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181 --------------
예쁘다는 말을 들은 다연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다가 나를 본다. 아직 할머니의 예쁘다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몰라서 그런 거다.
평소의 성격대로면 저 말은 절대 들을 수 없는 말이니까.
그렇게 가만히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빨리 밥이 됐으면 좋게따.”
다연이는 할머니와 같이 자리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있는 밥돌이가 안절부절해 하며 내게 도와준다고 말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을 뿐더러 지금 밥돌이는 손님으로 왔지 않은가.
사실 밥돌이는 그 사이에 기다리고만 있기 불편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을 시킬 순 없었다.
그렇게 셋은 자리에 앉아서 말없이 음식을 기다린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등장 때문인지 다연이도 조용히 기다렸다.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다가 다연이가 먼저 입을 연다.
“그런데요.. 할머니는 물고기 잡는 사람이에요..?”
다연이도 할머니가 마냥 편하지는 않은지 목소리에 살짝 머뭇거림이 묻어 있었다.
다연이의 질문에 밥돌이도 궁금해진 듯 고개를 살짝 내민다.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할머니도 다연이의 시선에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오···”
어물쩡 대답한 다연이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본다. 붙임성이 꽤 좋아진 다연이라고 해도 무심한 성격의 할머니에게 다가가긴 아직 힘든 모양이다.
잠시 생각하던 다연이는 다시 물었다.
“할머니는 혼자 살아요?”
“...응.”
다시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얼른 요리를 끝내야 할 것 같다.
예나가 와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미리 해야할 것들을 마무리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재료들을 하나하나 준비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우리 식당에 놀러와도 돼요··· 나는 매일 여기 이써.”
“.....그래.”
또 다시 조용해졌지만 전처럼 어색하진 않았다. 다연이가 그 말을 한 뒤로 나름 후련한 얼굴을 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옆에 있던 밥돌이만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한 모양이다. 빨리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정말 안 도와드려도 돼요···?”
“응.”
다연이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할머니가 마음에 든 건지, 그냥 심심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까칠한 할머니와 계속 들이대는 다연이의 조합은 내가 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 사이 예나가 식당에 도착했다.
“오, 언니!”
“안녕.”
나는 얼른 예나가 가져온 콩나물을 받아서 요리를 시작한다.
예나도 할머니와 안면은 트여있는 사이였기에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는다.
예나가 온 뒤로는 식당이 조금 시끄러워졌다. 그래서 밥돌이는 다행이라는 얼굴을 했고, 나도 안심하고 요리를 이어나간다.
“아! 밥돌이 아빠한테 받은 인형 있는데. 언니한테도 보여줄까?”
다연이는 문득 그 생각이 났는지 예나에게 말했다.
“응.”
“그럼 오빠한테 선물로 받은 인형도 보여줄게. 기다려.”
그런 다연이의 행동에 할머니도 조금 관심이 생기셨는지 복도로 달려가는 다연이를 눈으로 쫓는다.
나도 그렇게 멍하니 보고 싶었지만 얼른 음식을 완성시켜야 밥돌이가 조금 덜 불편해 할 것 같다.
“아.. 도와주고 싶다···”
아직도 저렇게 혼잣말을 하는 걸 보면 여전히 조금 불편한 모양이다.
나는 그 말에 못 이기고 밥돌이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것 좀 썰어줄래?”
“네...! 무조건 할게요.”
내 말에 금방 대답하며 재료들을 썰어간다.
준비한 재료는 콩나물과 당근, 집에 남아있는 버섯, 그리고 굴이다. 썰어야 할 것은 당근과 버섯 밖에 없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굴을 씻기로 한다.
굴은 소금을 섞은 물에 씻어줘야 한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지만 그래야만 불순물이 깨끗이 씻겨 나가기 때문에 확실히 씻어준다.
초 겨울의 날씨라 물이 조금 차갑다. 그래도 먹는데 불순물이 있어서는 안 되니 최대한 잘 씻어낸다
그러는 사이, 다연이는 예나에게 인형을 자랑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뒤에서 몰래 보고 있었다.
“이거 인형이야. 엄청 머시찌?”
“응, 멋있어!”
그 틈에 할머니가 묻는다.
“.....그거 네 오빠가 사준 거냐?”
“네!”
