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181 --------------
“큰일나따···”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호기롭던 두 눈이 다시 축 쳐졌다. 여태까지 열심히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음식을 망쳤다고 생각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런 다연이의 마음과는 다르게 떡국에 풀어진 간장은 국물 속에서 유유히 헤엄칠 뿐이다.
“괜찮을 거야.”
“안 괜차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밥돌이도 살짝 놀랐는지 몸을 움찔거린다.
"괜찮··· 겠지..?"
다연이가 만든 저 떡국을 먹어야 하는 밥돌이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딴··· 머거봐야 될 거 가타.."
"응."
우선 다연이의 말을 따라서 떡국 국물을 맛보기 위해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낸다.
내가 생각한 떡국보다 훨씬 진한 갈색을 띠고 있다. 누가봐도 짤 것 같은 색깔.
"먼저 먹어볼게."
"응."
다연이에게 주기 전에 내가 먼저 맛본다.
"으···"
맛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그런 소리가 새어 나왔다.
기본적으로는 떡국의 맛이다. 국물도 적당히 잘 우러나왔고 떡도 맛있게 잘 풀어졌다. 그렇게나 맛있는 떡국인데, 너무 짜다.
“왜..? 맛없써?”
처음엔 거짓말을 할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너무 짜···”
“....진짜 큰일나따..”
이걸 밥돌이에게 먹여야 하는데, 밥돌이의 얼굴도 덩달아 어두워진다.
“그럼 이거는 이제 짠 떡꾹이야..?”
다연이가 그렇게 묻는다. 울 것처럼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다연이 너머로 불안한 밥돌이의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아니, 오빠가 해 볼게.”
“나 때문에 이거는 맛없는 떡꾹이 돼써···”
자책하고 있는 다연이를 뒤로 하고 떡국을 수습하기 위해 움직인다.
우선 불을 끄고 빠르게 생각해본다. 간장국이 된 이 떡국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밥도리도 머거 볼래요..?”
내가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동안, 다연이는 뒤에서 밥돌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응.”
다연이가 마지 못해 대답한 밥돌이에게 떡국 국물을 먹여준다.
“맛없죠..?”
“아니이··· 맛있어···”
“거짓말···”
누가봐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밥돌이와 우울한 눈으로 밥돌이를 보고 있는 다연이를 내버려두고 그 사이 떠올린 수습 방법을 실행해 보기로 한다.
나름 떠올린 방법은 간단하다. 양을 늘리는 것.
일단 떡국 국물을 더 추가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간장을 많이 넣었다면 국물을 더 추가해야 하는 건 당연한 방법 중 하나였다.
그냥 물을 넣을 순 없으니 육수를 다시 우려내야 한다.
“이제 나는 요리사 아니야... 간장 국을 만드렀으니까...“
밥돌이가 자책하고 있는 다연이를 위로 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울해진 얼굴을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다연이가 간장을 엎어버린 떡국에는 뚜껑을 얹어두고 그 옆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다시 육수를 우려낸다.
"다연이 요리사 맞아···"
"아니야··· 나는 간장 넣는 사라미야.. 그래서.. 엄청 짜서 못 먹는 사라미지.."
"아닌데··· 진짜 요리 잘하는데.."
밥돌이가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다연이의 말 한 마디에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축 쳐진 다연이와 옆에서 당황스런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밥돌이. 마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것 같다.
나는 계속하라고 손짓한다. 그러는 사이에 떡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연이 앞에서 할 말을 고민하던 밥돌이가 말했다.
"다연이···. 저번에 학교다니는 언니랑 오빠들한테 김밥 만들어 줬다면서?”
한참을 고민하다 꺼낸 말이었다.
“응.. 마자···”
그 말이 기분 좋았는지 아까 보다는 조금 나은 목소리로 말했다.
밝아진 다연이의 목소리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맞다고 확신한 밥돌이가 말을 잇는다.
“오늘 다연이가 만들어 줄 것도 김밥이지?”
“마자요..”
아이 달래는 솜씨가 좋다. 밥돌이가 시간을 끌 동안 떡국을 마무리 짓는다.
새로 시작한 국물이 잘 우려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불려 놓은 떡도 잘 됐다. 국물이 늘었으니 떡도 늘렸다.
국물을 우리기 위해 넣은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내고 맛을 본다.
“잘 됐네.”
