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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음식들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 우리 식당에는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던 냄새다.
메뉴판에도 없고 분식집이라는 이름과는 조금 다른 음식들.
그것들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식당 문이 열린다. 다연이가 왔다.
“최고다아..”
안으로 들어온 다온이는 음식을 만든 내가 뿌듯해질 만큼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로 맛있는 냄새가 나.”
“그래.”
나도 혼잣말을 하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음식 구경을 끝낸 다연이가 식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주변을 살피면서 저벅저벅 걸음을 옮긴다. 식당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낀 모양이다. 다연이는 잠시 걷다가 곧 걸음을 멈춘다.
익숙하고도 낯선 누군가를 보고 걸음을 멈췄던 거다.
“밥도리···!”
밥돌이는 다연이에게 늦을 수도 있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제때 축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다연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것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밥도리는 왜 여기에 있어요?”
“다연이가 오라고 했으니까!”
밥돌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하는 다연이에게 밝게 말했다.
“늦게 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사실 다연이한테 거짓말한 거야! 다연이가 오라고 할 때부터 시간을 비워뒀지!”
“오..!”
다연이는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다. 뭐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안에서 턱 막힌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단어를 찾던 다연이가 간신히 말했다.
“거짓말은··· 나쁜 건데..!”
“그래! 나는 나쁜 사람이야!”
밥돌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쁜 사람 아니야!”
“그래!”
한참 그러고 있던 다연이는 조금 진정이 된 다음에야 의자에 앉았다.
밥돌이가 다연이와 놀아주는 걸 볼 때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밥돌이가 다연이와 맞는 눈높이로 놀아줘서 그런 건가.
“다연이 재밌네요.”
큭큭 웃으면서 주방으로 돌아온 밥돌이는 완성된 음식을 마저 가지고 나간다.
이제 요리는 전부 끝났기 때문에 밥돌이는 앞치마도 놓아뒀다.
다른 아이들이 올 때까지 나는 주방을 지키면서 다연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 엄청 마싯는 음식들이 너무 많아.. 너무 많아서.. 너무 좋다아.”
다연이도 이렇게 많고 다양한 음식들이 테이블 위로 늘어져 있는 건 처음 볼 거다. 나조차도 몇 번 못 봤던 것 같으니까.
물론 다연이와 나는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봐서는 안 되겠지만 나에게도 흔하지는 않은 풍경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음식을 보고 있던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오빠.”
“응.”
“그런데··· 나 지금 이거 먹어도 돼?”
반짝이는 눈만큼이나 음식을 빨리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먹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기다리는 법도 알 필요가 있었고.
“다른 친구들 올 때까지 기다리자.”
“음.. 알겠어. 내가 먼저 먹으면 친구들이 슬퍼할 거니까.”
“그래.”
슬퍼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대강 비슷한 의미였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아이들이 도착했다.
아이들은 거의 동시에 식당 문을 열었다. 들어온 아이는 민재와 하민이였다. 쌍둥이 동생인 지민이는 뒤에 병풍처럼 서 있을 뿐이다.
“안뇽!”
“안녕.”
친구들을 보는 다연이의 눈빛에는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드디어 음식을 먹게 되다는 기대감도 있는 것 같다.
“빨리 와! 밥 먹자.”
하지만 아이들은 밥을 먹는 것보다 먼저 손에 쥔 것들을 내밀었다.
“이거 선물.”
“오..! 선물!”
선물이었다. 아이들은 순서대로 선물을 테이블 위에 놓았고 차례대로 의자에 가서 앉는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선 아이처럼 설레는 얼굴이었지만 그와 반대로 행동은 차분했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밥돌이가 나에게 살며시 말한다.
“요즘에는 저런 선물이 유행인가요..? 저는 너무 어른이라서 그런지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다연이가 좋다면 뭐···”
나도 밥돌이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테이블 위에 놓아둔 선물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충분했으니까.
저건 조금.. 이상하다.
“수바기다!”
하지만 다연이는 아이들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밝은 얼굴로 그것들을 만지작거린다.
테이블 위에 놓인 건 과일들이었다. 일반적인 수박에 비해 크기가 작은 애플 수박과 사과.
수박은 민재가 가져온 거고 사과는 하민이라는 아이가 가지고 온 거다. 심지어 사과에는 저번에 다연이가 종이 물고기에 붙여 놓았던 장난감 눈까지 붙어있다.
도대체 저게 뭔지 모르겠다.
"수바기랑 사과 맞지? 과일 수호대에 나오는..!"
