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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그렇게 물으니 다연이가 대답했다.
“고양이 부르고 있어.”
“..?”
대답한 다연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고양이를 부른다.
“야옹.”
왜 부르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냥 잠자코 지켜보기로 한다. 저렇게 한다고 나오진 않을 것 같지만.
내 생각대로 한참을 야옹 거리며 고양이를 불렀지만 고양이는 오지 않는다. 그 틈에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고양이는 왜 불러?”
“왜냐하면 고양이는 밥 안 먹은지 오래 됐거든. 그래서 밥 먹어야 돼.”
그러고 보니 처음에 만나서 밥을 준 뒤, 요 며칠 간 밥 먹으러 온 적이 없었다. 그 동안 준비해야 할 것도 있었고 다른 할 일도 있었기 때문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야옹야옹.”
그런 이유 때문에 다연이가 고양이를 부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고양이는 올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다연이가 한참 그러고 있을 때 드디어 골목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온다. 검은 바탕에 하얀 무늬가 있는 고양이. 조금 마르기도 한, 저번에 옥상에서 봤던 그 고양이였다.
“고양이다.”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며 고양이를 가리킨다. 고양이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더 말라있었고 눈도 쾡했다. 그랬던 고양이는 다연이를 보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듯 터벅터벅 걸어와 머리를 부빈다.
“고양이, 왜 밥 먹으러 안 왔어?”
그렇게 물어도 고양이는 당연히 대답하지 않는다.
다가온 고양이는 다연이의 손에 머리를 부비다가 자기가 걸어온 골목길을 바라본다.
겨울이지만 골목길은 약간 습해보이기도 했고 금방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이 음습하다. 그렇게 골목길을 보고 있으니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더 걸어나온다.
덩치는 컸고 걷는 폼도 뭔가 강해보인다.
“하악!”
그 때 다연이 옆에 있던 고양이가 강한 고양이를 노려보며 경계했다. 하지만 강한 고양이는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서 고양이와 다연이를 지켜본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서 지켜본다.
“하아악!”
다연이 옆에 있던 고양이가 목을 더욱 긁으며 맞은편의 고양이를 경계하자 얼마 간 노려보더니 슬금슬금 뒤로 사라진다.
덩치 차이로 봤을 땐 절대 못 이길 것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패기가 좋다.
덩치 큰 고양이를 이겨낸 고양이는 이제야 안심한듯 다시 다연이의 손에 제 머리를 비빈다.
“우와···! 방금 봤찌? 고양이가 우리 식당을 지켰따!”
다연이 말처럼 정말 그런 걸로 보인다. 식당을 지킨 건지 여기가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지킨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 다연이가 보기엔 고양이가 우리 식당을 지킨 것처럼 보였다.
“그렇네.”
이러고 보니 고양이의 몸 군데군데 상처도 보인다. 하지만 깊거나 금방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는 아니다. 그냥 놔둬도 괜찮을 정도의 얕은 상처였다.
“내가 지키라고 해서 지킨 거야?”
다연이가 고양이에게 물었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다.
그래도 다연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거다. 다연이의 말대로 고양이가 식당을 지킨 것처럼.
“냐앙.”
“그러면.. 내가 밥을 줄게!”
그렇게 말한 뒤, 다연이는 식당으로 뛰어들어가 예전에 사 놓은 고양이용 캔사료를 가지고 나왔다.
어쩌면 여태까지 고양이가 밥 먹으러 오지 않았던 건 방금처럼 식당을 지키느라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예나가 물었다.
“우와, 이 고양이 예전에 다연이가 말했던 그 고양이 맞죠? 옥상에서 봤다고 한 고양이요.”
“응, 맞아.”
고양이도 자기가 식당을 지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느긋하게 그 자리에 누워서 털을 핥짝인다.
상처가 살짝 보여서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다쳤네요. 불쌍하게···”
상처를 치료해 줄 순 없을까 생각했지만 예나가 인터넷에 검색해 본 결과 이렇게 얕은 상처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좋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둔다. 연고 같은 걸 발라도 고양이가 그루밍하는 과정에서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많이 먹어, 고양이.”
