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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도 원래 된장찌개 많이 먹었는데요... 오늘은 그거가 들어갔잖아요..! 조개.”
다연이가 변명하듯 말을 늘어 놓는다.
혹시 다연이는 바지락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나. 저 형님이 다연이에게 먹을 걸 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항상 맛있는 식재료를 얻으면 그걸로 만든 음식은 다연이에게 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연이는 바지락 된장찌개 한 번도 안 먹어봤어?"
"네."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조개는 먹어봤찌. 조개는 맛있어요.”
“아.”
아마 형님은 바지락으로 다른 요리를 해줬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지금 다연이는 바지락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바지락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맛보고 싶은 거였다.
그렇다는 말은 바지락이 들어간 이 된장찌개는 다연이도 먹어본 적 없는 요리라는 것. 우리를 위해서 특별히 해준 음식이다. 괜히 감동인데.
“한 입만 먹어도 돼요···?”
다연이의 물음에 주방에 있는 형님은 본다.
형님은 늘 그랬듯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밥돌이는 된장찌개를 앞접시에 덜어 먹었기 때문에 지저분하지도 않았고 다연이 몫의 숟가락을 가지고 온다면 먹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거다.
“응, 그러면 숟가락 하나 가져올래?”
“네!”
그리고 다연이가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그 때 옆에 있던 세진이 말했다.
“뭐야, 너무 귀여운데..?”
“당연하지.”
“...내꺼 주면 안 되냐? 나도 앞접시에 덜어 먹어서 깨끗한데.”
“나한테 달라고 했잖아.”
“...”
아무리 그래도 게임 방송을 하고 있는 세진과 먹방을 하고 있는 밥돌이의 차이는 분명했다. 특히나 다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방 방송인이 바로 앞에서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안 먹을 수가 없을 거다.
밥돌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랑스럽기도 했고. 모처럼 자신이 가진 직업에 자신감이 생긴다.
“숟가락 가져와써.”
숟가락을 가져온 다연이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퍼 담는다.
구수한 냄새에 탁한 국물의 색까지. 다연이는 그런 된장찌개를 아주 좋아한다.
“먹어 봐.”
“네.”
그 말을 듣고 국물 한 숟가락을 푹 떠서 마셔본다.
“크으···!”
여태까지 먹어본 된장찌개와 비슷하긴 하지만 이게 훨씬 맛있다.
물론 다연이는 국물의 베이스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맛이 다르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맛있지?”
왜냐하면 지금까지 맛본 음식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다연이의 입맛도 점점 예민하게 바뀌어 갔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국물의 베이스가 바뀐다던지 새로 추가해 넣은 특별한 재료가 있으면 다연이는 금방 맛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중에서도 그런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먹는 걸 좋아하는 다연이는 자연스레 알게 됐다. 아마 재능일지도 모르겠다.
“마시따! 여기에서 조개 맛이 나요..!”
“크크, 그래. 다연이 오빠가 한 거니까 맛있지.”
“그거도 마찌.”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번에 먹었던 조개는 원래도 맛있었지만 오빠가 한 된장찌개 안에 들어가서 더 맛있어졌다고 생각했다.
“한 입 줘서 감사합니다아.”
“그래.”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옆에 앉아있던 세진이 다연이를 다시 부른다.
“다연아, 잠깐만.”
“응, 왜?”
“이거도 먹어 봐.”
옆으로 다가가자 세진이 다연이의 숟가락에 이것저것들을 얹어준다.
다연이의 숟가락에 올라간 것은 찌개 국물과 두부 조금이었다.
“오.. 나 진짜 이거 먹어도 돼요..?”
“당연하지. 그리고 이것도.”
그렇게 말한 세진이 젓가락으로 뭔가를 주섬주섬 발라내고 다연이의 숟가락에 올린다.
“우와, 조개다.”
세진이 얹어준 건 바지락이었다. 바지락 된장찌개는 바지락이 생명인데 국물만 달라고 진짜 국물만 주다니.
“먹어 봐.”
“네에.”
세진의 말처럼 숟가락에 가득 담은 것들을 입 안으로 넣는다.
아까도 먹었던 구수한 된장찌개의 국물에 포근한 두부의 식감도 느껴진다. 예전에 먹었던 솜사탕이 생각나는 모습이지만 식감은 다르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들 중에서 고르자면 어묵이랑 닮았다.
거기다 잘 만든 된장찌개의 국물까지 베여 있으니 두 배로 맛있다. 두부를 베어물자마자 그 사이로 스며나오는 찌개 국물은 방금 전, 밥돌이에게서 찌개 국물만 얻어 먹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게다가 바지락까지 있다.
조금 질긴 듯 하면서 씹을 수록 바지락의 참맛이 더 우러나온다. 비린 맛이 나긴 하지만 오히려 바지락의 매력이라고 해도 될 만큼 좋다.
“된장찌개 조개는··· 엄청 마싯따..!”
시식을 마친 다연이가 말했다. 오랜만에 바지락을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다.
게다가 된장찌개에 들어간 바지락이라니! 먹는 걸 좋아하는 다연이에게 된장찌개와 바지락은 꽤 만족스러운 조합이다.
“너무 마시써.”
그야말로 최고다. 된장찌개 한 입을 먹은 다연이가 꾸벅 인사를 한 뒤, 쪼르르 사라진다.
홀에는 밥돌이와 세진만이 남아있었다. 뛰어가는 다연이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눈다.
“바지락, 내가 줄 걸.”
“나는 센스 좋은 편이라니까. 아까 화분도 좋아했잖아.”
“....좀 배워야겠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했다. 다연이가 저렇게나 좋아하니까.
세진은 그 말에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식사를 이어나간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밥돌이가 자기 집 근처에 맛집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맛집에 있는 꼬마 애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고.
