.”
학생이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수바기도 나중에 와서 마시써따고 할 거야.”
“응···”
학생은 약간 날카롭게 말하는 다연이의 목소리에 눌려서 작게 말했다.
나는 그런 다연이와 학생에게서 시선을 떼고 요리를 시작한다.
수제비는 아무래도 공산품을 쓰는 것보단 직접 반죽을 만들어서 하는 편이 훨씬 맛있다. 직접 반죽을 해서 만드는 편이 더 쫄깃한 맛이 살아있다.
그냥 주방에서 만들어 먹어보기만 한 나도 그렇게 느끼는데 손님들의 입장에서는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을 거다.
내가 만든 수제비의 첫 손님인 다연이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수제비는··· 오빠가 만든 게 마시써. 마트에서 산 건 맛 없꼬.”
“응.”
다연이가 학생에게 설명하듯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차가웠지만 아까보단 나아진 것 같다.
수제비를 하기 전에 미리 정보를 찾아봤었다. 수제비의 맛은 여러가지에서 결정이 되는데 반죽을 하는 과정도 맛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충분히 문댄 반죽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쫄깃함이 더 살아있다. 그래서 발로 반죽을 문대는 족타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일단 나는 손으로 하려고 한다. 이미 그렇게 완성시켜 놓은 반죽을 숙성까지 끝마쳤다.
하지만 반죽 이전에 국물을 완성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반죽과 반죽을 뜨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해도 국물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반죽의 장점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물을 하는 과정은 여타 다른 음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멸치로 국물을 우러내고, 마늘을 넣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과정.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국물이 들어간 음식의 대부분은 늘 이런 식의 과정을 거친다. 국물을 우려내고 간을 맞추고, 속재료를 넣어서 천천히 끓이는 과정.
그럼에도 항상 다른 음식이 나오는 건 음식마다의 개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된장찌개에는 된장이 들어가고 김치찌개에는 김치가 들어가는 것처럼 수제비 역시 같은 국물일지라도 맛은 다르다.
그렇기에 요리하는 나도 늘 기대가 된다. 메인이 되는 재료가 들어갈 때마다 달라지는 국물의 색과 향, 역시 좋다.
국물이 우러나는 동안, 재료들을 썬다. 수제비에 들어갈 재료는 애호박과 양파, 대파다.
국물의 맛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줄 재료들이다.
이렇게 잘 썰어놓은 재료는 수제비 반죽을 먼저 넣은 다음, 넣어주기로 한다. 그래야 채소들이 과하게 흐물거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반죽이 익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러는 편이 맞다.
내가 그러고 있을 때 뒤에서 입을 꾹 다물고 시간만 보내고 있던 학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연아.”
“네..?”
저번에 다연이가 만든 김밥을 받아갈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연이와 있었던 일들 때문인지 그 때보다 많이 조심스럽다.
“배고프면 이거 먹을래?”
학생이 작은 초코바를 내밀었다.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초콜릿.
다연이의 김밥을 받을 때처럼 과자를 내밀었지만.
“시러.”
다연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단호한 얼굴은 아니다.
다연이가 말을 잇는다.
“오빠가 밥 먹기 전에 과자 머그면 밥이 맛 없다고 했어요.”
“그래···”
다연이가 실망한 얼굴로 다시 초콜릿을 가져가려고 할 때, 학생의 손을 턱 하고 잡는다.
“응..?”
“...대신 나중에 머글게요. 이거는 내가 가지고 이쓸 거야.”
그러면서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연이의 표정을 보니 방금 전의 의심스러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도도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 그럼 나중에 먹어.”
“네.”
주섬주섬 열심히 챙겨 넣고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면을 바라본다.
저렇게 도도한 척 말해도 배가 고프기는 한 모양이다.
나는 이어서 요리를 진행한다.
육수가 잘 우러났으면 이제 반죽을 넣어준다. 요리의 메인이 등장할 때다. 잘 숙성된 반죽을 적당하게 떼어준다.
길게 늘어지는 반죽. 숙성이 잘 됐다.
주욱.
길게 늘어난 반죽을 얇게 펴고 손에 쥔다. 말랑말랑하니 촉감도 좋다.
수제비는 맛있는 국물과 좋은 반죽도 중요하지만 반죽을 얇게 떼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두꺼우면 식감이 이상하거나 덜 익을 수도 있고, 반면에 너무 얇으면 흐물흐물거리다 툭툭 끊어져 버릴 수 있으니까.
그 중간의 적당한 식감을 찾아서 일정하게 떼어내야 한다.
나는 영상과 연습을 통해 배운 손놀림을 이용해서 수제비를 뜨기 시작한다.
툭툭, 경쾌하게 떨어져 나가는 반죽. 최대한 일정하게 뜨려 노력하고 있다. 적당히 얇게 좋은 식감이 될 정도로.
