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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린 참새가 통통 뛰어간다. 그런 와중에 고양이는 다연이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옆에서 뛰어다니던 참새는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뻗고 있는 다연이의 손끝에 고양이의 털이 닿는다. 부드럽다.
“그릉..”
다연이가 고양이를 쓰다듬자 고양이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몸을 더 부빈다.
오빠가 다가갈 때마다 도망갔기 때문에 낯가림이 심한 고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귀엽고,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다. 아니면 다연이만 좋아하는 고양이거나.
그러나 지금 다연이에겐 고양이도 중요했지만 참새도 중요하다. 지금 참새는 약간 토라져보였기 때문에 참새와 이야기해야만 했다.
“참새야···”
작게 부르자 참새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실제로 참새가 토라졌기 때문에 고개를 돌린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다연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참새는 빠르게 주변을 살핀 다음 다연이 쪽으로 통통 뛰어온다.
그 때.
“야앙!”
고양이가 참새에게 달려들었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어떻게 막아볼 수도 없었다. 참새를 향해 달려가는 고양이.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다연이는 별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푸다닥.
다행히 위험을 감지한 참새가 재빠르게 날아가서 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다연이의 심장이 철렁했고, 고양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 발을 핥고 있을 뿐이었다.
"고양이..!"
그런 고양이를 다그쳤지만 고양이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케 하면 안 돼..! 참새도 친구란 마리야!"
그래도 고양이는 다연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듯 약간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발걸음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무겁다.
천천히 다가오던 고양이는 다연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으··· 다음에는 그러케 하면 안 돼. 귀여워서 한 번만 봐주는 거야."
다연이는 그렇게 말한 다음 이어서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그래도 고양이가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참새랑 친구가 된다면 좋을 텐데.
한참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고 있으니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당연히 오빠라는 걸 알고 있었다.
“추운데 왜 여기에 있어.”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
“고양이 만지고 이써. 이거 봐.”
그 말에 고양이도 고개를 들고 누구인지 확인한 다음 계속 엎어져서 다연이의 손길을 받고 있는다.
고양이는 지금 올라온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꽤 예전부터 봤지만 딱히 자기한테 말을 걸거나 쓰다듬어준 사람은 아니다.
그냥 가끔 손에 쥔 먹을 것들을 주는 사람 정도다.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귀엽네.”
고양이는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는 걸 처음 들어본다. 물론 저게 무슨 뜻인진 모르지만 저 사람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오빠는 이 고양이 알고 이찌?”
“응, 여기 근처에 있는 고양이잖아.”
“마자, 근데 오늘부터는 내 친구야. 참새랑 가치.”
다연이의 오빠는 생각했다. 고양이와 참새는 같이 있으면 안 되는 동물이 아닌가. 고양이는 참새를 사냥하니까.
그 사실을 설명해주려던 찰나 다연이가 입을 열었다.
“오빠, 우리 고양이 밥 주자.”
“밥 없는데.”
다연이의 오빠는 고양이를 만난 적은 많지만 밥을 챙겨준 적은 없었다.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고.
하지만 다연이가 밥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건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줄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그럼 밥 사서 고양이한테 주면 안 돼..?”
“음··· 돼. 그래도 돼. 그럼 밥 사러 가자.”
“오···! 응!”
그 때.
푸다닥.
참새가 다시 날아왔다.
걱정하던 상황이 다시 닥친 것이다. 보통 고양이라면 참새를 사냥감으로 여긴다.
그것도 저렇게 가까이 있는 참새라면 꽤 특별한 사냥감으로.
다연이의 오빠는 그런 사실을 아직 다연이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다연이의 표정을 보니 그 사실을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설명 해줄 필요가 있었다.
"다연아, 참새는 고양이랑 친구 못해."
"왜···?"
"고양이는 참새를 잡아 먹거든.."
"...!"
그 말을 들은 다연이가 놀란 얼굴로 오빠를 본다.
참새랑 고양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니.
다연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양이는 난간에 앉은 참새를 멍하니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다연이가 고양이에게 말했다.
“참새랑 싸우면 안 돼..!”
나름 단호한 목소리였고 엄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고양이는 약간 주눅든 몸짓을 했고 얌전히 그 자리에 앉는다.
그 때, 참새가 다시 날았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전과 달리 긴장이 됐다.
오빠에게 참새는 고양이의 사냥감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연이는 날아든 참새의 모습을 한참 눈으로 쫓았다.
자그마한 날개로 하늘을 가르던 참새가 어딘가로 편안하게 착지한다.
“오..! 오빠 말이 틀렸어..!”
다연이는 그 모습을 보고 감격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
여태까지 오빠와 있으면서 오빠가 한 말이 처음으로 틀렸다. 그 사실이 아쉽기도 하면서 기뻤다. 사실 기쁜 마음이 더 컸다. 왜냐하면 고양이와 참새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네.”
하늘을 날던 참새가 고양이의 머리 위에 앉았던 것이다.
위태로워 보였지만 고양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머리 위에 참새가 앉아있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도.
“우와.. 이제 참새랑 고양이는 친구인 거지?”
다연이가 고양이와 참새에게 물었지만 당연하게도 대답해주지는 않았다.
