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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돌이가 올해 우리 식당에 온 첫 손님이다. 어제는 새해라고 쉬었으니까.
평소에도 식당을 잘 쉬지 않는 내가 어제 쉬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새해엔 손님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새해 해맞이라며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가곤 했으니 자연스럽게 식당에도 발길이 끊긴다. 내가 사는 곳은 해맞이와는 거리가 머니까.
그래서 어제 다연이와 나는 원없이 쉬었다. 다연이의 어린이집은 방학이었을 뿐더러 다연이도 딱히 뭔가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전 날, 혜원이네 집에서 놀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고선 그대로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쨋든 지금 밥돌이가 우리 식당에 찾아온 이유는 전에 했던 통화 때문이었다.
뭔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는 전화. 나쁜 건 아니고 좋은 일이라고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만난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오.. 밥도리는 엄청 바쁜 사람이구나···”
천천히 걸어오는 밥돌이를 보면서 다연이가 말했다. 밥돌이의 양 손에 여러 가지 장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연이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응, 엄청 바쁜 사람이지. 근데 다연이 때문에 왔지.”
밥돌이의 말에 다연이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밥돌이와 했던 이야기는 저번에 찍은 영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별 건 아니지만 다연이의 생일 상을 차려준 영상과 그 뒤로도 한 번 정도 더 찍었던 요리 영상. 그 영상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았고, 그래서 밥돌이는 다른 영상도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다연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리뷰를 하는 영상이라고 했는데 다연이가 일반인인 만큼 영상에선 밥돌이가 메인이었다.
다연이는 자신의 꿈처럼 요리를 만들 뿐이다. 내가 조금 도와줄 거지만.
“다연이 오늘 뭐하는지 알아?”
“네, 나는 오늘 요리를 하지이. 머찐 요리사가 되는 요리야.”
“그래, 맞아.”
이런 이유로 밥돌이가 아침 일찍 우리 식당에 방문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새해 인사가 늦었네요. 형님, 복 많이 받으십쇼."
"그래, 너도."
"다연이도 복 많이 받아."
“보기가 뭔지 몰라. 그래도 마니 받을게요.”
“큭큭, 그래.”
밥돌이가 자리에 앉아서 촬영에 필요한 장비들을 세팅한다. 휴대용이라 뭔가 복잡하거나 장비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연이는 그 물건들이 신기한지 눈을 못 떼고 있다.
"우와.. 신기한 거야.. 왜냐하면 나는 이거 처음 봐.."
평소에는 볼 일도 없긴 했다.
다연이가 가지고 있는 촬영 장비라고 해봤자 내가 준 폴라로이드 카메라 밖에 없으니까.
"나 이거 만져봐도 돼요?"
"응, 대신 안 망가지게 조심 조심 만져야 돼."
"알게써. 조심 조심···"
밥돌이의 말에 다연이는 검지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서 카메라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쓰다듬기 시작한다.
다연이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 밥돌이가 나에게 말했다.
"제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진짜 복 많이 받으세요."
"다연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한 거야."
그럼에도 밥돌이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닌데.
오늘 다연이가 할 일은 요리를 하는 것이다. 다연이도 항상 요리가 하고 싶다고 말했었지만 요즘엔 학생들이 방학이라 다연이의 음식을 시식해줄 사람도 없었기에 다연이 역시 딱히 흥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다연이의 일기장에 올린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아이들이 몰려올 것 같지만 다연이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감사해요. 다연이한테 물어봐주셨잖아요."
그리고 밥돌이가 다연이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진짜 고마워, 다연아."
"오··· 나는 이게 엄청 머시써.."
다연이는 지금 당장은 밥돌이의 말보다 카메라에 더 정신이 팔려서 잘 듣지도 못한 것 같다.
사실 밥돌이는 꽤 유명한 1인 방송인이긴 하지만 지금은 저물어가고 있는 1세대 방송인이라고 했다.
유명한 건 맞으나 자극적인 방송과 요즘의 트렌드에 조금 뒤쳐져서 서서히 잊히고 있는 방송인.
그래서 과도기를 겪고 있던 와중에 우리 식당에 왔다고 했다. 원래도 가끔 우리 식당에 들르곤 했지만 밥돌이에겐 동네의 작은 식당보다 맛집의 음식들을 리뷰하는 편이 그나마 더 조회수가 잘 나왔고, 그래서 우리 식당에 온 건 홧김이었다고 말했었다.
"그럼... 다연이 카메라 구경 끝나면 바로 시작해요."
"응."
