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02화 (102/181)

-------------- 102/181 --------------

통화를 엿들은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다연이에겐 종이 물고기와 먹을 수 있는 진짜 물고기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진짜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게 맛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다연이 같은 아이들은 그랬다.

실제로 고등어 구이도 먹어봤으니까.

그런데 물고기라니. 갑자기 회 뜰 줄 아냐는 물음에 당황하긴 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회는 왜요?”

“아, 저희 아버지가 어디서 물고기를 얻어왔다는데 회를 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 말을 들었지만 여전히 이해되진 않았다.

회 뜰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물고기를 왜 얻어온 거며, 물고기를 우연히 얻는 상황은 또 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물으니 밥돌이가 대답한다.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밥돌이가 호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 역시 회를 뜰 수 있는 방법은 모른다. 구이용으로 손질하는 방법은 아주 조금 알고 있지만.

그것도 할머니의 친구분 중에 바닷마을 출신인 분이 계셔서 그 분이 가져온 물고기 때문에 조금 배우게 됐을 뿐이다.

“회는 모르지만 구이용으로 손질은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무슨 고기인지는 아세요?”

“네, 고등어라던데..”

물고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도 고등어가 회 뜨기에 좋은 물고기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구웠을 때 맛있는 물고기라는 것도.

“고등어라면 회보다는 구워 먹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 가요? 사실.. 저희 가족이 물고기에 대해선 잘 몰라서요. 먹방을 하고 있는 저도 해산물을 먹을 땐 그냥 손질된 걸 구워먹거나 사 먹는 게 전부라서··· 그래서 형님께 전화드린 거고요. 혹시 뭔가 알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요.”

밥돌이의 말을 들어보니 왜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먹을 것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밥돌이라고 해도 조리하는데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법이니까.

“도와주시면 고등어 몇 마리 드리겠습니다. 이거 꽤 많거든요. 그리고 신선해요. 뭐가 신선한 물고기인지는 잘 모르지만 다년 간의 먹방 경력으로 봤을 때는 좋은 거 같아요.”

어차피 오늘은 식당을 열지 않는 날이다. 그래서 이렇게 한량처럼 집에 있는 거고.

다연이도 지루해서 영상을 보고 있는 중이니까 밥돌이를 도와준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손질하는 법도 모르세요?”

“어··· 네. 죄송합니다.. 귀찮게 하려던 건 아닌데..”

내 목소리가 조금 날카롭게 들린 모양이다. 그러려고 그런 건 당연히 아니었는데.

오히려 도울 수 있게 돼서 좋았다.

여태까지 밥돌이에게 도움만 받아 왔으니까. 선물도 받았고 요리를 도와주기도 했다. 나와 친해서 그랬다기 보단 다연이와 친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그게 그거니까.

“아닙니다. 도와드릴게요. 저도 조금만 알고 있어서 잘 못하지만요.”

“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형님 없으면 그냥 처리하기 힘든 물고기일 뿐이니까요!”

막상 도와준다고 하니 조금 긴장된다. 물론 할머니 친구분께 배웠고 비교적 간단하지만 자주했던 일은 아니니까.

“그럼 언제 오실 거에요?”

밥돌이가 그렇게 물으니 옆에 있던 다연이가 나에게 속삭인다.

“지금 바로 가겠다고 해..!”

이렇게 귀가 밝았나.

나는 다연이 말대로 이야기했다. 지금 바로 가겠다고.

“알겠습니다! 그럼 점심도 먹고 가실 수 있게 준비해 놓을게요.”

“네.”

그렇게 대답하고 난 뒤, 뭔가 궁금한 게 떠올라서 밥돌이를 다시 불렀다.

“네?”

“그런데.. 저를 왜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죠?”

아까 전처럼 조금 딱딱하게 들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만한 내용었고 어투였으니까. 어투는 내가 고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최대한 나긋하게 말했다.

그렇게 들렸으면 좋겠다.

“아.. 형님 맞으시잖아요! 그리고 저는 다연이 친군데 자꾸 사장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거고요.”

옆에 있던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하는 말이 전부 들리는 모양이다.

