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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 그냥 먹으면 돼?"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아니.."
일단 이것들을 먼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뭘 주고 가신 건지. 바람처럼 사라지셔서 미처 물어볼 틈도 없었다.
무슨 회랑 굴이라고 하셨는데 솔직히 그게 정확하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굴은 알고 있지만 회는 무슨 회라고 하셨던 거지.
“뭔지 보자. 오빠도 이게 뭔지 잘 몰라.”
“알게써. 그럼 내가 대신 봐 줄게.”
다연이는 그렇게 말한 다음, 봉투 안으로 머리를 들이 밀었다.
그냥 있어도 굴 때문에 비린내가 약간 올라오는데 저렇게 있으면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다시 고개를 빼고 나를 본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이거 맛 없을 것 같아.. 이상하게 생겨써. 그리고 이상한 냄새도 나.”
그렇게 말한 뒤, 후다닥 도망가 버린다.
굴은 아이들이 보기엔 조금 낯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육지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는 아니니까.
“아저씨, 이건 뭐라고 했었죠···?”
옆에 있던 예나가 그릇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에는 연분홍빛의 회가 가득 들어있었는데 이렇게 많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다.
“무슨··· 회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참치..? 잘 모르겠다.”
딱히 생선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었으니 한 번 듣고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익숙한 생선의 이름도 아니었으니까.
“음··· 그럼.. 이거 먹어 볼까요..?”
예나의 말에 복도에서 튀어나온 다연이가 코를 붙잡으며 말했다.
“아니, 그거 맛없는 거야.”
“아니야, 맛있을 걸. 할머니가 맛없는 걸 주진 않았을 거야.”
“맛없는 냄새가 나던데···”
다연이는 여전히 의심스런 눈초리로 할머니가 가져온 것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맛없는 건 나쁜 거야.”
다연이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연이에게 맛있는 음식이란 건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니면 그냥 맛있는 음식을 너무 좋아하거나.
그런 다연이의 말에 예나가 나서서 그것들을 살펴본다. 예나 딴엔 다연이에게 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모양이다.
“아냐, 이거 맛있을 건데··· 어떻게 먹어야 되는 건지 모르겠네···”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섣불리 말하지 못하고 할머니가 가져온 것들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다시 식당에 달린 종이 울린다.
딸랑.
식당을 찾아온 사람은 반가운 얼굴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챈 다연이가 외쳤다.
“밥도리!”
나와 예나도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잘 왔어.”
밥돌이는 먹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그래도 우리보단 잘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생선 손질도 할 줄 알지만 해산물들을 자주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요리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나보다 많은 종류의 음식들을 먹어본 밥돌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우와··· 오늘은 반응이 상당히 좋네요. 오늘 제 생일인가요?”
밥돌이는 평소처럼 능글맞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온다.
"아저씨는 이게 뭔지 알아요?"
예나가 회가 담긴 그릇을 들이밀며 말했다.
예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릇을 집어든 밥돌이는 한참을 노려본다.
"밥도리는 뭔지 다 알고 이써요! 우리 오빠는 다 만들 수 있고. 맞지?"
다연이가 기대감에 젖은 눈으로 밥돌이를 바라봤다.
밥돌이는 그런 다연이의 눈빛에 조금 부담감을 느꼈는지 다연이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연다.
"어··· 미안.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밥도리도··· 몰라요···?”
충격 받은 얼굴을 하던 다연이가 스르르 다시 의자에 앉는다.
“밥도리도 모르는 게 있다니···”
시무룩한 다연이의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밥돌이는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다가 내게 물었다.
“이거 사 오신 거 아니에요?”
“아니야, 아는 분이 주셨어.”
“음.. 주시면서 뭐라고 말씀 안 하셨어요?”
그 말에 예나가 대답했다.
“....삼치? 참치? 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어.. 그러면.. 잠시만요.”
그렇게 말한 밥돌이는 유물을 감정하는 감정사처럼 노련한 눈으로 음식을 살핀다.
결 하나하나를 톺아보듯 집중하는 모습이 꼭 다른 사람 같다. 다연이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흐느적 거리는 몸을 바로 잡고 밥돌이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거··· 삼치 회가 아닐까요? 참치라기엔 많이 다르거든요. 먹어보면 정확하게 알 것 같아요.”