그랬던 과도기도 다연이의 생일 상을 만들어주는 영상을 시작으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영상이라서 주저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잘 풀렸다.
조회수 역시 하향 곡선에서 상향으로 바뀌었고.
그렇기에 다연이는 밥돌이에게도 터닝포인트가 된 셈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걸 챙겨주고 싶다고도 말했다.
"우와···"
밥돌이의 장비를 만지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그런데에.. 밥수니는 내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해요..? 밥도리가 나오는 거를 더 조아할 거 가튼데..."
다연이가 아주 살짝 우울한 얼굴로 말하자 밥돌이가 반색하며 대답한다.
"무슨 소리···! 당연히 다연이도 좋아하지..!"
"진짜..?"
"그래! 다연이 안 좋아하는 밥순이는 내 영상 안 봐도 돼. 다연이 덕분에 방송 계속할 수 있었던 건데 감히···!"
밥돌이의 반응에 다연이도 은근히 기분 좋았는지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며언.. 나는 밥수니 중에서 일등이야?"
"그럼! 당연히 다연이가 일등 밥순이지! 다연이가 무조건 일등이야."
밥돌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다연이를 만나기 전에는 방송을 그만둘까, 하는 고민도 했다고 하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자신있는 얼굴로 대답했던 밥돌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다연이에게 말한다.
"다연아, 그런데.. 다른 밥순이한테는 내가 했던 말, 말하면 안 돼.."
"왜요?"
"그러면 다른 밥순이들이 슬프거든. 밥순이는 다연이도 엄청 좋아하지만 나도 좋아해서."
"아..! 무슨 뜻인지 알게써. 마자, 그러면 슬픈 거지."
완벽하게 이해한 다연이가 다시 자신감 있는 얼굴로 되돌아왔다.
"조아. 이제 엄청 기분 조아져써. 그러며언 빨리 요리하자!"
"그래, 좋아!"
지금 다연이의 기분은 최고다. 그러니까 요리를 시작할 타이밍은 지금이 적격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요리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이번에 할 요리는 떡국과 김밥이다. 원래는 새해 기념으로 떡국만 하려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떡국은 다연이처럼 어린 아이들이 하기엔 많이 힘든 요리였다.
단순히 어려운 게 아니라 끓는 물을 써야 하는 요리였기에 위험하다. 난이도로 따지자면 김밥보다 더 쉽지만 아이들이 혼자 할만한 요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떡국은 내가 주도해서 요리하고 김밥은 온전히 다연이에게 시키기로 했다.
"밥도리 아저씨도 준비돼찌요?"
"응, 열심히 찍을게."
영상에 담을 모습은 다연이가 요리하는 손짓과 목소리다.
밥돌이의 시청자가 다연이의 일기장까지 찾아온다면 다연이의 얼굴을 볼 수는 있겠지만 밥돌이의 영상에서는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지금 다연이는 유명세를 떨치려는게 아니라 밥돌이와 놀 뿐이니까.
"돼써. 그러면 이제 내가 엄청엄청 마싯는 요리를 할 거야."
비장한 목소리와 눈매. 주머니에서 꺼낸 장난감 칼은 조용히 옆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저번에 김밥을 만들 때 썼던 플라스틱 칼을 집어 든다. 진짜 요리를 흘 준비가 완벽하게 됐다. 장난감 요리가 아니라.
때마침 식당 안으로 쏘아들어온 햇빛이 플라스틱 칼을 비춘다.
긴장감이 흐른다. 식당 안의 공기가 조금 차갑게 느껴진다.
이번 요리는 다연이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마싯는 음식을 만들 거야.'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오빠가 도와줘. 떡꾹은 나 혼자하면 뜨거워서 안 된다고 해짜나."
"알겠어."
마치 수술실 안의 의사같다. 다연이의 머릿 속에서 계획들이 재빠르게 조합이 되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수 많은 계획들 중에서 가장 적합한 생각을 골라내려는 것 같다.
"나는 떠글 물에 불릴 꺼야. 오빠는 궁물을 끓여야 돼."
"응."
떡국의 레시피는 다연이에게도 말해줬다.
물론 다연이에게 외워라고 한 건 아니고 내가 요리를 주도한다고 해도 다연이가 레시피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한 번 설명해준 것 뿐이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떡국을 수 십 번은 해 본 사람인 것 같다. 혹시 진짜 천재가 아닐까.
"우리 엄청 마싯게 만들자아. 밥도리가 박수 칠 만큼."
"그래. 다연이 말 잘 들어서 맛있게 만들게."
"응···!"