그 후로 방송에서도, 사적인 이야기에서도 가끔씩 그 꼬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서 궁금했었는데 오늘 겪어보니 여기 와보길 잘한 것 같다. 정말로.
집도 꽤 멀어서 고민도 했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연이가 너무 귀엽거든. 물론 음식도 아주 맛있고.
덩달아 기분도 좋아진다. 여태까지 방송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쌓여있었는데 여기에 오니 그런 것들을 단번에 날아간 기분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하자면, 힐링이다.
"후..."
여태까지의 스트레스들을 숨에 실어서 내보내고 나니 한결 후련하다. 그렇게 개운한 기분으로 앉아있다, 문득 생각난 이야기를 밥돌이에게 물었다.
“근데 크리스마스 선물 준다는 건 뭐야?”
아까 밥돌이가 다연이와 다연이 오빠에게 했던 말이었다.
여기 올 때 선물을 사 가면 좋다는 말은 밥돌이에게서 들었지만 밥돌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아, 그런 게 있어. 지금은 다연이가 듣고 있으니까 나중에 말해줄게.”
그 때 주방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훔쳐보고 있던 작은 머리가 쏙 들어간다.
세진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작게 웃었다.
***
산처럼 쌓였던 주문이 모두 끝났다. 이렇게 많은 주문을 처음 받아보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음식을 둘만을 위해 해보는 건 처음이다.
거기다 중간부터는 세진도 식사에 다시 가담해서 추가로 주문이 들어왔다.
“후··· 이제야 배가 좀 차는 것 같네.”
“우와··· 밥도리는 진짜 대다네.. 엄청 많았었는데 이거 다아 먹었짜나요.”
“크크, 다연이도 같이 먹어서 그런 거야.”
밥돌이의 말처럼 다연이도 식사에 가담하긴 했다.
계속해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훔쳐보던 다연이를 밥돌이가 불러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이대로 있다간 저녁 식사가 늦어질 것 같아서 나도 그렇게 하라고 했었고.
“나는 이만큼만 먹었는데?”
다연이는 자기가 얼마만큼 먹었는지 허공에다 손을 그어서 보여줬다. 그 모습을 본 밥돌이와 세진은 작게 웃는다.
“그래, 많이 먹은 거야.”
“오.. 그러쿠나.”
요란했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밥돌이와 세진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막 일어서려고 할 때 밥돌이가 말했다.
“아, 저 이거 사진으로 찍어도 되죠?”
“빈 그릇들? 왜?”
“저희 밥순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서요. 식당 홍보도 하고 싶고.”
“그러면 그래.”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도 밥수니야."
밥순이는 밥돌이의 팬덤 이름이라고 했다. 팬덤 이름은 그냥 밥돌이의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으로 정했다고 한다.
당연히 다연이도 밥순이들 중 하나였고.
"밥순이들도 다연이 엄청 좋아해, 알지?"
"알지! 저번에 다른 밥수니가 나 좋아한다고 적은 거 봐써요. 그런 글이 암청 마나찌."
"그래."
밥돌이가 저번에 말해줬었다. 다연이가 밥돌이의 팬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그건 밥돌이가 다연이에 대해 자주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지만.
나름의 증거로 사진을 남긴 밥돌이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다.
"아.. 헤어지려니까 아쉽네.."
세진이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외친다.
"그러엄 나중에 또 오면 되지..! 나도 처음에는 헤어지는 거 무서웠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다시 만날 거자나."
"큭큭, 그렇네. 맞아."
세진이 웃고 나서 말을 잇는다.
"근데 우리 집은 조금 멀어서. 한 시간 동안 와야 하거든."
"한 시간···!"
"그래, 오늘은 다연이 때문에 온 거야."
"나 때문에..!"
다연이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다연이는 한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고 있다.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이 한 시간 동안 한다는 것도. 그래서 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음에 또 올게."
"네! 또 와. 그리고 아저씨 친구들한테도 우리 식당에 오라고 말해야 돼요."
"친구?"
다연이의 말에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밥돌이가 옆에서 세진을 툭 치며 말했다.
“네 시청자들.”
“아..! 알겠어. 맛있었다고 말할게.”
“조아.”
다연이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그제야 식당을 나선다.
인사를 하고 돌아가기 전에 밥돌이가 말했다.
“아,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내일 여기에 놓고 갈게요. 내일이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제 선물은 미리 줘야 해서요.”
“여기에?”
“네, 별 거 아니거든요. 그래서 식당 앞에 놓고 갈 거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다연이도 그 때선물이 뭔지 봐.”
“우와.. 기대 돼.. 알게써요, 밥도리.”
잔뜩 기대감을 주고 밥돌이와 세진이 식당을 떠났다.
다연이도 새로운 사람이 좋은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고, 세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다연이 말처럼 유명한 친구가 두 명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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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밥돌이가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던 다연이와 나는 평소보다 빨리 일어나서 밖으로 향했다.
"무슨 선물 줘쓸까? 너무 궁금해.”
그러면서 뛰어간다. 사실 나는 전 날 저녁, 밥돌이에게 선물이 뭔지 미리 들었다.
정말 밥돌이 말처럼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건 또 아니었다. 적어도 다연이에겐 꽤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선물이다.
다연이가 설레는 얼굴로 식당 문을 연다. 선물은 식당 앞에 갖다 놓았다고 했기 때문에 문을 열면 선물이 뭔지 바로 알 수 있다.
“우와···!”
문을 열고, 드디어 선물의 정체를 알게 된 다연이가 작게 외쳤다.
“엄청 머싯는 거자나..! 이거는.. 어엄청 머싯는 거야!”
식당 앞에는 밥돌이가 놓고 간 작은 트리가 있었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