잘 우려낸 걸 확인한 다음, 다연이가 간장국으로 만든 냄비에 국물을 더해준다.
솨아아.
물 소리가 꽤 요란했음에도 다연이는 밥돌이의 칭찬을 듣느라 바쁘다.
“다연이 김밥 엄청 잘 만들잖아.”
“흠흠··· 그거는 마찌···”
그래도 여전히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다연이가 요리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밥돌이가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냄비에 국물을 더해준 다음 크게 몇 번 휘적거린다.
연한 갈색을 띠고 있던 국물이 조금씩 원래의 떡국 색을 되찾아간다. 살짝 맛을 보니 완전하게 떡국의 맛을 되찾은 것 같다.
정확한 건 다연이가 직접 판단해 봐야겠지만. 아무리 잘 만들고 손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셰프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방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셰프는 단연 다연이였고.
주방 바깥에선 여전히 밥돌이가 다연이를 달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다연이가 만든 건 뭐든 맛있을 거야.”
“그거는 아니야.. 간장이 마니 들어간 건 마시가 없찌···”
나는 우울한 표정을 짓는 다연이를 부른다.
“다연아, 이리 와 봐.”
“왜..?”
나는 다연이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떡국 고쳤거든.”
“...!”
다연이는 대답할 틈도 없이 후다닥 달려와서 국물을 맛본다.
“우와···! 마싯짜나..!”
“당연하지.”
다행스럽게도 떡국은 잘 마무리됐다. 간도 완벽해졌고 덩달아 양도 더욱 많아졌다. 많아진 양은 밥돌이가 좋아했다.
다연이는 국물 맛을 한 번 더 본 다음, 감명 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아··· 오빠는 머찐 요리사가 마자.. 이거.. 간장이었는데.. 엄청.. 엄청 마시써저따..”
표정을 보니 감명과 함께 감동도 받은 듯 보인다. 진짜 셰프를 보는 것 같은 얼굴.
그런 얼굴을 하고서 한 번 더 맛을 본 다음에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짜 최고다아··· 최고로 마싯는 요리사야..”
별 거 아니었는데 다연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 쑥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 때, 여태까지 다연이를 달래느라 고생했던 밥돌이가 말했다.
“다연이가 저러니까 진짜 기대되네요! 빨리 먹어보고 싶어요.”
밥돌이가 잔뜩 기대되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직 해야할 음식은 하나 더 있었다.
옆에서 계속 국물을 맛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김빱! 김빱이 아직 남아써.”
“오..! 좋아, 빨리 만들어 줘.”
“네!”
김밥은 얼마 전에도 만들어 봤기 때문에 만드는 데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연이는 김밥을 열심히 만들다가 중간에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만들면.. 밥도리가 엄청 놀라서 마싯다고 말하지..?”
밥돌이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 장면을 카메라로 담고 있던 밥돌이가 묻는다.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해써요. 나는 김밥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고선 열심히 김밥을 만드는 척 한다.
놀라서 맛있다고 말할 만한 방법이라.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연이가 보여줬던 밥돌이의 영상들을 떠올린다. 이전처럼 반강제로 보여준 영상들이었는데 잠시 그 영상을 생각하다가 좋은 방법이 덩달아 떠올랐다.
“다연아, 좋은 방법있어.”
“조은 방법..? 뭔데?”
나는 밥돌이가 듣지 못하게 내가 생각한 방법을 말해준다.
이 방법이면 밥돌이가 올릴 영상의 조회수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조금 과격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밥돌이의 영상에서도 본 적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다.
나는 그 방법을 다연이에게 말해줬다.
“오···! 근데 그거느은.. 마싯는 방법이 아니자나..”
“.....다연이가 만든 음식은 원래 맛있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하면 밥돌이도 다연이가 만든 음식을 오래 기억할 거니까 더 좋을 거야. 이번 한 번만 해야 하는 거지만.”
“오래 기억해애···”
“그래.”
다연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자. 내가 만든 건 원래 마시찌. 간장 국물은 잘못해서 그런 거야.”
“응.”
“그러면 그러케 할게. 오빠가 도와줘.”
“그래.”
원래 먹을 걸로 장난을 치는 건 내가 용납하지 못하지만 이번에는 밥돌이의 방송을 위해서 한 번만 그렇게 하기로 한다. 밥돌이가 잘 됐으면 좋겠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심한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연이에게 했던 말처럼 기억에 남을 만한 장난일 뿐이다.
