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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앞에 놓여 있는 트리를 보고 있으니 문득 어제 밥돌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형님, 그거 제가 작년 방송 때 썼던 트립니다. 근데 올해는 트리 없이 진행될 것 같아서 창고에 넣어두고 있을 바엔 다연이한테 주고 싶어서요. 식당 앞에 놔두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분위기도 낼 겸, 다연이에게 선물도 해줄 겸 해서 주는 거라고 했다.
보관하기 번거로우면 일주일 있다가 다시 가져가겠다는 말도.
"나는 우리 집에 트리 있는 거 처음 봐···"
다연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트리 주위를 빙빙 돈다.
밥돌이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트리에 달린 장식을 툭툭 건드렸다. 밥돌이가 트리에 장식까지 해 주고 가서 트리에 매달려 있는 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오.. 다른 데에서만 마니 봤는데에.. 우리 집에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트리가 생겨써..!"
다연이가 그러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몇 개 없는 연락처 중, 밥돌이의 전화였다.
"응, 트리 잘 받았어."
"다연이가 좋아해요?"
밥돌이는 가장 먼저 그것부터 물었다.
"좋아해. 많이."
"휴, 다행이네요."
이제 필요 없어진 트리를 보낸 건데도 다연이가 좋아할지 걱정했던 모양이다.
"아, 그리고 그 앞에 트리에 감아 놓을 전구도 놔뒀습니다. 켜 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식당 분위기 내기도 좋구요."
"그래, 고마워."
다른 식당들도 크리스마스를 맞아 트리로 분위기를 내고 있는 곳이 있었다. 그러는 편이 손님들을 끌어 모으기도 좋으니까.
우리 식당은 그런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밥돌이와 다연이 덕분에 이렇게 됐다.
"그리고··· 아, 아니에요. 이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뭔데?"
"아.. 이건 나중에 얼굴 보고 말씀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나쁜 일은 아니에요. 음··· 엄청.. 좋은 일인데..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밥돌이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지금은 말 안 해줄 것 같다.
"그래, 그러면 나중에 보자."
"네, 형님."
그러고 전화가 끊어졌다.
"밥도리가 뭐라고 해써?"
"다연이 트리 좋아하냐고."
"오··· 조아한다고 해찌?"
"응."
"그래그래, 그게 맞는 거야."
다연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트리를 구경하고 있는 다연이를 놔두고 트리에 불빛을 더해주기 위해서 식당 안으로 향했다.
밥돌이가 전구와 같이 긴 선의 코드도 넣어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밥돌이도 그렇고 세진이도 그렇고 센스가 좋구나. 다연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은 전부 알고 있다. 그래도 방송인이라 그런 건가.
"호오··· 트리는 나무구나.."
아직 영어를 모르는 다연이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트리를 많이 봤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동안 콘센트를 찾는다. 이왕이면 전구를 켜 놓는 게 분위기에 좋기 때문도 있지만 밥돌이와의 통화 마지막에 꼭 전구를 켜 달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켰다."
코드를 꽂아넣고 다연이가 있는 쪽을 바라본다.
"우와..!"
트리까진 보이지 않지만 다연이의 반응을 보니 제대로 잘 켜진 것 같다.
"반짝반짜기자나···!"
바깥에 나가서 보니 진짜 예쁘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물씬 나는 것 같고.
다연이는 여태까지 밥돌이가 준 선물을 전부 좋아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특히 좋아한다.
다연이 뿐 아니라 나도 좋고.
"예쁘다아! 사진 찌거야게써!"
그렇게 말한 다연이가 내 휴대폰으로 사신을 찍는다.
"나도 찌거죠! 밥도리한테도 보내고 내 일기장에도 올릴 꺼야! 친구들한테도 자랑해야지!"
"그래."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트리 예쁘다아."
다연이가 사진을 찍으면서 작게 말했다.
.
.
.
바깥에 놓여있는 트리가 분위기를 내는데 생각보다 더 도움이 된 모양이다.
오늘은 특히 손님들이 많다. 아무리 저녁 때라지만 다연이의 홍보도 없이 줄까지 선 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주방에 서서 손님들의 대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야, 어제 세진 방송 봤냐?"
"아니? 누군진 아는데. 왜?"
"어제 다연이 이야길 하던데."
"응..? 진짜?"
남학생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방학이었지만 대강의 외모와 그 전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돼서 학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밥돌이는 어제 휴방이라고 했는데 세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 귀엽다고 난리더라."
"그건 맞는 말인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학생이 당연한 말이라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도 말해주는데··· 진짜 너무 귀여워서 미치겠더라. 오늘 여기 오자고 한 것도 어제 방송 보고 그런 거야."
아무래도 오늘 식당에 손님들이 많이 온 것도 다연이 덕분인 것 같다.
누가 보면 다연이가 방송에라도 나온 줄 알겠다. 둘도 그렇고 다연 손님들도 그렇고 세진 방송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세진 이야기보단 다연이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둘이 다시 말을 잇는다.
"세진이 밥돌이랑 친하던데 그래서 왔나보네."
"하긴, 저번에 밥돌이가 그랬잖아. 다연이도 밥순이라고."
그 말에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와··· 밥돌이 성공했네. 다연이가 좋아 해주고. 나도 방송이나 해볼걸."
"그러게.. 사실 밥돌이도 다연이 때문에 보게 된 건데."
학생 손님 두 명이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현실이 직시된 모양이다.
그 때 옆에서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던 다연이가 힘차게 뒤돌았다.
"아니지이! 나는 전부 다 기억하는 사람이지!"
