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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가 식당에서 김밥을 만들고 있을 때 식당 근처 예나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선 아이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오늘은 여러모로 학생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하.. 이제 놀지도 못하겠네···”
예나의 친구가 푸념 섞인 한 마디를 뱉어낸다.
오늘은 방학식이다. 이제 고3이 된 아이들은 이르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공부에 전념해야하는 시기.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못 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빨리 끝나고 다연이 보러 식당에 가자.”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 힐링이 되는 건 그것 밖에 없었다.
다연이가 식당에 온 지는 비록 1년 밖에 안 됐지만 다연이의 존재는 그것보단 훨씬 컸다. 아마 다연이가 없었다면 고등학교 생활은 몇 배 더 힘들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알바는 계속하기 때문에 주말에 다시 만날 거지만 그 때는 그 때일 뿐, 지금 더 보고 싶다.
***
“나는 김밥을 만들고 이찌.”
“맞아.”
한참 다연이에게 물어본 끝에 왜 김밥을 만들게 됐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어린이집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다연이는 고민 끝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요리사가 될 거야.”
다연이가 저렇게 말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연이는 나랑 같이 있을 때도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했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다연이는 작은 손으로 김 한 장을 꺼내다가 눈치를 보면서 내게 말했다.
“왜 요리사가 되고 싶은 건지 물어봐죠.”
다연이 나름의 말하고 싶은 엄청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왜 요리사가 되고 싶어?”
“오빠가 요리사니까! 나도 요리사가 돼야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요리사와 식당의 사장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나중에 알아도 되는 거다.
“그래.”
“내 말 듣고 친구들이 전부 우와··· 이렇게 말해써. 그래서 생각해찌. 요리사가 되려면 요리를 해야 된다고!”
다연이가 지금 김밥을 만드려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 때문인 것 같다.
요리를 못 한다면 요리사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요리를 하려 하는 거다. 내 도움도 없이.
하지만 비장한 말과는 다르게 다연이의 손은 계속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김 한 장을 펴 놓긴 했지만 펼쳐진 김은 아무것도 머금지 못하고 축 늘어져만 있다.
“음···”
나는 고민하던 다연이에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줄까?”
“아니! 혼자서 할 수 이써야 요리사야. 혼자 못하면 요리사 아니야.”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대로 혼자 놔둔다고 해서 김밥이 저절로 완성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도 맞는데 요리사도 처음엔 다 배워.”
“...정말?”
“응, 잘하는 사람한테 배워야 요리사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지.”
“음···”
그 말을 들은 다연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문득 나도 다연이와 계속 같이 있다보니 말투가 조금씩 어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한 다연이가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것도 맞는 것 같아. 왜냐하면 밥도리도 영상에서 말했거든. 계속 요리하니까 맛있어졌따고. 그래도 오빠보다는 요리 못한데. 그거도 방송에서 말해써.”
“그래.”
몰랐는데 밥돌이가 방송에서 그런 말도 했었구나.
“그러면 김밥 만드는 거 말해죠.”
“알겠어.”
김밥을 만드는 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의 소풍 도시락으로 많이 하는 거기도 하고.
하지만 김밥을 만드는 사람이 다연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많이 어려울 거다.
일단 간단한 재료들을 펼쳐 놓는다. 미리 다듬어 놓았으니 별 다를 걱정은 없다.
밥도 뜨거울 수 있기에 적당히 덜어놓고, 다연이에게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다.
설명하는 도중에 다연이는 종종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지만 결국엔 나름대로 잘 이해한 것 같았다.
“알게써. 이제 알 것 같아. 오빠는 다시 앉아.”
“그래.”
이렇게 말하니 다연이와 내 역할이 바뀐 것 같다. 원래는 내가 요리를 하고 다연이가 봤었는데. 그래도 이왕 다연이가 하겠다고 했으니 잠자코 지켜보기로 한다.
“후···”
다연이도 나름 긴장되는지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누가 보면 수술을 준비하는 명의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범접 불가능한 의술을 가진 전설의 의사처럼 비장하다.
“김은 이꼬..”
다연이는 내가 말한 과정들을 다시 되뇌었다.
“어.. 이 다음이 뭐더라···”
긴장해서 그런지 방금 말해줬는데도 잊어버린 것 같다.
열심히 생각하던 다연이는 다시 요리 과정이 떠올랐는지 몸을 들썩인다.
그 때, 누군가가 식당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안녕, 다연아!”
들어온 아이들은 예나와 친구들이었드. 평소라면 반겼을 다연이가 우중충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까먹어따··· 뭔지 생각났었는데.”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뜨린 다연이는 늘 하던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저씨··· 다연이 무슨 일 있어요..?”
당황한 예나가 물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줬다. 다연이가 어린이집에서 장래희망이 요리사라고 말했던 것과 지금은 혼자서 김밥을 만드는 중이라는 걸.
그 말을 들은 예나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우와···! 다연이 대단하네! 벌써 꿈도 있고!”
“....그런데 뭐 해야하는지 잊어버려써. 언니가 갑자기 와서..”
다연이는 여전히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예나는 그렇지 않았다.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예나가 웃는 얼굴로 고민하고 있는 다연이를 가만히 지켜본다. 다연이는 여전히 방법을 떠올리는 중이었고 예나와 친구들은 자식을 바라보듯 흐뭇하게 지켜본다.