고양이는 다연이가 내민 사료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리고 먹을 게 더 없는지 반짝이는 눈으로 다연이를 살핀다.
“배고프면 밥 더 줄게! 고양이는 식당을 지켰으니까.”
“야옹.”
그리고 다연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내일은 고양이 간식 만들어 주자. 오빠가 도와주고, 나도 가치 만들 거야!”
“다연이도?”
“응, 그리고 내가 영상 많이 봐서 만드는 법 아라. 나중에 오빠한테도 보여줄게.”
“그래.”
저번에 김밥을 만든 뒤로 점점 요리하는데 자신감이 붙고 있다. 그 뒤로 뭔가 만들진 않았지만 요리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었다.
“그럼 내일 다연이가 요리하는 거야?”
그 말에 예나가 물었다.
다연이가 하고 싶다고 말하니 그렇게 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응, 내가 고양이 간식 만들어 줄 거야.”
“우와··· 내일도 주말이라서 다행이다.”
“김밥 만들 때처럼 엄청 마싯게 만들 거야.”
다연이가 다짐하듯 작게 말했다.
그 앞에서 사료를 먹고 있는 고양이만이 다연이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해서 밥을 먹고 있을 뿐이다.
.
.
.
다음 날이 왔고, 나는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주방으로 향한다.
어제 다연이가 보여준 영상은 고양이 간식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영상이었는데 요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닭가슴살을 삶아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주면 될 뿐이었으니까.
그것만 하면 조금 심심하니 고양이가 먹을 만한 채소도 주기로 했다.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채소와 없는 채소가 있었는데 먹을 수 있는 채소 중 당근을 선택했다. 우리 식당에 있는 재료라는 게 그 이유였다.
“추추워···”
주방에서 나름의 준비를 끝내 놓으니 다연이가 걸어나왔다. 난로까지 틀어 놓았지만 이제 완연한 겨울이라 춥긴 하다.
다연이가 주춤 거리는 사이, 준비를 마무리한다.
내가 가져온 건 닭가슴살과 당근, 그리고 다연이가 쓸 칼이었다.
이번에 만들 고양이 간식은 아주 간단하다. 닭가슴살을 삶고, 먹기 좋게 자르면 끝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다연이가 할 수 있는 건 삶은 닭가슴살을 써는 것 뿐이었는데 내가 쓰는 칼을 사용하는 건 당연히 위험했다.
그래서 대신 마련한 게 어린이가 쓸 수 있는 이 플라스틱 칼이었다.
물론 진짜 칼보단 잘 들지 않지만 물렁한 닭가슴살을 써는 데에는 별 다른 힘이 들지 않을 거다. 플라스틱 칼은 잘 들지 않으면 그냥 뭉개 버리는 방법으로도 쓸 수 있으니까.
그렇게 준비하고 있을 때 예나가 출근했다.
“휴, 안 늦었죠?”
“응, 아직 시작 안 했어.”
예나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오늘 있을 다연이의 요리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한테는 말도 안 했다고 하는데 정작 다연이는 누가 오든 별 상관이 없는 눈치였다.
“지금은 추워. 오빠가 저거 삶은 다음에 나 부른다고 해써.”
“그래, 나중에 다연이 요리하고 있을 때 언니가 다연이 사진 찍어도 되지?”
“응, 찍어도 돼.”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예나를 멍하게 보더니 말을 이었다.
“언니도 빨리 와서 손 따뜻하게 해. 바께는 춥자나.”
“큭큭, 그래.”
예나가 다연이의 말을 따라서 옆으로 앉는다. 그리고 난로를 향해 나란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나는 닭가슴살을 삶기 시작한다.
물을 충분히 끓이고, 그 안에 닭가슴살을 넣는다. 이 닭가슴살은 꽤 힘들게 구한 거다. 이 동네에는 팔지 않아서 큰 마트에까지 갔다 왔다.