그 모습을 본 학생이 말했다.
“와.. 수제비 한 두번 해본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야, 우리 오빠는 수제비 마니 안 해봐써요.”
“그런데 엄청 잘하시는데?”
“흠흠, 당연하찌..! 원래 오빠는 요리 잘 해요. 오빠도 알자나.”
“크크, 맞아.”
둘이 대화 나누는 걸 들으니 처음에 어색했던 건 다 풀어진 모양이다.
이제 수제비를 먹기만 하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상 다연이의 기분만 좋아진다면 친해지는 건 시간 문제니까.
그렇게 툭 떼어 넣은 수제비가 잘 익어서 둥둥 떠오를 때쯤, 수제비 하나를 맛본다.
“좋아.”
적당히 잘 익었다.
“조아!”
잘 익어가는 수제비를 보고 있으니 다연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그 말은 지금 다연이가 엄청 배가 고픈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저 목소리가 짜증으로 바뀌기 전에 얼른 수제비를 완성시켜야 한다.
딱 좋은 식감의 수제비가 완성되면 그 뒤를 이어서 채소들을 넣어준다.
국물의 맛을 더 깊게 만들 채소들과 함께 국간장과 마늘 간 것도 같이 넣는다. 마늘은 다연이가 먹는데 맵지 않게 국물의 맛만 더 깊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넣는다.
애초에 마늘을 넣는다고 해서 맵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다.
곧이어 완성된 수제비. 여느 때처럼 마지막으로 맛을 보기로 한다.
간까지 완벽해야 음식을 손님들에게 낼 수 있으니까.
나는 평소에 그랬듯 다연이에게 한 입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고개를 돌려 다연이를 찾았지만 왜인지 다연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연이 어디 갔어?”
“아까 어디로 가던데 어디로 갔는진 모르겠어요.”
“밖으로는 안 나갔지?”
“네, 제가 문 쪽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가지는 않았어요.”
그런 거면 괜찮다. 다연이 알아서 뭐든 하고 있겠지. 다연이가 오고 난 뒤에는 식당에서 위험할 수 있는 건 전부 치웠으니 별 일 없을 거다.
일단은 내가 맛을 보고 음식을 내놓을 때 다연이를 불러야겠다.
후룩.
따뜻한 국물과 함께 수제비 하나를 먹어본다.
“음.”
늘 그랬듯 잘 됐다. 특히 수제비 덩어리가 잘 된 것 같다. 반죽도 좋고 수제비도 잘 떠서 식감도 딱 먹기 좋다.
족타라고 발로 밟아서 반죽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는 그렇게 한 번 만들어볼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수저를 내려 놓았다. 수제비는 맛있게 잘 됐다. 이제 그릇에 담자.
꿀꺽.
수제비를 그릇에 덜어 놓으려던 찰나, 침 넘기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 앉은 학생이 낸 소리였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
침 넘기는 소리가 이렇게나 크게 들리다니. 학생의 시선도 멍하니 수제비를 바라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서둘러 시선을 옮겼다.
학생도 다연이처럼 배고픈 모양이다.
특별히 학생 몫의 수제비는 많이 담는다. 다연이에게 선물도 줬고 수박이 인형탈을 썼을 때에도 일하는 중이었을 텐데 다연이의 동심을 위해 기꺼이 식당까지 와줬으니 최대한 푸짐하게 챙겨준다.
앞으로 식당에 올 때도 잘 해줘야지.
나는 거의 넘칠 듯 수제비를 퍼 담는다.
“어.. 너무 많은데요.”
“많이 먹어.”
덩치도 큰 만큼 많이 먹을 것 같다. 특히나 운동을 하는지 근육이 많이 붙어 있는 몸이라서 더 많이 먹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만큼많이 담는다.
그렇게 각자 몫의 수제비를 담고 서빙한다.
학생이 자기가 직접 가지고 가겠다고 했지만 어딘가에 숨어있는 다연이를 찾을 겸 해서 밖으로 나온다.
“감사합니다.”
나는 수제비를 내려놓고 다연이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나 몰래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있을 때, 홀 구석에 등을 돌리고 있는 다연이가 보인다.
“다연아, 뭐해?”
내가 말하자 다연이가 놀란 듯 어깨를 들썩인다.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하고 있었나. 다연이가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
죄라도 지은 것 같은 얼굴에, 입에는 뭔가를 물고 있었다.
진한 갈색의 뭔가를 오물거리고 있었는데 다연이는 나를 보자마자 손에 쥔 비닐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게 뭔지 알아차린 내가 물었다.
“초콜릿 먹었어?”
초콜릿을 먹어서 죄 지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밥 먹기 전엔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어서.
“너무 배고파서···”
우울한 얼굴로 초콜릿을 오물거리며 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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