할머니의 말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 다연이를 흘겨보며 요리에 집중한다.
“형님, 이거 다 썰었습니다.”
“그러면 좀 쉬고 있어.”
“음··· 네. 제가 할 일 있으면 꼭 불러주세요. 꼭이요.”
“응.”
불안한 눈으로 돌아가는 밥돌이를 뒤로한 채, 깨끗이 씻어낸 굴을 한 곳에 가져다 둔다.
미리 불려 놓은 쌀을 밥솥에 올려두고 그 위로 준비한 재료들을 차례차례 넣는다.
당근부터 시작해서 버섯, 마지막으로 굴까지. 말끔히 씻어서 그런지 굴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처음에 다연이가 맡았던 이상한 냄새는 아주 옅어졌다.
그 다음은 밥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그 동안에도 해야할 일은 있었지만.
바로 양념장을 만드는 일이다. 굴밥만으로는 조금 밍밍한 감이 있으니 매콤한 간장 베이스의 소스가 있어야 한다.
물론 다연이 몫에는 고추를 빼기로 하고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엔 대파를 썬다. 양념장에 들어갈 대파이기 때문에 작게 썰어야 한다. 먼저 길게 자른 다음, 작게 툭툭 썰어나간다.
대파를 썰고 나면 그 다음은 매콤한 맛을 낼 고추다. 매운 맛을 내기 위한 붉은 고추도 송송 썬다. 다연이 몫의 양념장과는 섞이지 않게 놓아 두고 간장과 참기름을 섞어서 양념장의 기본 베이스를 완성 시킨다.
그렇게 내가 요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도 다연이는 예나와 할머니에게 인형을 자랑하는 중이었다.
“....이거 비싼 거냐?”
할머니는 내가 사준 인형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빠가 안 비싼 거라고 해써요. 안 비싼데 사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사기 힘드렀데요.”
“...그래.”
사실 저 말은 거짓말이다. 사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가격도 자연스레 올라가는 법. 물론 그냥 비싼 인형의 가격 정도지만 보통 인형보단 값이 나가는 편이다.
그래도 다연이가 괜한 걱정을 할까봐 그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시선을 거두고 양념장을 두 개 준비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식사를 위해 마무리 준비을 한다.
수저 세팅은 밥돌이가 재빠르게 다가와서 도와줬고, 나는 완성된 밥을 퍼 담는다. 생각보다 밥이 더 잘 됐다. 약간 물기를 머금은 밥알들에 굴의 향기가 스며들었다.
처음 맡았던 비린 향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재료들의 향과 어우러져서 더 먹음직스럽게 바뀌었다.
“오··· 조은 냄새.”
아직 그렇게 좋은 향이 나지 않지만 다연이는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계속 킁킁 대고 있었다.
그런 다연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눠 담은 밥을 각자에게 나눠준다.
“신기하게 생겨써.”
“그러네. 나도 영상 말고 보는 건 처음이야.”
밥돌이도 그렇게 말했다.
“흠, 잘했네.”
무심한 듯 툭 던지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니 생각보다 더 잘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원래 저런 말을 하시는 분은 아니니까.
나는 준비해놓은 양념장까지 가져다 주고 나서 다연이 옆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잘 먹겠습니다, 형님!”
“저도 잘 먹을게요, 아저씨.”
“나도!”
“....”
사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혹시 다연이가 굴밥을 싫어할까 걱정했었다.
보통 아이들은 굴을 좋아하진 않으니까. 특유의 향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굴을 싫어하면 뭘 줘야할지도 미리 생각해뒀는데.
“마시따!”
다연이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 다연이의 말이 의외라고 샹각했지만 이내 뭐든 잘 먹었던 지난 날들이 떠오르면서 나름 납득했다.
“나는 오빠가 한 거 다 마싯는데..! 이거는 맛이 조금 달라. 다르게 마시써.”
“....굴이잖아.”
평소의 할머니 답지 않게 다연이의 말에 대답까지 했다.
“맞아요!”
힘차게 대답한 다연이는 다시 밥을 와구와구 퍼 먹기 시작한다.
다연이가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니까.
막상 우리가 만났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오래 전부터 닮아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빠도 빨리 머거봐. 이거 맛이···. 음··· 찌릿찌릿해!”
“알겠어.”