“마자. 내 친구.”

그 말에 나도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계속 그렇게 불러도 된다는 말이죠?”

“네.”

“좋아요! 그러면 편하게 오세요!”

“네.”

전화가 끊겼다. 뜻 밖의 말이었고 예상 외의 초대였다.

그래도 당황스럽거나 기분 나쁘지는 않다. 특히 그게 밥돌이의 초대라면 기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뭐하러 가는 거야?”

옆에 있던 다연이가 물었다. 이야기를 엿들었을 텐데도 눈을 반짝이며 묻고 있다.

나에게 대답을 듣고 싶은 모양이다.

“다연이 저번에 고등어 먹어 봤지?”

“응.”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다연이에게 많고, 다양한 음식을 먹이는 게 내 목표기 때문에 이미 물고기를 준 적이 있었다. 다연이도 아무런 부담없이 먹었다.

“밥돌이 아저씨가 그거 많이 있대.”

“응, 밥도리는 못해서 오빠한테 해달라고 하는 거지?”

“맞아.”

그러더니 다연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밥도리보다 오빠가 더 요리 잘하는 거야. 맞지?”

“음··· 그건 잘 모르겠다. 근데 밥돌이한테는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응, 나도 알고 이써. 슬프잖아.”

“그래.”

사실 딱히 요리라고 할만한 것도 없지만.

간단하게 손질하고 굽는 게 전부일 거지만 다연이에겐 그것도 대단한 거다.

밥돌이네 집에서 요리를 하기로 했으니 얼른 준비하고 밖으로 향했다.

“오···”

늦가을이라 쌀쌀하게 부는 바람을 헤치고 도착한 밥돌이의 집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밥돌이니 부모님이 계셨고 밥돌이 남매가 있었다.

"안뇽하세요."

“그래! 네가 다연이구나!”

가장 먼저 밥돌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우리를 반겼다.

사실 한 눈에 봐도 밥돌이의 아버지로 보일 만큼 많이 닮았다. 성격도 그렇고.

“어···”

많이 활발해진 다연이도 아버지의 행동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뒷걸음질을 친다.

“아하하! 괜찮아. 나는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밥돌이 아부지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밥돌이 아부지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방으로 사라진다.

“오··· 나는 처음에 밥도리인줄 아라써.”

“그래, 비슷하시네.”

그래도 부담스러웠던 건 아니었는지 그 자리에서 신기한 듯 바라본다. 그리고 밥돌이네 집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핀다.

생각해보니 다연이는 다른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거의 없었다. 해봐야 혜원이네 집에 잠깐 갔던 게 전부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돌이켜보니 그랬다. 내가 식당을 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더 많이 놀러 오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식당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그렇게 잠깐 서 있으니 밥돌이의 아버지가 뭔가를 잔뜩 들고 다시 나왔다.

“자! 이거 다 너 가져라!”

그리고 뭔가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우오···”

인형이다. 저번에 다연이가 선물 받았던 하얀 밥 인형이 많았고 종종 색다른 인형도 하나씩 끼어 있다.

“아부지, 그거 시청자 분들한테 선물 받은 건데..”

“그래? 그럼 그거 빼고 다 너 가져!”

아부지의 성격은 밥돌이보다 더 화끈하신 것 같다.

“진짜요? 진짜 이거 다 내꺼 해도 돼요?”

아버지의 말에 다연이는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많은 인형이다. 그것도 너무 많은 인형. 다 가져간다면 방이 인형으로 가득 찰 거 같다.

“그래! 인형 좋아한다며! 다 가져가!”

“오···.”

나는 다연이에게 집에 인형이 있으니 가져가지 말고 여기에서만 가지고 놀라고 간신히 설득한 다음에야 주방으로 올 수 있었다.

“이거 봐라! 우리 민혜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거다!”

“오··· 신기해요오···”

거실에서는 다연이와 밥돌이의 아버지가 놀고 있는 중이다.

밥돌이의 동생인 민혜도 뒤에서 다연이를 지켜보고 있다. 솔직히 밥돌이의 집에 와서 다연이가 재밌게 놀거라곤 생각 안 했었다.