"응, 맞아. 사과는 내가 가져왔어."
"오···"
아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니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저 과일들이 뭘 뜻하는지.
그리고 왜 생일 선물로 저걸 가지고 왔는지도. 다연이가 즐겨보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을 흉내낸 거였다.
그 때 식당 문이 다시 열린다.
"후우... 안녕."
"안뇽!"
"아···"
민우였다. 저번에 혼자서 식당에 찾아온 8살 아이.
민우의 손에도 뭔가가 쥐어져 있었다.
"설마.."
그 모습을 본 밥돌이가 작게 말했다.
그 설마가 맞는 것 같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뭘 뜻하는 건지 알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던 민우가 손에 쥔 것을 테이블 위에 턱,하고 올렸다.
쿵.
제법 무게가 나가는 것이었기에 옅은 진동이 울린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그 곳으로 쏠렸고 나와 밥돌이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뭐야..?"
다연이의 조심스런 물음에 민우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고기!"
"고기..?"
"응!"
고기였다. 그것도 삼겹살.
꽤 두툼했는데 혹시 민우네 가게에서 가져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우네 집은 고깃집을 운영하니까.
그런데 왜 삼겹살을 가지고 왔을까. 다연이 선물이라고 가져온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삼겹살을 선물로 주나?
“고기!”
다연이가 조금 싫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다연이가 기쁜 얼굴로 고기가 든 봉지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움찔거리고 있던 밥돌이는 눈치를 보다가 못 참겠다는 듯 민우에게 작게 묻는다.
“얘야.”
“나는 최민우에요.”
“그래, 민우야.”
그렇게 묻는 밥돌이의 표정이 조금 진지하다. 곧 밥돌이가 입을 연다.
“그런데 저 고기는 왜 가져온 거야?”
“다연이는 고기를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고기 가져왔어요.”
생각보다 더 간단한 이유였다. 고기를 좋아해서 고기를 사준 거라니.
사실 생각해보면 그게 맞긴 하다. 다연이는 먹는 걸 좋아하니까 고기를 사주는 것도 나쁘진 않는 것 같다.
“아..”
아이답지 않은 선물이긴 했지만 오히려 아이라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선물이다.
감탄하던 밥돌이가 말했다.
“멋있네.”
“네.”
민우도 단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다음은 바로 생일을 축하하고 식사를 시작한다. 케이크는 식사를 끝마친 다음에 먹기로 했다.
다연이가 선물 받은 고기와 과일들은 나중에 먹도록 놔두고 우선은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부터 먹는다.
“우와··· 고기가 엄청 많자나..?”
다연이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손을 뻗는다.
내 예상대로 다연이가 가장 먼저 집은 건 돼지갈비찜이었다. 전부터 다연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이니까.
“이거 내가 예전에 먹고 싶따고 했던 거..!”
“그래, 그거 맞아.”
“우아.. 오빠는 엄청 대단하다아···”
돼지갈비찜은 만들기 힘들었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고단함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다.
“휴, 다행이네요. 그쵸?”
“네.”
밥돌이도 나름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기가 만든 음식이 아닌데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나도 다연이를 따라 돼지갈비찜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까 조금 맛을 보긴 했지만 온전한 하나를 먹는 건 또 다르니까.
“오.”
뚝뚝 흐르는 양념을 완전히 걷어내고 고기를 한 입 베어문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그 사이에서 조금씩 스며나오는 양념. 맛있다. 내가 먹어도 맛있는데 다연이는 얼마나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연이가 있는 곳을 본다.
“우오···! 마시따!”
다연이는 양 손으로 고기 뼈를 붙잡은 채, 열심히 뜯어 먹고 있었다.
살코기만 있는 부분도 많은데 굳이 힘든 부위를 먹는다. 저 부분이 맛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건가.
“우아..”
계속해서 음식을 먹어치운다. 그런 다연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민우가 용기내서 말했다.
“다여나, 내꺼도 먹어.”
“고마워!”
민우가 먼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아이들이 뒤따라서 다연이에게 음식을 양보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히 내가 더 뿌듯해진다. 다연이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나도 좋다.
다연이는 딱히 별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계속 밥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아이들은 그런 다연이를 보면서 묘한 신경전을 펼쳤고.
“케이크도 먹어!”
“그래.”
열정적인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자 케이크가 당긴다. 물론 생일 축하 노래도 불렀고 초도 껐다. 그런 클리셰 같은 일들을 거치고 나서 우리는 케이크를 꺼냈다.
