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181 --------------
“오..!”
밥돌이가 문을 열자마자 다연이는 낮은 탄성을 내질렀다.
“우리 가족 말고 여기 들어오는 건 다연이랑 형님이 처음이에요.”
“응.”
그런 것 치곤 딱히 놀랄 구석은 없었다.
방은 영상을 찍는 장비들이 가득했고 모니터가 있었으며 그 앞에서 먹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럼 밥도리는 여기에 앉아서 밥을 먹는 거에요?”
“응, 먹을 때는 여기에서 먹고, 요리할 때는 저기에서 하고.”
밥돌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이것과 비슷한 테이블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밥돌이의 영상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지만 다연이가 보던 걸 같이 본 적은 많았다. 다연이가 강제로 보게 했으니 그 시간들을 합하면 꽤 많을 거다.
어쨌든 그 영상 속 밥돌이는 크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시청자와 소통하면서 쌓아둔 음식을 먹는 일과 마찬가지로 소통하며 간단하게 요리를 하면서 먹는 일. 요리라고 해도 복잡한 건 아니고 간단하게 굽거나 끓여서 먹는 게 전부였다.
나머지 하나는 요리와 먹는 것 이외에 게임을 하거나 다른 놀이들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건 방송이 나름 다른 방향으로도 나아가길 원하는 밥돌이의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우아..”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신기한 다연이는 여전히 방에 있는 물건들을 툭툭 건드리면서 작게 탄성을 질렀다.
물론 물건들을 만질 때마다 밥돌이에게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밥도리, 이거 만져도 돼요?”
“응, 전부 다 만져도 돼. 망가뜨리지만 않으면.”
“오··· 안 망가뜨릴 거야. 그냥 이렇게 손가락으로만 만질 거에요.”
“그래, 그 정도는 괜찮아.”
고개를 끄덕인 다연이는 검지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을 툭툭 찔러보고 있었다. 영상에서만 보던 것들을 이렇게 눈으로 보게 되니 많이 신기한 것 같다.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물건들을 건드리고 있는 다연이를 보고 있을 때, 밥돌이가 내게 말했다.
“아, 그거 기억나세요? 저번 다연이 생일 때 제가 도와드렸었잖아요.”
“응.”
“그 때 찍었던 영상 말이에요.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어요.”
“진짜?”
“네, 브이로그 같기도 하면서 요리 방송 같다면서요. 제가 한 음식을 아이들이게 준다는 거랑 평소의 영상과 조금 색달랐던게 잘 먹혔던 것 같아요.”
밥돌이의 말에 방을 둘러보고 있던 다연이가 고개를 휙 돌린다.
“그 사람들이 우리 오빠도 요리 잘한다고 해쬬?”
“응, 맞아. 사람들이 그랬어.”
“그러치!”
다연이는 그렇게 말한 다음, 다시 방을 둘러본다.
“큭큭, 다연이 너무 귀엽네요.”
“응.”
“그래서 앞으로도 가끔 이렇게 해볼까 해요. 형님 요리하시는 것도 도와드리고 다연이도 맛있는 거 먹고. 물론 대부분은 저희 집에서 알아서 찍겠지만 가끔만이요. 그렇게 해도 될까요?”
그러니까 밥돌이는 다연이 생일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 식당에서 가끔 영상을 찍어도 되냐고 묻는 거였다. 물론 메뉴는 다연이가 좋아하는 걸로.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손님들이 적게 오는 때에 하면 되니까 나도 좋았다. 더군다나 다연이도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는 거니까 더 좋다.
“그래, 그렇게 해도 돼.”
“오..! 감사합니다! 영상을 그렇게 찍고 다연이 반응은 언급만 해줄 거에요. 잘 먹었다, 이런 식으로요.”
“그래.”
사실 나보단 다연이가 더 좋아할만한 이야기였다.