“오···! 역시 밥도리에요!”
다시 자존심을 회복한 밥돌이는 묘하게 전보다 더 힘이 나는 것 같다.
“당연하지!”
나는 밥돌이의 말을 듣고 회 몇 점을 꺼내서 그릇에 따로 덜어낸다.
“일단은 그냥 먹어볼게요.”
찍어 먹을 소스 없이 회만 먹는다.
먹방 방송인 답게 먹는 모습이 일품이다. 하마가 작은 과일을 먹는 것처럼 회 한 점 정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런 밥돌이의 모습을 다연이도, 예나도 멍하게 바라본다.
“맛있다!"
“진짜 마시써요..?”
밥돌이의 호쾌한 말에 되려 다연이가 놀란 얼굴로 다시 물었다.
분명 맛없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다연이의 생각과 다른 반응을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응! 이거 삼치에요! 개인적으로 참치보다 더 좋아하는 횝니다!”
밥돌이가 밝은 얼굴을 하면서 양 손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흠흠! 맛있는 거면 나도 먹을래!”
방금 전 맛없을 거라며 도망치던 다연이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당당했다.
보통 아이들은 회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걱정은 됐지만 일단은 먹어보는 게 우선이니까 다연이 몫까지 더해서 준비한다.
“소스는 간장 베이스에 고추냉이를 섞어주면 됩니다!”
“그럼 다연이는 매운 걸 못 먹으니까 고추냉이가 들어가 있는 거랑 없는 거, 두 개 준비할게.”
“오.. 역시 형님입니다!”
“마찌!”
옆에 있던 다연이는 뭐가 맞는 건지도 잘 모르면서 밥돌이를 따라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는 얼른 간장 소스 두 개를 준비해서 내놓는다.
“내 젓가락!”
그 사이에 다연이는 다연이 전용 젓가락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런 다음 서툰 젓가락질로 회 한 점을 겨우 집어 올린다.
“오··· 내가 해써.”
“잘했네.”
그리고 다연이는 회를 한참 노려보다가 나한테 젓가락을 내밀었다.
“오빠 먼저 먹어. 이거 만든다고 힘들어짜나.”
별 건 아니라서 힘들진 않았지만 다연이가 주는데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절대.
“귀여워어···.”
옆에서 지켜보던 예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입을 틀어막고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연아, 언니도 그렇게 주면 안 돼?”
“음··· 원래는 안 되는데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해줄게!”
“고마워!”
“한 번만 해주는 거야.”
“응!”
다연이가 예나에게 회를 건네주는 동안 나는 입 안에 있는 회의 맛을 느낀다.
입에 넣는 순간 녹아드는 것 같다. 그만큼 부드럽고 맛도 좋다. 회가 살짝 얼어있었기 때문에 샤베트를 먹는 것 같은 식감이 입 안을 맴돈다.
나는 참치 회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이 맛을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비교 대상이 없더라도 충분히 맛있었다. 당장이라도 한 점 더 집어 먹고 싶은, 그런 맛이다.
“마시따!”
어느 새 회를 먹은 다연이가 외쳤다.
처음 했던 말과 달리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우와! 진짜 맛있네요!”
“진짜 맛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맛있는 회를 먹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밥돌이도 밝은 얼굴로 말했다.
나 역시도 해산물을 먹어볼 기회는 많이 없었다. 이 근처가 바다도 아니었고 맛있는 해산물은 더 찾기 힘드니까.
그렇게 잠시 맛을 음미하던 다연이가 밥돌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밥도리는 왜 우리 식당에 와써요? 밥 머그러?”
다연이 말을 듣자마자 밥돌이가 놀란 눈으로 대답한다.
“아, 맞다! 잊어버리고 있었네. 고마워, 다연아.”
“흠! 나는 고마운 거야!”
칭찬에 좋아하고 있는 다연이를 내버려두고 밥돌이가 나에게 말한다.
“저 밥 먹으러 온 거 맞아요! 다연이 아니었으면 주문하는 것도 잊어버릴 뻔 했네요!”
그 말을 들은 다연이는 또 뭔가가 떠올랐는지 밥돌이를 툭툭 건드렸다.
“그런데 밥도리는 밥 머겄자나요? 나, 밥도리가 방송하는 거 쪼금 봐써.”