나는 작은 장난을 준비하기 전에 밥돌이에게서 카메라를 받아온다.
“카메라는 왜요..?”
“그냥. 재밌는게 있어서.”
“음··· 형님이 재밌다면 진짜 그런 거겠죠. 혹시 웃을 정도로 재밌는 건가요?”
장난스런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재밌을 것 같네요. 그러면 카메라 드릴게요.”
밥돌이가 순순히 카메라를 건네준다.
내가 카메라를 받은 이유는 다연이가 작은 장난 치는 과정을 조금 더 가까이 담기 위해서다. 그러는 편이 앞으로의 장난에도, 영상의 재미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
주방으로 되돌아가니 다연이가 말했다.
“나는 거의 다 해써. 이제 오빠만 다 하면 돼.”
“응.”
다연이의 장난에는 내 도움도 필요했기 때문에 서둘러 준비한다. 물론 카메라는 켜 둔 상태였다.
“이거는 내가 만든 거··· 이거는 오빠가 도와준 거야···”
다연이는 카메라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곧 김밥이 완성되고 카메라를 앞에 두고 중얼거리던 다연이의 말도 끝났다.
“헤··· 재미겠따.”
음식과 장난 모두 완성시킨 다연이는 음식을 들고 직접 서빙에 나선다.
김밥은 다연이가, 떡국은 내가 들고 간다.
“다 돼써요. 이제 머그면 돼.”
“그래, 고마워. 다연아.”
“네에.”
떡국에 올릴 고명도 준비해서 가져다준다.
밥돌이가 떡국 위로 고명과 김을 차례차례 올려놓으니 먹음직스러운 떡국이 완성됐다.
새롭게 국물을 우려낸다고 혹시 미리 넣어 놓은 떡이 많이 녹아내리진 않았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양만 더 늘어나서 밥돌이의 마음에 쏙든 것 같다.
“너무 좋아요. 많아서 더 좋습니다!”
호쾌하게 웃던 밥돌이가 옆에 따라서 놓인 김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도 전부 다연이가 한 거지?”
“네. 그리고 이거가 제일 마싯는 거야.”
다연이가 김밥 한 조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김밥은 다른 김밥보다 조금 더 부풀어 있었는데 누가 봐도 김밥 안에 뭔가를 넣었을 것 같은 모습이다.
김밥을 보고 내가 무슨 의도로 카메라를 빌려간 건지 단박에 깨달은 밥돌이가 묘한 시선을 보내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우리가 한 장난이 뭔지 알아차린 것 같다. 그리고 카메라를 빌려간 이유가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 였다는 사실도.
밥돌이가 감동 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감사합니다!”
다연이 앞이라 장난을 알아차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밥돌이의 성격 상, 영상 속에는 따로 그 말을 언급할 것 같다.
밥돌이는 더 말하는 대신 그 두툼한 김밥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맛있게 먹을게 다연아!”
“마싯게 먹찌!”
“응!”
그러면서 김밥을 한 입에 먹는다.
사실 나와 다연이가 한 장난은 청양고추 김밥을 준비하는 거였다. 이런 사건이 있으면 더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고, 덩달아 밥돌이가 영상을 만드는 데에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청양고추가 잔뜩 들어간 김밥을 먹고난 이후에는 제대로 식사를 즐길 수 있게 청양고추는 밥돌이가 집어든 김밥 한 조각에만 넣었다. 청양고추를 작게 썬 다음, 김밥 끄트머리에만 넣는 방식으로.
김밥 한 조각에만 넣었기에 꽤 맵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청양고추를 넣었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 먹는다면 방송인이 원하는 만큼의 좋은 리액션이 나올 거다.
방송인인 밥돌이는 다연이가 만족할 만큼 표현을 더 잘 할 거고.
“내가 한 김밥, 오래 기억하겠찌..?”
기대감에 젖은 눈으로 밥돌이를 지켜보던 다연이가 설레는 목소리로 묻는다.
“응, 오래 기억할 거야.”
야심차게 준비한 장난인 만큼 좋은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만큼 다연이도 밥돌이의 반응에 한껏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밥돌이라면 다연이의 기대보다 더 좋은 반응을 보일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음···!”
그 때 김밥을 열심히 오물거리던 밥돌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안 매운데···. 내가 잘못 먹었나..?”
밥돌이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고.
찹.
실망한 다연이가 양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쥐었다.
떡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