밥돌이가 전보다 더 자주 놀러올 거고 맛있는 걸 마음껏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구석에서 밥돌이가 식사를 하는 테이블을 툭 건드리고 있던 다연이는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미소 지으면서 이 쪽을 바라본다.
“우와.. 그러면 밥도리가 오빠 식당에 더 많이 오는 거네? 마싯는 거도 하고..?”
“응, 그럴 거야.”
“우오..!”
그 말을 들은 다연이가 박수를 쳤다. 그런 다연이의 반응에 멍하니 미소 짓고 있던 밥돌이는 뭔가가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아, 고등어 사진 올릴 거라고 했었는데. 깜빡했네요.”
“고등어 사진? 아까 우리 오빠가 해준 거 말하는 거에요?”
“응, 맞아. 시청자들한테도 그거 보여주려고.”
“오.. 조아 조아. 그거 보여주면 조아할 거에요.”
“큭큭, 그래. 좋아할 거야.”
가만히 지켜보던 다연이는 그 사진을 어디에 올리는 거냐고 물었다. 혹시 다연이같은 일기장이 있냐는 말과 함께.
“음.. 비슷해. 일기장이라면.. 일기장이지.”
“우와.. 그러면 밥도리 일기장에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는 거네요?”
“맞아, 내 방송 보는 사람들. 다연이처럼.”
“오··· 나처러엄···”
혼자 감탄하던 다연이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근데 나보다 엄청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거자나..! 우와!”
“음.. 그것도 맞지!”
“그러면 밥도리 일기장에 나도 가치 있었다고 적어주세요!”
잠깐 고민하던 밥돌이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시청자들이 다연이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이랑 저번에 생일이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와!”
순식간에 글을 완성한 밥돌이가 다연이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럼 이렇게 쓸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다연이는 밥돌이가 내민 휴대폰을 붙잡고 한참 살핀 뒤, 멍한 얼굴로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나 이거 무슨 글자인지 모르게써. 대신 읽어줘.”
“알겠어.”
그 말을 들은 밥돌이는 옆에서 큭큭 거리며 웃었고 다연이는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밥돌이가 쓴 글을 끝까지 읽어주고 나서야 다연이는 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조아! 그렇게 올려도 돼요!”
“알겠어, 그러면 이렇게 올릴게.”
“네!”
다연이를 언급한 일기장이 올라갔다는 확인하고 나서야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조아.”
다연이는 그 뒤로도 밥돌이네 방을 한참 관찰하고 난 다음에야 길었던 탐방이 끝났다.
별 건 아니었지만 다연이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밥도리 친구들이 나 귀엽다고 해써."
"그래."
밥돌이가 올린 일기장에 다연이가 귀엽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했다.
밥돌이는 생각보다 더 유명해서 일기장을 올리지미자 답글이 바로 달렸다. 다행히 다연이도 만족스러워 할만한 답글이었고.
밥돌이네 집에서 충분히 놀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할 일도 끝났고 다연이도 만족할 만큼 많이 놀았으니까.
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밥돌이 아버지가 말했다.
“다연아, 다음에 또 와라!”
“네! 아저씨도 우리 식당에 오세요! 우리 오빠는 요리 잘하니까!”
“그래!”
호쾌한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밥도리 집 엄청 재미써따. 맛있는 것도 엄청 많이 줬잖아!”
“맞아.”
집으로 가는 길에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다.
다연이 말대로 내 양손에는 밥돌이네 집에서 가져온 짐이 한가득이었다.
가기 전에 약속했던 고등어와 김치. 김치는 식사 중에 다연이가 맛있다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준 거다. 그것도 가득 들어있어서 꽤 무겁다.
“그거 엄청 무거운 거지?”
“아니, 별로 안 무거워.”
사실 많이 무겁다. 그만큼 넉넉하게 줬기 때문이다.
그런 나 말고 다연이의 손에도 밥돌이네 집에서 가져온 선물이 있었다.
“나는 이제 인형이가 엄청 많은 사람이야. 인형이 또 생겨따.”