그냥 고양이는 옆으로 엎어질 뿐이었고 참새는 다시 날아서 고양이의 배 위에 앉았다. 둘 사이에 긴장감은 흐르지 않았다.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라기 보단 다연이 말처럼 그냥 친구 같다.
어떻게 다연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결과가 좋으니 좋은 거라 생각했다.
“신기하네.”
다연이 오빠는 그 장면이 진심으로 신기했다.
동시에 혹시 저번에 했던 생각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다연이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숲의 정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니며 드루이드거나.
“오.. 그러면 고양이랑 참새가 친구 됐으니까 우리는 빨리 고양이 밥 사러 가자. 지금 고양이 엄청 배고파.”
“....알겠어.”
다연이 말처럼 고양이는 많이 말랐기 때문에 서둘러 마트로 향했다.
***
"우와, 크리스마스다. 마찌?"
고양이 밥을 사러 가는 길에 다연이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벌써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는 가게들을 가리킨 거다. 지금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엔 조금 이른 때였는데 저 가게는 일찍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응, 아직 멀었긴 했는데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 맞아.”
“나는 알고 이써. 크리스마스에도 선물 또 받을 수 이따는 거..!”
“그래, 맞아. 똑똑하네.”
다연이가 이렇게 말하니 그 때가 오면 뭘 선물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나는 센스가 있는 편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다연이 생일 때도 힘들게 결정했던 건데 이번에는 뭘 줘야 할까.
그런 내 생각을 알고 있는 건지 다연이가 말했다.
“음.. 근데 나 선물 안 받아도 괜차나. 내 생일에 많이 받았잖아.”
또 저런 말을 들으니 안 사줄 수 없다.
“사줄게. 대신 어떤 건지는 말 안 해줄 거야.”
“우와..! 또 선물!”
아무래도 이번 선물은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어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제야 다른 아버지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고민을 매년하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고양이 밥을 사 온다.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작은 캔과 간식 몇 개를 사왔다. 참새 몫은 없었기에 아쉬워 했지만 일단은 고양이 밥만 사 온다. 참새 간식이라는 건 팔고 있지 않았으니까.
다시 집에 도착한 다연이는 크게 외치면서 옥상으로 올라간다.
“고양이! 밥 사 와써!”
옥상에 도착한 다연이는 마트에서 사온 고양이 밥을 들이 밀었다.
올라가는 길에 혹시라도 고양이가 참새를 잡아 먹어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옥상에 올라가는 순간 사라졌다.
“고양이랑 참새가 진짜 친해졌나봐···!”
다연이가 엎드려 있는 고양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양이는 옥상에 그대로 엎드려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런 고양이의 배 위에 참새가 같이 엎어져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들었지만 눈앞에 있는 장면을 못 본 척할 수 도 없었다.
그만큼 신기한 일이었고 다연이를 판타지의 존재로 의심케 할만한 장면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말했다.
“그러게···”
다연이가 고양이의 밥을 들고 다가가자 고양이는 그제야 눈을 뜬다. 아무래도 자고 있었던 것 같다.
고양이가 잠에서 깨자, 배 위에 올라가 있던 참새도 눈을 뜬다. 그리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고양이가 내 말 잘 들었어.”
“그래.”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 본다고 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다연이 말에 대답이나 잘 해주기로 했다.
“고양이 밥 먹자.”
“냥.”
고양이는 자기가 다연이의 말을 잘 들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당당하게 걸어나와서 밥을 먹기 시작한다.
“잘 먹네, 고양이.”
다연이는 그런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큰 공로를 세운 기사에게 작위를 내리는 국왕처럼 말했다.
“너는 이제 참새랑 가치 오빠 식당을 지키는 고양이야. 알게찌?”
“냐앙.”
고양이는 다연이의 말에 대답하듯 작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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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이제는 다연이를 어린이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이 거의 습관처럼 굳어져 있었다.
날이 지날수록 등원 길은 점점 추워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나름 괜찮다.
지금은 다연이와 같이 어린이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랑 가치 놀 거야.”
“뭐하고?”
“어··· 그건 나도 몰라.”
어린이집을 가는 중에도 평소 같은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에 시선이 닿는다. 건너편에 유치원 가방을 매고 있는 어린 아이였다.
“우와, 저 언니는 유치원에 다니나 봐.”
다연이가 그 아이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고 그 덕에 나는 중요한 뭔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아, 맞다.”
“뭐가 맞아?”
다연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전부터 준비했던 일이었는데 오늘이 발표를 하는 날이었다. 그 결과를 보려먼 지금 확인해야 한다.
“중요한 게 생각났어.”
그 말처럼 정말 중요한 일이었기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휴대폰을 꺼냈다.
“중요한 게 뭐야? 나도 말해죠.”
일방적인 내 말에 더 궁금해진 다연이가 묻는다.
“....유치원.”
“유치원..?”
“응, 다연이가 내년부터 다닐 유치원.”
유치원 모집에 신청을 해뒀었는데 오늘이 발표 날이었다.
“유치원···!”
다연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고, 나는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채로 결과 발표를 확인한다.
일단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