지금 다연이는 어린이집을 마치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밥돌이에게 선물 받은 트리를 자랑할 겸, 오랜만에같이 밥 먹을 겸 해서 데리고 온 거다.
아마 학생들은 테이블에 다른 아이들이 많아서 그 중에 다연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던 모양이다.
다연이가 친구들과 밥을 먹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으악..! 뭐야, 다연이야..?"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던 남학생들이 놀란 듯 되묻는다.
"나는 다여니가 마찌!"
다연이는 그 상황이 더 신난 듯 잔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나는 전부 다 기억해. 오빠들은 나한테 선물도 줘짜나! 내 생일에 줘써찌. 사탕이랑 초콜릿. 마찌?"
"우와···!"
학생들이 놀란 얼굴을 한다. 다연이 말이 맞는 모양이다.
"어.. 어떻게 알았어? 진짜 기억한 거면.. 다연이 천잰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저걸 전부 기억하고 있다니. 아니면 저 말대로 진짜 천재가 맞거나.
"나는 천재지이! 밥도리가 밥순이들 조아하는 거처럼 나도 내 팬 조아해!"
다연이가 어느 만화의 캐릭터처럼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쭐한 표정을 덤으로.
그 말을 듣고 있던 학생들이 감동 받은 얼굴로 말했다.
"와··· 나, 평생 다연이 팬 할게."
"나도.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해야겠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말한다. 다연이의 팬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거드은."
"....진짜 평생 다연이 팬 할 거야. 너무 귀엽잖아···"
"나는 귀엽찌!"
다연이가 습관처럼 따라한 말에 학생들은 더 감동 받은 모양이다.
그렇게 다연이의 평생 팬을 선언한 학생 두 명이 감동 받은 얼굴로 중얼거리면서 식당을 나선다.
"오늘 다연이 인별 처음부터 다시 복습한다."
"나는 인별에 다연이 언급한 밥돌이랑 세진 방송도 전부 복습할 거야."
식당을 나서는 두 학생의 얼굴에는 다연이의 팬 서비스로 받은 감동과 앞으로 팬 활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우와아··· 다여니는 언니랑 오빠들이 엄청 조아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혜원이가 부러운 듯 중얼거린다.
"혜워니도 좋아해. 내가 혜워니 조아하니까!"
"와..! 그러쿠나."
다연이의 말에 금방 납득한 혜원이가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혜원이 옆에는 따라서 미소 짓고 있던 혜원이 아빠가 있었다. 오늘 혜원이와 다른 몇몇 친구들을 데리고 온 사람도 혜원이 아빠였다.
"크크, 다연이는 벌써 다 큰 것 같네요. 어른인 저보다 더 어른스러워요."
"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연이가 다른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은 정말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저도 어제 깜짝 놀랐어요. 제가 보던 영상에 다연이 이야기가 나올 줄은..!"
혜원이 아빠도 세진의 영상을 가끔 보곤 했었다고 말했다.
어제도 여느 때처럼 영상을 보고 있던 찰나, 다연이의 이야기가 흘러나왔었던 거고.
"저도 괜히 뿌듯하더라고요! 다연이가 이렇게 유명한 지도 몰랐어요!"
혜원이 아빠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나까지 뿌듯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다연이를 좋아해준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후.. 다연이한테 미리 싸인이라도 받아놔야겠네요."
혜원이 아빠의 농담 섞인 주접에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손님이 많다. 얼른 요리부터 끝내야겠다.
다연이 덕분에 온 손님들도 많으니까 실망 시키면 안 된다.
그 때 줄을 서고 있던 다른 손님이 들어온다.
"사장님, 여기 된장찌개 두 개 주세요!"
"네."
어제 이후로 된장찌개 주문도 많아졌다.
아무래도 빨리 요리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지금 다연이와 친구들은 테이블에 앉아 다연이 오빠가 해준 음식들을 먹고 있다.
떡볶이에, 튀김과 김밥. 그 외에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음식들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을 눈앞에 둔 아이들은 각자 포식을 한 다음,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꽤 중요한 주제였는데 그 때문인지 아이들은 전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쌍둥이 오빠인 하민이가 먼저 말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있어?"
그 말에 다연이가 자신있게 대답한다.
"이찌! 산타 할아버지는 이써."
"음··· 나도 맞는 거 같아.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을 준다고 했으니까."
"마자. 그러니까 있는 거야."
다연이의 말에 납득한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 사이에서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는 꽤 중요한 사안이었는데 모두의 동의 하에 산타 할아버디는 존재하는 것으로 판명났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산타 할아버지는 있는데 그거보다 무슨 선물 받는 지가 더 궁금해."
"그거또 마자. 나는 엄청 조은 선물 받고 싶따."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아이들 옆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8살 초등학생, 민우가 말했다.
민우는 다연이의 초대 없이 우연하게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게 됐었는데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입을 연 것이다. 왜냐하면 민우는 산타 할아버지의 비밀을 알기 때문이었다.
"바보들. 산타 할아버지는 없어. 아빠가 주는 거야."
다른 아이들이 그 핵폭탄 같은 발언에 굳은 얼굴로 민우을 본다. 민우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고 혜원이 아빠도 놀란 얼굴을 했다.
그 때 다연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진짜··· 없어..?"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다연이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다시 깨달은 민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그.. 그게···"
"응..? 업쓰면 안 되는데···."
다연이의 목소리에 민우는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식은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지금 민우는 자기가 한 말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한 잘못을 바로 잡아야 했다.
민우가 깊은 생각 끝에 입을 연다.
"....있어."
"..?"
"산타 할아버지··· 있어."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다시 밝아진다.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