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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
다연이가 크게 말하자 어디에 있었는지 고양이가 훅, 튀어나와서 다연이를 반긴다.
우리 식당이 있는 건물 안 쪽에서 튀어나오는 걸 보니 건물 어딘가에 있다가 다연이의 목소리를 듣고 나온 모양이다.
“이제 잘 나오네에, 고양이.”
정말 다연이 말을 알아들어서 그런 건지, 그냥 맛있는 냄새가 났기 때문에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슬금슬금 걸어왔다.
어제 일로 인정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고양이는 쩍, 하고 여유롭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다연이에게 다가간다.
“고양이 주려고 내가 밥 해써. 엄청 마싯는 밥이지. 이거는 내가 한 거야!”
“야옹.”
고양이가 울고 있었음에도 다연이의 자랑은 끝나지 않는다. 아직 다연이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나와 예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고양이에게 늘어 놓는 무용담 같기도 했다.
“내가 요리한 거 언니랑 오빠들이 먹고 싶다고 엄청 많이 말해찌. 근데 고양이는 이거 혼자 먹을 수 있어. 왜냐하면 고양이는 우리 식당을 지켰기 때무니지!”
“야앙.”
“...언니들이랑 오빠들은 엄청 좋아했는데. 고양이는 잘 모르는 것 가타. 맞지?”
고양이에게 한참을 설명하던 다연이가 말이 통하지 않는 고양이에게 지쳤는지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다연이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 언니랑 오빠들은 다연이가 만든 거 좋아하는데. 그치?”
“마자!”
다연이가 크게 대답하고선 만들어 놓은 간식을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고양이는 다연이가 준비한 간식의 냄새를 맡더니 앞발로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이거 좋아할까?”
아직 먹지 않은 고양이를 보고 조금 걱정됐는지 다연이가 내게 묻는다.
“좋아할 거야. 다연이가 만든 거잖아.”
“그러치.”
그리고 다연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고양이를 본다.
다연이가 그렇게 고양이를 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예나는 멍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연이가 아니라 나를.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나.
“왜?”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그렇게··· 달달하게 말을 한 적이 있었나요?”
“.....아니.”
그 말을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지금 내가 많이 이상한가.
“와···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요.”
“....그래.”
나는 아무렇게나 말을 넘겨버리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다연이를 본다.
여전히 예나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한다.
“다연이가 다 했네..”
혼자 중얼거리는 예나를 내버려두고 고양이를 바라본다. 다연이가 직접 만든 간식 냄새를 맡던 고양이가 닭가슴살 한 조각을 입으로 슬쩍 집어서 바닥에 내려 놓았다.
“오···! 먹는다아!”
그리고 이어서 냄새를 맡더니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내가 만든 거야. 내가 열씨미 잘라써!”
고양이는 다연이의 자랑을 들으면서 닭가슴살을 야금야금 해치운다. 이 고양이도 다연이처럼 잘 먹는다.
하나하나 먹더니 어느 새 접시가 절반이나 비었다.
“고양이는 내가 만든 거 엄청 조아해.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거 해주고 싶다.”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본다.
“그 때도 오빠가 도와줄 꺼지?”
이렇게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보고 있으니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응, 도와줄게.”
“조아!”
뭐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지만 지금 정말 좋은 건 고양이 같다. 눈앞에 놓인 닭가슴살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냐아앙."
열심히 닭가슴살을 퍼먹던 고양이는 그릇을 완전히 비우고 나서야 다시 물러서서 입을 쩍 벌렸다.
"고양이도 내가 만든 거 좋아하네. 다행이다."
다연이가 만든 음식을 다 먹어치운 고양이는 준비한 물까지 먹고 나서야 식사를 완전히 끝냈다.
“고양이, 다음에도 마싯는 거 줄게.”
“냥.”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6살짜리 꼬마가 고양이를 쓰다듬는 모습이라니. 귀엽다.
“귀여워···”
예나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귀여운 건 찍어야 돼.”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찰칵거리는 소리에도 다연이는 못 들은 듯 고양이를 만지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추운 날씨지만 다연이와 고양이가 있는 곳에는 햇빛이 비추고 있다. 그래서 카메라에 담긴 다연이와 고양이의 모습은 더 예쁘게 보였다.
나도 예나 뒤에서 카메라를 들여다 보다가 말했다.
“나한테도 보내줘. 사진 전부 다.”
“네, 알겠어요.”
그렇게 소꿉놀이 같이 장난스런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헤헤.”
다연이가 복도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 뭘 보고 있는 건진 모르겠는데 아까부터 저렇게 멍하니 웃고만 있었다.
“뭐해?”
“나, 휴대폰 봐.”
딱히 말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하던 일을 마무리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로부터 얼마 남지 않은 날이다. 그 동안 다연이 선물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는데 오늘에서야 뭘 선물로 줘야할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다연이가 좋아하고 선물하는 나도 만족스러울 만한 선물. 아직 더 생각해봐야 겠지만.
“으헤헤.”
나는 누워있는 다연이에게 시선을 던진 뒤, 일을 이어나간다.
***
지금 다연이는 오빠 휴대폰으로 다연이의 일기장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일기장에는 여태까지 찍은 사진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 때 오빠한테 수바기인형을 받았었찌.”
수박 인형을 손에 들고 식당 앞에서 찍었던 사진 부터.
“이거는 오빠 머리에 앉은 참새 사진이지.”
참새가 오빠 머리 위에 앉은 사진까지.