나는 다연이의 지도에 따라서 착실하게 떡국을 만들어 나간다.
우선은 육수부터.
이번 떡국에 사용할 육수는 다시마와 멸치로 우려낸 육수다. 소고기를 활용한 방법도 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고기를 원없이 포식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시마와 멸치를 사용하고 싶었다.
떡국은 가능한 많이 하려고 한다. 나와 다연이가 같이 먹을 것이기도 하고, 가장 큰 문제는 밥돌이가 얼마나 먹을지 예상 못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밥돌이라면 나름 배려해서 많이 먹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배부르게 먹이고 싶다.
“나는 다 해써···! 오빠는?”
“나도 준비 다 했어. 이제 끓기만 하면 돼.”
죽이 척척 맞는 느낌이다. 다연이는 그릇에 떡을 가득 담아서 물을 받아 놓는 일을 했다.
다연이 혼자 하기엔 무거워서 내가 도와줬다.
수도꼭지를 꼭 닫은 다연이가 의자에서 내려와 나에게 온다.
“이제 계란이 만들어야 하지?"
"응, 근데 이건 뜨거운 거니까 다연이는 보고 있자."
"알게써."
육수가 만들어지는 동안, 나는 지단을 만들려고 한다.
지단이란 계란을 프라이팬에 풀어, 익혀서 촘촘하게 잘라 만든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떡국에 들어갈 고명 중 하나다.
치이이.
귀를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소리를 시작으로 열심히 풀어낸 계란물이 넓게 퍼진다.
얇은 계란물이 이내 익어가고, 곧 깨끗한 노란빛의 지단이 만들어진다.
"돼따. 이제 차가워질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지?"
"맞아."
진지한 다연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뭘 해야 하지?"
"나는 알고 이써. 이제 파를 써러야 해."
"맞아, 다연이 똑똑하네."
"응, 나 똑똑한 사라미야."
진짜 똑똑하다. 한 번 말해준 레시피는 다 기억해고 있다니.
이번 요리의 메인 셰프는 다연이가 맞다.
나는 다연이의 말을 따라서 대파를 꺼내온다.
대파는 내가 썰고, 다연이에게는 다 식은 지단을 썰게 할 거다.
총총 썰리는 대파 옆으로 차갑게 식은 지단이 가지런하게 썰린다.
지단은 워낙 얇았기에 생각보다 빨리 식었다.
다연이의 칼질도 처음보단 더 자신감이 넘친다.
"나느은··· 머찐 요리사니까 이것도 잘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요리를 이어나간다.
얼추 고명이 완성되고 이제 남은 건 떡을 넣고 국물의 간을 맞추는 것 뿐이다.
"떡이는 오빠가 해줘. 나는 간장을 너을 꺼야."
"응."
이제 다연이는 완전히 메인 셰프가 됐다.
판단력도 좋고 자신감도 넘치다 못해 흐른다. 그래도 자만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나는 잘 우려낸 국물에 다시마와 멸치를 걷어낸 다음 국물 맛을 본다.
"음.."
잘 우러났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해야할 일은 다연이 말처럼 떡을 넣는 일이다.
퐁.
기분 좋은 소리와 동시에 국에 넣은 떡이 천천히 풀어진다.
이 다음은 다연이의 몫이다.
"이제 다연이가 해보자."
"응!"
여잔히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호기롭게 간장 통을 붙잡은 다연이가 두 손으로 간장통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요리는 적당한 맛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딱히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맛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평소에 먹던 그 맛. 평범한 그 맛을 내는 것이 이런 음식을 목적이다.
특별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맛. 평소에 먹던 그 맛이 아니라면 이런 음식의 매력은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에 적당히 간을 맞춰야 하고, 떡도 적당하게 느슨히 풀어져야 한다.
그 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국물의 간을 맞추는 일이다. 물론 대파를 넣는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 과정이야 그리 중요하진 않다.
"내가 잘 할게···"
다연이가 간장 통을 기울이고, 나는 그런 다연이가 위험해지지 않게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과정. 그 과정을 천천히 수행해내던 다연이가.
"안 돼···!"
한 순간에 간장 통을 놓쳐버렸다.
턱.
운 좋게 간장 통을 떡국 안에 빠뜨리진 않았지만 간장이 과하게 들어갔다.
누가봐도 짤 것 같은 모습이다. 하얗던 국물이 옅은 갈색으로 물들었고 떡국은 간장국이 돼 버렸다.
"어떠케···"
실수를 한 다연이가 우울한 눈으로 나를 올려본다.
울면 안 되는데.
장난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