그게 무슨 맛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연이 말대로 먹어보기로 한다.
물기를 많이 머금어서 그런지 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그 사이로 씹히는 물렁한 당근과 버섯, 그리고 씹으면 약간 비린 향이 다시 피어오르는 굴까지.
그냥 이대로 먹는다면 살짝 심심할 수 있지만 만들어 둔 양념장과 같이 먹으니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마싯다고 해찌?”
“그래, 맛있네.”
“이거 할머니가 가지고 온 게 마싯어서 그런 거에요!”
“....그래.”
할머니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다연이는 다시 열정적으로 밥을 먹는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자식들이 밥을 안 먹는다고 투덜대던 인터넷 속 엄마들이 생각난다. 다연이는 뭐든 잘 먹었기 때문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와구와구.
다연이 몫의 작은 그릇에 담아준 밥을 순식간에 전부 해치웠다.
“하나 더 줘.”
“그래, 조금만 기다려.”
이번에도 열심히 먹은 다연이는 아직도 배고프다.
.
.
식사를 마치고, 남은 굴밥들을 할머니께 챙겨준다.
어차피 굴과 회는 남은 것들이 아직 많았기 때문에 혼자 드실 수 있게 전부 챙겨드렸다.
다연이는 그새 할머니가 마음에 들었는지, 식당 앞에서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한다.
“안녕히가세요, 할머니.”
전에는 이렇게 인사 못했었는데. 어린이집에서 배운 모양이다.
“...그래.”
“우리 오빠 식당에 자주 와요. 마싯는 거 엄청 많으니까! 그리고 오빠도 있고 나도 이써요!”
할머니는 그런 다연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다. ...자주 올게.”
그 말만 남기고 시크하게 사라진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는 예나와 나에겐 의미가 조금 달랐다.
“우와··· 할머니가 저런 말 하시는 거 처음 들어요···”
“나도.”
“자주 올게··· 원래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다.’ 아니면 ‘때 되면 알아서 올 거다.’ 뭐 이런 대답 아니었어요?”
“맞아.”
평소에 자주 오라고 하면 들었던 말이다.
그런 면에서 방금 다연이에게 했던 말은 놀라운 일이었다.
“다연이 진짜 대단하다···”
예나 말처럼 새삼스레 다연이가 대단해 보인다.
아니면 다연이의 매력이 그 만큼 뛰어난 건가.
“진짜? 나 대단한 사람이야?”
“응, 그것도 엄청 대단한 사람.”
“우와··· 나는 대단한 사라미다!”
어쩌면 다연이와 같이 살고 내가 느꼈던 것들처럼 저 할머니도 비슷한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엄청 대단한 사라미야.”
“맞아. 대단한 사람.”
나도 다연이의 말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
.
.
맛있는 회와 굴밥을 먹은지 며칠이 지났다.
나름의 레시피로 굴을 해치웠지만 그런 노력들은 금새 다시 새로운 굴이 되어 돌아왔다.
“먹어라.”
할머니가 다시 굴을 보충해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걸 받은 나는, 할머니가 왜 이걸 주셨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저번에 자주 오라는 다연이의 말 때문인 것 같다. 자주 오는 것 뿐 아니라 먹을 것도 자주 가져다 주셨다.
게다가 이 굴이 다연이 덕분이라는 건 할머니가 하신 말씀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뭐냐. 이다연? 그 꼬맹이 잘 먹여. 클 때는 많이 먹어야지. 굴이 몸에 좋다는데.”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지셨었다.
생각보다 다연이와 할머니는 꽤 친한 친구가 된 것 같다.
지금 다연이는 어린이집을 마치고 다시 식당으로 와 있는 상태다.
여느 때처럼 먹을 만한 간식을 만들어줘야 할 시간이지만 오늘 다연이는 조금 다르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갔다 오자마자 자기가 김밥을 해주겠다며 말했었다. 그래서 지금 다연이는 의자 위에 서서 김밥을 마는 테이블 앞에 있다.
“오빠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까?”
“아니! 아무거또 하지 마. 내가 해서 오빠한테 주께. 오빠가 저번에 아팠을 때 내가 못했으니까! 그 때는 언니가 도와줬는데 지금은 나 혼자 해줄 거야.”
왠지 진지한 목소리에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멋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