계속 머리를 감싸고 생각하고 있는 다연이를 보면서 예나가 말했다.
“아··· 밥 먹고 싶다아. 아저씨가 해준 밥 맛있는데 그쵸?”
“응?”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던 다연이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다! 밥이야!”
다연이는 부리나케 밥을 퍼서 김 위에 펴바른다.
그 모습을 보고 예나도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런 건 나보다 예나가 더 잘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다연아.”
“응!”
“다연이가 만든 김밥, 우리가 먹어도 돼?”
“응! 오빠 먼저 먹고, 언니들이 먹을 것도 만드러 줄게!”
“고마워!”
“나는 요리사니까 손님들이 해달라는 거 해주는 사람인 거야!”
다연이는 자신있게 말하며 김밥을 차근차근 완성시킨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그런지 간단한 일인데도 많이 느렸다. 그럼에도 재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 대신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문제라고 하기엔 별 거 아니었지만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우와··· 다연이가 요리를 하고 있어···”
예나처럼 학교를 마친 뒤, 찾아오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학생들이 많지 않았지만 예나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은 방학식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도 저녁은 먹고 나오는 거라고 했는데.
“방학이라고 학교에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개학하기 전까지는 자주 못 들릴 것 같아서요! 오늘 한 번 다연이 보고 싶어서 왔어요!”
내가 물어보니 다른 학생이 그렇게 말했다. 결국 그냥 다연이를 보고 싶어서 왔다는 말이다. 자주 못 올 것 같다는 말은 왠지 핑계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오는 김에 겸사겸사 저녁도 먹고.
그런데 그런 다연이가 김밥까지 만들고 있으니 지금 아이들이 어떤 기분일지 조금 이해가 된다.
“밥 다음에는 단무지를 올려야 해.. 그리고 햄도..! 햄은 많이 넣어야지···”
다연이는 아직 다른 학생들이 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주변이 조금 어수선했지만 그것보단 당장 눈앞에 있는 김밥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나에게 조언을 듣고 예나에게 힌트를 받으면서 힘들게 만든 김밥이니만큼 이번에는 다른 데에 관심을 주지 않겠다는 듯 다연이는 눈을 부릅 뜨면서 김밥에 집중한다.
“마는 것도 내가 할 거야···”
저건 내가 도와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가려고 했지만 예나가 나를 붙잡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지 마?”
다시 끄덕인다. 뒤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다연이가 김밥 만드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 거라면 나도 나서지 않고 다시 앉아서 지켜보기로 한다.
“응, 오지 마.”
다연이는 내 쪽을 보지도 않고 김밥에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말했다.
자기한테 한 말인 줄 아는 것 같다.
“나 혼자 할 수 이써.”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열심히 김밥을 만다.
김밥은 마지막으로 잘 마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알고 있는 탄탄한 김밥이 완성된다. 먹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김밥.
다연이가 잘할 수 있을까.
많은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연이가 김밥발 위에 손을 올렸다.
지금이 요리사가 되기 위한 진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다연이는 아까보다 더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다.
스윽.
손짓에 따라 천천히 말아가는 김밥. 다연이의 작은 손처럼 김밥의 속재료도 평균적인 다른 김밥들보다 적게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더 잘 말아간다.
“나, 잘하는 것 같아.”
다연이가 중얼거리면서 조금씩 말고 있다.
“이거 꾹 눌러야 돼?”
“응, 꾹꾹 누르면서 말아.”
“알게써.”
지금 다연이의 모습은 요리기능사 자격증이라도 따고 있는 수험생 같다. 그만큼 진지하고 엄한 얼굴이다.
다연이는 내 말대로 김밥을 꾹꾹 누르면서 완성시켜간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이거 하고 또, 뭐 해야 하잖아.”
“응, 참기름 바르고 참깨 뿌리고.”
참기름과 참깨는 김밥의 화룡점정 같은 느낌이다. 이게 있어야 완성이 된다.
향도 물론 더욱 고소해지지만 비주얼도 더 좋아진다.
“음... 그건 내가 못해. 오빠가 해줘야 하는 거야.”
“알겠어. 그건 해줄게.”
“나는 조금 더 크면 그거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래.”
다연이는 변명하듯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것처럼.
꾹꾹 눌러가며 모양을 만들어가던 다연이는 곧 완벽하게 둥근 김밥을 완성시켰다.
“돼따···!”
완성된 김밥을 보고 만족한 다연이가 만세를 하며 앞을 본다.
"어..?"
드디어 눈앞에 많은 학생들이 있다는 걸 깨달은 다연이가 놀란 얼굴을 한다.
“다연이 진짜 잘하네..!”
곧이어 학생들의 박수갈채와 칭찬이 쏟아진다.
조금 이상한 광경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쁜 건 아니었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힘들게 김밥을 만든 6살짜리 어린 애를 보면서 박수치는 손님들이라니. 흔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상하다면 충분히 이상한 광경이다.
그 모습을 보던 다연이가 땀이라고 흐르는 것처럼 이마를 훔치면서 말했다.
“후··· 나는 멋찐 요리사야.”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