“그래.”
바로 밥돌이네 아버지가 준 인형이었다.
사실 거기에 있던 인형 전부를 주려고 했지만 내가 괜찮다고 한참을 설득한 후에야 인형 하나만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인형을 전부 가져갔으면 좋겠나봐.”
“그래, 그런 가봐.”
“근데 나는 인형이 엄청 많아도 오빠가 준 게 제일 좋아. 그건 수바기가 변신한 거잖아!”
“그래.”
그래도 내가 준게 제일 좋다니 조금 뿌듯해진다.
“빨리 가자. 추워.”
“알겠어.”
다연이 말을 따라서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
밥돌이네 집에 갔다 온지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있어서 지금은 겨울의 문 앞에 서 있는 상태였다.
쌀쌀하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한 날씨. 어른들에게는 그랬지만 아직 6살인 다연이에게는 조금 추운 날이다.
“으···”
아주 이른 아침. 오늘은 주말이라서 오빠는 늦잠을 자고 있다.
사실 그렇게 이른 아침은 아니었지만 다연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른 아침인 거다.
진짠지 아닌지는 크게 상관없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써.”
어린이집에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된다고 했는데 지금쯤이면 일찍 일어난 걸로 해도 된다.
잠시 하품을 하던 다연이는 뭘 해야할지 고민한 뒤 옥상에 올라가기로 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오랜만에 옥상 구경을 하고 싶다.
오빠가 줬던 후드집업을 입은 다음 옥상으로 향했다. 요즘 들어 조금씩 추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때 겉옷은 필수였다. 다연이는 옷을 더 단단히 껴입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오···”
싸늘하다. 차가운 바람이 긴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간다.
“추추추워···”
생각보다 더 춥다. 추위 때문에 이가 딱딱거리지만 다연이는 내려가지 않았다.
지금은 여기 있고 싶다. 게다가 계속해서 머무르고 있으니 별로 안 추운 것 같기도 하다.
“따뜻해.”
바람이 불지 않으니 오히려 햇살 때문에 따뜻하다.
체감 온도가 한순간에 달라졌지만 다연이는 그저 지금이 따뜻하다는 게 기분 좋을 뿐이다.
“으···”
몸을 부르르 떨고 나서 옥상에 오빠가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아 풍경을 감상한다.
아직 키가 작아서 하늘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 거기다 키는 점점 자라고 있었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나는 세월을 낚고 이써.”
티비에서 누군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라서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다. 그냥 말이 멋있었다. 비록 세월이 뭔지도 모르고 낚는다는 것도 뭔지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그렇게 눈을 감고 세월을 낚는 중에 낯선 소리가 들린다.
투둑.
뭔가가 옥상에 올라왔다. 오빠라고 하기엔 발소리가 너무 가볍고 참새라고 하기엔 무겁다.
누구일지 예상도 가지 않았기에 얼른 눈을 떠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살핀다.
“야옹.”
눈앞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검은 바탕에 하얀 무늬가 있는 고양이다.
덩치는 보통의 고양이보다 많이 말랐는데 다연이는 이 고양이를 예전에 본 기억이 있었다.
“고양이..!”
종종 식당 근처를 배회하던 고양이였는데 오빠가 갈 때면 늘 도망가곤 했다.
아직 다연이가 다가간 적은 없었기 때문에 잘은 모른다.
“이리 와..!”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자 고양이가 천천히 다가온다. 여전히 코를 움찔거리며 경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푸다닥.
작은 날개짓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참새가 앉아있었다.
“차.. 참새..!”
고양이도 동시에 참새를 본다. 그리고 다연이는 뻗었던 손을 거뒀다.
마치 참새가 다연이는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 아니야. 고양이도 친구고 참새도 친구야..!”
고양이와 놀고 있는 모습에 참새가 혹시 상처 받지 않았을까, 그렇게 말한 거였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참새가.
“짹.”
휙하고 고개를 돌렸다.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