하얀 생크림이 빵 전체를 덮었고 그 위로 알록달록한 보기 좋은 과일들이 장식되어 있다.
맛은 먹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런 흔한 맛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다르다. 정석적인 케이크일수록 더 관심이 생기는 것 같다.
“우와.. 맛있겠다..”
“나도 먹고 시퍼..”
케이크를 멍하니 보고 있던 아이들에게 조각난 케이크를 나눠준다.
초가 꽂혀있던 자국이 있지만 그런 건 별로 상관없는 것 같았다.
“나, 이거 과일 먹을래!”
다연이가 그렇게 말해서 과일을 집어 먹여준다.
그걸 본 아이들도 자기 앞에 놓인 케이크 조각을 보다가 전처럼 과일 조각을 내밀었다.
“이거도 먹어.”
“음.. 아니야. 나는 하나 먹었으니까 그거는 너 먹어.”
다연이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쌍둥이 지민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작게 말했다.
“바보들. 너희들 때문에 다연이가 피곤해.”
다연이는 그 말을 못 들었는지 계속해서 케이크를 먹는다.
다연이의 생일 파티는 재밌었다. 내가 그랬다기 보단 생일 파티를 좋아하는 다연이를 보는 게 재밌었다.
포근한 식감의 케이크를 먹는 것도, 다른 친구들의 선물을 받는 것도 좋다. 마지막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은 후에야 음식과 다연이 위주의 생일 파티가 끝났다.
아이들이 선물한 과일이들은 과일 수호대가 아니라 작은 후식으로 바뀌었지만 다연이도 만족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안뇽! 내일 보쟈!”
“안녕.”
“밥도리도 안뇽!”
“안녕!”
요란한 작별 인사가 끝나고 식당에는 다시 둘만 남았다.
조금 있으면 다시 손님들이 오겠지만 아이들이 떠난 식당은 조용했다.
“재미써따.”
“다행이네.”
늘 버릇처럼 했던 말이지만 진심이었다. 다연이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후후, 정리하는 건 나도 도와줄게!”
“그래.”
당장 정리도 해야하지만 그 전에 다연이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 다연이가 되물었다.
“뭔데?”
“선물.”
“선··· 물···!”
다시 신이 난 다연이와 나는 선물을 놓아뒀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인형을 내밀었다.
“우와···! 이거..! 변신하는 수바기 인형이다아!”
다연이는 영상 속, 인형을 리뷰하는 사람처럼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과장된 반응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만큼 신난 목소리다.
“이거 어엄청 구하기 힘들다고 영상에 나오는 언니가 말해써!”
구하기 힘들었다. 정말로.
“응, 힘들었어.”
“우와!”
한참 인형을 요리조리 살피던 다연이가 말했다.
“엄청, 너무 고마워!”
그렇게 말하면서 쪼그려 앉은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나름 고맙다는 표시인 것 같다.
“너무 좋아!”
좋아하는 다연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잠시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늘 하던 말을 했다.
“그래, 좋아하니까 다행이야.”
흔하고 익숙해서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다연이는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너무 좋아!"
.
.
.
요란했던 생일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다연이는 그대로 누워서 밥돌이의 영상을 보고 있다.
“오··· 이러케 만들었구나아..”
저번 다연이 생일 날에 와서 찍었던 영상이다.
특별했기에 다연이에게도 말해줬었다.
“우아! 오빠 손도 나온다아!”
다연이가 손가락으로 영상을 가리키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자 다연이는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우리가 머겄던 케이크도 나온다!”
여전히 중얼거리는 다연이를 놔두고 나는 오래간만에 책을 읽는다.
요즘들어 다연이가 점점 똑똑해지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에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 다연이가 모르는 걸 물어보는 일이 생긴다면 오빠답게 대답해 줘야 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책이라도 틈틈히 읽어야 한다.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 휴대폰 벨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 모양이다.
"오빠아."
다연이가 익숙하게 휴대폰을 가져다 주고, 나는 이름을 확인한 뒤 전화를 받는다.
의외로 발신자는 밥돌이였다.
"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밥돌이의 신난 목소리가 들린다.
"형님!"
"네...?"
갑작스런 호칭에 뭐라고 해야할지 생각하던 틈에 밥돌이가 말을 이었다.
"혹시 회 뜨실 줄 아세요?"
"회..?"
"네! 물고기!"
그 말에 다연이가 고개를 휙 돌려서 나를 본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말했다.
"물꼬기...?"
뭐든 잘해