“아까 전에 방송하면서 밥 먹긴 했는데 형님이 해주신 걸 먹고 싶어서 왔지!”
“오···! 역시!”
“방송할 때도 맛있게 먹긴 했는데 형님이 해주신 그 된장찌개 맛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왔어요! 방송 끝나고 누웠는데도 계속 생각이 나서 그냥 왔습니다. 점심 저녁 상관 안 하고요.”
지금은 사실 밥을 먹기엔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바로 왔다는 건 생각보다 내 음식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다연이는 나를 보며 아까처럼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고 밥돌이는 다연이의 행동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밥돌이의 말을 듣던 중, 나는 뭔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밥돌이에게 된장찌개 말고 다른 걸 주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할머니께서도 저녁을 드시러 오신다고 했으니 둘 모두가 좋아할 음식을 해주고 싶다.
“꼭 된장찌개여야 하는 거야?”
“된장찌개면 좋긴 하지만 형님이 말씀하시는 걸 보니 다른 음식이 있나 보네요! 그러면 그것도 좋습니다!”
나는 우선 밥돌이에게 언질을 해주기로 했다.
“회랑 같이 굴이 왔는데.”
“굴!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무슨 음식을 하실 거에요?”
메뉴에 대해서는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나름 열심히 생각했다. 어떤 음식을 해야 할머니가 좋아하실지, 그리고 밥돌이도 만족할지에 대해서.
나름의 결론을 내린 건 이거였다.
“굴밥. 어때?”
나름 열심히 고민한다고 했던 건데 딱히 다른 건 떠오르지 않았다.
굴전도 있었지만 저녁 식사로 대접하기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할 수 있는 거고.
굴밥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내 말을 들은 밥돌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덩달아 다연이도 박수를 치며 말한다.
“나도 조아! 마싯을 것 같아.”
“아까 다연이가 맛없는 냄새 난다고 했던 건데?”
“음.. 그래도 오빠가 하면 맛있을 것 같아. 마찌?”
다연이의 말에 더 자신감이 생긴다.
“맞아.”
메뉴가 정해지고 난 뒤, 우리는 더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요리를 하기 위해 움직였고 예나는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움직인다.
재료는 식당에 있는 걸 위주로 쓰려고 했지만 꼭 넣고 싶은 재료가 있었다. 바로 콩나물이었는데 굴밥과 양념장만으로 먹는 음식이니 아삭한 식감을 넣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콩나물 정도는 할머니도 먹기 불편하지 않으니 괜찮을 것 같다.
나는 그 동안 쌀을 불려 놓는다. 굴밥을 위해선 미리 쌀을 불려 놔야했기 때문에 그런 잡다한 준비들은 미리 마무리한다.
“와··· 너무 기대돼요. 굴밥이라니··· 저 혼자였으면 굴밥 먹을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 오빠가 조금 대단해. 그러니까 밥도리가 마싯는 밥 먹고 싶으면 우리 오빠한테 말하면 돼요.”
“그래, 그 말이 맞아!”
내가 요리를 할 동안 다연이는 밥돌이와 같이 놀고 있으니 더 좋다. 둘이 놀고 있으면 안심이 됐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와중에 다시 익숙한 얼굴이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어..?”
처음엔 예나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뭐해?”
식당으로 온 사람은 우리에게 회와 굴을 주고 가셨던 할머니였다.
조금 더 늦을 줄 알았는데.
나 대신 다연이가 할머니께 대답했다.
“굴이랑 가치 먹는 밥이요!”
“굴..?”
“네!”
“쪼그만 놈이.. 대답 한 번 잘하네.”
투덜거리듯 말한 다음 자리에 앉는다.
다연이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
“나는 마리에요··· 안 쪼그매요. 왜냐하면 밥을 많이 먹었거든요!”
다연이는 할머니에게도 낯설어하지 않고 잘 대답한다.
옆에 내가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할머니가 오셔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오빠가 밥 많이 먹으면 키가 큰다고 해써찌요. 그리고 예뻐진다고도 해써찌.”
다연이는 그 말을 떠올리듯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런 다연이를 보고 있던 할머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평소처럼 까칠한 말투였고 고개도 휙 돌렸지만 그 말만은 진심인 것 같다.
“흠.. 예쁘긴 하네.”
아무것도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