다연이 또래 친구가 없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다연이와 잘 놀아주시니 안심이 됐다. 오히려 밥돌이 아버지가 더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사이 나는 요리에 집중하기로 한다.

“고등어는 여기 있습니다.”

“오..”

밥돌이의 말대로 고등어가 꽤 많다. 10마리 정도. 그것도 꽤 튼실하다.

어디서 이런 걸 10마리나 가지고 왔나 싶었지만 다연이와 놀아줬던 모습을 떠올려보니 어디에서라도 구해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호쾌하고 손도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괜히 무리한 부탁하는 건 아니죠..? 형님도 분식집 하셔서 이런 건 잘 모르실 텐데.”

“괜찮습니다. 물고기 손질하는 건 우연히 알게 된 거라서 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밥돌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고등어 해체를 시작했다.

살짝 움직이고 있는 고등어. 본격적으로 손질하기 전, 고개를 들어서 다연이가 있는 쪽으로 바라본다.

“오··· 초콜릿..!”

“그래! 그거도 먹어라!”

여전히 잘 놀고 있다. 아무래도 다연이가 이 물고기의 모습을 본다면 충격을 받을 테니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겠다.

물고기 손질을 처음 배운 건 내가 할머니네 분식집에서 일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할머니 친구 분이 바닷마을 출신이셨고, 거의 반강제로 물고기 손질법에 대해 알려줬다. 그 때 나는 모든 것에 별 다른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만들어 진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우리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그런 생각을 하니 손질하는 게 조금 재밌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와.. 진짜 잘 하시네요··· 매일 하시던 분 같아요.”

옆에서 보고 있던 밥돌이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뒤로는 언제 왔는지 밥돌이의 동생인 민혜도 지켜보고 있다.

“진짜··· 아저씨 횟집도 하셨어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라서 놀리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민혜의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진짜 놀라는 눈치다.

오랜만에 한 것 치고는 잘 됐다. 분식집 사장이라는 별명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기에 민혜가 더 놀랐던 것 같다.

“진짜 잘 하신다.”

“그러게.”

만약 처음 밥돌이의 말대로 회를 뜨는 거면 힘들었을 테지만 구이용 손질을 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래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우와, 진짜 잘 하네!”

모르는 사이 밥돌이의 아버지가 슬쩍 보고선 말했다.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해도 미리 손질된 물고기를 사는 게 더 좋은 방법이긴 하다. 훨씬 간단하고 더 깔끔할 테니까.

빠르게 고등어 손질을 마치고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 그리고 그 위에 소금을 친 다음, 옆에 놓아둔다.

“이제 굽기만 하면 되나요?”

“네.”

낯설고 조금 긴장 되기도 했던 고등어 손질은 무사히 끝났다.

나름 깔끔하게 잘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다음부터는 꼭 손질된 물고기를 사라고 말했다. 왠지 이번에는 고생을 사서한 느낌이다.

“네,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아버지한테 꼭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고등어를 굽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제부터는 쉽다. 내가 늘 하던 거니까.

프라이팬 위에 올라간 것이 고등어라는 게 다르지만 물고기를 손질하는 것보다야 훨씬 쉬운 편이다.

나는 이번에도 습관처럼 다연이가 있는 거실로 고개를 돌려서 잘 있는지 확인한다. 그러자 다연이와 밥돌이 아버지의 대화가 들린다.

“....엄청 잘 하던데?”

“네! 우리 오빠는 뭐든 잘해요. 요리도 잘 하고요.. 또 글자도 잘 읽어요.”

“요리는 우리 아들도 잘 하지!”

“근데.. 우리 오빠가 더 잘해요!”

“그래!”

“네!”

여전히 호쾌한 목소리라서 다행이다. 나는 서둘러 프라이팬에 불을 켠다.

“오.. 이제 본격적으로 굽는 거군요.”

“신기해라.”

밥돌이 남매의 시선과 기대를 받으면서 프라이팬 위로 고등어를 올린다.

너만 보여주는 거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