다연이는 아직 6살 밖에 안 되지만 그 사진을 보면서 어른처럼 그 때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고 있다.
오빠랑은 같이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연이는 예나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연예인이 됐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들도 다연이를 좋아한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다연이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 날들을 떠올리니 문득, 다연이가 이 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났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오빠에게 왔었던 그 날이.
사실 지금 다연이는 그 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비가 왔었고, 처음보는 오빠의 얼굴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는 것만 생각난다. 당연히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해?”
그 때 오빠가 물었다. 그래서 그냥 휴대폰을 본다고 대답했다.
“으헤헤.”
그런 기억을 떠올리니 문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때는 조금 무서웠지만 지금 생각하는 그 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추억일 뿐이다.
짙은 빗방울 냄새가 코에 스며들고, 조금은 차가웠던 그 때. 버려지고 싶지 않았었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어도 오빠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때는 아니었다.
“그래써찌.”
모처럼 감상에 젖어 있는 다연이는 문득 한 가지가 더 생각났다.
아직도 웃지 못하는 오빠가 생각난다.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아마 오빠가 웃거나 우는 날이 온다면 다연이의 걱정도 사라질 거다. 그 때가 언젠지는 모르지만 다연이가 7살이 되기 전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쓰면 좋겠따.”
다연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휴대폰을 다시 한 번 훑는다.
일기장에 있는 사진을 다시 둘러본다. 사진이 꽤 많았지만 오빠는 늘 굳은 얼굴로 있었다.
“흠..”
웃었으면 좋겠지만 쉽진 않을 거다. 그렇게 일기장에서 사진을 더 둘러보다가 가장 최근에 올린 사진을 터치한다.
이 사진은 저번에 고양이에게 닭가슴살을 선물에 줬을 때 예나 언니가 찍었던 사진이었다.
다연이는 손을 뻗어서 고양이를 만지고 있었고 고양이는 눈을 질끈 감고 다연이의 손길을 여유롭게 받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햇빛까지 쏟아져 내리니 완전 화보처럼 보였다.
이 사진을 보고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다연이 연예인이야?’
다연이는 오빠가 그런 목소리로 말하는 걸 처음 들어봤다. 그래서 더 만족스럽기도 했다.
진짜로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마자!’
그래서 그렇게 대답했다.
다연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진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본다.
지금 다연이는 일기장을 처음 썼을 때보다 한글 실력이 상당히 많이 늘었다. 댓글을 혼자 읽을 수 있을 만큼. 물론 완벽하게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는 오빠 도움 없이도 대강의 뜻은 알 수 있었다.
하지민 오빠는 다연이에게 혼자 댓글을 읽지 말라고 했었다. 이유는 혹시 나쁜 말이 있을 까봐 그랬던 거였다. 그래서 지금 다연이도 머뭇거리다가 오빠에게 먼저 묻기로 했다.
“오빠, 나 일기장에 댓글 일거봐도 돼?”
“....”
바쁜지 조금 있다가 대답한다.
“응, 대신 나쁜 말있으면 읽지마. 처음 보는 말 있어도 읽지 말고.”
“알게써.”
얼른 대답한 다연이는 빠르게 댓글을 읽어내려간다.
[오늘도 예뻐.]
[너무 귀엽잖아 ㅠㅠ]
[다연이 연예인이야?]
다연이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하나하나 꼼꼼히 읽는다. 댓글은 언제 봐도 좋았다. 오빠의 걱정과는 다르게 늘 나쁜 말은 없었으니까.
“헤헤..”
그렇게 읽어내려가다 어느 댓글에서 다연이의 손이 멈췄다. 오빠가 보지 말라는 댓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쁜 말···]
뒷 글은 읽지 않았는데 분명 '나쁜 말'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댓글이었다.
“나쁜 말은 일그면 안 돼···”
그렇게 시선을 떼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안 돼···”
어쩔 수 없이 시선을 옮겨간 글은 예상 외로 나쁜 말이 아니었다.
[나쁜 말은 쓰면 안 돼요! 이거 다연이가 본다고 했어요!]
나쁜 말을 쓰지 말라는 댓글이다.
다연이의 어떤 열렬한 팬이 적어 놓은 댓글이었는데 아마 나쁜 말이 없는 건 이 글 때문이었을 것 같다. 비록 다연이의 일기장은 다연이의 주변 사람들이 보는 것이어서 나쁜 말은 거의 없지만 일부는 이 댓글 덕분인 것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엄청 차칸 사람인가 봐···”
그 사람의 댓글 밑으로 수많은 답글이 달려있지만 다연이는 그런 것보다 이 사람이 누군지 더 궁금했다. 그래서 그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터치해서 확인한다.
“어..! 밥도리도 이짜나?”
그런데 그 사람의 일기장에 밥돌이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다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방송인인 밥돌이. 게다가 팔로워의 숫자도 상당히 많다.
“우와··· 밥도리는 나랑도 친군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작은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고 있을 때 식당 문에 달린 종소리가 들린다. 자주 듣던 소리지만 왜인지 지금은 누가 들어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다연이가 고개를 들어 손님을 확인한다.
“안녕, 다연이!”
“안뇽!”
손님은 밥돌이였고.
“우와, 쟤가 다연이야?”
“응!”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방금 일기장에서 본 그 사람이었다. 밥돌이와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 팔로워도 엄청엄청 많은 사람.
“차.... 차칸 사람이다!”
다연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어떤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