딱히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 혼자였다면 그렇게 움직일 일도 없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문득 생각났다.
닭가슴살을 넣고 끓인 물이 점점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그리고 동시에 먹음직스러운 고기 냄새도 가늘게 난다.
이렇게 닭가슴살을 삶는 건 처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냄새도 낯설어서 좋았다.
“...”
나는 스쳐지나가는 떠오른 그 생각 때문에 스스로 조금 어이가 없었다.
낯설어서 좋다니. 원래는 익숙한 것만 좋아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바뀐 건지 모르겠다.
그런 이상한 감상에 젖어있을 때, 정신을 차리고 다 삶아진 닭가슴살을 건져낸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다연이와 요리를 하기로 했고, 지금은 그것들을 준비할 때였으니까.
“다 돼써?”
“조금만 기다려. 이거 식히고.”
“응.”
삶은 닭가슴살을 서둘러 식힌 다음 도마 위에 펼쳐 놓는다.
“다 됐어. 이리 와.”
“빨리 갈게.”
신난 얼굴을 한 다연이가 후다닥 달려온다.
뒤에 있던 예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고, 나는 다연이가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의자를 가져온다.
“오··· 내가 쓰는 내 칼이다···”
다연이가 플라스틱 칼을 들고선 말했다.
손으로 날 부분을 쓰다듬어도 베이지 않는다. 안전하다는 걸 몇 번 더 시험한 후에야 다연이에게 닭가슴살을 자르도록 시켰다.
나는 그 옆에서 당근을 썰기로 한다
“오···”
다연이는 작은 소리를 내며 닭가슴살을 썰어간다.
내가 하는 걸 보고 배웠는지 6살 치곤 굉장히 잘 한다.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훨신 안정적이고 어른같다
그런 다연이의 모습을 예나가 호들갑을 떨며 사진으로 담는다.
“좋아! 너무 귀여워!”
하지만 정작 다연이는 당장 눈앞에 있는 닭가슴살을 써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찹찹찹.
다연이의 작은 칼질에 닭가슴살이 조금씩 썰려나가고 있었다.
그런 닭가슴살을 노려보는 다연이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또, 비장했다.
“...”
입을 꾹 닫고 어느 레스토랑의 셰프처럼 끝까지 집중을 잃지 않는다.
“지금 그 표정도 너무 귀여워! 다연이는 못 하는 게 뭐니?”
오직 예나만 지금 기분을 주체를 못하고 사진 찍는데 열중할 뿐이었다.
찰칵거리는 휴대폰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그 소리가 쌓일수록 예나의 미소는 더 커져간다.
“나느은··· 요리하는 사라미야···”
예나가 그럴수록 다연이는 더 집중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조각을 냈을 때,
“와!”
비로소 양손을 번쩍 들고선 기쁨을 만끽한다.
“나는 엄청 잘 하는 사라미다!”
조각난 닭가슴살은 6살짜리 꼬마가 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썰려 있었다.
아이를 키운 적 없는 내가 봐도 이건 대단하다.
“나 잘해써?”
다연이가 조금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외쳤지만 아직 확신은 못하는 모양이다.
“응, 엄청 잘했어. 오빠보다 더 잘한 것 같아.”
“오···! 오빠보다 더..!”
다연이는 그제야 밝은 얼굴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도 귀여워!”
예나는 아직도 그런 다연이의 사진을 찍고 있을 뿐이다.
당근까지 썬 다음, 닭가슴살과 섞어서 고양이 간식을 만들었다.
어제 식당을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의미였지만 다연이는 그런 건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그저 자기가 이걸 만들었다는 것이 뿌듯하고 좋았다.
섞는 것도 다연이가 했으니 이건 완전히 다연이가 한 요리다.
“이거 내가 들고 갈게!”
“그렇게 해.”
접시를 받아든 다연이는 아침보다 훨씬 더 자신만만한 얼굴과 몸짓으로 식당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한다.
“야옹야옹!”
착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